
1973년, 하버드대학교 사회학과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 교수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한 2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가 가끔 만나는 지인을 통해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친한 친구나 가족을 통해 직장을 구한 경우는 단 17%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이론의 시작이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이 이론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매일 해오던 HR 활동들을 다시 바라볼 필요는 없을까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업계의 HR 담당자들을 만나며 흥미로운 경험담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제조업체의 HR 담당자는 공장생산팀과 연구소 간의 소통 부족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두 팀이 같은 시간에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몇 주 지나자 서로 업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부서 간 협업 프로젝트 제안이 늘고, 제품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던 수정 요청도 줄어들었습니다.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부서 간 협력 항목 점수가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은 물론입니다.
이 담당자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우연한 만남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IT 기업의 HR 담당자는 개발팀과 마케팅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점심 매칭' 프로그램을 시도했습니다. 매주 무작위로 다른 부서 직원들을 매칭해 함께 점심을 먹게 한 것입니다.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몇 달 후 부서 간 갈등으로 인한 HR 상담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신제품 출시 과정도 훨씬 매끄러워졌고, '다른 부서가 뭘 하는지 이제 알겠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경험담들은 우리가 의례적으로 진행하는 많은 HR 활동을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Granovetter(1973)는 약한 연결이 강력한 이유를 정보의 비중복성으로 설명합니다. 친한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정보 환경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반면 가끔 만나는 지인들은 완전히 다른 네트워크에 속해 있어 참신하고 비중복적인 정보를 가져다줍니다. 최근 링크드인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Rajkumar et al., 2022)도 약한 연결을 통한 정보가 강한 연결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이를 뒷받침합니다.
Ronald Burt(2005)는 그라노베터의 이론을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s)' 이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그룹들 사이의 '중개자(broker)'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장 큰 이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버트의 연구에서 구조적 공백을 많이 가진 관리자들은 승진 가능성이 높았고, 더 좋은 성과 평가를 받았으며, 연봉도 더 높았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미 다양한 HR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규직원 멘토링, TFT 운영, 직원 추천 채용, 사내 동호회(CoP 포함) 지원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단순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HR이 전략적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활동을 '구성원의 네트워크 강화'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부서는 일종의 '사일로(silo)'를 형성하며, 이는 곧 구조적 공백을 만들어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흐름을 차단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전략적 접근법을 소개합니다.
1. 물리적 환경 재설계 : '충돌 공간'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라
기존에는 부서별로 구역을 나누어 앉혔다면, 이제는 우연한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해야 합니다. 커피머신이나 프린터 같은 공용 시설을 부서 경계에 배치하거나,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충돌 공간(collision space)'을 조성하는 것이죠.
2. 교차 기능 활동 재설계: 비공식적 협업을 장려하라
프로젝트가 필요할 때만 TFT를 구성하는 대신, 일상적인 협업 기회를 창출해야 합니다. 정기 회의보다는 부서 간 비공식적 브레인스토밍을 장려하고, 프로젝트 킥오프에 관련 부서 모두가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순환 근무 프로그램도 승진 대상자 위주에서 네트워크 확장 목적으로 확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무 연관성이 낮은 부서 간에도 3~6개월의 짧은 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3. 외부 약한 연결 활용: 추천 채용을 고도화하라
최고의 인재들은 대부분 현재 직장에 만족하며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채용 공고만으로는 이들에게 접근하기 어렵죠.직원 추천 프로그램을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방식에서 체계적인 관계 관리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추천자에게 네트워킹 교육을 제공하고, 피추천자와의 장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매칭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타사 HR 담당자들과의 정기적인 만남, 업계 세미나 및 컨퍼런스에서의 적극적인 네트워킹, 경쟁사가 아닌 타업계와의 정보 교환 등 HR 네트워크 자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 시도와 단계별 접근
조직차원에서 네트워크 활동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부 네트워크의 건강도는 부서 간 협업 프로젝트 제안 건수, 교차 기능 활동 참여율 등의 정량적 지표와 직원 만족도 조사 중 '타부서와의 협력' 항목 등의 정성적 지표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외부 네트워크 효과는 추천 채용 비율 변화, 채용 프로세스 소요 시간 단축 등 채용 성과와 업계 내 인지도 변화, 자발적 지원자 증가율 등 브랜드 영향력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약한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면 강한 연결을 간과할 위험이 있습니다. Aral 과 Van Alstyne(2011)의 연구에 따르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정보에는 강한 연결이, 단순하고 느리게 변하는 정보에는 약한 연결이 더 효과적입니다. 따라서 위기 상황이나 긴급 프로젝트에는 강한 연결을, 혁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 탐색에는 약한 연결을 활용하는 등 두 연결을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합니다.
위와 관련해서 적용가능한 실무차원의 접근을 더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단계: 조직 내 소통 패턴을 분석하고, 구조적 공백 지점과 핵심 연결자(connector)를 파악합니다.
2) 2단계: 소규모 부서 간 연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물리적 환경을 일부 조정하며, 외부 네트워크 구축 활동을 강화합니다.
3) 3단계: 초기 성과를 측정하고, 참여자 피드백을 수렴하여 전사 확산 계획을 수립합니다.
Granovetter(1973)의 이론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 중요한 정보와 기회를 얻습니다. 많은 조직이 개인의 역량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연결의 질에서 나옵니다.
HR이 단순한 관리자를 넘어 '조직의 연결망 설계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활동들을 네트워크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구성원들이 더 풍부한 연결을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조직의 혁신은 개인의 역량이 아닌 연결의 질에서 나옵니다. HR이 이 연결을 전략적으로 설계할 때, 지원부서를 벗어나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Aral, S., & Van Alstyne, M. (2011). The diversity-bandwidth trade-off.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17(1), 90-171.
- Burt, R. S. (2005). Brokerage and closure: An introduction to social capital. Oxford University Press.
- Granovetter, M. S. (1973). The strength of weak tie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78(6), 1360-1380.
- Rajkumar, K., Saint-Jacques, G., Bojinov, I., Brynjolfsson, E., & Aral, S. (2022). A causal test of the strength of weak ties. Science, 377(6612), 1304-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