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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갑자기 우리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

회사가 갑자기 우리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조직문화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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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인가HR인가Jul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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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 많은 기업, 특히 떠오르는 스타트업 조직에서는 좋은 직원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저 멀리 달로, 화성으로, 우주로 떠나는 로켓에 탑승' 하라며, '지금이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로켓에 탑승할 마지막 기회'라며 파격적인 보상을 내걸었고, 전면 재택근무, 수평적인 문화, 그리고 심리적 안전감과 자율성에 기반한 문화는 가장 매력적인 복지이자 기업의 자랑이었다. 마치 성대한 파티 같았던 그 시절, 성장은 당연해 보였고 미래는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장의 분위기는 그리 낙관적이여 보이지 않는다. 비즈니스 상황은 어려워지고, 과거 장밋빛 전망 아래 늘어난 인건비와 각종 비용은 이제 '부담'이라는 이름의 청구서가 되어 돌아왔다. 생존과 효율성이 조직의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바로 그토록 강조했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이다.

낙관적이었던 비즈니스 상황이 어려워지면 조직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1.

상황이 어려워지면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은 급격히 변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오피스 퍼스트(Office First)' 정책의 부활이다. 주 3일, 혹은 전면 출근을 요구하며 재택근무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 조직의 명분: 경영진은 "긴밀한 협업과 소통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고, 업무 몰입도를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며, 이는 조직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 구성원의 해석 : 구성원들은 이 결정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오피스 퍼스트'는 "우리는 당신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메시지이자, 팬데믹 기간 동안 스스로 증명해 보인 자율성에 대한 명백한 저해로 여긴다.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만 일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구성원에게 이러한 결정은 단순히 근무 장소를 바꾸는 것을 넘어, 과거의 상명하복식 관리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자율과 책임에 기반했던 문화는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근태와 통제가 다시 중요해지기도 한다.

2.

기업이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조직 슬림화', 즉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누가 다음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조직 전체에 빠르게 확산된다.

- 조직의 입장 : 회사는 '성과 중심의 조직 개편', '효율성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구조조정을 포장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며, 남은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 구성원의 반응 : 바로 이 지점에서 구성원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회사가 좋았던 시절, '우리는 한 팀', '개인의 성장을 지지한다'며 강조했던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안전감이 사라진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지 않는다. (조직과 구성원 간의 '심리적 안전감'에 대한 생각의 GAP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작성해 보도록 하겠다)

결국 조직 내에 냉소주의가 팽배해진다. '어차피 곧 나갈지도 모르는데', '열심히 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조용한 퇴사' 현상으로 이어지고, 핵심 인재들은 더 안정적인 기회를 찾아 실제로 조직을 떠나기 시작한다.

3.

위기 상황에서 '자율성'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 호황기의 자율성 : "회사가 당신을 믿으니,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과 장소를 선택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하세요." (Freedom to Act) 즉, 권한의 위임과 신뢰의 상징이었다.

- 불황기의 자율성 : "회사가 어려우니, 알아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세요." (Responsibility to Deliver) 즉, 결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만을 의미하게 된다.

구성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예산은 삭감되며, 행동의 제약은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이전과 같거나 더 높은 수준의 성과를 '자율적으로' 달성하라고 요구한다. 구성원들은 이를 진정한 자율성이 아니라, '각자도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책임의 전가로 느낀다. 권한 없는 책임은 구성원들을 소진시킬 뿐, 어떤 긍정적인 동력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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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상황의 악화는 단순히 재무제표의 숫자가 나빠지는 것을 넘어, 조직이 그동안 쌓아 올린 문화와 신뢰, 가치가 얼마나 진정성 있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성대하고 화려한 파티, 즉 왁자지껄하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나 좋은 리더,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다. 리더는 기꺼이 파티 비용을 지불하며 모두의 환심을 사고, 넘치는 음식과 음료처럼 관대한 보상과 자율성을 제공한다. 간혹 누군가 바닥에 음식을 흘리고 음료를 쏟아도, 파티의 즐거움 속에서는 그저 별것 아닌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켜지는 시기가 온다. 어질러진 파티장과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라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파티가 끝난 후, 누가 함께 남아 이 어지러운 자리를 치우고 일상의 공간을 회복시키려 할까? 그리고 파티가 지나간 자리, 공간의 일상을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인가
브랜딩인가HR인가
조직개발 스페셜리스트ㆍ작가 ㆍ지금은 프리워커
[저서] 더 시너지, 자기다움에서 우리다움으로 / 그래서, 인터널브랜딩 /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 / 딜레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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