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3년 미카와가 갈라졌다.
미카와의 영주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직 도쿠가와라는 성을 쓰기 전이었다. 스물한 살의 마쓰다이라 이에야스는 미카와의 영주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때 정토진종 계열 사찰과 문도들이 봉기했다. 이른바 미카와 잇코잇키였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적은 영지 밖에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야스의 가신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봉기세력에 가담했다. 어떤 이는 주군보다 신앙을 택했고 어떤 이는 사찰과 지역 공동체의 관계를 저버리지 못했다. 마쓰다이라 가문을 오랫동안 섬긴 집안도 둘로 갈렸다. 후대의 미카와 가신단은 절대적인 충성의 상징처럼 기억되지만 출발부터 하나였던 조직은 아니었다. 현대 연구에서도 당시 가신단의 상당수가 이에야스의 반대편에 섰던 것으로 본다.
이에야스는 결국 자신의 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다행히 봉기는 진압되었고 사람들은 이에야스가 자신의 가신단들을 처벌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반기를 든 가신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거나 도망쳐버린 사람들을 제외하고 가신단을 다시 받아들였다. 용서받은 사람들은 다시 마쓰다이라의 깃발 아래 섰다. 약소세력이었던 이에야스였기에 그 뒤에도 배신은 있었다. 특히 오랫동안 가로로 일한 이시카와 가즈마사는 훗날 히데요시에게 이적하기도 했다.

훗날 충성의 대명사로 불리던 미카와 가신단의 충성은 처음부터 완성된 성품이 아니었다.
배반이 있었고 처벌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덮는 용서가 있었기에 다시 함께 싸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에야스의 인사에서 보아야 할 것은 충신들의 미담이 아니다.
한 번 갈라졌던 사람들을 다시 묶고 그 관계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질서로 만든 과정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군단장들은 강했다.
시바타 가쓰이에와 아케치 미쓰히데, 하시바 히데요시는 각자의 병력과 영지와 부하를 거느렸다. 노부나가가 살아 있을 때 그 힘은 오다의 팽창을 위해 쓰였다. 노부나가가 사라지자 군단장들의 권력은 각자의 것이 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가신단이 약했다.
그래서 친족과 양자, 혼인과 성씨 수여를 통해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 가족은 히데요시의 총애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후계 약속을 뒤집고 히데쓰구를 제거하자 가족의 기준도 함께 무너졌다.
이에야스도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와 같이 측근과 친족을 썼다. 다만 그들을 묶는 방식이 달랐다.
그의 핵심 가신은 단순히 이에야스 개인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카이와 혼다, 오쿠보와 사카키바라 같은 집안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마쓰다이라 가문을 섬겼다. 이들에게 복무의 단위는 개인만이 아니었다. 주군의 집안과 가신의 집안이 세대를 넘어 관계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마쓰다이라를 섬겼으니 아들도 같은 가문을 섬겼다.

주군이 죽으면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 당주와 다음 가신이 그 관계를 이어받았다. 공을 세우면 개인만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지위가 올라갔다. 잘못을 저지르면 집안 전체의 미래가 흔들렸다.
충성은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가문의 이해관계로 이어졌다. 도쿠가와의 질서는 이 관계 위에 세워졌다.
후다이라는 말은 본래 오래된 계보와 세습적 복무관계를 뜻했다. 마쓰다이라 가문을 오래 섬긴 집안들은 안조 후다이와 오카자키 후다이 등으로 구분됐으며 사카이·오쿠보·혼다·이시카와 같은 여러 집안이 그 안에 포함됐다. 이 오래된 관계는 훗날 후다이 다이묘와 막부 직속 가신의 인적 기반이 됐다.
그렇다고 모든 후다이(고참)가 무조건 유능했고 모든 도자마(신참)가 위험했던 것은 아니다. 이에야스가 만든 질서는 능력의 순위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에게 어떤 권한까지 맡길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신뢰의 등급표에 가까웠다.
미카와의 가신들은 화려한 승리만 함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을 이마가와 가문에서 인질로 보냈다. 독립한 뒤에도 강한 이마가와와 오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다케다 신겐과 맞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참패했다. 히데요시에게 굴복한 뒤에는 오랫동안 다스리던 미카와와 도토미를 떠나 간토로 옮겨야 했다.
가신들도 그 이동을 함께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영지가 언제나 넓어진 것은 아니다. 낯선 지역으로 옮겨가는가하면 어제까지 적이 지배하던 땅을 다스려야 했다. 심지어 그들이 힘껏 싸워 전투에서 이기고도 이에야스는 대세에 굴복하기도 했다. 주군의 선택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도 가신들은 가족과 부하를 데리고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미카와 가신단은 단순히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의 집합’에서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했다. 조직이론에서는 이를 ‘사회적 자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조직 안에 축적된 신뢰와 규범, 관계망을 뜻한다. 계약서에 모든 상황을 적어놓지 않아도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안다.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선이 공유된다. 미카와 가신단의 힘은 모두가 착하고 충성스러웠다는 데 있지 않았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오래 보았다는 데 있었다.
누가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는지 알았다. 누가 협상에 능한지 알았다. 누가 돈과 행정을 맡을 수 있는지 알았다.
누가 야심이 크고 누구를 가까이 두면 위험한지도 알았다.

이에야스 역시 가신들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혼다 다다카쓰와 사카키바라 야스마사는 전장에서 쓰였다. 사카이 다다쓰구는 초기 가신단을 통솔했다. 이이 나오마사는 기존 미카와 세습가신 출신은 아니었지만 젊은 나이에 발탁돼 다케다의 옛 가신과 군사체계를 흡수한 정예부대를 맡았다.
이에야스는 오래된 사람만 쓴 것이 아니다.
오래된 가신단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사람을 그 질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차이는 크다.
히데요시는 사람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이에야스는 사람을 도쿠가와의 복무체계 안에 넣었다.
한 사람의 총애를 받는 것과 하나의 경력경로에 들어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1590년 히데요시는 호조씨를 멸망시킨 뒤 이에야스를 간토로 옮겼다.

이에야스는 미카와와 도토미를 비롯해 오랫동안 다스린 영지를 내놓고 낯선 간토를 받아들였다. 겉으로는 큰 영지를 받은 영전처럼 보였지만 기존의 기반에서 떼어내는 조치이기도 했다. 이에야스는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결국 이 이동을 조직 재편의 기회로 삼았다.
오래된 가신들에게 간토 곳곳의 영지와 성을 맡겼다. 주요 가신들은 다이묘로 성장했다. 나머지 가신들은 직속 군사와 행정인력으로 재편됐다. 이 구조는 훗날 후다이 다이묘와 하타모토·고케닌 체제의 기반이 됐다.
그때부터 가신의 역할도 달라졌다. 전국시대의 가신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에도 막부의 가신은 전쟁이 없는 시대를 운영해야 했다.
병력을 지휘하던 사람이 성과 도시를 관리했고 군량을 마련하던 사람이 재정과 조세를 다뤘다. 또 명령을 전달하던 실무자는 봉행과 대관이 됐다.
이에야스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가신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았다. 통치에 필요한 역할로 옮겨놓았다. 미카와 시절의 실무인력과 문서담당자들이 세력 확장에 따라 봉행과 대관, 다이묘로 성장한 사례도 확인된다.
이 구조는 현대 인사의 ‘내부노동시장’과 닮았다.
내부노동시장은 조직 안에서 사람을 채용하고 육성하며 승진시키는 경로가 형성된 상태를 말한다. 구성원은 어떤 경험과 성과를 쌓으면 다음 자리에 갈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조직은 이미 함께 일해본 사람의 역량과 행동을 알고 중요한 자리를 맡긴다.

도쿠가와의 가신에게도 경력경로가 있었다.
직속 가신으로 공을 쌓은 후 영지를 받고 성주가 된다.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다이묘로 올라간다. 자신이 쌓아올린 가문의 지위가 인정되면 후손도 막부의 직책에 진입할 수 있다.
특히 후다이 다이묘는 로주와 와카도시요리 등 막부의 핵심 관직을 맡을 수 있었다. 반면 독자적인 영지와 가신단을 가진 강력한 도자마 다이묘는 큰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해도 막부 운영의 핵심에서는 대체로 배제됐다.
도쿠가와의 막부는 능력이 크다고 모든 권한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충성스럽다고 모든 자리를 주지도 않았다. 혈족인 신판은 쇼군가의 존속을 보완했다. 후다이는 행정과 군사의 핵심을 맡았고 도자마는 영지를 유지하되 중앙권력과 거리를 두었다.
이에야스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른 자리를 주었다.
도쿠가와의 다이묘 분류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영지의 위치와 규모, 맡을 수 있는 관직과 정치적 역할이 달랐다.
에도와 교토, 오사카를 잇는 길목과 주요 성곽 주변에는 믿을 수 있는 후다이와 신판이 배치됐다. 강력한 도자마 다이묘는 독자적인 영지를 유지했지만 막부 중심부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후다이는 도자마를 감시하고 주요 교통로와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는 역할도 맡았다.
이것은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방식이 아니었다. 위험의 종류에 따라 권한을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도자마 다이묘 가운데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은 많았다. 오히려 그들은 독자적인 조직과 영지와 군사력을 가졌기 때문에 강했다. 바로 그 강함 때문에 막부의 핵심 행정을 맡기기 어려웠다.
후다이 다이묘는 영지가 상대적으로 작아도 중앙의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 그 권력은 독립된 군사기반보다 쇼군가의 신임과 막부의 직책에서 나왔다. 쇼군이 그들을 임명하고 옮기고 교체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의 군단장은 권한을 받을수록 자기 세력이 커졌지만 이에야스의 후다이는 권한을 받을수록 도쿠가와 체제 안에서의 지위가 커졌다.
둘 다 분권이었지만 권력의 귀속이 달랐다.
노부나가의 군단은 군단장 개인의 병력과 인맥으로 축적됐다. 도쿠가와의 관직은 가문에 이어졌지만 그 가문의 지위는 막부 질서 안에서만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막부는 도쿠가와의 권력 질서를 위해 다이묘들의 영지를 몰수하거나 바꾸기도 했고 여러 개로 쪼개기도 했다.
즉 이에야스는 가신에게 힘을 주면서 그 힘이 도쿠가와 밖에서 독립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1603년 이에야스는 쇼군이 됐다.

불과 2년 뒤 그는 아들 히데타다에게 쇼군직을 넘겼다. 이에야스가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고쇼(일종의 상왕)로 남아 중요한 정책과 외교를 계속 주도했다. 그러나 쇼군직을 생전에 넘긴 행위는 분명한 신호였다.
막부를 세운 이상 도쿠가와의 통치는 이에야스 개인의 일회적인 권력이 아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가문의 권력이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권력의 중심에 남았다.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인 히데요리를 위해 오대로와 오봉행에게 서약을 요구했지만 후계자가 직접 통치하는 장면을 살아서 만들지 못했다.
이에야스는 아들인 히데타다를 쇼군 자리에 먼저 앉혔다. 막부의 가신들은 새로운 주군에게 명령을 받았다. 관직과 의례도 히데타다를 중심으로 다시 정렬됐다. 이에야스는 뒤에서 이를 지켜보며 개입할 수 있었다.

승계계획은 후계자를 지명하는 문서가 아니다. 기존 리더가 살아 있는 동안 다음 리더가 실제로 명령하고 구성원이 그 명령을 따르는 경험을 만드는 일이다.
이에야스는 후계자를 발표하지 않고 후계자의 시대를 미리 시작했다.
또한 쇼군가의 혈통을 보완하기 위해 오와리·기이·미토의 세 분가를 두었다. 이른바 고산케다. 쇼군 직계에 후계가 끊길 경우 도쿠가와 혈통 안에서 후계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였다.
노부나가에게도 노부타다라는 후계자가 있었지만 아버지와 같은 날 죽었고 히데요시에게도 히데쓰구와 히데요리가 있었지만 히데쓰구는 히데요시에 의해 죽는다. 그가 미래를 맡긴 히데요리는 결국 이에야스에 의해 멸문당하고 만다.
이에야스의 차이는 후계자가 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의 장점은 후계자를 지탱할 가신의 질서와 혈통의 예비선, 관직의 체계를 함께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물론 이에야스식 인사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세습가신 중심의 내부노동시장은 조직을 안정시킨다. 구성원은 오랫동안 충성하고 경험을 쌓으면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자리에 조직의 역사와 관행을 아는 사람이 들어간다.
동시에 문을 닫는다. 오래된 집안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기회를 얻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유능한 사람은 핵심 의사결정에 접근하기 어렵다. 조직의 규칙을 오래 지킨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보장은 없다.

도쿠가와 막부의 질서는 오래 지속됐다. 그 지속성이 곧 모든 시대에 대한 적응력을 뜻하지는 않았다.
막부 말기 새로운 군사기술과 산업, 외교역량을 빠르게 받아들인 세력 가운데 사쓰마와 조슈 같은 유력 도자마 번이 있었다. 막부의 핵심은 오랫동안 후다이 중심으로 운영됐다. 안정을 위해 내부를 단단히 묶은 질서는 시간이 흐르며 외부의 지식과 인재를 받아들이는 장벽이 될 수 있었다.
이에야스의 교훈을 ‘오래된 사람을 믿어야 한다’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는 오랜 관계가 가진 신뢰를 활용했다.
그러나 오늘의 기업이 세습적 지위를 흉내 낸다면 이에야스의 강점이 아니라 막부 말기의 경직성만 가져오게 된다.
작은 기업에도 미카와 가신단이 있다. 이들은 대표와 처음부터 함께한 창업멤버다.
월급이 밀릴 때 남았고 매출이 없을 때 고객을 찾았다. 직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과 운영과 배송을 함께 했다. 대표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 관계에는 분명 말로 설명하기 힘든 큰 가치가 있다.
그들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가 단기간에 대신할 수 없는 조직의 사회적 자본이다. 회사가 흔들릴 때 마지막까지 버티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오래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핵심직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전쟁을 잘한 가신이 행정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새로운 사업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창업공신을 존중하는 것과 그 사람에게 영구적인 자리를 보장하는 것은 다르다. 이에야스가 미카와 가신단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전쟁집단에서 통치집단으로 바꾸었듯 기업도 초기 멤버의 역할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누가 고객관계를 맡을 것인가.
누가 조직과 재정을 관리할 것인가.
누가 다음 사업을 이끌 것인가.
누가 임원의 자리에서 물러나 전문역할로 이동해야 하는가.
오래된 신뢰를 버리지 않되 직책은 현재의 역량에 맞춰야 한다.

또 하나가 필요하다. 충성을 개인에게만 묶지 않아야 한다.
직원들이 대표를 따르는 조직은 대표가 강할 때 빠르게 움직인다. 대표가 사라지면 방향도 사라진다. 직원들이 회사의 직무와 경력경로, 보상과 의사결정 기준을 신뢰해야 한다.
‘대표와 오래 일하면 언젠가 보상받는다’는 막연한 믿음은 제도가 아니다. 어떤 역할을 수행하면 어떤 권한을 받는지 보여야 한다.
성과와 책임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밝혀야 하고 대표와의 친분이 없어도 핵심직책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후계자는 대표가 쓰러진 날이나 위기 상황에서 발표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이에야스의 방식은 단순히 오래된 사람을 가까이 두는 측근정치가 아니었다.
오래된 관계를 직책과 영지와 승진경로로 옮기는 일이었다. 미카와의 가신들은 처음부터 충성스럽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싸웠으며 떠난 사람도 있었다. 주군인 이에야스의 판단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쿠가와 가문은 그들을 다시 묶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흔들려도 관계가 이어질 이유를 가문과 직책과 다음 세대에 남겼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는 군단장에게 전장을 맡겼고 히데요시는 측근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최후의 승자인 이에야스는 충성하는 사람을 찾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나아가 그는 그 충성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어디에 머물 것인지 정했다. 사람은 죽고 마음은 변한다.
오래가는 조직은 충성을 믿는 조직이 아니다. 충성이 다음 사람에게 이어질 자리를 만드는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