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진이 칭기즈 칸이 된 뒤 조직의 크기는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더 이상 하나의 전투에서 모든 핵심인물이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금나라와의 전쟁, 중앙아시아 원정, 초원 내부의 통치가 동시에 진행되면 칸 한 사람이 모든 판단을 직접 내릴 수 없다.
몽골군의 강점을 설명할 때 빠른 기동과 기마전술이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넓은 거리를 빠르게 움직이려면 현장지휘관이 상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매번 최고지도자의 명령을 기다리는 군대는 멀리 갈 수 없다.
실제 수양제는 고구려 침공시 모든 결정은 자신에게 받으라고 모든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요동성을 함락시키기 직전마다 고구려군이 거짓항복을 하는 바람에 일선의 장수들은 고구려가 거짓항복을 하는 줄 알면서도 수양제에게 보고하느라 고구려군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수양제는 고구려에서 하나의 성도 함락시키지 못한 채 철군했고 몇년 후 나라가 망했다.

그렇다고 몽골군이 느슨한 연합체였다는 뜻도 아니다. 지휘체계와 군율은 엄격했고 명령을 어겼을 때의 처벌도 강했다.
중앙의 기준은 강하게 두되 현장의 판단범위는 넓게 주는 것은 칭기즈 칸이 큰 조직을 운영하면서 풀어야 했던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조직이 커질수록 최고리더의 직접개입은 줄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늘어도 조직의 처리능력은 리더 한 사람의 시간에 묶인다.
직원 백 명인 회사가 있다. 대표는 능력 있는 팀장을 여섯 명이나 두고 있다. 그런데 견적서의 할인율을 5%만 바꾸려 해도 대표 결재가 필요하고 고객에게 사과메일을 보내기 전에도 대표에게 문구를 보여줘야 한다.
팀장은 사람을 관리하지만 사람을 뽑을 권한은 없다. 매출목표는 책임지지만 예산을 조정할 수 없다. 고객 앞에서는 “제가 결정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대표의 답을 기다린다. 대표는 하루 종일 바쁘다.
그리고 직원들은 점점 판단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마지막에 대표가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자 팀장들의 행동도 비슷해진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제안하기보다 대표가 어떤 답을 원하는지 먼저 묻는다. 중요한 고객과의 협상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대표가 결정을 내리면 그대로 실행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대표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대표는 답답해한다. “왜 우리 회사에는 주도적인 리더가 없지?”
하지만 조직이 그렇게 학습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좋은 사람을 뽑는 것과 그 사람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다른 일이다. 권한 없이 책임만 주면 직책은 생기지만 리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몽골 제국의 지휘관들을 보면 이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초원의 통일 전쟁에서는 테무진이 주요 전투의 중심에 직접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국의 영역이 넓어진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군대를 보내야 했고 칸이 없는 곳에서도 전쟁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단위별 지휘체계였다. 천호와 만호 같은 조직 단위가 있었고 그 책임자는 사람과 병력을 지휘했다. 지휘관들은 상위의 목표와 명령 안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을 판단해야 했다. 현대 회사에서 권한위임을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오해가 있다.
위임을 하면 대표가 통제력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임자는 세우되 중요한 의사결정은 계속 대표가 쥔다. 하지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기준을 정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통제다. 오히려 모든 세부사항을 대표가 직접 결정하면 조직의 처리량은 대표 한 사람의 시간에 묶인다.
대표가 하루에 열 개의 결정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고 해보자.
조직이 커져 하루에 백 개의 결정이 필요해졌는데도 그 열 개를 모두 대표에게 올리면 나머지 아흔 개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기다림이 조직의 속도를 늦춘다. 이 문제는 사람을 더 뽑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정권이 그대로라면 사람이 늘어날수록 대기열만 길어진다.
칭기즈 칸이 넓은 지역을 동시에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기 대신 판단할 사람이 필요했다.
무칼리는 칭기즈 칸의 핵심 지휘관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혈족이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신뢰와 공적을 쌓았고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칭기즈 칸이 중앙아시아 원정에 나선 뒤 무칼리는 중국 북부의 전선을 계속 맡았다. 1217년 무렵 칭기즈 칸은 그에게 높은 지위와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고 무칼리는 칸이 직접 곁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작전을 이어간다. 물론 이를 현대 기업의 완전한 독립경영이나 지사 운영과 같은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무칼리는 칭기즈 칸의 지휘체계 안에 있었고 제국의 군사목표를 수행했다.
다만 최고지도자가 다른 대륙 방향으로 움직인 상황에서도 큰 전선을 맡겨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권한이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대표가 사람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진짜 신뢰는 대표가 자리에 없을 때 그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서 드러난다.

무칼리에게 큰 전선을 맡겼다는 것은 그가 충성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전쟁을 통해 능력과 판단이 반복해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권한은 신뢰의 결과이면서 다시 더 큰 신뢰를 만드는 시험대였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팀장이 작은 예산만 다뤄본 사람이라면 갑자기 수십억짜리 프로젝트를 맡기기 어렵다. 먼저 작은 고객과 작은 예산에서 판단하게 하고 결과를 함께 봐야 한다.
잘하면 범위를 넓힌다. 실패해도 판단과정을 확인하고 다시 맡긴다. 이 과정이 없으면 대표는 늘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아직 맡길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맡기는 과정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제베와 수부타이 역시 칭기즈 칸의 권한위임을 생각할 때 자주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호라즘 전쟁 과정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움직였다. 도망치는 호라즘 샤 무함마드를 추격한 뒤 코카서스와 러시아 남부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거리 원정에서도 이름이 함께 등장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전장에서 칸에게 매일 명령을 물을 수는 없다. 지형과 적의 움직임, 병력의 상태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는 현장의 판단이 필수다.
그렇다고 두 지휘관이 마음대로 전쟁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몽골군은 큰 전략목표와 지휘관계 안에서 움직였고 보고와 연락도 중요했다.

문제는 명령을 어디까지 세밀하게 내릴 것인가였다. 좋은 위임은 “알아서 해”와 다르다.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 어떤 선을 넘으면 안 되는지, 언제 보고해야 하는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 그 경계 안에서 현장책임자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팀장에게 “네가 책임져”라고 말해놓고 모든 가격과 인력, 일정변경을 대표가 승인한다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책임전가에 가깝다. 반대로 “팀장이니까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기준과 정보는 주지 않는 것도 위임이 아니다.
책임지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와 자원, 결정범위가 함께 가야 한다. 몽골군의 장거리 원정이 가능한 이유를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장지휘관이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멀리 보내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있었다. 몽골의 신호체계와 역참제도는 신뢰와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실질적인 제도이자 도구였다.
권한위임을 이야기하면 자율적인 조직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자율은 규칙이 없는 상태와 다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몽골군의 군율은 강했다. 지휘체계가 명확했고 명령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도 있었다. 각 부대가 마음대로 움직였다면 빠른 기동은 오히려 혼란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 조직에서도 권한이 넓을수록 기준은 더 중요하다.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올라서 몽골을 통일하게 된 이유도 씨족이나 부족 수준의 군율을 가진 타 부족을 압도하는 시스템을 가졌기 떄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영업팀장에게 할인권한을 주려면 최대 할인율과 손익기준이 있어야 한다. 채용권한을 주려면 인건비 예산과 필수 검토항목이 있어야 한다. 고객보상권한을 주려면 어느 수준까지 팀에서 처리하고 언제 대표에게 보고할지를 정해야 한다.
기준이 없으면 구성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거나, 사람마다 전혀 다른 기준으로 결정한다.
둘 다 조직에는 부담이다. 그래서 권한위임은 대표가 일을 내려놓는 문제가 아니다.
의사결정의 규칙을 조직 안에 만드는 일이다. 대표가 결정할 때는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하던 판단을 팀장에게 넘길 때는 문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왜 이 고객은 10% 할인이 되고 저 고객은 안 될까요?.”
“어떤 상황이면 환불을 승인하고 어떤 상황이면 법무검토를 받아야 하나요?.”
“채용할 때 경력보다 반드시 봐야 할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런 판단이 대표 개인의 감각에만 있으면 권한은 넘겨도 기준은 넘겨지지 않는다.
생각은 머리에 얼마든 채울 수 있지만 기준은 돌에 새기듯 명확해야 한다.

칭기즈 칸이 강한 장수를 많이 가졌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장수들이 각자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를 조직이 감당했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큰 권한을 주는 것은 위임이 아니다. 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만드는 일이다.
보오르추와 무칼리, 제베와 수부타이 같은 인물들도 하루아침에 거대한 역할을 받은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합류했고 여러 전쟁과 위기에서 행동을 보여주며 역할을 키웠다.
작은 회사에서도 권한위임이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중간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표가 오랫동안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팀장에게 “이제부터 다 알아서 해”라고 한다. 팀장은 판단기준을 배운 적이 없고 실패경험을 안전하게 쌓을 기회도 없었다. 결국 사고가 나면 대표는 다시 모든 권한을 가져온다 그리고는 심가한 표정으로 말한다.
“역시 내가 해야 돼.”
하지만 그 조직은 사람에게 판단을 연습시킨 적이 없다.
권한은 한 번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좋다. 먼저 작은 예산과 작은 고객에서 결정하게 하고 결과를 함께 검토한다. 이후 더 큰 역할을 맡긴다. 실패했을 때 무조건 권한을 회수하기보다 판단과정을 살펴야 한다.
정보가 부족했는지, 기준이 애매했는는지, 욕심을 냈는지 보고해야 할 시점을 놓쳤는지.
원인을 봐야 다음 권한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직책을 가진 사람이 실제 책임자가 된다.
칭기즈 칸의 핵심지휘관도 오랜 시간 전장에서 검증되며 더 큰 역할을 맡았다.
권한을 넘긴 뒤에는 평가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대표가 직접 결정하던 시기에는 직원이 지시를 정확히 수행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팀장에게 판단권을 주면서도 여전히 ‘대표가 했을 법한 답과 같은가’를 평가하면 누구도 자기 판단을 하지 않게 된다.

위임한 사람의 결과를 볼 때는 정답만 보지 말고 판단의 근거를 봐야 한다. 당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회사의 기준을 지켰는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이 대표의 복사본이 아니라 자기 판단을 가진 책임자로 성장한다. 대표와 다른 결정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실패는 아니다. 회사가 정한 경계 안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면 오히려 위임이 작동한 것이다.
위임이 제대로 작동하면 대표의 역할도 달라진다. 직접 문제를 푸는 시간은 줄고 어떤 문제를 누가 풀어야 하는지 정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대표의 성과를 자신이 처리한 건수로 보면 이 변화가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질수록 대표의 일은 답을 많이 내는 것보다 답을 낼 사람과 기준을 만드는 쪽으로 이동한다.
위임이 잘된 조직에서는 대표가 자리를 비웠을 때 오히려 평소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보고받는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표의 부재가 비상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조직운영의 시험이 되는 셈이다.
직원 백 명인 그 회사에서 대표가 하루 휴가를 간다고 해보자. 견적이 멈추고 채용이 멈추고 고객보상이 멈춘다면 회사에는 팀장이 여섯 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 한 명과 여섯 명의 전달자가 있는 것이다. 대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결정 가운데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결정을 구분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그 결정을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지 문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세 번째는 실제로 맡기고 결과를 보는 일이다. 네 번째는 잘했을 때 다시 권한을 가져오지 않는 일이다.
대표가 맡겼다가 중요한 순간마다 다시 개입하면 직원은 곧 학습한다.
“결국 대표가 할 일이다.”
권한위임의 목표는 대표가 편해지는 데 있지 않다. 그런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조직이 대표 한 사람의 처리능력을 넘어서는 데 있다.

칭기즈 칸이 직접 모든 전선을 지휘했다면 제국은 그가 탈 수 있는 말의 속도만큼밖에 커지지 못했을 것이다.
무칼리와 제베, 수부타이 같은 사람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더 많은 일이 가능해졌다.
우리 회사의 팀장은 직함만 팀장일까. 아니면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도 회사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 차이가 조직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리더의 크기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직접 하는지가 아니라 자기 없이도 얼마나 많은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지에서 드러날지도 모른다.
씨족에서 제국으로, 칭기즈칸이 된 테무진의 이야기
1편. 고아로 버려진 테무진은 어떻게 자기 사람을 만들었을까
2편. 혈연이 아닌 능력을 택한 리더, 테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