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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무게추와 균형축

人事萬史 : 무게추와 균형축

중심이 되지 못한 제갈량의 리더십
조직문화리더십임원CEO
영준
유영준Aug 4, 2025
20448

충성과 갈등 사이에 선 리더

역사는 언제나 인물로 시작되지만, 조직은 언제나 구조로 무너진다. 이 명제는 특히 리더십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개인의 탁월함만으로는 조직의 장기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반복해서 증명하는 진실이다.

뛰어난 두 사람이 조직의 양 날개처럼 존재할 때, 이는 리더에게 축복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험이 된다. 서로 다른 배경, 다른 사고방식,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재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만약 그 둘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여기며 견제하고 제거하려 한다면? 그리고 리더가 사라진 순간, 조직을 둘로 찢어놓으려 하는게 이미 보인다면..

리더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단순히 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까?

3세기 중국, 삼국시대의 촉한은 이런 딜레마가 극명하게 드러난 조직이었다. 한나라 왕실의 복원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서로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 이 조직은 끊임없는 내부 갈등에 시달렸다. 특히 승상 제갈량과 그의 좌우를 받쳤던 양의, 위연의 삼각 구도는 이런 갈등의 축소판이었다.

이들은 각각 리더십, 문치, 무용의 정점에 섰으나, 제갈량 사후 그 갈등은 곧바로 파국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 대립을 넘어서, 조직 구조와 리더십 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내는 사례다.

3세기 중국의 정치적 맥락을 이해해야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당시는 400년간 지속된 한나라가 몰락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찾는 격변의 시대였다. 위, 촉, 오 삼국은 각각 다른 정통성을 주장하며 패권을 놓고 경쟁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내부의 단결과 효율성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오랫동안 안정되어있던 한나라의 몰락으로 전통적인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인재들이 부상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한나라라는 기존 헤게모니가 무너지며 기존의 문벌 체제가 흔들렸고, 개인의 능력과 실력으로 출세하는 길이 열렸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갈등도 만들어냈다. 전통적 엘리트와 신진 세력 사이의 갈등, 서로 다른 지역 출신들 사이의 경쟁, 문신과 무신 사이의 대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촉한은 이런 갈등이 특히 심했는데, 이는 유비가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규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촉한은 세 나라 중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인구도 적고, 경제력도 떨어졌으며,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벌이라는 공격적 전략을 추진하려면, 조직 내부의 완벽한 단결과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필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천재 제갈량이 고작 위연과 양의를 다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연: 돌파의 상징, 현장의 리더

위연(魏延, ?~234)은 이런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전통적 엘리트가 아닌, 실력으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였다. 유비의 사병에서 시작하여 북벌 선봉장까지 오른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공 스토리였다.

『정사 삼국지』 위연전은 그를 "일찍이 사졸을 잘 길렀고 다른이들보다 용맹하였으나 그것이 지나쳐 성품이 거만하고 뽐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고 양보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현대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성과자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일수록 자신감이 강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에 어려움을 겪는다.

위연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에서의 탁월한 판단력과 실행력이었다. 그는 전투 상황에서 기존의 관례나 상관의 지시보다는 현장의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을 선호했다. 이는 때로는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지만, 때로는 조직의 통제 체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위연이 자주 제안했던 "자오곡 기습 작전"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험준한 자오곡을 통해 장안을 직접 공격하여 위나라 서부의 주요거점인 장안을 치자는 대담한 전략이었다. 정면 공격보다는 기습을 통한 돌파를 추구하는 이 작전은 위연의 전술적 사고를 잘 보여준다.

물론 당시 장안의 방비 등을 생각해보면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이릉대전 이후 국력을 겨우 회복시킨 제갈량은 이런 위험한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위연의 불만은 단순한 전술적 이견을 넘어서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발전했다. 그는 실제로 제갈량이 겁이 많다며 불편을 늘어놓곤 했다.

현대 조직 이론의 '혁신 이론(Innovation Theory)' 관점에서 보면, 위연은 전형적인 '혁신가(Innovator)' 유형이었다. 기존의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추구하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큰 성과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이런 유형은 안정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와 충돌하기 쉽다.

더 중요한 것은 위연의 충성 구조였다. 그의 충성과 믿음은 제갈량이 아닌 유비를 향했다. 이는 조직 내에서 이중 권위 구조를 만들어냈다. 유비가 살아있을 때는 문제없었지만, 유비 사후 사실상 제갈량의 통제하에 촉한이 운영되었으므로 잠재적 갈등 요소가 되었다.

양의: 설계의 화신, 시스템의 관리자

양의(楊儀, ?~235)는 위연과는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형 리더였다. 형주에서 관료로 성장한 그는 체계적 사고와 정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한 행정 전문가였다.

『정사 삼국지』 양의전에 따르면, 그는 "담당한 관직으로 인해 현달하였고 귀하고 중하게 쓰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며 예법을 되짚건대 화를 부르고 허물을 취함에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높은 전문성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관계나 유연성 면에서는 한계를 보이는 완벽주의자 관리자의 전형이었다.

양의의 가장 큰 장점은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능력이었다. 특히 북벌과 같은 대규모 군사 작전의 후방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병참, 보급, 인사, 행정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제갈량의 북벌 시 촉한군은 항상 보급 문제에 시달렸다. 지금의 사천분지인 촉한에서 한중을 거쳐 관중까지 이어지는 긴 보급선을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양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산 창고 시스템, 효율적 수송 체계, 현지 조달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양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유형의 사람들, 특히 위연 같은 현장형 리더에 대해서는 극도의 적대감을 보였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적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유비가 살아있을 때에도 상관인 유파와 다투어 유비에게서 보직해임을 당한 일이 있다. 심지어 둘이 논쟁하던 중 위연이 칼을 빼든 일까지 있었다. 이는 업무상의 갈등을 개인적 적대감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조직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소였다. 현대 조직에서도 부서 간 갈등이 개인적 감정으로 발전하여 조직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양의의 충성은 철저히 제갈량을 향했다. 그는 자신을 제갈량의 뜻을 이을 유일한 후계자로 여겼다. 상사에 대한 충성과 신뢰가 지나쳐서 자신을 그 사람의 대리인으로 착각하는 경우였다.

3세기 중국의 문무 갈등 구조

위연과 양의의 대립을 이해하려면 당시 중국 사회의 문무 갈등 구조를 알아야 한다. 한나라 시대부터 중국 사회는 문신과 무신 사이의 미묘한 경쟁과 갈등이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문신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전쟁이 빈발하는 시대에는 무신의 영향력이 커졌다.

삼국시대는 특히 무력이 중요한 시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행정과 외교, 경제 관리 등 문치의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신과 무신은 서로 자신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경쟁했다. 위연과 양의의 갈등도 이런 구조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조적 대립의 필연성

위연과 양의의 대립은 개인적 성격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조직 내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갈등이었다. 현대 조직 이론가 로버트 던컨(Robert Duncan)의 '조직 갈등 이론'에 따르면, 조직 내 갈등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1. 목표의 상충: 위연은 빠른 승리를, 양의는 안정적 관리를 추구했다.

  2. 자원의 경쟁: 제한된 자원(인력, 예산, 권한)을 두고 경쟁했다.

  3. 권한의 모호성: 명확한 권한 분배가 없이 비슷한 지위였던 그들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4. 의사소통의 장벽: 서로 다른 전문 영역(문과 무)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들의 '인지적 프레임(Cognitive Frame)'이 달랐다. 위연은 '기회 중심적 사고(Opportunity-Focused Thinking)'를, 양의는 '위험 중심적 사고(Risk-Focused Thinking)'를 했다.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탐험형 vs 활용형(Exploration vs Exploitation)' 전략의 차이와도 일맥상통한다.

위연은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고 혁신적 방법을 시도하려 했다면, 양의는 기존의 안정적 방법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려 했다. 두 접근 모두 조직에게 필요하지만,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없다면 파괴적 갈등으로 발전한다.

또한 이들의 충성 구조가 달랐다는 점도 중요하다. 위연의 충성은 유비라는 개인을 향했고, 양의의 충성은 제갈량이 만든 체계를 향했다. 이는 조직 내 이중 권위 구조를 만들어냈고, 리더십의 정통성에 대한 혼란을 가져왔다.

현대 조직 이론가 에드가 샤인(Edgar Schein)의 '조직 문화모델'에 따르면, 조직 문화는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s), 가치(Values), 인공물(Artifacts)의 세 층위로 구성된다. 위연과 양의는 기본 가정 단계에서부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위연은 '도전과 혁신'을, 양의는 '안정과 체계'를 기본 가정으로 했다. 이런 근본적 차이는 표면적 조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갈량의 다면적 리더십

제갈량이 처한 리더십 환경을 이해하려면 3세기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는 중앙집권적 황제 체제가 무너지고 지방 군벌들이 할거하는 시대였다. 전통적인 권위와 질서가 흔들렸고, 새로운 정통성을 확립해야 했다.

촉한의 경우 더욱 복잡했다. 한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실질적 통치 기반은 약했다. 인구 100만 남짓의 작은 나라가 인구 400만의 위나라와 200만의 오나라에 맞서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단결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현대 경영학의 '위기 관리론(Crisis Management Theory)' 관점에서 보면, 촉한은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2인자였던 관우가 219년 사망한 것과 동시에 형주를 상실했고 220년에는 전략가였던 법정과 뛰어난 무장이었던 황충이 죽었고 221년에는 3인자였던 장비가 죽었다. 곧이어 치뤄진 오나라와의 대전에서 유비가 대패하며 10만에 달하는 병사가 죽거나 와해되었고 포위되어 결국 위나라에 황권이 투항했다. 222년에는 맹장 마초가 죽었고 223년에는 황제인 유비마저 죽었다. 뒤를 이은 유선은 고작 17살의 어린 나이이였지만 유선의 즉위와 동시에 남방에선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불과 4년 전, 숙적 조조를 한중에서 대파시키고 한중왕에 올랐던 유비와 촉한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제갈량은 이런 환경에서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그는 승상으로서 행정 수반이었고, 군사 지휘관으로서 북벌의 총책임자였으며, 동시에 유비 사후 촉한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이기도 했다. 현대로 치면 CEO, COO, 군 총사령관의 역할을 한 사람이 맡은 것이다. 이처럼 제갈량의 리더십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의 다면적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종합적인 국가 경영자였다. 내정, 외교, 군사, 경제, 사회 정책 등 모든 분야를 총괄했다.

『출사표』에 나타난 제갈량의 자기 인식을 보면, 그는 자신을 한나라 중흥의 사명을 받은 ‘신하'로 규정했다. 이는 현대 조직 이론에서 말하는 '미션 중심적 리더십(Mission-Driven Leadership)'의 특성을 보여준다. 개인적 야심보다는 조직의 사명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제갈량의 리더십 스타일을 현대 리더십 이론으로 분석하면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

  1.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북벌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했다.

  2.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자신을 조직과 사명에 봉사하는 존재로 여겼다.

  3.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 상황에 따라 다른 리더십 스타일을 적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리더십은 의외로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의 특성도 강했다. 제갈량이 가진 절대적 권위가 있었기에 개인의 카리스마와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리더십이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감정적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제갈량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감정적 중립'이었다. 『삼국지』의 여러 기록을 보면, 그는 개인적 호불호나 감정적 판단보다는 항상 객관적 기준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다. 이는 공자의 '중용(中庸)'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아끼던 마속이 가정에서 참패하자 그를 참수한 것이나, 이엄의 거짓 보고를 접하고 모든 신료를 동원해 탄핵했던 일 등은 개인적 감정보다는 법과 원칙을 우선시한 사례다. 현대 조직 이론에서 말하는 '공정한 리더십(Fair Leadership)'의 전형이다. 오죽하면 마속은 죽기 전에도 불평이 없었고 탄핵되어 유폐된 이엄은 제갈량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제 나를 복귀시켜줄 사람이 없다’며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제갈량은 위연과 양의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을 적용했다. 그는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다른 쪽을 배제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시키고, 자신이 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다. 양의에게는 병참과 행정 전반을, 위연에게는 선봉 지휘를 맡겼다.

이런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었다. 서로 다른 성향과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을 모두 활용할 수 있었고, 조직 내 갈등도 표면적으로는 억제할 수 있었다.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다양성의 활용(Leveraging Diversity)'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감정적 중립은 갈등의 표면적 증상은 억제할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다. 위연과 양의의 갈등은 단순한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갈등이었다. 서로 다른 가치 체계, 다른 충성 구조, 다른 조직 운영 철학을 가진 두 사람을 단순히 역할 분담만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감척론』의 의미와 한계

『화양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은 위연과 양의의 반목이 심해지자 『감척론(甘戚論)』이라는 글을 써서 경계했다고 한다. 비록 전문은 전해지지 않지만, 제목과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감척론'에서 '감(甘)'은 달고 기쁜 것을, '척(戚)'은 쓰고 근심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또는 '친(親)'과 '소(疏)'의 의미로도 해석된다. 제갈량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적 감정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의 위험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조직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접근의 한계가 명확하다. 도덕적 설득만으로는 구조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의 감정과 이해관계는 말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위연과 양의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현대 갈등 관리 이론에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접근법을 제시한다:

  1. 회피(Avoidance): 갈등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

  2. 순응(Accommodation): 한쪽이 다른 쪽에 양보하는 것

  3. 경쟁(Competition): 한쪽이 완전히 이기는 것

  4. 타협(Compromise): 서로 일부씩 양보하는 것

  5. 협력(Collaboration): 상호 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찾는 것

제갈량의 접근은 주로 '회피'와 '타협'에 해당했다. 갈등의 근본 원인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표면적 증상을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가져다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누적된다. 심지어 위연과 양의의 반목은 동맹국 군주인 손권마저 비난할 정도였다.

중재자 리더십의 함정

제갈량의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중재자형(Mediator-type)'이었다. 그는 갈등하는 두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중립을 유지하며, 양쪽의 장점을 활용하려 했다. 이는 현대 조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리더십 스타일이다.

중재자형 리더십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안정성: 극단적 선택을 피하고 조직의 안정을 유지한다.

  2. 포용성: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수용할 수 있다.

  3. 유연성: 상황에 따라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4. 신뢰성: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제갈량은 이런 장점을 잘 활용했다. 위연과 양의라는 상극의 인재들을 모두 활용하여 북벌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 뭐 성공하진 못했지만.. 또한 촉한 내부의 여러 세력 간 균형을 유지하며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중재자형 리더십에는 치명적 단점도 있다.

  1. 의존성: 리더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2. 임시성: 근본적 해결이 아닌 임시적 봉합에 그친다.

  3. 수동성: 능동적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에 치중한다.

  4. 불안정성: 리더가 부재하면 즉시 갈등이 폭발한다.

제갈량의 경우 이런 단점들이 그의 죽음과 함께 모두 드러났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위연과 양의가 억지로나마 협력했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즉시 파국이 닥쳤다. 이는 중재자형 리더십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무게추 리더십 vs 중심축 리더십

저울을 수평으로 맞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중심축을 제대로 맞추든가 아니면 무게를 더하며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제갈량의 선택은 '무게추'였다. 그는 위연과 양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무게추 역할을 하며 조직의 안정을 유지했다. 전장에선 위연에게 무게추를 더하고 전장이 아닐땐 양의에게 무게추를 더했다. 그러나 무게추가 사라지면 저울은 기울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요동치며. 무게추는 외부에서 균형을 강제로 맞추는 것이지, 저울 자체의 구조적 균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제갈량이 사라지자 위연과 양의는 즉시 충돌했고, 조직은 분열되었다.

반면 '중심축'은 다르다. 중심축은 저울대 자체의 구조적 균형을 가능케 한다. 중심축이 사라져도 저울의 기본 구조는 유지되고, 새로운 중심축을 설치할 수 있다. 중심축이 되려면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를 넘어서, 시스템과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현대 조직 이론가 피터 센게(Peter Senge)가 강조한 '학습하는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의 개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결국 진정한 리더는 자신이 없어도 조직이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1.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 전체적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한다.

  2. 개인적 숙련(Personal Mastery): 구성원들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한다.

  3. 정신적 모델(Mental Models): 조직의 기본 가정과 가치관을 명확히 한다.

  4. 공유 비전(Shared Vision): 모든 구성원이 공감하는 미래상을 만든다.

  5. 팀 학습(Team Learning): 집단적 학습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른다.

제갈량은 개인적으로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조직 전체의 시스템으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그의 지식과 능력은 그 개인에게만 머물렀고, 조직 차원의 학습 시스템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제갈량 시대의 제약 조건

물론 제갈량을 현대적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가 처한 시대적 제약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3세기 중국은 현대와는 전혀 다른 사회였다.

첫째, 기술적 제약이 있었다. 현대와 같은 통신 기술이나 정보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정보와 의사결정이 개인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이 모든 것을 직접 챙겨야 했던 것도 이런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과로로 죽었다.

둘째, 사회문화적 제약이 있었다. 당시는 개인의 덕목과 능력이 조직 운영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시스템이나 제도보다는 인물 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제갈량도 이런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는 촉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유비라는 개인의 카리스마로 만들어진 국가였기에 더욱 큰 한계를 만들어냈다.

셋째, 정치적 제약이 있었다. 촉한은 국력이 약한 소국이었고, 내부 결속을 위해서는 강력한 개인적 리더십이 필요했다. 권한을 분산시키거나 제도화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특히 후계자 육성과 시스템 구축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적 관점에서 본 제갈량의 리더십

현대 리더십 이론의 관점에서 제갈량의 리더십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장점

  1. 비전 제시: 북벌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2. 통합적 사고: 정치, 군사, 경제, 외교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3. 공정성: 개인적 감정보다는 객관적 기준을 우선시했다.

  4. 전문성: 높은 전문 지식과 실무 능력을 보유했다.

  5. 헌신성: 개인적 이익보다는 조직의 사명을 우선시했다.

단점

  1. 과도한 중앙집권: 모든 권한과 책임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2. 후계자 부재: 체계적인 후계자 육성 시스템이 없었다.

  3. 갈등 회피: 근본적 갈등보다는 표면적 관리에 치중했다.

  4. 제도 미비: 개인 의존적 운영으로 시스템화가 부족했다.

  5. 변화 저항: 안정성을 위해 혁신과 변화를 억제했다.

현대 조직에서 제갈량 같은 리더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위기 상황이나 변화 시기에는 강력한 개인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개인 의존적 리더십에서 시스템 중심적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

제갈량의 죽음과 권력 공백

234년 8월,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병사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생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촉한이라는 조직 전체의 구조적 위기를 의미했다.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핵심 인물 위험(Key Person Risk)'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당시 제갈량이란 인물이 사실상 촉한 그 자체였음을, 또 죽은 장소가 적과 대치한 전장이었다는 것은 국가 전체에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다.

현대 조직 이론가 제임스 콜린스(James Collins)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강조한 '5단계 리더십'의 관점에서 보면, 제갈량은 4단계 '유능한 리더(Capable Leader)' 수준이었다. 뛰어난 개인적 능력과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었지만 5단계 '겸손한 리더(Humble Leader)'처럼 자신 이후를 준비하지는 못했다. 장완과 비의라는 후계자는 지목했지만 국가가 나아가야할 대전략과 시스템은 완비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결국 그가 지명한 명재상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촉한 조정은 간신 황호에게 농단당하고 만다.

북벌군 철수 과정에서의 갈등 폭발

기다렸다는 듯 북벌군의 철수 과정에서 위연과 양의의 갈등이 즉시 표면화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구조적 갈등이 리더의 억제력이 사라지자 폭발한 것이었다.

갈등의 전개 과정을 시간순으로 분석해보자.

1단계: 권한 해석의 차이

양의는 제갈량의 유언에 따라 군 전체의 철수를 지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위연은 자신이 북벌의 실질적 선봉장으로서 독립적 판단권을 가진다고 봤다.

2단계: 전략적 이견의 충돌
양의는 안전하고 체계적인 철수를 원했다. 위연은 제갈량은 제갈량이고 북벌은 북벌이라고 주장했다. 제갈량의 시신을 수도인 성도로 운구하고 자신이 전쟁을 지휘해 승리해보이겠노라 이야기했다. 이는 '위험 회피형 vs 위험 추구형' 성향의 근본적 차이였다.

3단계: 감정적 대립의 증폭

전략적 이견이 개인적 감정 대립으로 발전했다. 기존에 누적된 불신과 적대감이 위기 상황에서 증폭되었다. 현대 갈등 이론에서 말하는 '갈등의 에스컬레이션(Conflict Escalation)' 현상이었다. 심지어 제갈량의 명으로 촉한군은 위연에게 알리지않은채 회군을 준비한다.

4단계: 물리적 충돌

결국 위연은 자신을 빼놓고 철군한다는 이야기에 분노해 독단적으로 회군해 본군을 앞질러 한중으로 향한다. 양의가 이를 모반으로 규정하고 무력으로 대응했다. 조직 내 갈등이 최고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수도인 성도에 있는 황제 유선에게는 위연과 양의가 각자 서로를 반역자로 규정하는 상소가 동시에 올라오고 만다.

권위의 정통성 문제

제갈량 사후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권위의 정통성(Legitimacy of Authority)' 문제였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권위 이론에 따르면, 권위는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1.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 관습과 전통에 기반

  2.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 개인의 카리스마에 기반

  3. 법적-합리적 권위(Legal-Rational Authority): 법과 제도에 기반

제갈량의 권위는 주로 카리스마적 권위였다. 그의 개인적 능력과 카리스마가 권위의 원천이었다. 문제는 카리스마적 권위는 개인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계승이 어렵다는 점이다.

위연과 양의는 각각 자신이 제갈량의 정통한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현대 조직 이론으로 본 승계 실패

현대 조직 이론의 '리더십 승계론(Leadership Succession Theory)' 관점에서 이 사건을 분석하면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승계 계획의 부재

제갈량은 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장완과 비의 등을 후계로 지명하긴 하였지만 죽음 직전의 결정이었고 구체적인 계획이 부재했다. 현대 조직에서는 최고경영자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대비한 승계 계획이 필수적이다. 이는 후계자를 식별하고 이들을 공표하는 한편, 역량과 경험을 제공하고 점진적인 권한이양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이런 요소들 중 어느 것도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았다. 강유나 비의 같은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최고 리더로서의 경험과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장완이 성도에 남아 온갖 사무를 처리하였으나 제갈량이 처리하는 사무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그치지 않았다.

권한 분산의 실패

제갈량은 자신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다. 이는 효율성 면에서는 장점이 있었지만, 승계 측면에서는 치명적 단점이었다. 현대 조직에서는 '권한 위임'을 통해 여러 사람이 리더십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제도화의 부족

제갈량의 운영 방식은 지나치게 개인적이었다. 의사결정 과정, 권한 구조, 책임 분담 등이 명확하게 제도화되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 촉한의 제도를 정비하였으나 그것이 다였다. 오장원에서 대치할 때 적장 사마의가 제갈량의 사자에게 “공명은 하루 식사와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가?” 라 물으니 사자는 “승상께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고 밤에는 늦게 잠자리에 드시는 동안 일에 매진하십니다. 장 스무대가 넘는 벌을 모두 몸소 살피시지요. 하루에 드시는 음식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답을 들은 사마의는 사자가 돌아가자 “제갈량이 먹는 것은 적고 일이 많으니 오래 지탱하겠느냐.” 라고 말했다. 결국 식소사번이라는 사자성어만 남긴 채 제갈량은 과로사하였다. 현대 조직에서는 '프로세스 표준화'를 통해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죽음 이후 위연과 양의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위연은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잔도를 건넌 후 본군이 건너올 잔도를 불태워버린다. 사실상 반란과 다름없는 행위였다. 북벌 본군의 퇴로를 끊고 자신이 장악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이 점차 상황을 파악하자 그를 따르는 것을 겁냈고 마침내 왕평이 위연을 꾸짖자 병사들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위연은 그 뒤 마대에게 죽어 참수되고 삼족이 멸해진다.

양의는 그런 위연의 수급을 발로 짓밟았다고 한다. 하지만 양의의 최후도 좋지 않았다. 제갈량이 죽은 후 자신이 후계자가 될 줄 알았던 그는 자신의 관직이 중군사에 머무르자 자신을 위로하러 온 비의에게 ‘차라리 그때 위씨를 따랐으면 이 꼴은 안봤지!’ 라며 망언을 뱉는다. 이때의 위씨가 위나라든, 위연이든 그는 선을 넘은 것이다. 결국 유선은 이 사실을 듣고 유배를 보낸다. 그러나 양의는 그곳에서도 자신의 버릇을 못고치고 조정을 비난하다 화가 난 유선이 압송을 명하자 체포되기 전 자살하고 만다.

결국 위연과 양의, 두 사람 모두 파국의 끝에서 불타버린 것이다.

제갈량 사례의 현대적 의미

제갈량과 위연, 양의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현대 조직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뛰어난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조직의 취약성, 다양한 인재들 간의 갈등 관리의 어려움, 리더십 승계의 복잡성 등은 모두 현재진행형의 과제들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 원격 근무, 세대교체 등으로 인해 조직 환경이 급변하는 현재, 제갈량의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 개인의 탁월함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 수 없다. 시스템과 구조, 문화와 가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심축 리더십의 본질

'형평(衡平)'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저울대(衡)와 수평(平)이다. 진정한 리더는 저울 위의 중심축이어야 한다. 무게를 눌러 억누르는 무게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균형을 가능케 하는 중심축 말이다.

중심축 리더십의 핵심 요소들

1) 구조적 사고(Structural Thinking) 개별 요소들의 관리를 넘어서 전체 시스템의 설계에 집중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2) 시스템적 접근(Systemic Approach) 문제의 증상이 아닌 근본 원인에 집중한다. 개인의 행동 변화보다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3) 장기적 관점(Long-term Perspective) 단기적 효율성보다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현재의 성과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한다.

4) 다양성의 통합(Integration of Diversity)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동화시키려 하지 않고, 그들의 차이를 조직의 강점으로 활용한다.

5) 문화적 리더십(Cultural Leadership) 개인의 카리스마보다 조직의 문화와 가치에 기반한 리더십을 구축한다.

미래 조직을 위한 비전

미래의 조직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해 인간의 역할이 변화하고, 원격 근무와 하이브리드 워크가 일반화되며, 세대 간, 문화 간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제갈량 같은 전지전능한 리더보다는 유비 같은 생태계 설계자가 더 필요하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집단의 지혜를, 통제보다는 자율을,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을 활용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마지막 질문들

  • 당신은 지금 위연과 양의를 설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충돌하지 않게 설계하고 있는가? 개인의 변화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의 힘을 믿어야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좋은 시스템은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 당신의 리더십은 당신이 있을 때만 작동하는가, 사라져도 유지되는가?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 당신은 무게추인가, 중심축인가? 무게추는 억지로 균형을 맞추지만, 중심축은 자연스러운 균형을 가능하게 한다. 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선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하다.

  • 당신의 조직은 당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단점을 보완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완벽한 리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자에서 구조를 설계하는 자로

제갈량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 탁월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는 미흡했다. 현대의 리더들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사람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갈등을 억제하려 하지 말고, 갈등이 건설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개인의 충성심에 의존하지 말고, 조직의 가치와 시스템에 기반한 일체감을 조성해야 한다.

위대한 리더는 많다. 그러나 사라진 뒤에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게 만든 리더는 적다. 우리는 이제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영웅이 아닌 건축가로서, 사람을 다스리는 자가 아닌 구조를 설계하는 자로서 말이다.

제갈량의 시대는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가 만든 시대는 그 리더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시대, 그런 조직, 그런 리더십이 아닐까.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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