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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박 10일, 그리스가 남긴 여섯 개 사유

8박 10일, 그리스가 남긴 여섯 개 사유

조직문화주니어취업준비생신입/인턴
지원
김지원Dec 28, 2025
2006

회사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의 인솔자로 8박 10일 그리스를 다녀왔다. 많은 역사 유적지를 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느낀 것을 해상도가 떨어지기 전 짧게 남겨본다.

1. 상상력 —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안다'가 표면적 인지라면, '이해한다'는 그 지식을 자신의 언어와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아는 것을 넘어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서도 배우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유적의 잔해 속에서 그 시대의 기술력과 정치 체제를 떠올릴 때, 그저 쓱 지나갈 수 있는 돌무더기에서도 감탄과 경외감을 느낀다. 기술력이 부족했을 시절 저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어떻게 지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그들에게 자유는 우리의 자유와 어떻게 달랐을까.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유적지와 대화한다.

2. 운명 — 환경이 만드는 굴레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운명이라는 큰 틀을 상상한다. 그리스는 지정학적으로 두 바다를 잇는 길목에 있다. 그 덕분에 상업국가로 번성했지만(지중해가 세상의 중심이었을 때), 외세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어떤 지리적 자원을 가진 나라인가. 이 단순한 사실이 한 개인의,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환경의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3. 중심 — 세계의 룰은 누가 만드는가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4.23은 세계 책의 날이다. 이 날은 세르반테스가 죽은 날, 셰익스피어가 죽은 날이기 때문이다. 두 거장이 세계 문학에 끼친 영향력을 모르지 않지만, 세계 책의 날은 유럽인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날이 아닐까란 생각을 문득 했다. 이 세계의 룰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는 동양이라는 말조차, 유럽을 중심으로 본 세계지도 위에서 만들어졌다. 유럽 기준에서 동쪽을 오리엔트(Orient, 동쪽 세계)라 부르고, 그에 따라 우리는 유럽과 북미권을 서양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레판토 해전의 장소, 나프팍토스에 있는 세르반테스 동상 앞에서 나는 새삼 깨닫는다. 세상을 해석하는 중심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위에 있으며, 그 시선은 여전히 우리의 세계를 규정한다.

4. 점 — 해석의 힘과 데이터의 시대

믿든 믿지 않든 우리 삶에 사주, 점, 타로가 깊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철학관/점집/타로 가게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결국 해석의 문제이며, 이는 사람들이 수소문 끝에 용한 점집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그리스 델포이 신전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용한 점집이었다. 신탁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몇 날, 몇 달을 이곳에서 기다렸다. 어쩌면 확신을 갖기 위해, 어쩌면 간절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본인의 고민과 지역의 이슈들을 털어놓았고 이곳에 각 지역의 정보들이 쌓였다. 그렇게 델포이는 데이터의 집합소가 된다. 사제들은 전 지역의 정보들을 종합해 맥락을 짚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정보가 가져다주는 해석의 정확도는 곧 권위가 되었고, 델포이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쌓으며 명성을 키웠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의 빅데이터 회사들이 현대판 델포이 신전이 아닐까. 현대의 알고리즘은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보다 더 거대한 신탁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5. 관용 — 조직이 숨 쉴 수 있는 여백

“엄격한 정의보다 관용이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 이 말을 곱씹으며 인솔자로서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다른 니즈와 의견을 가진 다수가 함께하는 집단에서는 규율과 원칙이 필요하다. 다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공정한 시스템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의 또는 원칙이 지나치게 엄격해질 때, 리더/관리자는 감시자가 되고 통제자가 된다. 그 결과 구성원들은 책임보다는 ‘위반하지 않기’를 목표로 행동하게 되고, 그런 환경 속에선 자발성과 주인의식이 자라기 어렵다. 엄격한 정의와 규칙이 조직을 지키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구성원들이 마음을 조용히 닫게 만드는 것일 수 있겠다.

한편, 관용은 무질서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할 여백을 두는 태도다. 누군가의 실수 뒤에는 맥락이 있고, 다른 의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관용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듣고, 해석하고, 소통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 것이다.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시간이 바로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의 시간인 것이다. 그런 조직에서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태도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나는 어떤 태도로 조직 생활을 해왔는 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지원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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