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총무’라는 직무를 쉽게 정의한다면, 그 사람은 총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에요.
회사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데, 제일 안 보이기도 해요.
잘 안되면 무조건 먼저 찾아와요.
뭘 잘했냐보다 뭐가 불편한 지가 중요해요.
이렇게 보면 ‘왜 총무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원해서 들어온 건지, 떠밀려 온 건지 애매한 채로 시작한 ‘이상한’사람들뿐일 수 있어요.
사실, 첫 사회생활을 했을 때에는 ‘총무’라는 직무 자체를 몰랐어요.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부르면 달려가는 ‘5분 대기조’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덜 불편하도록 뒤에서 정리해주고 싶다. 🧹
누군가 귀찮아하는 일을 깔끔하게 끝내는 게 기분 좋다. 💫
쓸데없이 새는 시간을 줄여서, 주변의 일이 제대로 굴러가게 하고 싶다. ⚽
어떻게 보면 소심한 다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들이 총무의 본질과 꽤 닿아 있더라구요.
총무는 큰 프로젝트보다 그 이전의 사소한 것부터 정리하는 게 업무인 직무니까요.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다가 보면, 어느새 하나씩 ,하나씩 이어져요.
‘가구 나사가 필요해.’ > ‘나사는 여기서 이런 걸 사야하는구나’ > ‘저렴하게 사서 직접 조립하면 되겠다’ > ‘비싼 가구라도 대충 만들어주는 게 눈에 보이네?’ > ‘견적을 보니 신뢰가 떨어져. 다른 업체로 해야겠다. 여기는 네고도 가능할 것 같아.’
내가 만지는 건 사실 나사 한 개가 아니라, 흐름을 만드는 가늘고 튼튼한 스텐 와이어라는 것을 깨달아요.
누군가 회의실을 쓰기까지의 흐름
장비가 고장 나고 복구되는 흐름
요청이 들어오고 처리되는 흐름
비용이 새고 막히는 흐름
불편이 쌓이고 불만이 터지는 흐름
이런 흐름을 제일 가까이서 보는 게 총무의 매력이자, 동시에 총무의 특권인 것 같아요.
하지만, 보통 나사를 단순한 하나의 부품으로만 취급해요.
신입 시절에는 이처럼 억울한 일들이 다반사였어요. 이런 무시들이 점점 ‘무지함’으로 오해 받기 시작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여지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어요.
같은 질문이 세 번 나오면, 문서로 만들기
같은 불편이 반복되면, 기준으로 만들기
같은 사고가 터지면, 프로세스로 만들기
매번 갈리는 자존감을 지식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다보니, 어느 순간 총무의 ‘자산’이 되어 있었어요.
단순히 돌맹이를 치운 것이 아니라, 나만의 연금술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잡고 반복하다보면
돌맹이는 어느 순간 ‘금’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렇게 하나씩 나만의 보물상자에 넣기 시작했답니다 :)
회사에서 소통(커뮤니케이션)은 ‘존중’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요.
존중과 아이디어는 매번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국 ‘여유로움’에서 정상적으로 나와요.
회사에서 총무는
내가 한 번 더 뛰면서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오늘은 조금 바쁘더라도, 내일의 여유를 위해
번거로운 것들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면서
내가 없어도 돌아가게 만드는 ‘나만의 여유’를 찾는 직무.
총무는 그걸 감각적이지만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있답니다. 😎
총무는 이미 만들어진 ‘금덩어리’를 보상 받지 않아요. 자신만의 여유 속에서 직접 보물을 만들어야한다는 걸 알기에 총무는 ‘자급자족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구의 도움 없이 해내야 하고, 항상 밖에서 해답을 찾아야 해요. 그리고 그 것을 우리 회사로 가져와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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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얍삽해 보일 수 있지만…그게 총무의 ‘이상’적인 매력이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