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는 언제나 남보다 앞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상황을 재빨리 해석하고, 리더의 속내를 눈치채며, 때로는 리더보다 먼저 행동한다. 얼핏 보기에는 조직이 갈망하는 인재상처럼 보이지만, 앞섬이 곧 생존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김승호 작가는 ‘사장학 개론’에서 경계해야 할 직원의 4가지 유형으로
사건을 확대하고 해결을 자처하는 유형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려는 개인플레이 유형
과도하게 친절한 유형
사장을 대체하려는 유형 을 꼽았다.
첫번째 유형은 회사 문제를 과장하고 확대하는 경향은 이른바 후흑학에서는 말하는 거전보과(鋸箭補鍋)의 유형 중 보과와 맞닿아있다. 거전보과는 후흑학을 집필한 이종오가 제시한 판사이묘법(일을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화살에 맞아 온 사람에게 화살 대만 제거하고 자긴 외과니 화살촉으로 인한 상처는 내과에서 보라고 하며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일, 그리고 솥뚜겅에 난 조그만 구멍을 최대한 감당할 수 있을만큼 키워 돈을 더 받아내는 땜장이처럼 자신의 일을 키우는 일이다. 이 경우 자신을 우월한 참모라 자처하며 승진욕이 과해 실제보다 자신을 부풀려 공을 독차지하려는 유형이다.
두번째는 초기에는 성실해보였으나 시스템으로 일하는 방식이 불가하고 부하직원의 성장을 방해해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세번째는 과도한 친절과 예외사항 조성으로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다른 성실한 직원의 이탈을 가속시킨다.
네번째는 점진적으로 사장의 업무를 장악하고 사장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유형으로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특히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멀어지면 뒤로 회사를 위험에 빠뜨릴 가장 치명적인 유형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 155~220)는 그 자체로도 만능인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각 요소의 뛰어난 핵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운용했던 인물이다.
양수(楊修,175~219)와 장패(臧霸,?~?)는 조조의 곁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한 사람은 죽을 때가지 신임을 얻고 한 사람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단순한 재능의 우열이 아니라 ‘권위와 질서를 어떻게 대했는가’였다.
217년, 조조는 손권과 유수구에서 맞섰다. 긴 대치 끝에 병사들은 지쳐가고 보급도 줄어들었다. 당시 장패는 조조 휘하의 명장이었던 장료와 선봉을 맡았다. 장료는 당시 조조군의 최고 명장 중 하나로 상대인 손권군을 상대로 몇년 전 합비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인물이었다. 하지만 수군으로 손권군과 대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리하였고 시간이 갈수록 불리하였다. 결국 선봉군 대장이었던 장료는 이대로 가면 조조군이 몇년 전 적벽에서처럼 참패를 당할까 걱정되었고 그 전에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했다. 특히 본군의 조조 또한 적극적으로 진격하지 않고 있었기에 장료가 판단하기에는 조조 또한 곧 철군을 결심하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장료는 철군을 명령하게 된다.
사실 그 판단은 주효했다. 장료는 조조의 의도를 간파했다. 하지만 같이 선봉을 이끌던 장패는 장료의 의견에 수긍하는 대신 철군 만류를 택했다. 그는 장료에게 ‘명공(조조)께서 전선의 상황을 알고 계시니 명령이 내려올거요,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신하된 자의 마땅한 도리요.’ 라고 말하며 만류했다. 그 대신 군율을 세우고 뜬소문에 병사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스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조조의 철군명령이 떨어졌고 결국 선봉대는 혼란 없이 철수할 수 있었다.
뒤에 이를 알게 된 조조는 장패의 절제를 크게 칭찬했고 그의 벼슬을 높였다. 그는 조조라고 하는 리더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보다 침묵에 가까운 행동을 하였고 이를 통한 심리적 안전감을 통해 조직의 질서를 유지했다. 이는 조조의 권위를 보완하는 소극적이지만 가장 적극적이었던 보완 행동이었다.
2년 뒤, 조조와 유비는 한중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전황은 소모적이었고, 조조는 전투 지속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암구호를 정하러 온 하후돈에게 그는 저녁으로 먹던 닭갈비를 바라보며 “계륵(鷄肋, 닭갈비)”이라 중얼거렸다.
하후돈이 장수들을 불러모아 암구호를 전하자 양수는 자신을 수행하는 병사들을 불러 각자 짐을 수습해 철수하는 여정을 준비하라고 했다. 다른 장수가 이를 하후돈에게 보고하자 하후돈이 크게 놀라 ‘철군령이 떨어진 적이 없는 데 어찌 철군준비를 하는가?’ 라고 물으니 양수는 ‘오늘 밤 위왕(조조)께서 조만간 군대를 철군하실 것을 암구호를 통해 알았습니다. 닭의 갈비란 본래 살이 별로 붙어있지않으니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조금 남은 살이 있어 아깝습니다. 지금 전황이 그렇습니다. 상장군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었고 유비의 군대는 굳센 곳을 지키고 있으니 지금 진격하자니 이기지 못하겠고, 물러나자니 남이 비웃을까 두려우신 것이지요. 한중에 계속 있어도 이익될 것은 없으니 일찍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내일 위왕께서 군대를 돌리실 것이므로 미리 행장을 수습해두면 허둥지둥 대는 것을 면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하후돈은 ‘과연, 공께서는 진정 위왕의 깊은 속마음을 아는구려. ‘라며 자신도 짐을 수습했다. 조조군의 2인자인 하후돈이 짐을 싸자 진영 내에 짐을 꾸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마침 그날 밤 조조가 마음이 심란해 도끼를 손에 들고 영채 주위를 홀로 돌아다녔는데 각자 행장을 꾸리고 있으니 조조가 크게 놀랐다. 그는 하후돈을 불러 그 까닭을 물으니 하후돈은 양수가 위왕꼐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알았기에 이를 따랐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조조는 크게 노해 ‘어찌 감히 말을 지어 우리의 군심을 어지럽히느냐!’ 라고 말하고 양수를 참수하고 그 목을 군영에 내다걸었다.
물론 실제로는 양수가 한중에서 돌아와 몇 달 지난 뒤 참수되었다고 한다. 그가 조식과 친하였기에 후계를 조비로 하기 위해 처형했다는 이야기가 중론인데, 사실 양수의 일화를 보면 계륵과 같은 일화가 많이 보인다. 그 일화들은 대개 조조가 숨겨놓은 뜻을 혼자 간파하고서 이걸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일이다. 조조가 아무도 모르게 감춰놓은 진의를 파헤친 것을 모자라 그걸 동네방네 소문낸 것이다.
예를 들어 조조가 자신의 명령으로 꾸며진 화원을 지나가다 불만족스러워하며 화원 문에 活 자를 써두고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으나 양수는 문(門에 활(活)자를 써놓았으니 활(넓을 활, 闊)입니다. 화원이 지나치게 넓어 휑해보인다는 뜻입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정원사들은 나무를 더 심고 화원의 폭을 좁혔다. 며칠 뒤 다시 찾은 조조가 만족해하며 어찌 이렇게 하였느냐. 하자 사람들은 양수가 지나가다 말해주었다고 대답하였다. 결국 조조는 정원사들이 고민할 몫을 양수가 채간 것도 모자라 자신의 생각을 여기저기 떠들고다닌 것에 언짢아했다.
만약 양수가 그 뜻을 읽고 조조에게 아무말없이 ‘화원이 너무 휑하니 기운이 삿들까 우려됩니다. 초목을 더 심어 보강하심이 어떨지요?’ 정도로 이야기했거나 정원사들의 고민을 적당히 오지랖부리지 않고 넘어갔다면 어땠을까.
결국 장패와 달리 양수는 자신의 주인이었던 조조의 마음을 너무 빨리 앞서 나가 생각하느라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의 성급한 발언은 조조라고 하는 절대자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조직의 질서를 깨뜨린 행위였다.
조조가 본 것은 단순한 재능의 차이가 아니었다.
먼저 장패는 권위를 보완하고 질서를 붙들었다. 반면 양수는 권위를 침해하고 질서를 흔들었다.
조직에서 권위가 무너지면 질서는 곧 무너진다. 리더는 자신보다 앞서서 판단을 드러내는 자를 두려워한다. 반면, 리더의 뜻을 읽고도 침묵하며 조직을 지켜주는 자는 신뢰한다. 조조가 장패를 칭찬하고 양수를 죽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늘날 조직은 ‘빠른 통찰’과 ‘자유로운 발언’을 중시한다. 그러나 양수와 장패의 사례는 이를 경계한다.
첫째, 빠름보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둘째, 발언의 자유만큼 중요한 것은 절제다.
셋째, 리더를 보완하는 침묵은 신뢰가 되고, 성급한 드러냄은 혼란이 된다.
오늘날 지식사회에서 더 귀한 역량은 단순히 ‘빨리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언제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지혜다.
‘권위와 질서를 붙드는 자가 살아남는다.’
삼국지의 이 교훈은 천팔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