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원의 어느 천막 안에 술상이 놓였다.

흉노에서 19년을 버틴 소무가 한나라로 돌아가기 전이었다. 이릉은 옛 동료를 위해 술을 따랐다. 젊은 사신으로 국경을 넘었던 소무의 머리와 수염은 이미 희어져 있었다. 긴 세월을 흉노 땅에서 보냈지만 그는 살아서 돌아간다.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나라의 신하가 된다.
그러나 이릉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소무에게 말했다. 그대의 이름은 흉노에 드러났고 공은 한나라 조정에서 빛날 것이며 옛 기록에 남고 그림에 그려진 사람도 그대보다 나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했다.
만 리 사막을 건너 임금을 위해 흉노와 싸웠다. 길은 끊어졌고 화살과 칼은 부러졌으며 병사들은 죽었다. 선조에게서 이어진 농서 이씨의 이름은 더럽혀졌고 가족마저 처형되었다. 늙은 어머니까지 죽었으니 은혜를 갚고 싶어도 이제 어디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이릉은 그 자리에서 울었다.
두 사람은 모두 한 무제의 신하였다. 모두 흉노 땅에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소무는 끝까지 투항하지 않았고 이릉은 항복했다. 한 사람은 역사에 충신으로 남았고 다른 한 사람은 배신자로 기록되었다.
둘의 차이를 절개만으로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소무는 굳세었고 이릉은 나약했다. 소무는 충성했고 이릉은 배신했다. 그렇게 판정하면 사람의 책임만 남고 조직의 책임은 사라진다.
그러나 인사는 사람을 뽑아 전장에 내보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임무를 맡겼는지, 필요한 자원을 주었는지, 잘못된 자신감을 제어했는지, 실패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다시 돌아올 길을 남겨두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이릉은 진나라 장수 이신의 후예이자 한나라의 비장 이광의 손자였다.
이광은 한 문제 때부터 북방 전선을 지킨 장수였다.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이라 불렀다. 이릉도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병사들을 아꼈다. 한 무제는 그런 이릉에게서 할아버지 이광의 기풍을 보았다.

기원전 99년 한 무제는 이릉에게 이광리 군대의 군수품을 운반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릉은 머리를 조아리고 다른 임무를 청했다. 자신이 거느린 병사들은 형초 지방에서 뽑은 용사들이며 힘으로 호랑이를 잡고 활을 쏘면 명중시킬 사람들이다. 별도의 부대를 맡겨주면 흉노 깊숙이 들어가 선우의 병력을 분산시키겠다고 했다.
한 무제는 군사가 많지 않고 이릉에게 내어줄 기병도 없다고 말했다.
이릉은 기병이 필요 없다고 답했다. 보병 5천이면 충분하며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치고 선우의 뜰까지 들어가겠다고 했다. 만용에 가까운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한 무제는 그 자신감을 장하게 여겼다. 이릉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임무를 자청한 것도 이릉이었고 기병이 필요 없다고 말한 것도 이릉이었다. 그는 자신의 역량과 부하들의 용기를 지나치게 믿었다. 그렇다고 부하의 자신감이 곧 임무를 승인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부하일수록 리더가 더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목표의 난도와 가용 자원, 적의 규모, 보급과 퇴로, 실패할 경우의 접응 계획까지 따져야 한다.
그렇지만 한 무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뽑아 세운 위청과 곽거병의 빛나는 전공으로 자신의 인재 발탁능력을 과신했으며 곽거병이 요절한 뒤 제 2의 곽거병을 찾고 싶어했다.
그는 노장 노박덕에게 이릉군을 중간에서 맞아 접응하도록 했다. 노박덕은 가을에는 흉노의 말이 살찌는 시기라 싸우기 어렵다며 이듬해 봄 이릉과 함께 출정하게 해달라고 상소했다. 그러나 한 무제는 그 상소를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릉이 처음에는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막상 출정하려니 겁을 먹고 노박덕을 시켜 연기를 청했다고 근거없이 의심했다.
무제는 이릉에게 직접 묻지도 않았다. 결국 무제는 노박덕의 군대를 서하 방면으로 돌려버린 뒤 이릉에게 예정대로 출정하라고 명했다. 적이 보이지 않으면 돌아오라는 지시도 내렸지만 이미 이릉의 담대한 제안은 충성심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릉은 북쪽으로 30일을 나아가 준계산에 진을 쳤다. 기록만 놓고 보면 그가 무제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더 깊이 진군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병도 없고 접응군도 없는 보병 5천이 흉노의 중심부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릉도 그 조건을 알았다. 한 무제는 더 잘 알고 있었다.
준계산에서 이릉이 마주친 군대는 흉노의 저제후 선우가 직접 이끄는 본군이었다. 처음에는 기병 3만이었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주변 병력이 모여들었고 그 수는 8만까지 불어났다.
이릉은 두 산 사이에 수레를 둘러 방어진을 만들었다. 앞줄에는 창과 방패를 든 병사를 세우고 뒤에는 활과 쇠뇌를 든 병사를 배치했다. 흉노군은 한나라 군대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북이 울리자 쇠뇌 천 개가 한꺼번에 쏟아졌고 선두의 기병들이 쓰러졌다. 이릉군은 달아나는 적을 추격해 수천 명을 죽였다.

놀란 선우는 주변 병력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 뒤부터의 싸움은 전투라기보다 포위 속의 후퇴였다. 이릉군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싸웠다. 세 군데를 다친 병사는 수레에 태웠고 두 군데를 다친 병사는 수레를 끌었다. 한 군데를 다친 병사는 계속 무기를 들었다. 갈대밭에 이르자 흉노군은 바람을 타고 불을 질렀다. 이릉도 맞불을 놓았다. 군대는 산과 골짜기를 지나며 조금씩 남쪽으로 물러났고 흉노군도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 선우는 한나라 군대의 뒤에 복병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철수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때 이릉군의 군후(군정 관리) 관감이 상관에게 모욕을 당하고 흉노로 달아났다. 관감은 이릉군의 사정을 모두 말했다. 구원군은 없고 화살도 거의 떨어졌으며 지휘관의 위치는 황색과 백색 깃발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제 흉노군은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총공격이 시작되자 이릉군은 하루에 화살 50만 발을 소진했다. 수레마저 버리게 되면서 병사들은 수레바퀴의 살을 잘라 무기로 들었고 군관들은 짧은 칼을 쥐었다.
이릉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을 따르려는 병사들을 막았다.
“나를 따르지 마라. 장부가 선우를 잡을 뿐이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한참 뒤 돌아온 이릉은 군대가 패했고 이제 모두 죽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한 부하가 일단 거짓으로 흉노에 항복한 뒤 훗날 기회를 보아 한나라로 돌아가자고 권했다. 이릉은 처음에는 장부가 죽음을 두려워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는 생존률을 최대한 높히기 위해 병사들을 흩어지게 했다. 살아서 국경으로 돌아가 패전을 알릴 사람이, 그리고 자신의 장렬한 최후를 알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자신은 한연년과 몇 명의 병사를 이끌고 탈출하려 했지만 흉노 기병 수천이 뒤를 쫓았고 한연년은 전사했다. 결국 이릉은 더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폐하를 뵐 면목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항복했다. 보병 5천 가운데 한나라 국경으로 돌아온 사람은 4백여 명이었다.
이 패배를 한 무제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릉은 무리한 작전을 스스로 제안했고 자신의 역량을 과신했다. 기병이 필요 없다고 말했으며 적의 본군과 마주친 뒤에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싸웠다. 항복 역시 이릉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릉 혼자만의 실패도 아니다. 한 무제는 작전 조건을 알고 있었다. 기병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 이릉이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상대하겠다고 호언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고도 작전을 승인했으며 예정했던 접응군은 감정적인 의심 때문에 다른 전선으로 돌렸다.
이 사례는 단순한 ‘사람-직무 적합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릉은 병사 지휘와 궁노 운용에서 충분한 역량을 보였다.
문제는 ‘책임과 자원의 정렬’이었다. 작전의 책임은 이릉에게 있었지만 병력과 기병, 보급과 접응 계획은 그 책임의 크기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자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휘관과 군주가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의 조직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신사업 책임자가 자신 있게 나선다. 대표는 그 자신감을 역량으로 받아들인다. 사람과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했다”는 이유로 사업을 승인한다.

이것은 권한위임이 아니다. 리더가 자신이 져야 할 검증 책임을 부하의 자신감에 떠넘긴 것이다.
성과관리에서는 결과만큼 통제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목표가 합리적이었는지, 필요한 자원이 제공되었는지, 의사결정 권한과 결과 책임이 일치했는지, 상급자가 약속한 지원을 유지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릉은 위험을 잘못 판단했다.
한 무제는 그 잘못된 판단을 막아야 할 사람이었다.
이릉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의 신하들은 앞다투어 그를 비난했다. 한 무제의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다만 사마천만이 달랐다.
그는 이릉이 부모에게 효도했고 병사들과 신의를 지켰으며 국가의 위급한 일에 몸을 돌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병 5천으로 흉노 깊숙이 들어가 수만 명을 막았고 화살이 다한 뒤에도 병사들이 맨몸으로 칼날에 맞섰다고 변호했다. 이릉이 살아남은 것은 훗날 한나라에 보답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했다.

사마천은 이릉과 딱히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 무제는 그의 변론을 사실에 대한 다른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마천이 이광리를 깎아내리고 이릉을 두둔한다고 여겼고 결국 사마천에게 궁형을 내렸다.
그 뒤로 이릉을 변호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자 한 무제는 이릉에게 구원군이 없었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살아 돌아온 병사들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회는 평가 절차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 무제는 장군 공손오에게 흉노 깊숙이 들어가 이릉을 데려오게 했다. 공손오는 이릉을 찾지 못하고 포로 한 명을 붙잡아 돌아왔다. 그 포로는 이릉이 선우에게 군사 운용을 가르쳐 한나라 군대에 대비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 무제는 다시 분노했다. 결국 이릉의 어머니와 동생과 아내와 자식이 모두 처형되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
훗날 한나라 사신이 흉노에 왔을 때 이릉은 따져 물었다.
“나는 한나라를 위해 보병 5천으로 흉노를 누볐다. 구원군이 없어 패했을 뿐인데 내가 한나라를 무엇으로 저버렸기에 내 가족을 죽였는가.”
사신은 이릉이 흉노군을 훈련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릉은 말했다.
“그자는 이서이지, 내가 아니다.”
포로가 두 사람의 이름을 혼동했는지 공손오가 진술을 잘못 해석했는지는 기록만으로 알기 어렵다. 그러나 한나라가 이릉과 이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보고를 검증하지 않은 채 한 집안을 멸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절차공정성의 붕괴다.
절차공정성은 처벌 결과가 당사자에게 유리한지를 묻는 이론이 아니다. 같은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었는지, 판단자의 편견과 감정이 억제되었는지, 정확한 정보가 사용되었는지, 잘못된 결정을 수정할 수 있었는지, 당
사자의 의견을 들었는지를 묻는다.
제럴드 레벤설이 제시한 절차공정성의 조건 가운데 이릉의 처분 과정에서 지켜진 것은 거의 없었다.
한 무제는 처음에는 이릉이 비겁해졌다고 의심했다. 패전 뒤에는 차라리 죽지 않고 항복했다는 이유로 분노했다. 공손오의 보고를 받은 뒤에는 다시 사실 확인 없이 가족을 처형했다.
그 판단을 반대했던 사마천은 먼저 처벌받았다.
결정자의 감정이 증거를 대신했고 반대 의견을 말할 사람은 사라졌다. 오류를 바로잡을 절차도 없었다. 이릉의 항복은 전장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릉을 한나라로부터 영원히 떼어놓은 일은 조정에서 일어났다.
한 무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했다. 이때 어린 소제의 후견인으로 조정의 권력을 잡고 있던 곽광과 상관걸은 이릉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두 사람은 이릉의 친구 임입정을 흉노에 보내 귀환을 권했다.
한나라에는 대사면이 내려졌고 젊은 황제가 즉위했다. 이제 돌아오면 다시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이릉은 아무 말 없이 임입정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나는 이미 오랑캐의 옷을 입었소.”

임입정은 다시 돌아오라고 권했다. 이릉은 한나라로 돌아가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돌아갔다가 다시 치욕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다.
“장부는 두 번 치욕을 당할 수 없소.”
이미 심리적 계약이 깨진 뒤였다. 심리적 계약은 문서에 적힌 계약이 아니다. 구성원이 조직과의 관계 속에서 믿는 암묵적인 약속이다. 나는 조직을 위해 어려운 일을 맡는다. 조직은 내가 실패하더라도 사실에 따라 평가한다. 내가 잘못하면 책임을 묻되 근거 없는 의심으로 나와 가족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이런 믿음이 조직과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붙든다.
한나라는 이릉에게 다시 관직과 부귀를 제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족을 죽인 조직이 다시는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까지 줄 수는 없었다. 심리적 계약이 깨진 뒤의 보상은 이전의 관계를 그대로 복원하지 못한다. 직책을 돌려줄 수는 있어도 조직에 대한 믿음까지 명령할 수는 없다.
이릉은 흉노에서 지위와 가족을 얻었다. 그가 이후 흉노의 귀족으로 살아간 선택까지 모두 한나라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 역시 자신이 선택한 삶의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한나라가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우리는 그가 돌아올 수 있는 나라였는가.
소무는 달랐다.
그는 사신으로 흉노에 갔다가 부사의 모반 사건에 휘말렸다. 자신이 모욕당한 채 심문받으면 한나라 사신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칼로 자신을 찔렀다. 가까스로 살아난 뒤에도 그는 투항하지 않았다. 그는 회유와 위협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며 음식과 물이 끊기자 눈과 털을 삼켜 살아남았다.
결국 흉노에서 그를 척박한 북해(지금의 바이칼호)로 보내고 숫양에게서 젖이 나며 돌아오게 해준다고 하였다. 그는 숫양을 기르며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했지만 손에 쥔 한나라의 부절(사신을 상징하는 지팡이)에서 털이 모두 빠질 때까지 버텼다.

이릉은 그에게서 연민을 느꼈는 지, 아내로 하여금 수십마리의 가축을 보내어 버티게 해주었고 그에게 흉노로의 귀부를 설득하였지만 소무는 이를 거부하며 “나는 이미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한 지 오래니 이 소무를 항복하게 하려하신다만, 오늘 이 앞에서 죽는 것으로 대답하고자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이릉은 감탄하며 울며 “아! 그는 의로운 선비니 이 이릉의 죄는 하늘에 이미 닿았겠구나!” 하며 탄식했다.
훗날 이릉은 그에게 한 무제의 죽음을 전했다. 소무는 바이칼호의 얼어붙은 초원 위에서 남쪽을 향해 피를 토하며 통곡했다. 물론 당시에 한무제의 죽음은 오보였다고 하지만 그의 충성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소제가 즉위한 뒤 우연히 그의 생존이 알려져 마침내 그가 귀환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절개를 지킨 세월이 19년이었다.
소무의 절개는 위대하다. 그러나 소무를 인사관리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조직으로부터 잊히고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으며 굶주림과 추위 속에 버려져도 19년간 충성을 지키는 일은 제도의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비범한 선택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소무가 되라고 요구하는 조직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나라는 소무의 생존을 확인하고 그를 데려왔으며 돌아온 뒤에는 관직과 명예를 주었다. 그러나 소무가 19년을 버틴 사실이 한나라의 인사제도가 공정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소무는 조직이 만들어낸 충신이라기보다 조직의 부재까지 견뎌낸 충신에 가까웠다.
오늘의 기업에도 이릉은 있다.
대표가 신사업을 추진하지만 시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땨 담당 임원은 자신 있게 말한다.
“해볼 수 있습니다.”
대표는 때떄로 그 자신감을 승인 근거로 삼는다. 사람은 부족하고 예산은 줄어든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표가 쥐고 있지만 결과 책임은 임원에게 맡긴다.

사업이 실패한 뒤 대표는 말한다.
“본인이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실패 원인을 설명하면 변명이라 하고 공개적인 회의에서 질책한다. 직책을 빼앗고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까지 한편으로 묶어 밀어낸다. 그 임원이 경쟁사로 옮기면 대표는 다시 말한다.
“역시 처음부터 충성심이 없는 사람이었어.”
그가 처음부터 배신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직이 실패한 사람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물론 실패한 사람을 계속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릉은 자신의 역량을 과신했고 무리한 작전을 자청했으며 끝내 적에게 항복했다. 그 책임은 지워지지 않는다. 중대한 판단 오류를 저지른 사람을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는 일도 인사다.
그러나 실패의 책임을 묻는 일과 사람을 적에게 밀어내는 일은 다르다.
누구의 판단이었는가. 누가 자원을 정했는가. 누가 지원을 거두었는가. 실패 원인을 제대로 검증했는가. 당사자의 말을 들었는가. 잘못된 처분을 되돌릴 길은 있었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실패자를 배신자로 규정하면 대표의 판단은 평가 대상에서 빠진다. 조직은 리더의 실패를 부하의 충성심 문제로 바꾸어버린다.
소무는 돌아왔지만 이릉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절개만 달랐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는 돌아올 나라가 남아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돌아갈 나라가 먼저 사라졌다. 실패한 인재를 내보내는 것과 적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일,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