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회사 최고 개발자가 경쟁사로 갔습니다."
"3년 키운 핵심인재를 헤드헌터가 데려갔어요."
HR 담당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다. 1400년 전 신라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한 명은 스스로 떠났고, 한 명은 끌려갔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621년, 신라 6두품 출신 무인 설계두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말했다. "신라는 사람을 등용하는데 골품을 따진다.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더라도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중국에 가서 공을 세우겠다." 결국 그는 밀항해 당나라로 떠났다.
24년 후, 645년 고구려 원정 중 벌어진 주필산 전투에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 싸우다 전사했다. 당 태종은 눈물을 흘리며 어의를 벗어 그를 덮어주며 말했다. “우리 나라 사람도 죽음이 두려워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무엇으로 그의 공을 갚겠느냐!” 하 대장군에 추증하며 예를 갖춰 장사 지냈다.

그보다 한세대 뒤의 시기, 신라에는 구진천이라는 쇠뇌 기술자가 있었다. 그가 만든 천보노는 천 걸음 거리까지 화살이 날아갔다. 신라를 대표하는 무기였고 구진천은 그 핵심 기술자였다. 당나라가 그를 탐냈다. 669년 겨울, 당나라는 황제의 칙명으로 구진천을 데려갔다. 나당전쟁을 앞두고 신라의 핵심 기술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검은 속을 알았지만 신라는 거부할 수 없었다.

당나라에서 구진천에게 쇠뇌를 만들게 했다. 결과물은 겨우 30보. 당 고종이 차갑게 물었다.
"너희 나라에서는 천 보나 나간다던데, 지금은 겨우 30보밖에 안 나가는구나?"
구진천이 답했다. "신라의 목재와 달리 목재가 좋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신라에서 목재를 가져와 다시 만들었다. 이번엔 60보. 고종이 의심스럽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나무를 가져왔는데도 왜 이 모양이냐?" "아무래도 바다를 건너며 습기가 스며든 것 같습니다."

고종은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구진천은 끝끝내 자기 기술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그의 행적은 어떤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다.
같은 신라인. 설계두는 스스로 떠났고 구진천은 강제로 끌려갔다. 설계두는 새로운 조국인 당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구진천은 신라를 위해 기술을 지켰다. 설계두는 죽어 대장군이 되었고 구진천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같은 신라 출신, 정반대 선택.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랐을까?

설계두가 술자리에서 토로한 말을 다시 보자.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더라도 넘을 수가 없다." 신라는 설계두에게 출세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줬다. 6두품이라는 태생적 한계.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아무리 공을 세워도 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 하지만 당나라는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외국인이지만 능력만 있으면 장군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좌무위과의가 되었고 전사 후 대장군에 추증되었다. 설계두는 신라에 충성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구진천은 달랐다. 그는 사찬이라는 관직을 받았다. 신라 17관등 중 6등급. 그의 기술을 인정받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골품이 6두품이었든 진골이었든, 중요한 것은 조직이 그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당나라가 황제의 칙명으로 그를 데려갔을 때 약한 신라는 거부하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그를 지킬 수 없었다. 하지만 구진천의 마음까지는 빼앗기지 못했다. "목재가 나빠서", "습기 때문에". 구진천은 끝까지 핑계를 댔다. 당 고종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기술을 지켰다. 구진천은 신라에 충성할 이유가 있었다.

핵심인재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높은 연봉이나 좋은 복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제도적 기반이다. 설계두가 떠난 이유는 명확했다. 골품제라는 제도적 장벽. 신라는 혈통으로 사람을 평가했고, 능력으로 사람을 쓰지 않았다. 현대 조직에도 보이지 않는 골품제가 있다. 학벌로 승진 상한선을 정하는 회사, 성별로 임원 진출을 막는 조직, 연차로 프로젝트 참여를 제한하는 문화, 출신 부서로 커리어를 재단하는 시스템.
설계두 같은 인재는 이런 조직을 떠난다. 그리고 경쟁사에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헌신한다. 신라가 잃은 것은 단순히 무인 한 명이 아니라, 당 태종을 울릴 정도의 충성심과 헌신이었다.
둘째는 충성의 동기다. 구진천이 기술을 지킨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가 그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쇠뇌 기술자가 아니었다. 사찬이라는 관직을 받은, 조직의 핵심 인재였다. 신라는 그의 가치를 알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했다. 물론 당나라의 요구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평소 쌓인 신뢰와 인정은 구진천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조직은 평소에 인재의 충성을 만든다. 위기가 왔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쌓인다. 인정받고, 존중받고, 제대로 평가받는 경험. 그것이 쌓여서 구진천처럼 "죽어도 기술은 안 준다"는 충성심이 된다.
실제로 구글의 20% 시간 정책이나 3M의 15% 문화가 성공한 이유도 같다. 제도가 가능성을 열어주고, 문화가 충성심을 만든 것이다. 반대로 2019년 모 대기업에서 여성 임원 0명 논란이 터졌을 때,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대거 이탈했다. 현대판 설계두들이었던 것이다.
현대 조직에서 핵심인재가 떠나는 패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설계두 패턴, 자발적 이탈이다. 조직이 성장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면, 인재는 "여기서는 더 이상 안 되겠구나" 판단하고 경쟁사로 이동한다. 그리고 새 조직에서 100% 헌신한다. 이런 인재는 조직이 놓친 것이다. 제도와 문화가 그를 내쫓은 것이다. 둘째는 구진천 패턴, 강제 이탈이다. 경쟁사의 스카우트, 헤드헌팅으로 조직은 물리적으로 막지 못한다. 하지만 충성심은 남아있다. 새 조직에서도 전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인재는 조직이 지킨 것이다.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남았다. 평소의 신뢰가 그를 지킨 것이다.
당신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