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제국은 하루아침에 둘로 갈라지지 않았다.

황제가 여러 명의 공동황제와 부황제를 두고 광대한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는 일은 이미 4세기 이후 반복되고 있었다. 서쪽과 동쪽에는 각자의 황제와 조정이 있었다. 서로 다른 수도와 군대, 이해관계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로마인은 여전히 하나의 제국을 말하고 있었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었다. 그의 장남 아르카디우스는 동쪽을 맡고 차남 호노리우스는 서쪽을 맡았다. 그러나 두 황제 모두 제국을 온전히 이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제국의 심장이었던 서로마를 맡은 호노리우스는 겨우 열 살 남짓한 소년이었다.

하필 제국 밖에서는 여러 세력이 국경을 압박하고 있었다. 동쪽에서 밀려들어오는 ‘신의 채찍’ 아래 수많은 이민족이 제국의 영내로 쫓기듯 밀려들어왔다. 질서가 사라진 제국 안에서는 군대와 재정이 흔들렸다. 병력은 부족했고 로마군 내부에서 이민족 출신 병사와 장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다. 황실의 권위만으로 군대를 움직이기 어려운 시대였다. 더이상 군단병들이 이끄는 로마제국의 영광은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언제 로마가 망할 지 몰랐다. 로마의 시민들은 묵시룩의 그 날이 다가온다고 떠들고 다녔다.
누군가는 어린 황제를 대신해 칼을 들어야 했다.

그 사람이 스틸리코였다. 스틸리코의 아버지는 로마군에서 복무한 반달족 장교였다고 전한다. 어머니는 로마계 여성이었다. 그의 몸에는 당시 로마인이 ‘야만인’이라 불렀던 이들의 피가 절반쯤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스틸리코는 반달족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로마군에서 성장했다. 테오도시우스의 조카 세레나와 혼인했고 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동방에서 외교 임무를 수행했고 군대를 지휘했다. 그에게 반달족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보다 로마군의 장군이라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혈통만 보면 로마의 경계에 걸친 사람이었지만 그가 평생 지키려 한 것은 로마였다.
테오도시우스가 죽자 스틸리코는 어린 호노리우스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는 테오도시우스가 자신에게 두 아들의 보호를 맡겼다고 주장했다. 동로마 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마에서 스틸리코는 사실상 황제의 보호자이자 최고군사령관으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어린 호노리우스는 군대를 지휘할 수 없었다. 알라리크가 이끄는 고트족은 제국 안에서 지위와 보상을 요구했고 필요하면 무력으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 했다. 국경은 흔들렸고 장군들은 각자의 병력을 기반으로 권력을 다투었다.
이때 스틸리코가 전쟁에 나섰다. 그는 알라리크의 이탈리아 진입을 막았고 라다가이수스가 대군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들어오자 이를 격파했다. 서로마가 무너질 때마다 군대를 모으고 성벽 앞에 섰다.
호노리우스가 황제의 옷을 입고 있는 동안 스틸리코가 황제의 일을 했다.
제국은 어린 황제의 이름으로 움직였지만 실제로 제국을 움직인 사람은 스틸리코였다.
소년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했지만 문제는 소년이 자란 뒤에도 보호자가 떠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호노리우스는 더 이상 열 살 소년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국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은 스틸리코가 결정했다. 군대는 스틸리코를 따랐다. 이민족 지도자와의 협상도 그가 맡았다. 원로원은 그의 결정을 승인하거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황실과의 관계도 깊어졌다.
스틸리코의 딸 마리아가 호노리우스의 황후가 되었다. 마리아가 죽은 뒤에는 둘째 딸 테르만티아가 다시 황제와 혼인했다.
황제의 보호자와 최고군사령관과 국정운영자와 황제의 장인이 모두 한 사람이었다. 스틸리코에게 이 결합은 제국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을 수 있다. 자신과 황실을 묶음으로써 테오도시우스 왕조를 지키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자신을 황실과 동일시여기며 혹시라도 자기 마음속에 꿈틀거린 역심을 제어하려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호노리우스가 본 장면은 달랐을 것이다. 단지 자신을 지켜야 할 장군이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자신을 보좌해야 할 신하가 전쟁과 외교를 결정했고 황제의 혼인까지 그 장군의 가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스틸리코는 더 이상 황제의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 앞을 가린 사람이었다.
호노리우스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지키도록 맡긴 사람이 이제 나를 대신하고 있다.’
반면 스틸리코가 호노리우스를 바라보는 눈은 달랐다.
그에게 호노리우스는 자신이 충성을 바쳐야 할 황제였다. 동시에 테오도시우스가 남긴 소년이었다. 보호하고 가르치며 제국의 황제로 세워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틸리코가 보기에 호노리우스는 여전히 제국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황제였을 것이다.
상황도 그 판단을 강화했다.
405년 말 앞에서 이야기했던 라다가이수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스틸리코가 이를 격파했고 406년에는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에서는 콘스탄티누스 3세가 황제를 자처했다. 서로마의 병력은 부족했고 전선을 모두 지킬 수도 없었다.

특히 동고트족을 이끄는 알라리크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틸리코는 그를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협상하고 이용하려 했다. 적과 싸우면서도 필요하면 그 힘을 다른 적에게 돌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원로원과 궁정의 눈에는 위험한 거래로 보였다. 스틸리코에게는 무너지는 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만큼 알라리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그와 싸워본 스틸리코 외에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스틸리코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황제가 아직 로마를 지킬 수 없으니 내가 지켜야 한다.’
이 생각에는 충성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도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제국을 지킬 사람이 없다는 확신은 보기에 따라서 역심이 된다.
스틸리코는 호노리우스를 보호했지만 성인이 된 황제를 새로운 관계 안에서 대하지 못했다. 여전히 자신이 결정하고 황제에게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경험이 옳다고 믿을수록 호노리우스의 독립 의지는 미숙한 고집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황제를 지키려 했지만 황제가 황제로 설 자리는 남겨두지 않았다.
두 사람은 분명 같은 관계 안에 있었지만 같은 관계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스틸리코에게 조언은 보호였지만 호노리우스에게는 간섭이었다.
스틸리코에게 군대의 신뢰는 피로 얻은 권위였지만 호노리우스에게는 황제의 군대를 빼앗아간 사병화였다.
스틸리코에게 황실과의 혼인은 테오도시우스 왕조를 지키는 결합이었지만 호노리우스에게는 스틸리코 가문이 황실 안으로 무혈입성하는 과정으로 보였을 수 있다.
스틸리코에게 알라리크와의 협상은 제국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반대자들은 반달족의 피를 지닌 장군이 고트족과 손을 잡는다고 의심했다.
호노리우스가 스틸리코를 두려워한 것이 전부 망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스틸리코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문을 황실과 결합했고 서로마를 넘어 동로마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알라리크를 활용한 정책은 많은 비용을 요구했고 원로원의 반발을 불렀다. 안그래도 나라 살림이 궁핍한데 그 수많은 비용이 스틸리코의 욕심에 이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의심할 이유가 있다는 것과 반역이 입증되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스틸리코가 자신의 아들 에우케리우스를 동로마 황제로 만들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가 황제를 배신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한다는 말도 돌았다.
궁정의 올림피우스(심지어 그는 스틸리코가 직접 호노리우스에게 소개한 인물이다.)는 이 의혹을 키웠다. 호노리우스는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온 장군의 설명보다 그 장군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같은 행동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시간이 쌓이다가 어느 날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날부터 보호자는 반역자가 된다.
이 관계는 현대 조직행동론에서 말하는 ‘역할모호성’과 ‘역할갈등’으로 볼 수 있다.
역할모호성은 한 사람이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상태다. 역할갈등은 한 사람이 맡은 여러 역할이 서로 다른 행동을 요구할 때 생긴다.
스틸리코는 황제의 신하인 동시에 황제의 보호자였다.
그는 신하로서 황명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황제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군대의 지휘관이었지만 황제보다 군대의 신뢰를 더 많이 받았다.
또한 그는 황실의 일원이었던 동시에 황실을 위협하는 외척으로도 보였다.
문제는 어린 황제를 대신하던 역할이 언제 끝나는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호노리우스가 성장했을 때 스틸리코의 권한은 어디까지 줄어들어야 했는가. 군사적 결정권은 언제 황제에게 돌려주어야 했는가.
스틸리코는 위험한 보호자에서 믿음직한 국사國師로 어떻게 전환해야 했는가.
호노리우스는 스틸리코가 가진 경험과 군대의 신뢰를 어떻게 넘겨받아야 했는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신뢰로 시작했고 그 신뢰가 역할과 권한을 대신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자 역할을 정할 제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두 사람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가진 권력의 크기뿐이었다.
408년 8월 13일.
티키눔에서 호노리우스가 군대를 사열한 뒤, 넷째날이 되던 아침 병사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신호가 떨어지자 살육이 시작되었다.
스틸리코를 지지하던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총독, 기병대와 보병대 사령관, 총무장관, 재무관 등 최고 관료들과 군인들이 삽시간에 죽었다.

당시 스틸리코는 보노니아에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당장 군대를 일으켜 호노리우스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스틸리코와 같이 있던 군대는 로마의 정규군과 이민족 용병이 써인 군대였고 스틸리코는 말이 없었다.
그가 충심으로 일으키지 않은 것인지, 그저 망설인 것인지, 자신의 부하들까지 못믿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날, 스틸리코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실망한 몇몇 지휘관은 바로 철수했고 일부는 알라리크에게 투항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의 휘하에서 고트족 용병들을 이끌었던 사루스는 스틸리코의 막사를 기습해 그를 암살하려고까지 했다. 결국 사루스는 스틸리코의 훈족 출신 근위대를 덮쳐 그들을 모두 살해하고 보급마차를 빼앗아 달아났다.
마지막 날, 스틸리코는 이탈리아의 각 도시에 “사루스와 그의 병사들을 들이지말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라벤나의 한 교회에 들어갔다.
총독 헤라클리아누스가 새벽녘, 병사들을 이끌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스틸리코를 데리러 왔다고 말했고 스틸리코가 교회를 나서는 순간 헤라클리아누스의 칼이 번뜩였다.
헤라클리아누스가 데려가는 곳은 황제 앞이 아니었다. 저승으로 향하는 처형의 길이었다.
이때 그를 따르던 병사들과 수행원들이 저항하려 했다. 스틸리코가 칼을 들라고 명령했다면 라벤나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군대 안에는 여전히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저항을 막았다.
이 장면은 사건보다 훗날 기록되었기에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후대가 스틸리코를 어떻게 기억했는지는 보여준다.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황제에게 반기를 들지 않은 장군.
반달족의 피를 지녔으나 로마를 위해 죽은 사람.

그는 담담히 자신의 목을 내밀었다.
호노리우스가 자신을 죽이는 순간에도 그에게 호노리우스는 반란으로 끌어내릴 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노리우스에게 스틸리코는 제거해야 할 위험이었지만 스틸리코에게 호노리우스는 끝까지 지켜야 할 로마 황제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지막 순간까지 같아지지 않았다.
호노리우스는 스틸리코를 제거하면 황제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제거한 뒤 그 사람이 맡고 있던 기능을 이어갈 준비는 없었다.
스틸리코의 측근들은 숙청되었다. 그의 아들 에우케리우스도 살해되었다. 그의 가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자신도 의심받을까 두려워했다. 더 큰 문제는 이민족계 병사들과 그 가족에게 일어났다.
로마군에 복무하던 이민족계 병사들의 가족이 여러 도시에서 공격받았다. 가족을 잃은 병사들은 더 이상 로마군에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알라리크에게 넘어갔다.
로마는 그들에게 충성을 요구했지만 끝내 그들을 로마인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스틸리코의 숙청은 한 장군의 처형에 그치지 않았다. 제국이 이민족 출신 장교와 병사들에게 보낸 신호였다.
‘아무리 오래 복무해도 너희는 우리 사람이 아니다.’
그해 가을 알라리크는 다시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스틸리코가 유지하던 협상은 무너졌다. 그가 지휘하던 군대도 흩어졌고 일부는 알라리크를 따라 이탈리아에 발을 디뎠다. 제국은 그를 제거했지만 그가 붙들고 있던 관계와 정보와 신뢰를 넘겨받지 못했다.

결국 2년 뒤 로마는 약탈당했다. (이쯤되면 알라리크가 이야기의 진주인공 같다.)
물론 스틸리코의 죽음 하나가 서로마의 몰락을 모두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로마의 재정과 군사, 행정과 국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이 가장 위험한 시기에 가장 많은 기능을 맡고 있던 사람을 대책 없이 제거한 것은 분명하다.
호노리우스는 사람 한 명을 처형했지만 서로마는 그 사람에게 의존하던 운영체계까지 잃었다.
오늘의 기업에도 스틸리코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창업자의 오른팔이다.
후계자가 어릴 때부터 회사를 지켜왔다. 회사가 어려울 때 거래처를 붙들었다. 자금이 부족할 때 직원들의 급여를 마련했다.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
영업과 생산을 알고 직원들의 성향과 주요 고객의 요구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이때 후계자가 경영에 들어온다. 오른팔은 예전처럼 말한다.

“그 결정은 위험합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회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계자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아, 저 사람은 나를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구나.”
오른팔이 회의에서 드러내놓고 반대할수록 후계자는 자신의 권위가 무너진다고 느낀다. 직원들이 오른팔의 판단을 기다릴수록 의심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선대에게나 오른팔이지, 자신에게는 그저 짐일 뿐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짐이 이제는 자신을 누르려 한다.
오른팔에게는 경험에서 나온 책임감이지만 후계자에게는 물러나지 않는 구체제의 권력이다. 둘 다 자신이 회사를 지킨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둘이 같은 회사를 보고 있지는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은 충성심을 시험하는 일이 아니다. 역할을 다시 정하는 일이다.
후계자가 들어오는 순간 창업공신의 권한과 책임은 재설계되어야 한다. 무엇을 계속 맡고 무엇을 넘길지 정해야 한다. 보고선과 의사결정권도 달라져야 한다. 물러나는 시점과 이후의 역할까지 합의해야 한다.

보호자의 성과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는 대신 결정하는 것이 성과였다. 이제는 후계자가 혼자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성과다.
자신이 없으면 무너지는 회사를 지켜온 사람은 마지막에 자신이 없어도 움직이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후계자도 사람을 제거하는 것으로 권위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권위는 빈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 사람이 맡았던 기능과 관계와 신뢰를 넘겨받을 때 비로소 생긴다.
스틸리코는 호노리우스를 끝까지 지켜야 할 소년으로 보았지만 호노리우스는 스틸리코를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으로 보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은 관계를 본 적은 없었다. 그 사이에서 로마가 잃은 것은 한 장군만이 아니었다.

보호가 승계로 바뀔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승계가 이루어지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했다면, 어쩌면 우리가 아는 서유럽의 역사는 조금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