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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무게추와 균형축

人事萬史 : 무게추와 균형축

중심이 되지 못한 제갈량의 리더십
영준
유영준Aug 4, 2025
임원,CEO
11447

충성과 갈등 사이에 선 리더

역사는 언제나 인물로 시작되지만, 조직은 언제나 구조로 무너진다. 이 명제는 특히 리더십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개인의 탁월함만으로는 조직의 장기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반복해서 증명하는 진실이다.

뛰어난 두 사람이 조직의 양 날개처럼 존재할 때, 이는 리더에게 축복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험이 된다. 서로 다른 배경, 다른 사고방식,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재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만약 그 둘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여기며 견제하고 제거하려 한다면? 그리고 리더가 사라진 순간, 조직을 둘로 찢어놓으려 하는게 이미 보인다면..

리더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단순히 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까?

3세기 중국, 삼국시대의 촉한은 이런 딜레마가 극명하게 드러난 조직이었다. 한나라 왕실의 복원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서로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 이 조직은 끊임없는 내부 갈등에 시달렸다. 특히 승상 제갈량과 그의 좌우를 받쳤던 양의, 위연의 삼각 구도는 이런 갈등의 축소판이었다.

이들은 각각 리더십, 문치, 무용의 정점에 섰으나, 제갈량 사후 그 갈등은 곧바로 파국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 대립을 넘어서, 조직 구조와 리더십 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내는 사례다.

3세기 중국의 정치적 맥락을 이해해야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당시는 400년간 지속된 한나라가 몰락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찾는 격변의 시대였다. 위, 촉, 오 삼국은 각각 다른 정통성을 주장하며 패권을 놓고 경쟁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내부의 단결과 효율성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오랫동안 안정되어있던 한나라의 몰락으로 전통적인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인재들이 부상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한나라라는 기존 헤게모니가 무너지며 기존의 문벌 체제가 흔들렸고, 개인의 능력과 실력으로 출세하는 길이 열렸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갈등도 만들어냈다. 전통적 엘리트와 신진 세력 사이의 갈등, 서로 다른 지역 출신들 사이의 경쟁, 문신과 무신 사이의 대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촉한은 이런 갈등이 특히 심했는데, 이는 유비가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규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촉한은 세 나라 중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인구도 적고, 경제력도 떨어졌으며,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벌이라는 공격적 전략을 추진하려면, 조직 내부의 완벽한 단결과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필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천재 제갈량이 고작 위연과 양의를 다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연: 돌파의 상징, 현장의 리더

위연(魏延, ?~234)은 이런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전통적 엘리트가 아닌, 실력으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였다. 유비의 사병에서 시작하여 북벌 선봉장까지 오른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공 스토리였다.

『정사 삼국지』 위연전은 그를 "일찍이 사졸을 잘 길렀고 다른이들보다 용맹하였으나 그것이 지나쳐 성품이 거만하고 뽐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고 양보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현대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성과자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일수록 자신감이 강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에 어려움을 겪는다.

위연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에서의 탁월한 판단력과 실행력이었다. 그는 전투 상황에서 기존의 관례나 상관의 지시보다는 현장의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을 선호했다. 이는 때로는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지만, 때로는 조직의 통제 체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위연이 자주 제안했던 "자오곡 기습 작전"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험준한 자오곡을 통해 장안을 직접 공격하여 위나라 서부의 주요거점인 장안을 치자는 대담한 전략이었다. 정면 공격보다는 기습을 통한 돌파를 추구하는 이 작전은 위연의 전술적 사고를 잘 보여준다.

물론 당시 장안의 방비 등을 생각해보면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이릉대전 이후 국력을 겨우 회복시킨 제갈량은 이런 위험한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위연의 불만은 단순한 전술적 이견을 넘어서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발전했다. 그는 실제로 제갈량이 겁이 많다며 불편을 늘어놓곤 했다.

현대 조직 이론의 '혁신 이론(Innovation Theory)' 관점에서 보면, 위연은 전형적인 '혁신가(Innovator)' 유형이었다. 기존의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추구하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큰 성과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이런 유형은 안정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와 충돌하기 쉽다.

더 중요한 것은 위연의 충성 구조였다. 그의 충성과 믿음은 제갈량이 아닌 유비를 향했다. 이는 조직 내에서 이중 권위 구조를 만들어냈다. 유비가 살아있을 때는 문제없었지만, 유비 사후 사실상 제갈량의 통제하에 촉한이 운영되었으므로 잠재적 갈등 요소가 되었다.

양의: 설계의 화신, 시스템의 관리자

양의(楊儀, ?~235)는 위연과는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형 리더였다. 형주에서 관료로 성장한 그는 체계적 사고와 정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한 행정 전문가였다.

『정사 삼국지』 양의전에 따르면, 그는 "담당한 관직으로 인해 현달하였고 귀하고 중하게 쓰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며 예법을 되짚건대 화를 부르고 허물을 취함에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높은 전문성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관계나 유연성 면에서는 한계를 보이는 완벽주의자 관리자의 전형이었다.

양의의 가장 큰 장점은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능력이었다. 특히 북벌과 같은 대규모 군사 작전의 후방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병참, 보급, 인사, 행정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제갈량의 북벌 시 촉한군은 항상 보급 문제에 시달렸다. 지금의 사천분지인 촉한에서 한중을 거쳐 관중까지 이어지는 긴 보급선을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양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산 창고 시스템, 효율적 수송 체계, 현지 조달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양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유형의 사람들, 특히 위연 같은 현장형 리더에 대해서는 극도의 적대감을 보였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적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유비가 살아있을 때에도 상관인 유파와 다투어 유비에게서 보직해임을 당한 일이 있다. 심지어 둘이 논쟁하던 중 위연이 칼을 빼든 일까지 있었다. 이는 업무상의 갈등을 개인적 적대감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조직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소였다. 현대 조직에서도 부서 간 갈등이 개인적 감정으로 발전하여 조직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양의의 충성은 철저히 제갈량을 향했다. 그는 자신을 제갈량의 뜻을 이을 유일한 후계자로 여겼다. 상사에 대한 충성과 신뢰가 지나쳐서 자신을 그 사람의 대리인으로 착각하는 경우였다.

3세기 중국의 문무 갈등 구조

위연과 양의의 대립을 이해하려면 당시 중국 사회의 문무 갈등 구조를 알아야 한다. 한나라 시대부터 중국 사회는 문신과 무신 사이의 미묘한 경쟁과 갈등이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문신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전쟁이 빈발하는 시대에는 무신의 영향력이 커졌다.

삼국시대는 특히 무력이 중요한 시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행정과 외교, 경제 관리 등 문치의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신과 무신은 서로 자신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경쟁했다. 위연과 양의의 갈등도 이런 구조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조적 대립의 필연성

위연과 양의의 대립은 개인적 성격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조직 내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갈등이었다. 현대 조직 이론가 로버트 던컨(Robert Duncan)의 '조직 갈등 이론'에 따르면, 조직 내 갈등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1. 목표의 상충: 위연은 빠른 승리를, 양의는 안정적 관리를 추구했다.

  2. 자원의 경쟁: 제한된 자원(인력, 예산, 권한)을 두고 경쟁했다.

  3. 권한의 모호성: 명확한 권한 분배가 없이 비슷한 지위였던 그들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4. 의사소통의 장벽: 서로 다른 전문 영역(문과 무)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들의 '인지적 프레임(Cognitive Frame)'이 달랐다. 위연은 '기회 중심적 사고(Opportunity-Focused Thinking)'를, 양의는 '위험 중심적 사고(Risk-Focused Thinking)'를 했다.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탐험형 vs 활용형(Exploration vs Exploitation)' 전략의 차이와도 일맥상통한다.

위연은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고 혁신적 방법을 시도하려 했다면, 양의는 기존의 안정적 방법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려 했다. 두 접근 모두 조직에게 필요하지만,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없다면 파괴적 갈등으로 발전한다.

또한 이들의 충성 구조가 달랐다는 점도 중요하다. 위연의 충성은 유비라는 개인을 향했고, 양의의 충성은 제갈량이 만든 체계를 향했다. 이는 조직 내 이중 권위 구조를 만들어냈고, 리더십의 정통성에 대한 혼란을 가져왔다.

현대 조직 이론가 에드가 샤인(Edgar Schein)의 '조직 문화모델'에 따르면, 조직 문화는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s), 가치(Values), 인공물(Artifacts)의 세 층위로 구성된다. 위연과 양의는 기본 가정 단계에서부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위연은 '도전과 혁신'을, 양의는 '안정과 체계'를 기본 가정으로 했다. 이런 근본적 차이는 표면적 조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갈량의 다면적 리더십

제갈량이 처한 리더십 환경을 이해하려면 3세기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는 중앙집권적 황제 체제가 무너지고 지방 군벌들이 할거하는 시대였다. 전통적인 권위와 질서가 흔들렸고, 새로운 정통성을 확립해야 했다.

촉한의 경우 더욱 복잡했다. 한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실질적 통치 기반은 약했다. 인구 100만 남짓의 작은 나라가 인구 400만의 위나라와 200만의 오나라에 맞서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단결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현대 경영학의 '위기 관리론(Crisis Management Theory)' 관점에서 보면, 촉한은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2인자였던 관우가 219년 사망한 것과 동시에 형주를 상실했고 220년에는 전략가였던 법정과 뛰어난 무장이었던 황충이 죽었고 221년에는 3인자였던 장비가 죽었다. 곧이어 치뤄진 오나라와의 대전에서 유비가 대패하며 10만에 달하는 병사가 죽거나 와해되었고 포위되어 결국 위나라에 황권이 투항했다. 222년에는 맹장 마초가 죽었고 223년에는 황제인 유비마저 죽었다. 뒤를 이은 유선은 고작 17살의 어린 나이이였지만 유선의 즉위와 동시에 남방에선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불과 4년 전, 숙적 조조를 한중에서 대파시키고 한중왕에 올랐던 유비와 촉한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제갈량은 이런 환경에서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그는 승상으로서 행정 수반이었고, 군사 지휘관으로서 북벌의 총책임자였으며, 동시에 유비 사후 촉한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이기도 했다. 현대로 치면 CEO, COO, 군 총사령관의 역할을 한 사람이 맡은 것이다. 이처럼 제갈량의 리더십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의 다면적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종합적인 국가 경영자였다. 내정, 외교, 군사, 경제, 사회 정책 등 모든 분야를 총괄했다.

『출사표』에 나타난 제갈량의 자기 인식을 보면, 그는 자신을 한나라 중흥의 사명을 받은 ‘신하'로 규정했다. 이는 현대 조직 이론에서 말하는 '미션 중심적 리더십(Mission-Driven Leadership)'의 특성을 보여준다. 개인적 야심보다는 조직의 사명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제갈량의 리더십 스타일을 현대 리더십 이론으로 분석하면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

  1.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북벌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했다.

  2.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자신을 조직과 사명에 봉사하는 존재로 여겼다.

  3.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 상황에 따라 다른 리더십 스타일을 적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리더십은 의외로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의 특성도 강했다. 제갈량이 가진 절대적 권위가 있었기에 개인의 카리스마와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리더십이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감정적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제갈량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감정적 중립'이었다. 『삼국지』의 여러 기록을 보면, 그는 개인적 호불호나 감정적 판단보다는 항상 객관적 기준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다. 이는 공자의 '중용(中庸)'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아끼던 마속이 가정에서 참패하자 그를 참수한 것이나, 이엄의 거짓 보고를 접하고 모든 신료를 동원해 탄핵했던 일 등은 개인적 감정보다는 법과 원칙을 우선시한 사례다. 현대 조직 이론에서 말하는 '공정한 리더십(Fair Leadership)'의 전형이다. 오죽하면 마속은 죽기 전에도 불평이 없었고 탄핵되어 유폐된 이엄은 제갈량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제 나를 복귀시켜줄 사람이 없다’며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제갈량은 위연과 양의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을 적용했다. 그는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다른 쪽을 배제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시키고, 자신이 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다. 양의에게는 병참과 행정 전반을, 위연에게는 선봉 지휘를 맡겼다.

이런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었다. 서로 다른 성향과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을 모두 활용할 수 있었고, 조직 내 갈등도 표면적으로는 억제할 수 있었다.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다양성의 활용(Leveraging Diversity)'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감정적 중립은 갈등의 표면적 증상은 억제할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다. 위연과 양의의 갈등은 단순한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갈등이었다. 서로 다른 가치 체계, 다른 충성 구조, 다른 조직 운영 철학을 가진 두 사람을 단순히 역할 분담만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감척론』의 의미와 한계

『화양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은 위연과 양의의 반목이 심해지자 『감척론(甘戚論)』이라는 글을 써서 경계했다고 한다. 비록 전문은 전해지지 않지만, 제목과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감척론'에서 '감(甘)'은 달고 기쁜 것을, '척(戚)'은 쓰고 근심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또는 '친(親)'과 '소(疏)'의 의미로도 해석된다. 제갈량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적 감정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의 위험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조직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접근의 한계가 명확하다. 도덕적 설득만으로는 구조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의 감정과 이해관계는 말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위연과 양의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현대 갈등 관리 이론에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접근법을 제시한다:

  1. 회피(Avoidance): 갈등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

  2. 순응(Accommodation): 한쪽이 다른 쪽에 양보하는 것

  3. 경쟁(Competition): 한쪽이 완전히 이기는 것

  4. 타협(Compromise): 서로 일부씩 양보하는 것

  5. 협력(Collaboration): 상호 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찾는 것

제갈량의 접근은 주로 '회피'와 '타협'에 해당했다. 갈등의 근본 원인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표면적 증상을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가져다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누적된다. 심지어 위연과 양의의 반목은 동맹국 군주인 손권마저 비난할 정도였다.

중재자 리더십의 함정

제갈량의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중재자형(Mediator-type)'이었다. 그는 갈등하는 두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중립을 유지하며, 양쪽의 장점을 활용하려 했다. 이는 현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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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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