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년 가을. 번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성안에서는 조인과 만총이 물에 잠긴 성벽을 붙들고 있었고 성 밖에서는 관우의 군대가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우금의 칠군은 사라졌고 방덕은 죽었다. 양과 겹 일대의 세력들이 관우의 인장을 받아 조조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관우의 위세가 화하를 흔들었다는 기록이 남았고 허도를 옮기자는 논의까지 나왔다. 그 순간의 관우는 유비 진영의 장수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지만 중원에서 그 이름을 직접 떨치고 있던 사람은 관우였다. 아직 번성의 성문은 열리지 않았으나 천하는 이미 관우가 성을 얻은 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우가 높이 올라갈수록 형주에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쌓였다. 우금과 함께 사로잡은 위나라의 병력은 무려 3만 명이었다. 포로는 전공이었지만 동시에 먹여야 할 입이었다. 번성 포위는 끝나지 않았고 관우군의 식량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전선에서 필요한 군수품을 공급해야 할 사람은 강릉의 남군태수 미방과 공안의 장군 부사인이었다. 두 사람은 관우가 원하는 만큼 군수물자를 보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출진 전 실수로 군수품을 불 태운 일도 있었기에 관우는 돌아가면 그들을 처벌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미방과 부사인은 적을 두려워하기 전에 자신의 지휘관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관우의 실패는 이 장면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기준은 오래전부터 분명했다. 진수는 『삼국지』에서 관우와 장비를 함께 평가하며 짧은 문장을 남겼다.
‘관우는 병졸은 잘 대우했으나 사대부에게는 교만했다.’
그와 평생을 함께 했던 장비는 그 반대였다. 군자와 사대부는 존중했지만 아랫사람을 돌보지 않았다. 유비는 장비에게 사람을 지나치게 죽이고 매일 가까이 있는 병사들을 채찍질하는 것은 화를 부르는 길이라고 직접 경고했다. 결국 장비는 고치지 않았고 훗날 자신이 매질하던 부하 장달과 범강에게 죽었다. 관우에게 같은 경고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관우에게도 비슷한 충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삼국지』는 두 사람의 결함을 나란히 적었다. 결국 장비는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다 아랫사람에게 죽었다. 관우는 사대부와 동료를 낮추어 보다 그들이 지키던 성을 잃었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만인을 상대할 용력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의 곁에 선 사람을 다루는 데에는 치명적인 틈을 남겼다.

관우가 병사들에게 인색한 장수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병졸을 잘 대우했다. 위험한 전장에서는 앞장섰고 군중에서 얻은 신망도 높았다. 조조에게 붙잡혀 후한 대접을 받을 때에도 유비에게 돌아갈 뜻을 굽히지 않았다. 관우는 미래가 창창한 조조가 내린 관직과 재물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다. 부상을 입고도 다시 싸웠고 오랜 고난 속에서 유비를 따랐다. 그의 충성과 의리를 의심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의리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관우에게 병사는 자신과 함께 피를 흘리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공을 세우면 상을 받고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전장에서 지휘관과 병사의 관계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사대부와 장수는 달랐다. 그들은 각자의 경력과 자존심을 가졌으며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때로는 설득해야 했고 때로는 체면을 세워주어야 했다. 책임을 묻더라도 다시 일할 수 있는 길을 남겨야 했다. 전장에서 강점이었던 관우의 단호함은 조직 안에서는 유연성을 잃었다. 병사에게는 함께 죽는 장수였지만 권한을 나누어야 할 관리자에게는 가까이 가기 어려운 상관이었다.
그의 자존심은 마초가 유비에게 귀순했을 때 이미 드러났다. 마초는 관중과 서량에서 명성을 떨친 장수였다. 관우에게는 오래 함께한 동료가 아니라 새로 들어온 경쟁자였다. 그는 멀리 형주에 있으면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 마초의 재능이 누구와 견줄 만한지 물었다. 질문은 단순한 인재평가처럼 보였지만 관우가 알고 싶었던 것은 한 가지였다. 그 유명한 마초와 자신 중 누가 위인가.

제갈량은 관우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마초가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호걸이며 경포와 팽월에 견줄 만하고 장비와 앞을 다툴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관우의 빼어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관우는 편지를 읽고 크게 기뻐하며 빈객들에게 보여주었다. 후대에는 그가 편지를 여러 장 베껴 돌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정사는 그 편지를 손님들에게 보여주었다고만 적었다. 중요한 것은 복사한 수가 아니다. 유비 진영의 가장 강한 장수가 자신의 우위를 확인해 준 편지를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관우에게 명예는 마음속의 자부심에 그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알아주어야 하는 서열이었다.
마초와의 경쟁심은 아직 함께 일해보지 않은 영웅을 향한 호승심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황충의 경우는 달랐다. 황충은 한중 전투에서 직접 공을 세웠다. 그는 정군산에서 조조군의 핵심 장수 하후연을 죽이며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관우를 전장군으로 삼고 황충을 후장군으로 삼으려 하자 제갈량도 관우가 기뻐하지 않을 것을 걱정했다. 마초와 장비는 한중에 있어 황충의 전공을 직접 보았으니 설명할 수 있지만 멀리 형주에 있는 관우는 황충과 같은 반열에 놓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예상은 맞았다. 유비가 비시를 보내 전장군의 임명을 전하자 관우는 황충이 후장군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노했다.
‘대장부가 그런 늙은 병사와 같은 반열에 설 수는 없다.’

관우는 심지어 임명을 받지 않으려 했다. 비시는 관우의 성품을 알았기에 황충의 능력을 놓고 관우와 논쟁하지 않았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오랜 벗인 소하와 조참만 쓴 것이 아니라 뒤늦게 합류한 진평과 한신을 높은 자리에 올렸다는 사례를 들었다. 새로 공을 세운 사람에게 높은 직위를 주는 것은 왕업을 세우는 군주의 필요이며 유비가 관우를 대하는 마음까지 황충과 같아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관우와 유비는 한 몸처럼 화복을 함께하는 사이이니 관직의 높낮이와 녹봉의 많고 적음을 따질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끝으로 자신은 명을 전달하러 온 사신일 뿐이니 관우가 끝내 받지 않겠다면 그대로 돌아가겠지만 훗날 이 선택을 후회할까 안타깝다고 말했다. 관우는 그제야 크게 깨닫고 임명을 받아들였다.
비시는 관우를 꺾지 않았다. 관우가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황충이 관우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지 않았고 관우의 오랜 공로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유비가 새 공신을 보상해야 하는 필요와 관우의 특별한 위상을 함께 인정했다. 관우가 받아들인 것은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특별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조직은 언제나 비시와 제갈량 같은 사람을 옆에 붙여둘 수 없다. 매번 누군가가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움직이는 리더는 조직에 숨은 비용을 만든다. 구성원들은 업무의 타당성보다 리더의 기분을 먼저 계산한다. 다른 사람의 성과를 인정하는 일도 조직의 원칙이 아니라 리더의 체면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조직에서는 직언보다 중재가 늘고 평가보다 의전이 중요해진다. 뛰어난 리더 한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언어를 다듬고 순서를 조정해야 한다. 관우는 강했지만 그 강함을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했다.
손권과의 관계에서도 같은 결함이 나타났다. 손권은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키려 사신을 보냈다. 정사에는 관우가 사신을 욕보이고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손권이 크게 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널리 알려진 ‘호랑이의 딸을 어찌 개의 자식에게 주겠는가’라는 대사는 『삼국지연의』에서 구체화된 표현이다. 정사에 그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우가 혼인을 거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신을 모욕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혼인을 받아들여야 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손권이 형주를 노리고 있었고 손씨와의 혼인이 촉한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관우가 신하된 입장에서 혼인동맹을 맺는다는 건 형주의 지배자인 관우의 소속이 애매해진다는 점이 있었다. 손권은 이미 자신의 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냈었으나 여동생을 불러들인 바 있었다. 관우가 딸을 정치적 거래에 내놓지 않은 것 자체를 오판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거절하는 방식이었다. 동맹은 좋아해서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해도 더 큰 적을 상대하기 위해 상대의 체면을 보존하는 관계다. 관우는 손권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신을 모욕할 필요는 없었다. 관계를 끊을 결단까지 내리지 않았다면 상대가 물러설 공간은 남겨두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미 215년 유비와 손권은 이미 형주를 둘러싸고 군사를 움직였다. 손권은 장사와 계양, 영릉을 기습해서 차지했고 이에 유비는 직접 촉에서 형주 공안까지 내려와 긴장이 유발되었다. 당시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익양에서 오나라 군대와 대치했다. 그러나 마침 조조가 한중을 압박하자 유비와 손권은 전쟁을 멈추고 상수를 경계로 형주의 영역을 나누었다. 상수 동쪽의 장사·계양·강하는 손권이 차지하고 서쪽의 남군·영릉·무릉은 유비가 차지하는 구조였다. 완전히 해결된 합의가 아니라 당장의 더 큰 위협 때문에 봉합한 임시 타협이었다. 손권은 형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유비도 형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양측은 동맹이면서 서로의 빈틈을 기다리는 경쟁자였다.
그런 관계 속에서 관우는 형주의 정치적 · 군사적 최고책임자였다. 공식적으로 형주목이라는 직함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뒤 형주의 일을 총독하도록 맡긴 사람이 관우였다. 그는 전선을 지휘하는 장수인 동시에 여러 군과 성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관리자였다. 위나라와 싸우면서 오나라를 자극하지 않아야 했고 전방의 병사와 후방의 관리가 같은 목표를 보도록 만들어야 했다. 유비가 방랑할 때와는 달리 형주에서 관우에게 필요한 능력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힘보다 서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한 울타리 안에 묶어두는 힘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사람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평가했다. 전장에서 용맹하고 명령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후했다. 자신의 명예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었다. 반대로 독립적인 권위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에게는 교만했다. 정사의 표현대로 미방과 부사인은 평소부터 관우가 자신들을 가볍게 여긴다고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 감정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군수물자 공급의 차질은 표면적인 갈등의 원인이면서 이미 쌓인 불신을 터뜨린 계기였다.

그러나 미방은 그저그런 보잘것없는 하급자가 아니었다. 그의 형 미축은 도겸의 유언을 받들어 유비를 맞아들인 사람이었다.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처자까지 잃은 뒤 궁핍해졌을 때 미축은 누이를 유비의 부인으로 보내고 노객 이천 명과 막대한 재물을 군자금으로 내놓았다. 조조가 미축과 미방에게 관직을 주었지만 두 사람은 관직을 버리고 유비를 따라다녔다. 익주가 평정된 뒤 미축은 실제 행정 능력이 두드러지지 않았음에도 유비의 오랜 공신으로 높은 예우를 받았다. 미방 역시 유비가 서주에서부터 데리고 다닌 창업공신이었고 유비와 혼인으로 이어진 집안의 사람이었다. 당장 미방이 맡은 남군은 유비 세력의 두번째 수도나 다름없는 요충지이며 유비가 차지한 형주지역 중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물론 미방이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사는 그가 관우와 함께 일하면서 속으로 다른 마음을 품었고 결국 손권을 맞아들였다고 기록한다. 그의 배신은 형주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것을 관우의 책임만으로 돌리면 미방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지워버리게 된다. 공신이었다는 사실이 배신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관우가 엄격했다는 사실이 성문을 열어준 행위를 면죄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사는 배신이 벌어진 뒤에만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배신의 가능성을 미리 발견하고 중요한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을 교체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관우는 미방을 믿지 않았다. 미방도 관우를 따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중요한 전선을 함께 맡기에 부적합한 관계였다. 그런데 관우는 그를 남군태수로 둔 채 자신의 본거지인 강릉과 군수보급을 맡겼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후방을 맡기고 문제가 생기자 돌아가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현대 조직행동론의 ‘리더-구성원 교환관계’ 이론은 리더가 모든 구성원과 똑같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본다. 리더는 일부 구성원과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가까운 관계를 만들고 다른 구성원과는 공식적인 역할만 교환하는 낮은 관계를 형성한다. 높은 관계에 들어간 사람은 더 많은 정보와 기회, 지원을 받는다. 낮은 관계에 머문 사람은 지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문제는 낮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는 역할을 맡길 때 생긴다.

관우와 미방의 관계는 이미 낮은 신뢰 상태였다. 관우는 미방을 자신의 핵심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방은 관우에게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미방은 형주군의 가족과 재산이 모인 강릉을 지켰고 전선에 보낼 군량과 무기를 책임졌다. 관계는 취약했지만 역할은 막중했다. 조직은 중요한 직책일수록 능력뿐 아니라 리더와의 신뢰, 동료와의 협업 가능성을 함께 보아야 한다. 관우는 미방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를 교체하지 않았다. 미방은 관우를 두려워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사람을 그대로 둔 인사가 형주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우가 미방을 품을 수 있었다면 가장 좋았다. 오랜 공신으로서의 체면을 인정하고 군수물자 공급의 문제를 공개적인 처벌 예고가 아니라 구체적인 지원과 책임 조정으로 풀 수도 있었다. 관우가 자신의 성향상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면 유비에게 미방의 전출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미방을 익주로 보내 유비가 직접 관리하고 형주에는 관우와 신뢰관계를 만들 수 있는 다른 장수를 내려보내 달라고 청하는 방식이다. 물론 요청한다고 실제로 그것이 받아들여졌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고치려 하기보다 자리를 바꾸는 것은 인사의 오래된 선택지다.
모든 갈등을 충성심의 문제로 바꾸면 해결책은 징계밖에 남지 않는다. ‘내 뜻을 따르지 않으니 충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리더는 업무의 문제와 관계의 문제, 역량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군량이 부족한 이유가 미방의 태만인지 수송 능력의 한계인지 관우의 과도한 요구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책임을 묻더라도 전쟁이 끝난 뒤 어떤 절차로 판단할지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관우의 말은 ‘돌아가면 다스리겠다’는 것이었다. 미방과 부사인에게 남은 것은 해명의 기대가 아니라 처벌의 공포였다.

이는 ‘심리적 계약’의 파괴와도 연결된다. 심리적 계약은 문서에 적히지 않은 조직과 구성원 사이의 기대다. 구성원은 조직이 자신의 공로를 기억하고 실패의 사정을 들으며 최소한의 존중과 절차를 지킬 것이라 기대한다. 조직은 구성원이 위기에서도 역할을 버리지 않고 책임을 다하리라 기대한다. 미방과 유비 사이에는 오랜 심리적 계약이 있었다. 유비가 가장 어려울 때 미씨 형제가 재산과 관직을 버리고 그를 따랐으며 유비는 그들을 공신으로 우대했다. 그러나 관우와 미방 사이에는 그 계약이 이어지지 않았다. 유비의 신뢰가 관우에게 자동으로 승계되지 않았고 미방의 과거 공로도 관우 아래에서 현재의 신뢰로 전환되지 않았다.
공신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된 공로가 현재의 무능과 태만을 덮을 수는 없다. 공신이 조직의 부담이 되었다면 직무를 줄이거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 문제는 공신을 중책에 그대로 둔 채 존중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상태다. 관우는 미방의 공로를 인정해 품지도 않았고 부족한 능력을 판단해 교체하지도 않았다. 그는 미방을 믿지 않으면서 계속 썼고 계속 쓰면서도 두려움으로 움직이게 했다.
이때 우금의 항복이 관우에게 더 큰 승리를 안겼다. 동시에 더 큰 운영 부담도 안겼다. 여몽전에는 관우가 우금과 그 군사 수만 명을 사로잡은 뒤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관의 쌀을 임의로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손권은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군사를 움직였으며 여몽을 앞세웠다. 상관은 215년 상수를 경계로 나눈 뒤 오나라의 영향 아래 있던 지역이었다. 관우가 그곳의 쌀을 가져간 행위가 손권의 형주 공격을 처음 만들어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손권과 여몽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우의 배후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의 쌀을 탈취한 일은 손권에게 관우가 먼저 경계를 침범했다는 외교적 명분을 주었고 기다리던 공격을 실행할 시점을 당겼다.

여기에서 관우의 인사는 또 한 번 뒤집힌다. 자비가 필요한 곳에는 엄정을 남겼다. 미방과 부사인은 같은 조직의 관리자였고 오랫동안 유비를 따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잘못을 덮어주는 온정이 아니라 사정을 듣고 책임을 나누며 다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관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관우는 먼저 칼날을 보였다.
반대로 결단이 필요한 곳에는 연민에 가까운 유예를 남겼다. 수만 명의 포로를 살려둔 일을 비난할 수는 없다. 포로를 죽이는 것이 결단일 수는 없다. 다만 그 많은 포로를 어떻게 수용하고 먹이며 전쟁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운영계획이 필요했다. 포위전을 축소할 것인지 포로를 후방으로 옮길 것인지 다른 세력과 교환을 모색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당시 어떤 대안이 실제로 가능했는지는 기록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관우가 포로를 얻은 뒤 식량이 부족해졌고 그 부족을 메우기 위해 동맹의 경계를 넘어 쌀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얻은 가장 큰 승리가 병참과 외교에서는 가장 위험한 부채로 바뀌었다.

관우가 자연의 변화를 이용해 우금의 칠군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홍수를 미리 예측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눈앞의 기회를 잡는 전장 감각은 탁월했다. 물에 잠긴 위군을 상대로 배를 움직였고 우금을 사로잡으며 조조의 남쪽 방어선을 흔들었다. 문제는 승리의 다음 단계였다. 포로와 병참을 관리하고 후방의 관리자들을 붙잡으며 동맹이 개입할 명분을 막아야 했다. 전투는 이겼지만 승리를 유지하는 운영에서는 균열이 생겼다.
전쟁의 영웅과 지역의 통치자는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영웅은 결단하고 돌파한다. 통치자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견딘다. 영웅은 자신의 명령을 실행할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통치자는 자신의 명령에 이견을 말할 사람도 필요로 한다. 영웅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만 통치자의 권위는 때로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관우는 한 명의 장수로서는 거의 완성된 사람이었다. 용맹했고 절개가 있었으며 병사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러나 형주의 최고책임자는 한 명의 장수만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미방과 부사인을 관리해야 했고 손권의 체면을 계산해야 했으며 유비와 익주의 지원을 끌어내야 했다. 전선의 승리와 후방의 안정, 동맹의 유지라는 서로 다른 과제를 동시에 조정해야 했다. 관우의 능력은 전장을 지배하는 데에는 충분했지만 한 지역의 정치와 인사를 운영하기에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유비의 리더십을 두 자루의 검에 비유한다면 하나는 의였고 다른 하나는 인이었다. 의는 함께한 약속을 버리지 않는 힘이다. 인은 사람이 잘못하고 무너졌을 때 그 사정을 살펴 다시 설 자리를 남겨주는 힘이다. 유비가 언제나 자비롭고 공정한 군주였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분노했고 사람을 잘못 썼으며 이릉에서는 만류를 듣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몇몇 장면에서 관우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미방이 손권에게 투항하자 형 미축은 스스로 몸을 묶고 유비에게 죄를 청했다. 유비는 형제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며 그를 위로하고 이전처럼 예우했다. 훗날 이릉에서 퇴로가 끊긴 황권이 위나라에 항복했을 때도 신하들이 그의 가족을 처벌하자고 하자 유비는 말했다.
‘내가 황권을 저버렸지, 황권이 나를 저버린 것이 아니다.’
유비에게 인은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관대함이 아니었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자신의 감정과 분리해 살피는 태도였다. 미방의 배신으로 형주와 관우를 잃은 뒤에도 미축을 연좌시키지 않았다. 자신의 패전으로 돌아오지 못한 황권에게 배신자의 이름을 씌우지 않았다.

관우는 유비가 가진 두 자루의 검 가운데 의를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았다. 은혜를 잊지 않았고 주군을 바꾸지 않았으며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에게 인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병졸을 잘 대우했다. 문제는 그의 인이 자신과 함께 싸우는 병사에게 머물렀다는 데 있었다. 권한을 나누고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관리자와 사대부에게까지 넓어지지 못했다.
관우에게 미방은 유비의 오랜 공신이기 전에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무능한 보급책임자였을지 모른다. 미방에게 관우는 천하의 명장이기 전에 자신을 낮추어 보고 전쟁이 끝나면 처벌하려는 상관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력을 알았지만 서로를 자신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관우가 인까지 품었다면 어땠을까. 미방의 잘못을 덮어주라는 뜻이 아니다. 미방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과 감당하지 못하는 역할을 나누고 공신으로서의 체면을 지켜주면서 책임을 조정할 수 있었다.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사람을 바꿨어야 했다. 유비에게 미방을 익주로 불러들이고 자신과 호흡이 맞는 장수를 내려보내 달라고 청했어야 했다. 사람을 끝내 믿을 수 없었다면 자신이 데려가는 일이 있더라도 중요한 성과 군량을 계속 맡겨서는 안 됐다.
좋지 않은 인사는 무능한 사람을 뽑는 것만이 아니다.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을 알면서도 같은 자리에 묶어두는 것도 인사 실패다. 대표가 신뢰하지 않는 임원에게 회사의 핵심고객을 계속 맡기고 임원은 대표의 처벌을 두려워해 나쁜 정보를 숨긴다면 두 사람 중 누가 더 나쁜지를 따지는 일은 늦다. 먼저 역할을 분리하고 권한을 조정해야 한다. 모든 갈등을 충성의 문제로 해석하면 배치는 사라지고 복종만 남는다.
관우는 미방을 교체하지 않았고 미방을 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유비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 그는 두려움으로 군량을 얻으려 했고 승리의 힘으로 후방의 불만까지 누를 수 있다고 믿었다. 수만 명의 포로를 얻었지만 먹일 식량을 준비하지 못했고 부족한 쌀을 손권의 경계 안에서 가져왔다. 관우의 쓸 데없는 자비로 손권은 명분을 얻었으며 여몽은 움직일 때를 얻었다.
번성 앞에서 관우의 칼은 여전히 강했다. 하지만 조조는 사마의와 장제의 건의를 듣고 오나라와 비밀리에 화친했다. 조인은 성안에서 버티고 있을동안 이미 구원을 간 서황 이외에도 하후돈, 장료 등이 관우와 싸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조조 자신 또한 전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형주의 인사는 이미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비가 필요한 곳에는 칼날을 세웠다. 결단이 필요한 곳에는 미뤄둔 문제가 남았다.
관우는 의를 지켰다. 그러나 의만으로는 사람을 남길 수 없었다.
그가 번성을 거의 손에 넣었을 때 형주는 이미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그의 손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그의 인생 최정점이던 그날로부터 불과 몇 개월만에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 되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