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萬史 : 번성공방전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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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번성공방전 ③

교육과 위임이 만든 최후의 승자
리더십기타리더임원CEO
영준
유영준Jul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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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을 뽑은 군주가 아니라 다음 사람을 준비한 군주

219년 겨울.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은 군선처럼 보이지 않았다. 노를 젓는 사람들은 갑옷 대신 흰옷을 입었고 배 안의 정예병들은 선창 아래 몸을 숨겼다. 멀리서 보면 물건을 실어 나르는 상선이었다. 관우가 강가에 세워둔 초소의 병사들도 그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배가 가까이 다가온 뒤에야 숨어 있던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병들은 묶였고 봉화는 오르지 않았다. 공안과 강릉에서는 아직 적이 장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후대가 ‘백의도강’이라 부른 여몽의 형주 기습은 요란한 함성 없이 시작됐다. 관우가 번성에서 천하를 흔들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는 전쟁의 결론이 이미 바뀌고 있었다.

이 기습을 단순히 여몽 한 사람의 기지로만 기억하면 동오가 형주를 얻은 이유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여몽은 처음부터 지략을 갖춘 도독이 아니었다. 그는 전장에서 공을 세워 올라온 무장이었다. 정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자신의 강점도 싸우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손권이 여몽과 장흠에게 학문을 익히라고 권했을 때 여몽은 군중의 일이 너무 바빠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배송지가 인용한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은 그에게 경전을 연구하는 박사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난 일을 두루 살펴 판단의 폭을 넓히라는 뜻이었다. 자신보다 일이 많으냐고도 물었다. 군주인 자신도 역사서와 병서를 읽고 큰 도움을 얻었다며 『손자』와 『육도』, 『좌전』과 『국어』, 삼사를 읽으라고 구체적으로 권했다.

손권의 권학은 막연한 자기계발 명령이 아니었다. ‘책을 읽어라’고 말하고 끝내지 않았다. 여몽에게 학자가 될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지휘관의 판단에 필요한 범위만 제시했다. 배움이 현재 맡은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했으며 자신이 먼저 공부한 경험도 내놓았다. 바쁜 사람에게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꾸짖기보다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배워야 하는지를 정해주었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직무에 필요한 역량과 학습목표를 연결한 경력개발이었다.

여몽도 말로만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학문에 몰두했고 옛 유학자들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견문을 넓혔다고 전한다. 주유의 뒤를 이어 전선을 맡게 된 노숙이 여몽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 그의 등을 두드렸다. 자신은 여몽에게 무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학식이 넓어 더 이상 오나라 시절의 아몽이 아니라고 했다. 여몽은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새로 보아야 한다고 답했다. ‘괄목상대’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여몽은 곧 관우의 성격과 형주의 위험을 분석하고 노숙에게 세 가지 대응책을 제시했다. 노숙은 그 계책을 존중해 비밀로 간직했다. 손권은 부귀와 지위를 얻은 뒤에도 몸을 낮추어 배운 여몽과 장흠을 두고 마침내 나라를 맡길 선비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2. 괄목상대, 그리고 형주

사람이 공부했다고 모두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운 것을 실제 과업에서 시험할 기회가 필요하다. 손권은 여몽을 책 읽는 무장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여러 전투에서 계책을 쓰게 했고 점차 독립된 지휘권을 맡겼다. 노숙이 죽자 그가 거느리던 병력 만여 명을 여몽에게 넘기고 육구에 주둔시켰다. 여몽은 관우와 땅을 맞대고 상대를 직접 관찰했다. 노숙이 조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비 세력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보았다면 여몽은 장강 상류를 관우가 점유한 상태가 오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손권이 서주를 취하는 방안을 묻자 그는 육지로 연결된 서주는 조조의 기병을 막기 어렵다며 관우를 쳐 장강 전역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손권은 그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여몽은 관우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관우가 용맹할 뿐 아니라 형주에서 은혜와 신망을 널리 얻었고 막 큰 공을 세워 기세가 올랐으므로 쉽게 도모할 상대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적을 낮추어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관우의 강점을 인정한 뒤 그 강점이 방심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다렸다. 여몽은 병을 핑계로 건업에 돌아가겠다고 손권에게 청했다. 자신이 평소 병이 많다는 사실을 이용해 치료를 위해 병력을 일부 데리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 관우가 형주에 남겨둔 수비병을 북쪽으로 옮길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손권은 겉으로는 공개 명령을 내려 여몽을 소환하고 안으로는 형주 공략을 함께 계획했다. 관우는 이를 믿고 후방 병력을 조금씩 번성으로 보냈다.

여몽이 건업으로 향하기 전 한 젊은 관리가 그를 찾아왔다. 육손이었다. 육손은 당시 이름 없는 초보자가 아니었다. 스물한 살에 손권의 막부에 들어와 행정 실무를 맡았고 해창에서 둔전과 현정을 담당했다. 가뭄이 이어지자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제하고 농업과 양잠을 장려했다. 산월 세력을 토벌하고 그들을 병력과 호구로 편입시키는 일도 수행했다. 적은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에는 깃발과 북을 늘려 대군처럼 보이게 한 뒤 밤중에 산길로 들어가 적을 무너뜨렸다. 손권은 형 손책의 딸을 육손과 혼인시키고 여러 차례 세상일을 물었다. 육손은 지방행정과 치안, 군사동원을 경험하며 이미 한 지역을 운영하는 능력을 시험받고 있었다. 다만 관우가 경계할 만큼 전선에서 이름난 장수는 아니었다.

육손은 병을 이유로 전선을 떠나는 여몽에게 관우와 국경을 맞댄 상황에서 어떻게 멀리 내려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몽이 병이 심하다고 답하자 육손은 속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관우는 자신의 용맹을 믿고 다른 사람을 얕보며 막 큰 공을 세워 뜻이 교만하고 마음이 느슨해졌다고 했다. 관심은 오로지 북진에 있고 동오를 의심하지 않으니 여몽의 병을 들으면 더욱 대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 뜻밖에 공격하면 관우를 제압할 수 있으니 손권을 만나면 좋은 계책을 세우라고 권했다.

여몽은 이 말을 듣고 육손을 경계하지 않았다. 자신의 후계자로 보았다. 건업에 도착한 여몽에게 손권은 누가 그를 대신할 수 있는지 물었다. 여몽은 육손의 생각이 깊고 길며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재주가 있다고 답했다. 그의 계획을 보면 훗날 큰일을 맡길 수 있고 아직 멀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관우도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자신을 숨기고 안으로 형세를 살피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손권은 곧 육손을 불러 편장군과 우부독에 임명하고 여몽을 대신하게 했다. 한 사람의 추천을 듣고 국경의 핵심 직책을 젊은 장수에게 넘긴 것이다.

3. 후임은 선임에게 묻는다.

이 장면에서 손권의 인사 방식이 드러난다. 여몽이 물러나겠다고 했을 때 손권은 단순히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지 않았다. 먼저 여몽에게 후임자를 물었다. 현재의 책임자가 자신의 업무와 다음 사람을 가장 잘 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주유에게도, 노숙에게도 다음 사람을 물어보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몽도 자신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 후계자의 성장을 막지 않았다. 육손을 추천하면 자신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훗날 큰 책임을 맡을 수 있음을 먼저 알아보고 이름을 내놓았다.

육손 역시 발탁을 받자 서둘러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다. 육구에 도착한 그는 관우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우금을 사로잡은 공은 진문공의 성복 전투와 한신의 조나라 공략도 넘어설 수 없다고 치켜세웠다. 자신은 능력이 부족한 서생에 불과하며 관우의 위엄과 덕을 가까이에서 우러러보고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몸을 낮추었다. 서황과 위나라 병력이 다가오고 있으니 승리한 뒤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넣었다. 경고조차 충고가 아니라 존경의 형식으로 감쌌다. 관우는 편지에 담긴 겸손과 의탁의 뜻을 보고 크게 안심했다. 더는 육손을 의심하지 않았다. 육손은 그 반응을 손권에게 보고하며 관우를 사로잡을 수 있는 요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관우는 제갈량과 비시가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을 때 마음을 풀었다. 육손은 그런 관우의 성향을 정확히 읽었다. 다만 제갈량과 비시는 관우를 조직 안에서 움직이기 위해 그의 체면을 살렸고 육손은 적장의 경계를 풀기 위해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관우의 강한 인정욕구는 촉한 내부에서는 중재의 비용이었고 적에게는 공략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손권은 준비가 끝나자 군사를 몰래 장강 상류로 움직였다. 여몽은 심양에 이르러 정예병을 배 안에 숨기고 노 젓는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혀 상인으로 꾸몄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 관우가 강변에 설치한 초소를 차례로 제압했다. 봉화를 올릴 사람도 강릉에 급보를 보낼 사람도 남지 않았다. 수만대군이 움직였지만 관우는 이를 알지 못했다. 기습은 속도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여몽의 위장과 육손의 편지, 관우의 수비병 철수와 미방·부사인의 불안이 한순간에 맞물렸다.

형주의 중심중 하나로 이전에 유비가 주둔했던 공안에서는 부사인이 성을 닫고 버티려 했다. 그러자 여몽은 우번을 보내 설득하게 했다. 우번은 정찰병도 봉화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호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며, 여몽이 남군으로 직행해 육로까지 끊으면 작은 성에서 달아날 길도 없다고 압박했다. 부사인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항복했다. 우번은 이것이 속임수를 위한 항복일 수 있으니 부사인을 데리고 가고 성에는 별도의 병력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몽은 다시 그 판단을 받아들였다. 공안의 장수를 앞세워 강릉에 도착하자 미방도 소와 술을 내놓고 성문을 열었다. 정사 본문은 미방이 투항했다고 간략히 적지만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기록들은 군기고의 화재로 관우의 책망을 받은 미방이 두려움을 품고 손권과 몰래 내통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어쩌면 관우의 생각보다도 더 빠른 시기에 이미 미방은 배반했을 지도 모른다.

강릉을 점령한 뒤 여몽은 군사들이 민가를 침범하거나 물건을 요구하지 못하게 했다. 그의 휘하에 있던 동향 출신 병사 한 명이 관청의 갑옷을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민가의 삿갓을 가져다 썼다. 공적인 물건을 보호하려는 행동이었지만 여몽은 군령을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법을 굽힐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고 그를 처형했다. 군중은 두려워했고 길에 떨어진 물건조차 줍지 않았다. 이 엄격함은 관우의 엄정함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칼날이 향한 곳이 달랐다. 관우는 불안해하는 내부 관리자에게 처벌을 예고했다. 여몽은 점령지 주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병사를 처벌했다. 하나는 내부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다른 하나는 적지의 신뢰를 만든 차이를 만든 것이다.

여몽은 관우와 장수들의 가족을 모두 찾아 위로했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을 묻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었으며 굶주리고 추운 사람에게 옷과 식량을 나누었다. 관우의 창고에 있던 재물은 손권이 올 때까지 봉인했다. 관우가 돌아오는 길에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강릉의 상황을 묻자 여몽은 사자를 후하게 대접하고 성안을 돌아다니며 집마다 안부를 확인하게 했다. 어떤 집에서는 직접 쓴 편지까지 보여주었다. 사자들이 돌아와 가족들이 무사하고 평소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전하자 관우의 병사들은 더 이상 싸울 뜻을 잃었다. 여몽은 관우군을 칼로만 무너뜨리지 않았다. 병사들이 싸워야 할 이유부터 없앴다.

육손은 여몽의 뒤를 따라 강릉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별도로 서쪽을 향해 의도를 점령하고 자귀·지강·이도를 차지했다. 유비가 임명한 의도태수 번우가 달아났고 여러 성의 관리와 이민족 수장들이 투항했다. 육손은 새로 귀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금·은·동 인장을 요청했다. 항복을 받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새로운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이어 수군과 보병을 나누어 요충지를 끊고 촉한의 관리와 지역세력을 제압했다. 손권은 육손을 우호군과 진서장군으로 올리고 봉작을 높였다. 형주를 얻은 뒤 벼슬길을 찾지 못한 현지 사인들이 생기자 육손은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말고 능력에 따라 등용해야 사람들이 동오로 돌아올 것이라고 건의했다. 손권은 이를 받아들였다. 점령군의 장수가 새 영토의 인재통합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관우는 번성의 포위를 풀고 남쪽으로 돌아왔다. 돌아갈수록 군사는 줄었다. 강릉에 남겨둔 가족이 안전하다는 소식이 퍼지자 병사들은 관우를 버리고 흩어졌다. 관우는 당양을 거쳐 맥성으로 물러났다. 손권의 투항 권유에 응하는 듯 성 위에 깃발과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빠져나왔지만 이미 주연과 반장이 퇴로를 막고 있었다. 반장의 사마 마충이 장향에서 관우와 아들 관평, 도독 조루를 붙잡았다. 관우의 죽음에 관한 구체적인 장면은 기록마다 차이가 있으나 손권이 형주를 장악하고 관우 부자를 사로잡아 죽인 결과는 분명하다. 번성에서 조조를 떨게 했던 군신은 불과 몇 달 만에 귀환할 성도 따를 병사도 잃었다.

형주를 얻은 공은 손권 한 사람의 계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몽은 관우의 전략적 위험을 오래 관찰했고 자신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추천했다. 육손은 자신의 젊음과 낮은 명성을 약점이 아니라 위장으로 사용했다. 우번은 부사인의 심리를 흔들고 거짓 항복의 가능성까지 경계했다. 여몽은 기습이 끝난 뒤 군율과 민심을 관리했다. 육손은 서쪽 요충지를 장악해 유비의 지원로를 막고 새로 얻은 지역의 인재까지 포섭했다. 손권은 이들을 한 사람의 명령 아래 눌러두지 않았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서로 다른 전장을 맡겼다.

하지만 여몽은 승리의 영광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손권은 그를 남군태수와 잔릉후에 봉하고 막대한 금과 포상을 내리려 했다. 여몽이 병들자 공안의 내전에 머물게 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람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자주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환자를 힘들게 할까 두려워 벽에 구멍을 내어 몰래 상태를 살폈다고 『강표전』은 전한다. 여몽이 음식을 조금 먹으면 손권은 기뻐했고 병세가 나빠지면 밤에도 잠들지 못했다. 여몽은 불과 마흔두 살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이 받은 금과 보물을 창고에 돌려놓고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고 당부했다.

4. 또 다른 시험

조직은 여기에서 다시 시험받는다. 여몽 같은 핵심인재가 사라지면 성과도 함께 끝날까. 동오에는 이미 육손이 있었다. 여몽은 형주를 얻는 작전을 완성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사라진 뒤 형주를 지킬 사람을 남겼다. 손권은 육손을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았다. 이윽고 형주를 빼앗긴 유비가 황제가 된 뒤 대군을 일으켜 동오를 공격하자 다시 육손에게 전선을 맡겼다.

육손의 지휘 아래 들어간 장수들은 주연·반장·한당·서성·손환 등 전공과 연륜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젊고 문관의 인상이 강한 육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비가 평지에 병사를 내보내 싸움을 걸자 여러 장수는 즉시 공격하자고 했다. 육손은 복병이 있을 것으로 보고 기다렸다. 실제로 유비는 골짜기에 병력 8천 명을 숨겨두고 있었다. 유비군이 높은 지형을 따라 수십 개 진영을 세우며 깊숙이 들어오자 오나라 장수들은 처음에 공격해야 했다며 불만을 품었다. 육손은 유비의 기세가 강하고 험한 지형을 차지한 지금은 건드리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산과 나무 사이에서 군대가 지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부하들의 분노도 견디며 끝까지 기다렸다. 유비의 군대가 수개월 동안 대치하며 피로해지고 더는 새로운 계책을 만들지 못하자 한 진영을 먼저 쳐보았다. 실패하자 장수들은 군사만 헛되게 죽였다고 비난했다. 육손은 이미 적을 무너뜨릴 방법을 알아냈다고 답했다. 병사들에게 마른 풀 한 묶음씩을 들게 해 불을 질렀고 불길이 번지자 전군을 동시에 움직였다. 유비군의 진영 마흔여 곳이 무너졌다. 유비는 백제성까지 달아났고 배와 무기, 군수물자는 대부분 사라졌다. 유비는 자신이 육손에게 꺾인 것을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며 부끄러워했다. 손권이 여몽의 추천을 받아 형주 전선에 세운 젊은 장수는 몇 년 뒤 유비의 복수전, 뒤이은 조비의 강남침공까지 끝냈다.

5. 리더가 해야할 일

손권이 직접 형주의 초소를 묶은 것은 아니다. 관우를 붙잡은 사람도 아니고 이릉의 불을 놓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한 일은 사람을 골라 성장시키고 그 사람의 추천으로 다음 사람을 발탁한 뒤 싸움의 현장에서 권한을 보장한 것이었다. 동오의 사신 조자가 위 문제에게 손권이 어떤 군주인지 설명하며 노숙을 평범한 자리에서 받아들인 것은 총명함이고 여몽을 군대의 대열에서 뽑아낸 것은 밝은 판단이며 형주를 피 흘리지 않고 얻은 것은 지혜라고 답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현대 인사관리에서 ‘리더십 파이프라인’은 현재의 직무를 잘하는 사람을 단순히 한 단계 승진시키는 체계가 아니다. 역할이 커질 때마다 필요한 능력과 업무가 달라진다는 전제에서 다음 단계에 맞는 경험과 사고방식을 미리 준비시키는 방식이다. 실무자는 자신의 일을 잘해야 한다. 팀장은 다른 사람이 성과를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임원은 여러 조직을 조정하고 다음 책임자를 길러야 한다. 이전 자리에서의 성공방식만 고집하면 승진한 뒤 오히려 무능해질 수 있다.

여몽은 용맹한 실무자였다. 손권은 그에게 역사와 병법을 익히게 해 전선 전체를 보는 지휘관으로 성장시켰다. 여몽은 자신의 성과로 승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육손을 추천했다. 육손은 행정과 치안, 군사동원을 거쳐 형주 기습과 점령지 통합을 경험했고 마침내 여러 노장을 통솔하는 대도독이 되었다. 학습과 배치, 실전과 승계가 한 줄로 이어졌다.

손권의 인사에서 중요한 것은 ‘잠재력’만이 아니었다. 잠재력을 검증할 과제를 단계적으로 맡겼다. 육손은 갑자기 이릉의 대도독이 된 사람이 아니다. 해창현과 둔전을 운영하며 행정능력을 길렀고 산월을 토벌했으며 병력을 모집했다. 자신을 비판한 회계태수 순우식을 오히려 좋은 관리라고 추천해 관계와 공익을 구분하는 태도도 보였다. 심지어 육손의 작은 아버지인 육강은 손책에게 죽은 원수다. 손권은 그런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몽의 추천은 아무 근거 없는 천거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관찰 위에 놓였다.

6. 사람을 완성하는 건 누구의 일일까.

중소기업에서는 대표가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완성된 채로 입사하지 않는다. 현재 업무만 반복시키면서 어느 날 갑자기 본부장과 후계자의 역할을 요구하면 누구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여몽에게 책을 읽힐 시간도 주지 않고 육손에게 지역을 운영할 경험도 주지 않았다면 손권에게도 맡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팀장은 다음 팀장을 만들어야 한다. 임원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는 부하만 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조직을 맡을 사람을 추천해야 한다. 대표는 추천받은 사람에게 직함만 줄 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 있는 작은 과제부터 맡기고 성과와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핵심인재 한 명을 붙잡는 것보다 그 사람의 뒤에 다음 사람이 서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사람 한 명에게 의존하는 조직은 그 사람이 병들거나 떠나는 순간 성과가 멈춘다. 여몽은 죽었지만 손권의 형주 전선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권의 인사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말년의 그는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고 육손마저 정치적 의심 속에서 반복해 문책했다. 육손은 울분 속에 죽었다. 형주와 이릉에서 빛났던 인재 육성의 질서가 후계 구도에서는 무너졌다. 사람을 길러 쓰는 능력이 한때 뛰어났다고 해서 리더가 영원히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손권의 성공을 영웅담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번성공방전에서만큼은 세 나라의 차이가 선명했다.

위나라는 우금의 실패를 조인과 만총, 서황이 메웠다.

촉한은 관우라는 최고의 장수에게 형주의 군사와 행정, 외교를 함께 의존했고 그와 맞지 않는 사람을 교체하지 못했다.

동오는 여몽이 관우의 약점을 읽게 했고 육손이 여몽의 자리를 이어받게 했으며 형주를 얻은 뒤에는 그 육손에게 유비까지 맡겼다.

세 군주의 시점으로 돌아보자.

조조는 사람을 모아 두꺼운 장수층을 만들었다.

유비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 자신을 위해 죽을 영웅을 곁에 두었다.

손권은 사람을 배우게 하고 추천하게 하며 다음 자리로 올려보냈다.

손권이 칼로 조조와 유비를 직접 쓰러뜨린 것은 아니다.

그의 곁에는 적벽의 주유가 있었고 형주의 여몽이 있었으며 이릉의 육손이 있었다.

손권의 가장 큰 무기는 장강의 수군이 아니었다.

바로 한 사람이 물러난 자리에 다음 사람을 세울 수 있었던 인사의 질서였다.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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