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萬史 : 사이코패스? 유능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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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사이코패스? 유능한 2세?

조조의 아들, 위나라의 황제
리더십CEO
영준
유영준Aug 4, 2026
2158

0. 시대앞에서

3세기 초, 중국을 지배하던 한나라의 질서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유력한 군벌이던 조조는 한나라의 어린 황제인 헌제를 끼고 북중국을 장악했다. 그는 30여년에 걸쳐 원소와 여포, 원술과 유표의 세력을 무너뜨렸고 수많은 장수와 관료를 자신의 이름 아래 모았다. 그러나 이미 개이빨처럼 갈라진 천하는 다시 합쳐지지 못했다. 조조의 천하통일은 적벽에서 한바탕 불로 끝나버렸고 적벽대전 이후 중국의 서쪽에는 유비의 촉한이, 지금의 양쯔강 이남에는 손권의 동오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20년 조조가 죽자 조비는 위왕의 자리를 물려받았고 같은 해 후한의 헌제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넘겨받아 위나라를 세웠다. 그가 물려받은 것은 완성된 제국이 아니었다. 창업자 한 사람의 전공과 인맥, 카리스마에 묶인 거대한 군사조직이었다.

조비의 과제는 아버지처럼 다시 천하를 떠돌며 회사를 일으키는 일이 아니었다.

창업자가 모은 사람들을 새로운 질서에 배치하고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을 국가의 제도로 바꾸어야 했다. 아버지의 공신을 관리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세워야 했고 형제와 종친의 도전도 막아야 했다. 동시에 자신이 단지 조조의 아들이 아니라 제국을 운영할 자격이 있는 황제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조비는 창업자의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자였다.

그리고 상당히 유능한 2세 경영자였다. 다만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좀처럼 안전하지 않았다.

1. 친구가 사랑한 여인

조비에게는 하후상이라는 측근이 있었다.

하후상은 조비가 황제가 되기 전부터 친구로서 곁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낙하산도 아닌 것이 그는 상용 일대를 공략하는데 공을 세웠는가 하면 남방의 군사를 맡아 동오 전선을 지켰다. 조비는 그를 골육과 같은 사람이며 안에서는 심복이고 밖에서는 자신의 손발이라고 여겼다.

이 하후상에게는 사랑하는 첩이 있었다. 문제라면 그는 조씨 집안 출신인 정실(정확히는 원래 진씨였으나 아버지인 진소가 조조를 위해 죽은 뒤 조씨성을 하사받았다. 이때 같이 조씨성을 받은 그녀의 오빠가 훗날 위의 군부를 이끄는 조진이다.)보다 그 여인을 더 총애했다.

피가 섞이진 않았다고는 해도 자신의 누이와 같은 이를 소홀히 여긴 것에 기분이 상했을까. 조비 사람을 보내 그 첩을 목 졸라 죽였다.

이후 하후상은 죽은 애첩을 기리는 마음에 병이 들었다. 정신이 흐려질 만큼 무너졌고 첩을 묻은 뒤에도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무덤을 다시 파고 시신을 꺼내 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조비는 그 슬픔을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습이 하후상을 가볍게 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놀릴 때는 언제고 하후상이 죽을병에 걸리자 조비는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 그를 진심으로 위로한다. 물론 자신이 첩을 죽인 것을 사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측근의 삶이 얼마 남지않았음에 슬퍼하 그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하후상이 죽은 뒤에는 자신의 심복과 손발을 잃었다며 깊이 애도했다.

조비에게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하후상을 아꼈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다만 자신이 느끼는 애정만 중요했다. 하후상이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황제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사랑을 잃고 무너진 마음은 조롱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수천 년 전의 인물을 현대 정신의학으로 진단할 수도 없고 흔히 하는 농담처럼 조비를 실제 사이코패스였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그러나 상대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고 그것을 빼앗으며 무엇을 부끄러워하는지 알고 그곳을 찌르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적어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섬뜩했다고 말할 수 있다.

2. 아버지의 사람을 굴복시키다

조조가 죽기 전, 관우에게 항복했던 우금이 위나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머리와 수염은 이미 희어져 있었다.

우금은 조조 휘하에서 30년 가까이 싸운 장수였다. 조비는 그런 우금을 위로하며 과거 패전한 뒤 다시 등용되어 공을 세운 장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전의 관직에 비하면 한참 낮지만 안원장군이라는 관직도 주었다. 겉으로 볼 땐 창업자의 노장을 다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조비는 우금을 동오의 사신으로 보내기 전에 그가 동오에 잡혀 있을 때 조조가 죽었으니 참배라도 하고 가라며 배려했다. 물론 동오에 잡혀있던 사람에게 사신으로 가라는 것도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30년 간 모시던 주인, 그런데 조조 릉의 벽에는 관우가 승리하는 모습과 방덕이 분노한 채 굴복하지 않는 모습, 우금이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우금은 그 그림을 본 뒤 수치와 분노로 결국 병이 들어 죽었다.

조비는 우금을 처형하지 않았다. 대신 관직을 돌려주는 척한 뒤 그가 평생 숨기고 싶었던 실패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다시 마주하게 했다.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은 우금을 파면하거나 죽일 수는 있어도 능의 벽에 항복 장면을 그려 모욕한 것은 군주답지 못한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조홍에게는 오래된 원한을 국가의 형벌로 갚으려 했다.

조홍은 조조가 동탁 토벌에 실패하고 패주하던 때 자신의 말을 내어주어 목숨을 구한 개국공신이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조비가 비단 백 필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조홍은 만족스럽게 응하지 않았다.

십 년도 더 된 일이겠지만 조비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조비가 황제가 된 뒤 조홍의 식객이 법을 어기자 조홍까지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다. 조홍의 식객들은 평소 조홍을 믿고 까불었는데 그 이전에도 만총에 의해 부하들이 잡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조홍의 부하들이 처벌받았던 것이지, 조홍까지 처벌받지는 않았다.

당시엔 조조를 가까이에서 모시던 개국공신들이 모두 죽은 후라 없었고 오로지 조홍만이 남아있을 때였기에 신하들이 구명하였으나 조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보다못한 어머니 변태후가 곽황후의 폐위를 거론하며 압박한 뒤에야 목숨을 살려주었다.

우금과 조홍은 단순한 임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창업자의 역사와 회사의 성공 신화를 몸으로 증명하는 원로였다. 2세 경영자에게 이런 사람은 자산이면서 부담이다. 그들을 지나치게 존중하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어렵고 함부로 제거하면 창업자 시절부터 조직을 지킨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진다.

문제는 조비는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지 않았다.

우금에게는 수치를 주었고 조홍에게는 굴복을 요구했다. 창업자의 공신을 새로운 역할에 배치하기보다 누가 새로운 주인을 인정하는지 시험했다.

이는 2세 경영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정당성의 불안’과 닮았다.

후계자는 지분과 직위를 물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의 인정까지 상속받지는 못한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 그 과정이 불안할수록 후계자는 원로의 공로보다 복종을 먼저 확인하려 한다.

3. 창업자의 조직을 시스템으로 바꾸다

그렇다고 조비를 잔혹한 폭군으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셈이다.

조조는 창업자의 직관과 감정이 조직의 판단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면 출신과 전력을 넘어 크게 썼고 미워하거나 의심하면 그 감정이 인사와 처벌에 스며들었다.

조비는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더 음습하고 보복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국가의 제도와 행정을 다룰 때에는 상당한 냉철함을 유지했다.

일식이 일어나 관리들이 태위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자 조비는 재앙은 군주를 경계하는 것인데 어찌 대신에게 죄를 돌리느냐며 막았다. 인재 선발에서는 나이를 제한하지 말고 경학에 통달한 사람과 행정법에 능한 사람을 시험해 쓰도록 했다. 무고와 고발의 남용을 제한했고 형벌을 가볍게 논의하도록 했으며 태학을 세워 오경 시험제도도 마련했다.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했다.

진군의 건의를 받아들여 구품관인법을 시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물론 이 제도는 훗날 문벌귀족이 관직을 독점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그러나 처음 도입될 때의 목적은 전란으로 무너진 인재 추천을 다시 체계화하고 지방마다 사람을 평가할 책임자를 두려는 데 있었다.

조비는 창업자가 사람을 직접 만나 쓰던 조직을 일정한 기준과 절차가 움직이는 국가로 바꾸려 했다.

변경 관리도 평가할 만했다.

지금의 섬서성인 하서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조비는 장기를 양주자사로 보내 현장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게 했다. 이때 조비가 파견한 장기는 반란 세력을 모두 한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주동자와 끌려간 사람을 구분하고 회유와 토벌을 병행했다. 장기는 하서의 질서를 회복했고 조비는 그를 백성을 품고 강족을 귀순시킨 국가의 양신이라 평가했다.

북방에서는 전예와 견초에게 선비와 오환을 관리하게 했다. 전예는 북방 세력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도록 분리하고 서로 견제하게 했으며 필요할 때에는 직접 군사를 이끌어 개입했다. 조비는 모든 변경 문제를 황제가 직접 통제하지 않았다. 적임자를 정하고 현장의 권한을 인정했다.

이것이 조비의 능력이었다.

그는 조조만큼 천재적인 창업자는 아니었지만 창업자의 조직을 운영체계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나랏일에서도 늘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행정과 제도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을 뒤로 물릴 줄 알았다.

개인적인 조비는 상대의 약점을 공격했지만 황제로서의 조비는 책임을 나누고 제도를 만들었다.

4. 자신이 고른 사람은 지나치게 믿었다

2세 경영자는 창업자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사람을 찾으려 한다.

맹달은 그 조건에 잘 맞았다.

맹달은 본래 유비를 섬기다 위나라로 넘어온 항장이었다. 기록에는 용모와 태도가 뛰어나고 재능과 식견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조비는 그를 크게 좋아해 같은 수레에 태웠고 산기상시와 건무장군에 임명했다.

이어 방릉과 상용, 서성 세 군을 합쳐 신성군을 만들고 맹달에게 태수의 자리를 주어 서남 변경을 맡겼다.

이에 1.5세대 참모인 유엽이 반대했다. 유엽은 맹달은 이익을 좇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재주와 술수를 믿는 사람이라 은혜와 의리를 오래 지키기 어려우며 신성은 동오와 촉한에 맞닿은 요충지이므로 변심하면 국가의 근심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조비는 듣지 않았다. 물론 맹달의 등용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유봉을 몰아내고 상용 일대를 위나라의 세력권에 넣는 데 기여했다.

문제는 배치와 통제였다.

한 번 진영을 바꾼 사람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충성의 이력이 불안정한 사람에게 국경의 군사권과 행정권을 한꺼번에 맡기는 것은 다른 판단이다. 아니나다를까, 맹달은 조비가 죽은 뒤 자신의 처우에 대해 불안해하며 다시 촉한과 내통하다 사마의에게 제거되었다.

조직행동론에서는 한 가지 강한 인상이 다른 평가 영역까지 덮어버리는 현상을 ‘후광효과’라고 부른다. 뛰어난 외모와 세련된 태도, 눈에 띄는 재능이 확인되지 않은 충성심과 위기 대응력까지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가지 장점을 높이 평가한 순간 다른 능력까지 좋을 것이라 믿기 쉽다.

조비는 맹달의 재능을 보았지만 그러나 그 재능 때문에 위험을 보지 못했다. 특히 맹달은 조조가 발굴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비가 직접 선택하고 중용한 인재였다. 2세 경영자에게 자신이 영입한 사람의 성공은 곧 자신의 안목을 증명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창업자의 원로에게는 지나치게 냉정하면서도 자신이 데려온 외부 인재에게는 검증되지 않은 신뢰를 주는 일이 생긴다.

5. 가장 약할 때 기다리고 가장 강할 때 공격했다

조비의 동오 정책은 2세 경영자의 성과 조급증을 보여준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동오를 공격하자 손권은 위나라에 칭신했다. 역시나 유엽은 이를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손권이 촉의 공격을 받는 동안 위나라의 개입을 막고 내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인 것이라고 보았다.

유엽은 지금이 동오를 공격할 기회라고 말했다. 촉이 밖에서 공격하고 위가 안으로 들어가면 오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오가 사라지면 촉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복한 사람을 곧바로 공격하면 앞으로 위나라에 귀순하려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며 손권의 칭신을 받아들였고 오왕의 지위까지 주었다. 유엽은 그것이 오나라 내부의 군신 관계를 굳혀 손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라고 다시 경고했지만 조비는 듣지 않았다. 명분을 생각한 판단이었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릉에서 유비가 참패하고 손권이 인질을 보내지 않은 채 위나라에 등을 돌리자 조비는 곧바로 동오 정벌을 결정했다. 유엽은 이번에는 오나라가 막 승리하여 군신이 한마음이 되었고 장강을 끼고 있어 급히 제압하기 어렵다고 반대했다.

조비는 역시 이 경고도 듣지 않았다. 가장 약할 때에는 명분을 따졌고 가장 강해진 뒤에는 공격했다.

손권이 칭신했을 때 오나라의 배후를 치거나, 굳이 다른 전쟁을 택해야 했다면 이릉에서 병력과 사기가 크게 꺾인 촉을 압박하는 선택도 검토할 수 있었다. 조비는 두 기회를 지나친 뒤 승리로 결속한 오나라를 공격했다.

조휴는 동구로, 조인은 유수로, 조진과 하후상(아직 죽기 전의 일이다.)은 강릉으로 진격했다. 일부 전선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강릉을 함락하지 못했고 위군은 철수했다. 몇 년 뒤 조비는 다시 10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광릉까지 내려갔지만 강추위로 수로가 얼어 함대는 장강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비는 남의 실패를 읽는 데에는 능했다.

유비가 이릉에서 영채를 길게 늘어놓았다는 보고를 받고 병법에 어긋난다며 패배를 예측했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육손의 승전보가 도착했다.

그러나 자신의 전쟁에서는 시기와 지형, 수군과 기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과 옳게 판단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감정을 억제해도 전제가 틀리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면 실패한다.

조비는 변경을 안정시키고 제도를 정비하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역에서 유능한 것은 아니었다.

6. 2세 경영자의 정당성

가족기업의 후계자는 직위를 물려받는 순간 경영자가 되지만 구성원이 그를 진정한 리더로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후계자 정당성’의 문제라고 한다.

후계자는 창업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자신만의 판단과 성과로 조직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창업자의 공신을 밀어내고 자신이 고른 사람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며 눈에 띄는 성과를 위해 무리한 확장을 추진하게 된다. 가족기업 승계 연구에서도 후계자가 조직과 가족 내부에서 인정받는 과정이 승계의 지속성과 적극적인 경영행동에 중요한 조건으로 다뤄진다.

조비는 승계에 성공했다.

아버지의 공신을 통제했고 형제와 종친의 권한을 줄였으며 행정과 인사제도를 정비했다. 서북과 북방의 변경도 비교적 안정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식은 자주 잔인했다.

아버지의 사람에게는 복종을 요구했고 자신이 고른 사람에게는 지나친 신뢰를 주었다. 내치의 성과만으로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가장 어려운 전쟁을 반복했다.

그래서 그는 위진남북조, 아니 나아가 당나라와 송나라까지 이어지는 제도의 근간을 다졌지만 자신이 파놓은 덫에 걸려 사마씨에 나라를 빼앗길 단초도 제공했다.

그가 조씨 직계를 배척하며 황실을 호위할 친위세력이 없어졌다. 그는 방계 황족에게 군권을 맡겼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던 하후상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가 구품관인법을 통해 구축한 문벌귀족은 이후 사마씨의 편에서 조씨 황실을 무너뜨리는 한 축으로 부상하고 만다.

조비를 단순한 폭군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분명 아버지가 만든 나라를 지켰다.

그리하여 조조 개인에게 묶여 있던 군벌조직을 황제와 관료제도가 움직이는 나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상처를 권력의 도구로 사용했고 자신의 안목을 증명해줄 사람과 전쟁을 과신했다.

7. 오늘의 조비

오늘의 기업에도 조비와 같은 2세 경영자가 있다.

창업자는 사람을 직접 만나 판단하고 자신의 인맥과 직관으로 회사를 키웠다. 후계자는 회사를 물려받은 뒤 평가제도와 직급체계, 권한 규정과 회의체계를 만든다. 회사는 이전보다 정돈되고 숫자와 보고서는 더 정확해진다.

그는 유능하다. 그러나 창업자와 함께 회사를 키운 원로에게는 냉혹하다.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과거의 공로까지 지운다. 공개적으로 모욕하지 않더라도 핵심 업무에서 배제하고 스스로 떠나게 만든다.

반면 자신이 데려온 외부 임원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맡긴다. 세련된 외모와 말솜씨, 대기업 경력과 초기 성과를 보고 핵심 고객과 영업조직, 가격정보와 인사권을 한꺼번에 넘긴다.

기존 사업이 안정되면 자신의 경영능력을 증명할 신사업을 찾는다. 시장과 조직의 역량보다 ‘아버지보다 더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대형 인수합병이나 해외 진출, 신사업에 자원을 몰아넣고 실패하면 전략적 학습이었다고 이름을 바꾼다.

2세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창업자를 넘어서는 화려한 승리만이 아니다. 창업자의 공신을 새로운 질서 안에 어떻게 남길 것인지, 자신이 영입한 사람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줄 것인지, 유지와 확장 사이에서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조비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나라를 망친 군주는 아니었다.

그는 제도를 만들고 변경을 안정시키며 아버지가 남긴 조직을 국가로 전환했다. 동시에 친구가 사랑한 여인을 죽이고 실패한 노장을 모욕했으며 자신이 좋아한 항장에게 지나친 권한을 주었다. 가장 좋은 전쟁의 시기를 흘려보낸 뒤 가장 강해진 적을 공격했다.

그는 잔인하면서도 유능했다. 그러나 유능하면서도 자주 틀렸다.

2세 경영자의 성패는 물려받은 것을 얼마나 크게 만드는가에만 있지 않다.

누구의 공로를 인정하고 누구의 위험을 경계하며 어디에서 자신의 욕망을 멈출 수 있는가.

그 판단이 승계 이후의 조직을 결정한다.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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