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2023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30%가 AI로 인해 변화할 것"이라 예측했다. 단순한 전문성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뭐, AI보다 전문성을 갖춘다면야 모르겠지만.. 쉽사리 가능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시대가 달라지면 '어떤 인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 또한 변한다. 난세에는 칼을 잡는 무인과 전략을 구상하는 책사가 각광받았고 치세에는 내정에 능한 관료들이 대접받았다. 한고조 유방에게 육가가 말했던 것처럼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기존의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라는 개념이 정착한 이후 범용성과 전문성에 대해 필요한 업무에 해당 인재를 배치하곤 했다. 이후 1980년대 맥킨지 내부 등에서 ‘T-shaped person’ 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이후 David Guest는 1001년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활용했다. 이후 IDEO의 CEO인 Tim Brown이 이 개념을 자주 언급하며 점차 대중화 되었다. 그후 자연스럽게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 늘어나며 최근 'π형 인재'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넓은 지식과 하나의 전문성으론 부족하니 두 개 이상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而자형 인재'다. 여러 전문성을 단순 병렬이 아니라 흐름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현실의 직무와 사회적 과제로 통합하는 존재다. 동양의 역사는 이러한 인재 유형의 진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보고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북송 문학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그는 평생 2,000여 편의 시와 500여 편의 산문을 남겼으며, 특히 『신오대사』를 통해 역사서술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그의 문체는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사변체를 거부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고문체를 추구했다. 이는 후에 한유(韓愈)의 고문운동을 계승한 것으로, 중국 산문사에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러나 거란족의 요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북송의 정세에 그의 문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또한 그는 중앙에서 관직을 받았지만 좌천과 유배를 거듭하였다. 그의 문장이 외부로 확장되어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는 방증이다.
또 장형(張衡, 78-139)은 한나라의 천문학자로, 세계 최초의 지진계인 '지동의(地動儀)'를 발명했다. 이 장치는 138년 실제 지진을 632km 떨어진 곳에서 감지해내며 그 정확성을 입증했다. 또한 그는 달의 위상변화 원리를 최초로 과학적으로 설명했고, 원주율을 3.1466으로 계산해 당시로서는 매우 정확한 수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재능은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김정호(1804-1866)는 22년간 전국을 답사하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이 지도는 축척 1:216,000으로 제작된 22첩의 목판 인쇄지도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산맥, 하천, 도로는 물론 각 지역의 인구수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근대 지리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역시 실학자로 평가받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있다.
그 외에도 우리가 흔히 아는 관우와 장비처럼 특정 재능에만 돌출된 인재들이 역사 속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전문영역에서는 누구보다 우수하였으나 그 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누구보다 무능력해졌다.
이러한 스페셜리스트의 한계는 현대에도 명확하다. 협업의 어려움과 시야의 제약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스페셜리스트만으로 구성된 팀은 혁신 속도가 복합 전문성을 가진 팀보다 37% 낮았다.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북송의 정치가이자 역사가다. 위에 말한 구양수가 천거한 왕안석의 정적이다. 그는 19년간 편찬한 『자치통감』 294권을 통해 1,362년간의 중국사를 정리했다. 동시에 재상으로서 왕안석의 신법을 폐지하고 구법당을 이끌며 정치적 균형을 추구했다. 문학에서는 시 1,365수와 사 214편을 남겼고, 철학적으로는 『온국문정사마공집』을 통해 성리학적 사유를 전개했다. 그는 문장에도 뛰어났지만 안정적인 정국을 주도하는 뛰어난 정치능력으로 북송을 이끌었다. 심지어 조선시대 정조가 경연에서 그를 언급하자 신하들이 ‘사마광은 거의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가 오래 정치를 했다면 삼대(요순우)의 정치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최충(崔沖, 984-1068)은 고려 전기 '해동공자'로 불렸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 이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교육자로서는 일종의 명문 사립학교인 구재학당을 설립해 200여 명의 인재를 배출했고, 이 중 57명이 과거에 급제했다. 문학가로서는 『보한집』 3권을 저술했으며, 정치가로서는 고려 문치주의의 기반을 닦았다. 정치가로서 그는 여요전쟁이 완전히 종결된 이후에는 조정의 중책을 맡아 공음전시법, 재면법, 담험손실법, 구휼법, 삼원신수법 등 민생을 안정시키는 다양한 내정책을 내놓았다.
주희(朱熹, 1130-1200)는 남송의 성리학자다. 그는 『사서집주』를 통해 사서 해석의 표준을 확립했고, 『성리대전』으로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교육자로서는 백록동서원을 부흥시켜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정치가로서는 남송 효종 때 지방관을 역임하며 민생 안정에 기여했다.
이들은 모두 문신이었지만 위의 스페셜리스트들과는 달리 문장이나 교육에 치중되지 않고 민생과 내정에도 그 영역이 맞닿아있었다. 이른바 영역의 확장이다. 심지어 최충의 경우에는 전쟁에 참가한 참전군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맥킨지 2022년 연구에 따르면, C-레벨의 67%가 2개 이상 부서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이끄는 기업의 수익성이 평균 23% 높았다.
공자(孔子, BC 551-479)는 '인(仁)'이라는 철학적 뿌리를 바탕으로 교육, 정치,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에서 활동했다. 그는 3,000명의 제자를 가르쳤고, 이 중 72명이 뛰어난 인재로 성장했다. 『논어』 20편에는 그의 교육철학과 정치사상이 집약되어 있으며, 2,500년간 동아시아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인간 본연을 탐구하는 유교로 발전하게 되어 이후 동아시아 3천년을 지탱한다.
황희(1363-1452)는 조선 초기 재상으로 36년간 정승을 역임했다. 그는 행정과 사법이라는 두 기둥을 갖춘 인재였다. 행정가로서는 6조 직계제를 완성하고 『경제육전』 편찬을 주도했으며, 사법가로서는 공정한 재판으로 '황희정승'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구양수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랐던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북송의 정치가로서 청묘법, 시역법, 보갑법 등 신법을 통해 국가 전 영역에 대한 뿌리깊은 전면적 개혁을 시도했다. 문학가로서는 『임천집』을 남겼고, 철학자로서는 『주관신의』를 통해 독특한 경학 해석을 제시했다. 비록 그가 제시한 신법 개혁은 실패했지만, T자형 리더십이 시대적 변화를 시도하는 동력이 됨을 보여줬다.
실제 링크드인 2023년 데이터에 따르면, T자형 스킬을 보유한 전문가의 채용률이 일반 스페셜리스트보다 42% 높았다.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다. 그는 경세학과 기술학이라는 두 축을 갖춘 π형 인재였다. 경세학 분야에서는 『경세유표』(48권), 『목민심서』(12권)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제도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기술학 분야에서는 수원 화성 건설 시 거중기를 설계해 공사 효율을 10배 높였고, 『기예도설』을 통해 과학기술 발전방안을 모색했다.
세종대왕(1397-1450)은 성리학적 통치철학을 바탕으로 과학, 기술, 문화, 국방 전반에서 혁신을 이뤘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1443)는 언어학적 깊이와 정치적 통찰의 결합이었다. 과학 분야에서는 측우기(1441), 해시계인 앙부일구(1434) 등을 제작했고, 농업에서는 『농사직설』(1429)을 편찬해 조선 농법의 기초를 마련했다. 세종대왕은 모두가 알듯 성리학적 통치질서 위에 과학, 기술, 문화, 국방이라는 다양한 영역을 한데 엮은 인물이었다.
유기(劉基, 1311-1375)는 원말명초의 정치가이자 군사전략가다. 그는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군사 분야에서는 『백전기략』을 저술했고, 정치사상 분야에서는 『성정대론』을 통해 통치철학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중국판 목민시서라 불리는 『욱리자』를 기술하는 한편 명리학의 3대 고전이라 불리는 『적천수』의 저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다양한 지식들은 원나라의 신하였던 그를 명나라 개국공신으로 만들고 마지막 한족 통일왕조를 세우는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π형 인재는 폭넓은 영역에서 복수의 전문성을 보유한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복수 영역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한데 실제로 보스턴 컨설팅 그룹 2023년 연구에 따르면, π형 리더가 이끄는 기업의 혁신지수가 단일 전문성 리더 기업보다 61% 높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而자형 인재의 전형이다. 그는 병법, 내치, 외교, 기술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했다. 『출사표』에서 보여준 전략적 사고, 목우유마 같은 기술 혁신, 남만 정벌에서의 심리전략, 북벌에서의 군사작전을 모두 '한실 부흥'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연결했다.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2천년간 동아시아에서 천재의 대명사로 남았다. 또한 그의 적이었던 위나라의 창시자 조조(曹操, 155~220) 또한 전형적인 而자형 인재였다. 그는 전략과 전술, 내정, 외교, 권모술수, 시와 그림, 인재 경영 등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그는 결국 일개 교위출신에서 한나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강으로서 그의 모든 능력을 연결하였고 빛을 발하였다. 그는 군략에서 유비를 압도했고 지모로 여포를 제압했으며 인재경영으로 원소를 패망시켰다.
정도전(1342-1398)은 조선의 설계자다. 그는 성리학 이념, 정치제도, 군사조직, 경제정책을 '새로운 나라 만들기'라는 흐름으로 엮어냈다. 『조선경국전』을 통해 정치제도를 설계하고, 『불씨잡변』으로 이념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삼봉집』에서 문화적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개별 전문성이 아니라 이들을 조선 건국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연결한 '통합 능력'이었다. 또한 그는 단순히 자신의 전문 영역을 이어낸 것이 아니라 신진 사대부라는 소프트웨어와 신흥 무장세력이라는 하드웨어를 한데 엮는 접착제에서 나왔다. 결국 그는 막강한 권문세족의 세력을 하나하나 줄여나가며 최종적으로 유교국가인 조선의 건국을 설계한다.
제갈량과 정도전의 예처럼 而자형 인재는 단순한 지식의 합이 아니다. '관계적 지혜(Relational Intelligence)'를 통해 복잡성을 통합한다. 이들은 개별 전문성보다 그것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즉 而자형 인재는 여러 전문성을 단순히 보유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들을 맥락적 흐름 속에서 연결하고 재조율하여 하나의 직무·가치로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다중 전문성 : 두세 개가 아닌, 여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전문성을 지님.
맥락적 연결 : 각 전문성이 분절되지 않고, 상황과 과제에 따라 서로 이어지도록 재배치·조율함.
흐름과 통합 : ‘기술–인문–경영–현장’ 같은 서로 다른 차원의 능력을 흐름처럼 엮어내, 실제 문제 해결로 귀결시킴.
직무화 능력 :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 직무·프로젝트·조직운영의 틀 안에서 새로운 역할로 만들어냄.
딜로이트 2024년 연구에 따르면, AX(AI Transformation) 시대에는 기술-인문학 통합 사고, 데이터-직관 융합 판단, 이론-실무 연결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문성의 확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而자형 사고를 요구한다.
AX시대는 단순한 기술 전환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 이성과 감성, 효율과 가치가 융합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而자형 인재의 '관계적 지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들은 AI가 처리한 데이터를 인간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기술적 가능성을 사회적 의미로 연결하며, 경영적 효율성과 현장의 가치를 조화시킨다.
역사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각 시대마다 필요한 인재상이 있었고, 그 인재들이 시대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스페셜리스트가 깊이를 만들고, 제너럴리스트가 균형을 잡았으며, T자형과 π자형이 융합과 확장을 이뤘다. 而는 단순히 π에서 가지가 더 늘어난 것이 아니다. 而는 말을 잇는 순접이다. 서로 다른 말을 순접하듯 而자형 인재는 서로 다른 업무를 잇고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만든다. 변화와 전환의 시대에는 而자형 인재가 필요하다. 이들은 늘 관련없어보이는 일들을 하나로 엮고 일로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복잡성을 통합하고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는 而자형 인재가 필요하다.
AX시대는 단순한 기술 전환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 이성과 감성, 효율과 가치가 융합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而자형 인재의 '관계적 지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래의 승부는 더 이상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而자형 인재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