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萬史 : 씨족에서 제국으로 ①
logo
Original

人事萬史 : 씨족에서 제국으로 ①

초원의 고아
조직설계리더임원CEO
영준
유영준Aug 30, 2026
1846

아버지가 죽자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아홉 살 무렵의 테무진은 아버지 예수게이의 손을 잡고 옹기라트 부족을 찾아갔다. 예수게이는 그곳에서 데이 세첸의 딸 보르테와 아들의 혼인을 약속하고 테무진을 잠시 남겨둔 채 돌아오는 길에 올랐는데, 도중에 만난 타타르인들에게 독살당했다고 《몽골비사》는 전한다. 가까스로 자기 진영으로 돌아온 예수게이는 사람을 보내 아들을 데려오게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잔인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예수게이가 살아 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어린 테무진과 가족을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부분 더 힘 있는 지도자를 찾아 떠났다. 어머니 호엘룬이 말을 타고 사람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마음까지 떠난 사람들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고, 예수게이의 아들이라는 이름만으로 아버지의 사람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었다.

남겨진 가족의 형편은 빠르게 어려워졌다. 한때 사람과 가축을 거느렸던 집안은 물고기를 잡고 들의 풀뿌리와 열매를 찾아 끼니를 이어가야 했으며 몇 마리 되지 않는 말은 가족의 가장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훗날 유라시아를 뒤흔든 정복자의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초라하지만, 테무진에게 사람과 조직을 가르친 첫 번째 학교는 어쩌면 바로 이 가난과 버려짐이었을지도 모른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이복형 벡테르와 벨구테이가 테무진과 카사르가 어렵게 잡은 물고기와 사냥감을 가져가는 일이 이어졌고, 분노한 두 형제는 결국 활을 들고 벡테르를 찾아가 그를 죽였다. 호엘룬은 힘을 합쳐도 살아남기 어려운 때에 형제를 죽인 두 아들을 매섭게 꾸짖었는데, 《몽골비사》가 전하는 이 사건은 혈연이라고 해서 저절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잔인할 만큼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진 것이 충분할 때에는 사람 사이의 문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하고 나눌 몫이 줄어들면 누가 더 가져갈 것인지, 누가 먼저 먹을 것인지와 같은 문제가 갑자기 관계의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작은 회사에서도 매출이 좋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갈등이 돈이 부족하고 승진할 자리가 줄어드는 순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사람의 관계를 시험하는 것은 때로 성격보다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분배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테무진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수게이의 죽음 이후 등을 돌렸던 타이치우드 세력은 성장하는 테무진을 붙잡았고 그의 목에 무거운 나무칼을 채운 채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감시하게 했다. 정확히 얼마 동안 포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훗날 수많은 장수를 지휘하게 될 사람이 한때는 목에 형틀을 찬 채 남의 손에 맡겨진 포로였다는 사실만은 《몽골비사》의 초기 테무진을 상징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어느 날 연회로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테무진은 도망쳤고 추격자들을 피해 강물 속에 몸을 숨겼다. 얼굴만 물 밖에 내놓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를 타이치우드 사람 소르칸 시라가 발견했는데, 그는 사람들을 불러 포로를 잡는 대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곳을 수색하도록 돌렸다. 이후 테무진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목에 채워진 형틀을 벗기도록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테무진을 붙잡은 것도 타이치우드였지만 그를 살려준 사람 역시 타이치우드 안에 있었으니 같은 부족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과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테무진은 자신과 같은 피를 나눈 사람이 서로 죽이는 모습을 보았고 반대로 아무런 혈연도 없는 적의 무리 안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사람을 출신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 경험한 셈이다.

탈출한 뒤에도 테무진에게 특별히 많은 재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가족이 가진 말들이 도둑맞자 그는 흔적을 따라 혼자 초원을 달렸고 그 과정에서 보오르추라는 젊은이를 만났다고 《몽골비사》는 전한다. 낯선 테무진의 사정을 들은 보오르추는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함께 도둑을 쫓았으며 결국 말을 되찾는 일을 도왔다.

테무진은 고마움의 표시로 되찾은 말 가운데 일부를 주려 했지만 보오르추는 대가를 얻으려고 도운 것이 아니라며 받지 않았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당시의 테무진은 장차 칭기스칸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가난한 젊은이였으니 보오르추가 권력의 미래를 보고 그에게 줄을 섰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번의 도움으로 끝나지 않았고 보오르추는 이후 오랫동안 테무진의 곁을 지키며 몽골제국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 만남은 어린 시절 사람을 모두 잃었던 테무진에게 작은 전환이었을 것이다. 예수게이의 죽음 뒤 떠난 사람들은 아버지와 맺은 관계 때문에 곁에 있었지만 보오르추는 테무진 자신을 보고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관계가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테무진이 직접 만들고 얻은 관계가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테무진은 어린 시절 혼인을 약속했던 보르테를 다시 찾아갔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보르테가 가져온 혼수 가운데는 귀한 흑담비 외투가 있었는데 테무진은 그것을 자신이 입지 않고 케레이트의 강력한 지도자 토그릴에게 가져갔다. 아버지 예수게이와 인연이 있었던 토그릴에게 자신을 아들처럼 여겨달라는 뜻을 전하며 귀한 외투를 바쳤고, 이를 통해 테무진은 강력한 후원자를 확보했다.

아버지의 인연이 있었으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관계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게이가 죽었을 때 그의 사람들이 자동으로 테무진에게 넘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토그릴과의 옛 인연 역시 가만히 기다린다고 아들의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테무진은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귀한 재산을 내놓아 오래된 인연을 다시 연결했고 아버지가 남긴 관계를 자신의 관계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테무진에게 처음부터 거창한 인재경영 철학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는 살아남아야 했고 힘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때로는 자신의 필요 때문에 사람을 찾아갔을 것이니 오늘날의 경영이론을 어린 테무진에게 억지로 씌울 필요는 없다. 다만 그의 초기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훗날 칭기스칸의 사람 쓰는 방식과 묘하게 이어지는 경험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아버지의 사람은 떠났고 형제와는 먹을 것을 놓고 칼을 겨누었다. 자신을 잡은 부족 안에서도 목숨을 살려준 사람이 있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시절에는 보오르추라는 낯선 사람이 아무런 대가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테무진 자신도 과거의 관계가 저절로 이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토그릴을 찾아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작은 조직도 처음에는 대개 그렇게 만들어진다. 제도와 조직도가 먼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표를 믿는 사람 몇 명이 모이고 함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하나씩 만들어진다. 다만 오래 알고 지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라고 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어제까지 아무 관계가 없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오래 함께할 동료가 되기도 한다.

테무진은 아직 칸도 아니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큰 부족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었던 소년에게 이제 몇 사람의 이름이 남기 시작했으며, 그 사람들은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 아니라 테무진이 살아가면서 직접 얻은 사람들이었다.

초원의 고아에게 물려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일찍 알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름과 혈통만으로 곁에 남는 것이 아니며 결국 자신과 함께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댓글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오프피스트 | 대표이사 윤용운
서울특별시 서초구 사임당로8길 13, 4층 402-엘179호(서초동, 제일빌딩)
사업자등록번호: 347-87-03493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25-서울서초-2362호
전화: 02-6339-1015 | 이메일: help@offpiste.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