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R 혹은 조직문화 담당자는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진단을 하고 워크숍도 열고 캠페인도 하고 더 나아가 제도까지 손을 본다.
그런데 왜 여전히 어딘가 모자란 것인가.
왜 HR은 이 질문 앞에서 늘 무력해지는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의 욕망에는 세 개의 층위가 있다고 한다.
욕구와 요구, 욕망.
이 중, 욕구와 요구는 부분적으로 혹은 온전히 채워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욕망은 그렇지 않다.
욕구와 요구가 충족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공백. 구체적으로는 '채워지면 안 되는 것'이다.
욕망은 대상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는 상태 자체를 원한다.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욕망'을 조직으로 가져와 보자.
직원들이 늘 말하는 것들이 있다.
"수평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성과 대비 보상이 너무 적다.”
"피드백이 투명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번 아웃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면 한다."
이것들은 요구다. 말로 표현된 들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
그래서 HR은 움직인다.
조직문화 진단을 돌려서 수십 페이지의 두꺼운 리포트를 만들고
원온원 미팅을 도입하고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고 번 아웃 예방 프로그램을 연다.
그런데 이상하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잠깐 오르다가 또 다른 불만이 올라온다.
"제도는 생겼는데 문화가 안 바뀌었다."
"형식적인 것 같다. 보여주기식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라캉의 언어로 말하자면, 직원들이 말한 것은 요구였고 그 요구 뒤에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욕망이 있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 이 조직이 나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은 어떤 제도나 프로세스로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꿈꾸는 '좋은 조직'의 이미지는 어디서 왔는가.
G사의 OKR, T사의 수평 문화, N사의 자유와 책임.
우리는 이 이미지들을 보며, "저런 조직이 되어야 한다."라고 욕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조직의 욕망이 아니다. 타자의 이미지를 통해 형성된 욕망이다.
그 이미지를 충족해도 또 다른 '더 나은 조직'의 이미지가 등장하고, 우리는 다시 부족함을 느낀다.
완벽한 조직이란 없다. 비극으로 볼 것은 아니다.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본질이 원래 그렇다.
욕망은 채워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존재한다.
첫째, 구성원들의 요구를 해결하는 것을 멈추지 않되, 그것이 문제해결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평적 문화를 만드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다만 그 제도가 직원들의 모든 욕망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는다.
제도는 조건이지, 답이 아니다.
둘째, 말 이면에 있는 것을 듣는다.
직원이 "회의가 너무 많다." 라고 말할 때, 그 요구 뒤에는 "내 시간이 존중 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
"연봉을 올려 달라."는 말 뒤에 "이 조직에서 내 기여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
요구에 반응하되, 욕망을 읽으려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셋째, 허전함을 실패로 읽지 않는다.
아무리 잘 형성한 조직문화도 누군가는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그것은 우리가 못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허전함을 다음 개선의 신호로 읽는 것이지, 자책과 소진의 이유로 읽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조직은 없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욕망이 사라진 조직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HR 혹은 조직문화 담당자의 역할은
구성원들의 결핍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