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萬史 : 장거정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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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장거정의 두 얼굴

황제를 배신한 재상
리더십전체
영준
유영준Jul 7, 2026
52212

1. 어린 천자

1572년, 열 살의 아이가 대명의 용상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주익균. 훗날 만력제로 불릴 사람이다.

황제라는 이름은 컸다. 그러나 그 몸은 아직 작았다.

천하가 그의 이름으로 움직였지만, 그는 천하를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조정의 신료들은 어린 황제 앞에 엎드렸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바라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재상이자 황제의 스승이었던 장거정이었다.

그는 섭정에 가까운 실권자였다. 황제의 앞에 서 있었지만 실제로는 황제의 뒤에 서서 명나라를 움직였다.

2. 개혁가 장거정

그 시대 벌써 개국한 지 이백년이 되어가는 명나라는 오래된 병을 앓고 있었다.

토지는 매마르고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드넓은 지방을 다스리는 관료조직은 느슨했고 군정은 문란해 장부상에는 3백만의 대군이 있었지만 실제 말기의 병력동원은 박박 긁어도 100만이 되지 않았다. 황실과 관료 조직은 오래된 관습에 잠겨 있었다. 태조 주원장이 만든 제도는 남아 있었지만 기강은 닳아 있었다. 국가는 컸으나 속은 비어가고 있었다.

장거정은 그 빈 곳을 보았다.

그는 토지를 다시 조사했다. 숨어 있던 땅을 장부 위로 끌어올렸다. 세제를 정비해 은으로 세금을 거두는 일조편법을 밀어붙였다. 그는 지방관의 실적을 엄하게 따졌다. 관리가 일을 미루면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그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관료들의 보고와 책임의 선을 세웠다. 이를테면 그는 명나라에 '성과관리'를 도입한 사람이었다.

그의 고성법은 관리들이 말로만 충성하고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명령이 내려가면 실행 여부를 확인하고 확인했으면 책임을 물었으며 책임을 물었으면 인사에 반영했다. 방만하고 느슨한 조직에 칼을 댄 것이다.

그 결과 명나라는 잠시 숨을 돌렸다. 재정은 나아졌으며 행정은 단단해졌다. 망해가던 국가는 다시 움직이는 듯했다. 그래서 장거정은 흔히 명나라 최고의 개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고 그가 전권을 잡았던 만력제의 즉위 초는 만력중흥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 평가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가 너무 잘했다는 데 있었다.

3. 천자의 스승

장거정이 살아 있는 동안 국정은 빠르게 움직였다. 황제는 아직 어렸고 장거정은 유능했다. 그러므로 모든 중요한 결정은 자연스럽게 장거정에게 모였다. 사람들은 황제의 뜻을 물었지만 실제로는 장거정의 판단을 기다렸다.

조직은 보통 처음에는 위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는 효율, 마지막에는 습관으로 움직이곤 한다.

황제가 직접 판단하지 않아도 국정은 돌아갔다. 오히려 전임 황제들에 비해 더 잘 돌아갔다. 장거정이 판단하고 신료들이 따르고 황제는 배우면 되었다. 겉으로는 완벽한 보좌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위험한 결핍이 자라고 있었다.

만력제는 황제였지만 황제처럼 훈련받지 못했다. 장거정은 그를 엄격하게 교육했다. 그는 직접 교과서를 만들뿐 아니라 황제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며 분노하기 까지 했다. 심지어 황제의 재물 축재나 시서화 등 예능에 대해서도 극렬하게 반대했고 “나라를 말아먹고 싶냐”는 말까지 서슴치 않을 정도였다.

이에 만력제는 늘 공부했다. 경전을 읽고 예법을 배웠다. 임금이 지녀야 할 도덕과 선비가 지킬 도리를 배웠다. 그러나 리더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판단 경험이다. 실패하더라도 사람을 고르고 반대를 듣고 책임을 지고 실패를 견디는 경험이다.

장거정은 만력제를 교육했지만 만력제에게 권한을 넘겨주지는 않았다. 어린 황제의 공부, 행동, 일상은 엄격히 관리되었다. 어린 황제는 곧 천하 전부였다. 그러나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조정은 그에게 절했지만 그를 움직이는 손은 장거정이었다.

어린 권력자는 처음에는 스승을 존경해 스승이 집을 짓는다고 하자 황제 개인의 돈으로 1천냥을 지원할 정도였다. 황제는 청렴하고 능력있는 장거정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였다.

물론 장거정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 황제를 방치하면 역사속의 이야기처럼 조정 전체가 흔들린다. 황제가 제멋대로 굴면 개혁은 무너진다. 관료들은 저항하고 외척과 환관은 그 틈을 노린다. 그러니 강하게 붙잡아야 했다.

그 판단은 단기적으로 맞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위험했다.

조직에서 리더를 기른다는 것은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가르치고 다음에는 함께 결정하고, 그다음에는 맡겨야 한다. 실수할 공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가 없다. 그러니 리더가 틀린 판단을 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장거정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울타리 속에 자기 혼자만 들어앉았다.

그가 1582년에 죽은 뒤, 장거정의 축재가 드러났다. 엄청난 규모의 축재였고 장거정이 정치를 하며 자신의 일파로 조정을 채웠음이 드러났다. 결국 장거정은 죽은 지 2년이 지난 후 언관을 억제하고 황제의 총명을 막은 죄, 정권을 농단하고 황제의 읂례를 저버려 불충을 도모한 죄로 부관참시당한다.

4.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실패

그는 명나라를 개혁했지만 만력제가 진정한 황제가 되는 과정을 설계하지 못했다. 황제의 자리는 있었으나 황제의 훈련은 없었다. 이를테면 권위는 있었으나 책임의 근육은 자라지 못했다.

현대 인사관리에서는 이를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실패라 부른다. 리더십 파이프라인은 단순한 승진 체계가 아니다. 실무자에서 관리자, 관리자에서 임원, 임원에서 최고경영자로 넘어갈 때 필요한 역할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좋은 실무자가 좋은 팀장이 되지 않는다.(최근 H모 리더가 보여주었다.) 좋은 팀장이 좋은 임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단계마다 버려야 할 습관과 새로 배워야 할 책임이 있다.

만력제에게도 파이프라인이 필요했다.

어린 황제에서 실제 통치자로 넘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장거정은 그 전환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황제의 부족함을 자신과 파벌로 메웠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황제 스스로 극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성과는 높았으나 승계는 비어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 장거정 자신도 모순을 넘어 표리부동한 인물이었다.

그는 검소와 기강을 말했다. 그러나 사후 그의 집안에서 많은 재산이 드러났다. 그는 법과 원칙을 강조했지만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해 측근을 세웠다. 그는 관료의 사사로움을 꾸짖었지만 자신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느슨했다.

그래서 장거정을 단순한 청백리로만 그리면 안 된다. 그는 개혁가였지만 동시에 권력가였다. 나라를 살린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권력에는 관대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엄정한 법을 말했지만 안으로는 권력의 단맛을 알고 축재를 일삼은 부패한 관리였다.

5. 조직 공정성

이 지점에서 조직공정성의 문제가 생긴다. 조직공정성은 구성원이 제도와 보상을 얼마나 공정하다고 느끼는가의 문제다. 그중 절차공정성은 결정 과정이 공정한가를 묻는다. 리더가 만든 규칙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가를 본다. 장거정이 죽자말자 그의 일파들이 만력제의 편을 들며 그를 탄핵한 것을 보며 알 수 있다.

장거정의 개혁은 제도적으로 강했지만 정당성은 취약했다. 규칙을 만든 사람이 예외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규칙이 아니라 사람을 본다. 개혁은 살아 있어도 신뢰는 죽는다. 성과가 있을 때는 모두 침묵한다. 성과가 꺾이거나 권력자가 죽으면 그 침묵은 보복으로 바뀐다.

물론 많은 사람은 만력제를 비난한다.

은혜를 모르는 황제였다고 말하기도 스승을 배신했다고도 말한다.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을 죽은 뒤에도 욕보였다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의 관점에서는 더 차가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만력제는 장거정이 죽은 뒤 장거정 없이 나라를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가.

왜 황제는 스승을 계승하지 않고 부정했는가.

왜 개혁은 사람 하나가 사라지자 정당성을 잃었는가.

장거정은 뛰어난 관리자였다. 그러나 후계자를 만드는 리더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는 국가의 운영 능력을 회복시켰지만, 다음 통치자의 운영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만력제의 이후 행보는 명나라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는 무려 20년 간 조정회의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른바 황제가 파업을 한 것이다. 이는 훗날 명나라 멸망의 서막을 연 시간이었다. 물론 명나라의 멸망을 장거정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폭력이다. 명의 쇠퇴에는 당쟁, 재정 악화, 군사 비용, 여진의 성장, 농민 반란, 기후와 식량 문제까지 겹쳐 있었다.

그러나 만력제가 오랜 기간 국정을 방치한 것은 명나라 쇠퇴를 앞당긴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 통치 태도의 배경에서 장거정과의 관계를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다.

장거정은 황제를 억눌렀고 만력제는 장거정이 사라진 뒤 국가를 밀어냈다.

이것은 개인의 복수이기도 했지만 훈련받지 못한 권력자의 퇴행이기도 했다.

6. 오늘의 만력제와 장거정

오늘의 기업에서도 같은 장면은 반복되곤 한다. 매출을 가장 많이 만드는 영업임원이 있다.

대표보다 고객을 더 많이 알고 있다. 가격 결정도 그가 한다. 핵심 거래처도 당연히 그가 쥐고 있다. 직원들은 그를 따른다. 대표는 그를 신뢰한다. 아니, 의존한다. 대표는 말한다.

"그 사람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

그 말은 칭찬이 아니다.

경고다.

그 임원이 떠나면 고객도 흔들린다. 후임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CRM에는 기록이 없다. 가격 협상 이력도 없다. 고객의 진짜 불만도 없다. 모든 것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었다.

생산본부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공정의 예외 상황을 혼자 안다. 어느 설비가 언제 멈추는지, 어느 작업자가 어떤 실수를 반복하는지, 어느 거래처의 납기가 왜 자주 밀리는지 혼자 기억한다. 보고서는 있다. 그러나 쓸모 있는 지식은 없다. 개발팀장은 어떠한가. 코드의 구조를 혼자 안다. 장애가 나면 그 사람만 부른다. 문서화는 미뤄진다. 후배는 단순 작업만 한다. 팀장은 말한다.

"가르칠 시간이 없습니다."

그 말은 대개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시간이 없다. 그러나 그래서 더 위험하다.

사람을 기르는 일은 여유가 생기면 하는 일이 아니다. 여유가 없을 때부터 설계해야 하는 일이다. 바쁜 조직일수록 후임을 길러야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후임을 만들지 않으면, 조직은 언젠가 더 큰 비용을 치른다.

팀장과 임원의 평가는 성과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1. 그가 얼마를 팔았는가.

  2. 그가 몇 명을 관리했는가.

  3. 그가 얼마나 빨리 문제를 해결했는가.

이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1. 그가 떠난 뒤에도 일이 돌아가는가.

  2. 그의 밑에서 누가 자랐는가.

  3. 그의 권한이 조직의 역량으로 전환되었는가.

  4. 그의 지식이 문서와 시스템과 사람에게 남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그는 뛰어난 개인일 수는 있어도 좋은 리더는 아니다. 리더는 자기 성과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없이도 성과가 날 구조를 남기는 사람이다. 이 점에서 승계계획은 대표만의 일이 아니다. 오너의 아들을 준비시키는 문제만도 아니다. 팀장에게도 승계가 있다. 임원에게도 승계가 있다. 핵심 실무자에게도 승계가 있다.

팀장은 다음 팀장을 만들어야 하고 임원은 자신의 후임을 길러야 한다. 대표도 자신의 빈자리를 견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성장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기대어 커진 것뿐이다.

장거정은 명나라를 살린 개혁가였다.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는 명나라를 망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명나라를 이끌 황제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황제를 가르쳤지만 황제에게 통치의 근육을 길러주지 못했다. 그는 국가를 움직였지만 국가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지 못했다. 그의 개혁은 강했지만 그렇기에 그의 빈자리는 더 컸다.

리더의 마지막 성과는 재임 중의 숫자가 아니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는가.

그 질문 앞에서 장거정의 이름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다.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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