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2년 6월. 교토의 혼노지에서 일본의 전국통일을 목전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다. 그날 그의 적장자 오다 노부타다도 니조에서 목숨을 잃었다.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아케치 미쓰히데였다. 그는 노부나가가 뒤늦게 거둬들여 단바와 긴키의 군사·통치를 맡긴 군단장이었다.

그가 세운 다른 군단장들은 멀리 흩어져 있었다. 시바타 가쓰이에는 호쿠리쿠에서 우에스기와 맞서고 있었다. 하시바 히데요시(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고쿠에서 모리와 싸우고 있었다.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간토에 나가 있었으며 니와 나가히데는 시코쿠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대에 ‘방면군’이라 불린 오다의 군단들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아케치 미쓰히데는 주고쿠의 히데요시를 지원할 군대였는데 그가 말머리를 돌려 혼노지에 머물던 오다 노부나가를 급습한 것이다.
노부나가가 만든 조직은 같은 시간에 여러 전선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노부나가가 사라진 순간에는 누구도 전체 가문을 지휘하지 못했다.
가장 강했던 조직이 가장 짧은 질문 앞에서 멈췄다.
이제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노부나가를 능력주의 인사의 상징으로만 기억하면 이 장면을 놓치게 된다.
그는 분명 출신보다 성과를 중시했다. 오래된 가신인 시바타 가쓰이에를 중용하면서도 아케치 미쓰히데와 하시바 히데요시처럼 기존 오다 가문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인물까지 빠르게 끌어올렸다. 물론 그가 특별히 선구안을 지녔다거나 그의 인사가 오늘날의 공개채용이나 공정한 경쟁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친족과 세습 가신도 여전히 중요했다. 가문과 혈통은 전국시대의 조직을 움직이는 기본 질서였고 일종의 헤게모니였다. 다만 노부나가는 그 질서 안에서도 성과를 낸 사람에게 더 큰 전장과 더 넓은 권한을 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다의 세력이 오와리와 미노를 넘어 긴키와 호쿠리쿠, 주고쿠와 간토로 뻗어가자 노부나가가 모든 전쟁을 직접 지휘하는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그는 자신이 믿을만한 주요 가신들에게 지역과 목표를 맡겼다. 후대에 흔히 ‘방면군’ 또는 ‘군단제’라고 부르는 운영이다.
시바타 가쓰이에는 호쿠리쿠를 맡았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모리를 상대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중앙이라 할 수 있는 단바와 긴키에서 군사와 정무를 담당했다.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동쪽으로 나아갔다. 각 군단장은 병력만 지휘한 것이 아니었다. 휘하의 영주들을 통솔하고 점령지를 다스리며 병력과 식량을 마련하고 지역세력을 회유했다. 다음 전쟁에 필요한 자원까지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오늘의 기업으로 바꾸면 지사장, 지역본부장이나 사업부장에 가깝다.
이들은 매출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예산과 운영을 함께 맡는다. 본사는 이들에게 목표를 정해주고 사업부장은 현장에서 판단한다.
이 방식은 생각보다 강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현장에 있다. 적의 움직임과 지형과 병력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현장 지휘관이다. 모든 판단을 아즈치의 본영에 있던 노부나가에게 올리고 명령을 기다렸다면 오다의 팽창 속도는 늦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수양제는 고구려 침공시 이 원칙을 고수하다 요동성조차 함락시키지 못한다.)

이들 군단장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였다. 노부나가는 한 전선의 지휘관이 아니라 여러 전선을 배치하고 조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현대 조직이론에서는 이를 ‘분권화’와 ‘사업부제’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조직이 작을 때는 대표가 영업과 생산과 자금을 직접 통제해도 된다. 사업과 지역이 늘어나면 중앙의 판단 능력이 병목이 된다. 이때 권한을 하부로 넘기고 각 사업단위가 자신의 성과를 책임지게 한다.
분권은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인다. 현장 정보를 더 잘 활용하게 한다. 다음 세대의 경영자를 키우는 훈련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앙의 통제가 약해지고 각 사업단위가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비용도 따른다.
노부나가의 군단장들은 실제로 그런 경영자였다.

히데요시는 주고쿠 전선을 운영하며 자기 휘하의 가신과 병참과 협상 역량을 키웠으며 가쓰이에는 호쿠리쿠에서 독자적인 통치 기반을 다졌다. 미쓰히데도 단바를 장악하며 자신만의 군단을 만들었다.
노부나가는 뛰어난 부하에게 일을 맡긴 수준을 넘어 그들이 큰 조직을 이끄는 법을 익히게 했다. 물론 그 성공 속에 실패의 조건도 함께 자랐다.
군단의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바로 ‘독립된 권한’이다. 이 권한은 오다 가문의 직책에만 축적되지 않고 군단장 개인에게 쌓였다. 병사들은 추상적인 오다 정권보다 눈앞에서 영지를 나누고 공을 평가하는 자신의 직속상관, 즉 군단장을 따랐다. 지역의 영주와 실무자도 중앙보다 군단장과 더 자주 관계를 맺었다. 전쟁에서 얻은 경험과 정보와 인맥도 각 군단 안에 개별적으로 쌓였다. 회사의 이름으로 사업을 맡겼지만 고객과 직원과 노하우는 사업부장의 것이 되는 구조였다.
이 문제를 ‘조직동일시’로 볼 수 있다. 조직동일시는 구성원이 자신을 조직의 일부로 인식하는 정도를 말한다. 조직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할 때 조직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상태다.
오다의 군단장들은 노부나가 개인에게 충성했고 그의 명령 아래 움직였지만 그 충성이 노부나가가 없는 오다 가문과 제도에까지 이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세로의 관계는 강했다. 노부나가와 군단장 사이는 강했다. 군단장과 자기 휘하의 가신 사이도 강했다.
반면 가로의 관계는 약했다. 가쓰이에와 히데요시가 서로를 같은 조직의 동료로 받아들이고 공동의 질서를 지켜야 할 이유는 충분히 제도화되지 않았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오다 가문의 규정이나 합의된 통치원칙보다 노부나가의 권위였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노부나가가 자신의 권위를 과신했던 모양인지 이런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군단장들에게조차 막 대했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그들을 총애했으나 히데요시를 원숭이라 부르는 가 하면 미쓰히데에게는 머리가 금귤(그 낑깡이다)이라며 놀리는가 하면 남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걷어 찼다고도 전한다. 미쓰히데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그러한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혼노지의 변은 이 구조의 약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미쓰히데는 자신에게 맡겨진 군단을 돌려 주군을 공격했다. 나머지 군단장들은 각자의 전선에 묶여 있었다. 히데요시는 모리와 급히 강화를 맺고 돌아와 야마자키에서 미쓰히데를 격파했다.
이것은 오다 가문의 비상대응 체계가 작동한 결과라기보다 히데요시가 가장 빨리 움직여 주도권을 잡은 결과에 가까웠다.
노부나가에게 승계계획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생전에 적장자 노부타다에게 오다 가문의 가독과 영지를 넘기고 전쟁 경험을 쌓게 했다. 노부타다는 이름만 올려놓은 후계자가 아니었다. 직접 군을 이끌었고 다케다 정벌을 비롯한 주요 전쟁에 참여했다. 문제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데 있지 않았다.

후계자 한 사람을 정한 것과 승계가 작동하는 조직을 만든 것은 달랐다.
노부나가와 노부타다가 같은 날 죽자 다음 순위와 비상 통치체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노부타다의 어린 아들 산보시가 있었다. 성년인 노부나가의 아들인 노부카쓰와 노부타카도 있었다. 그 위에 이미 자기 군대와 영지를 가진 군단장들이 있었다.
누가 후계자를 정할 것이며 누가 그 결정을 집행할 것인가. 군단장들은 어떤 권한으로 어린 주인을 보좌할 것인가. 그들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누가 최종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질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곧이어 기요스에서 열린 후계자 회의에서 시바타 가쓰이에, 하시바 히데요시, 니와 나가히데, 이케다 쓰네오키는 오다 가문의 후계와 영지 배분을 논의했다. 회의 결과 히데요시가 주장한 것처럼 장남 노부타다의 어린 아들 산보시가 후계자로 세워졌다.
그러나 회의는 오다 가문의 질서를 회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누가 어린 후계자를 장악하고 오다의 영지와 권위를 나눠 가질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듬해 시즈가타케에서 시바타와 히데요시가 맞섰다. 시바타는 노부나가의 삼남인 노부타카를 옹립하려 하였고 히데요시는 장남 노부타다의 아들 산보시와 그의 후견인인 차남 노부카쓰를 내세웠다. 양쪽 모두 오다 가문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름을 자신의 정당성을 세우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시즈가타케에서 시바타가 패하면서 오다 가신단의 주도권, 나아가 일본 전국의 주도권은 사실상 히데요시에게 넘어갔다.
이것을 단순히 히데요시의 배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당시의 가신과 영주는 자신의 가문과 영지를 보존해야 했다. 노부나가 사후에 누구를 따를 것인지는 생존의 문제였다. 시바타는 충신이었고 히데요시는 야심가였다는 식으로 선악을 나누기도 어렵다.
그러나 조직의 관점에서는 결과가 분명하다. 오다의 군단장들은 오다 가문을 위해 자신들의 이해를 접지 않았다. 각자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오다의 후계와 명분을 선택했다.
노부나가는 강한 리더를 키웠다.
그 리더들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지켜야 할 공동의 조직은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작은 회사가 곧바로 오다의 군단제를 흉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일할 사람도 충분히 모이지 않았고 공통의 고객정보와 업무기준도 없는 조직에서 사업부부터 나누면 분권이 아니라 분열이 된다.
각 책임자는 자기 방식으로 견적을 낸다.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 고객정보도 따로 관리한다. 회사는 하나인데 운영방식은 여러 개가 된다.
관계와 신뢰를 통해 창업조직을 묶는 단계가 먼저 필요하다. 이것은 뒤에서 살필 히데요시의 문제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고 사업이 늘어난 뒤에도 대표가 모든 판단을 독점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 그때는 노부나가처럼 전장을 맡겨야 한다.
다만 노부나가가 하지 못한 일까지 해야 한다.
군단장에게 권한을 주면서도 공통의 정보와 기준과 승계질서를 함께 세워야 한다.
노부나가의 인사는 정답이 아니라 성장기의 과제다.
권한을 나누지 않으면 조직이 멈춘다.
권한만 나누면 조직이 갈라진다.
오늘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도 오다의 군단은 존재한다. 대표가 모든 일을 처리하던 시기를 지나면 몇 명의 핵심임원에게 사업을 맡겨야 한다. 한 사람은 영업을 맡고 한 사람은 생산을 맡는다. 다른 사람은 신규사업이나 지역본부를 이끈다.

대표는 그들에게 목표와 예산과 사람을 준다. 권한을 주지 않으면 회사는 더 커지지 못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영업임원의 고객정보가 회사의 CRM이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에만 남아 있다. 생산책임자만 공정의 문제와 작업자의 역량을 안다. 개발책임자가 떠나면 누구도 코드를 수정하지 못한다. 지역본부 직원들은 본사보다 본부장의 지시를 먼저 따른다.
임원의 성과는 언뜻 회사에 쌓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 자산은 그 사람에게 축적된다. 대표는 이를 충성의 문제로 해석하기 쉽다.
“저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노부나가도 무능한 사람에게 군단을 맡긴 것이 아니다. 유능했고 성과를 냈으며 신뢰할 만했기에 큰 권한을 줬다.

그러나 사람을 믿는 것과 권한이 조직에 남도록 설계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업부장에게 손익 책임을 주되 고객 데이터는 회사가 관리해야 한다. 인사권을 주되 채용과 평가의 기준은 공통으로 남겨야 한다. 자율적으로 의사결정하게 하되 중요한 계약과 자금과 기술은 다른 사람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한 명 정하는 데서 멈춰서도 안 된다. 대표와 후계자가 동시에 자리를 비웠을 때 누가 어떤 범위에서 판단할 것인지까지 정해야 한다. 중소기업 대표와 전무가 같은 메뉴를 점심에 먹지 않고 다른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미국 대통령을 따라한다고 욕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플랜 B, 플랜 C까지 세우며 혹시 모를 일을 준비하는 현명함을 보이는 중이다. 물론 권한을 회수하라는 뜻이 아니다. 권한의 원천과 성과의 귀속을 분명하게 하라는 뜻이다.
성장하는 조직에는 분명 노부나가의 방식이 필요하다. 대표가 모든 결정을 붙들고 있는 회사는 한 사람의 역량 이상으로 커지지 못한다. 사업을 맡길 사람을 고르고 그들에게는 책임에 걸맞는 권한, 즉 충분한 자율성을 줘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 판단으로 싸우고 실패하고 다시 움직이게 해야 한다.
다만 군단을 만들 때 함께 물어야 한다.
그 군단은 누구의 것인가.

대표의 사람인가. 군단장의 사람인가. 아니면 회사의 사람인가.
노부나가는 여러 전선을 이길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군단장들의 경쟁은 오다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그가 사라지자 같은 경쟁은 순식간에 오다 가문의 해체로 이어졌다.
분권이 조직을 키웠지만 분권을 묶을 질서의 부재가 조직을 갈라놓았다.
어쩌면 사람에게 전장을 맡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 사람이 얻은 승리가 끝내 누구의 역사로 남는지까지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