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萬史 : 전국영걸전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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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전국영걸전 ③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내와 질서로 바로선 조직
인사기획리더십리더임원CEO
영준
유영준Jul 16, 2026
2428

1. 반란과 선택

1563년 미카와가 갈라졌다.

미카와의 영주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직 도쿠가와라는 성을 쓰기 전이었다. 스물한 살의 마쓰다이라 이에야스는 미카와의 영주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때 정토진종 계열 사찰과 문도들이 봉기했다. 이른바 미카와 잇코잇키였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적은 영지 밖에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야스의 가신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봉기세력에 가담했다. 어떤 이는 주군보다 신앙을 택했고 어떤 이는 사찰과 지역 공동체의 관계를 저버리지 못했다. 마쓰다이라 가문을 오랫동안 섬긴 집안도 둘로 갈렸다. 후대의 미카와 가신단은 절대적인 충성의 상징처럼 기억되지만 출발부터 하나였던 조직은 아니었다. 현대 연구에서도 당시 가신단의 상당수가 이에야스의 반대편에 섰던 것으로 본다.

이에야스는 결국 자신의 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다행히 봉기는 진압되었고 사람들은 이에야스가 자신의 가신단들을 처벌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반기를 든 가신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거나 도망쳐버린 사람들을 제외하고 가신단을 다시 받아들였다. 용서받은 사람들은 다시 마쓰다이라의 깃발 아래 섰다. 약소세력이었던 이에야스였기에 그 뒤에도 배신은 있었다. 특히 오랫동안 가로로 일한 이시카와 가즈마사는 훗날 히데요시에게 이적하기도 했다.

훗날 충성의 대명사로 불리던 미카와 가신단의 충성은 처음부터 완성된 성품이 아니었다.

배반이 있었고 처벌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덮는 용서가 있었기에 다시 함께 싸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에야스의 인사에서 보아야 할 것은 충신들의 미담이 아니다.

한 번 갈라졌던 사람들을 다시 묶고 그 관계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질서로 만든 과정이다.

2. 사람을 따르는 것과 가문을 섬기는 것

오다 노부나가의 군단장들은 강했다.

시바타 가쓰이에와 아케치 미쓰히데, 하시바 히데요시는 각자의 병력과 영지와 부하를 거느렸다. 노부나가가 살아 있을 때 그 힘은 오다의 팽창을 위해 쓰였다. 노부나가가 사라지자 군단장들의 권력은 각자의 것이 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가신단이 약했다.

그래서 친족과 양자, 혼인과 성씨 수여를 통해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 가족은 히데요시의 총애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후계 약속을 뒤집고 히데쓰구를 제거하자 가족의 기준도 함께 무너졌다.

이에야스도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와 같이 측근과 친족을 썼다. 다만 그들을 묶는 방식이 달랐다.

그의 핵심 가신은 단순히 이에야스 개인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카이와 혼다, 오쿠보와 사카키바라 같은 집안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마쓰다이라 가문을 섬겼다. 이들에게 복무의 단위는 개인만이 아니었다. 주군의 집안과 가신의 집안이 세대를 넘어 관계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마쓰다이라를 섬겼으니 아들도 같은 가문을 섬겼다.

주군이 죽으면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 당주와 다음 가신이 그 관계를 이어받았다. 공을 세우면 개인만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지위가 올라갔다. 잘못을 저지르면 집안 전체의 미래가 흔들렸다.

충성은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가문의 이해관계로 이어졌다. 도쿠가와의 질서는 이 관계 위에 세워졌다.

후다이라는 말은 본래 오래된 계보와 세습적 복무관계를 뜻했다. 마쓰다이라 가문을 오래 섬긴 집안들은 안조 후다이와 오카자키 후다이 등으로 구분됐으며 사카이·오쿠보·혼다·이시카와 같은 여러 집안이 그 안에 포함됐다. 이 오래된 관계는 훗날 후다이 다이묘와 막부 직속 가신의 인적 기반이 됐다.

그렇다고 모든 후다이(고참)가 무조건 유능했고 모든 도자마(신참)가 위험했던 것은 아니다. 이에야스가 만든 질서는 능력의 순위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에게 어떤 권한까지 맡길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신뢰의 등급표에 가까웠다.

3. 패배와 가난을 함께 견딘 사람들

미카와의 가신들은 화려한 승리만 함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을 이마가와 가문에서 인질로 보냈다. 독립한 뒤에도 강한 이마가와와 오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다케다 신겐과 맞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참패했다. 히데요시에게 굴복한 뒤에는 오랫동안 다스리던 미카와와 도토미를 떠나 간토로 옮겨야 했다.

가신들도 그 이동을 함께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영지가 언제나 넓어진 것은 아니다. 낯선 지역으로 옮겨가는가하면 어제까지 적이 지배하던 땅을 다스려야 했다. 심지어 그들이 힘껏 싸워 전투에서 이기고도 이에야스는 대세에 굴복하기도 했다. 주군의 선택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도 가신들은 가족과 부하를 데리고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미카와 가신단은 단순히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의 집합’에서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했다. 조직이론에서는 이를 ‘사회적 자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조직 안에 축적된 신뢰와 규범, 관계망을 뜻한다. 계약서에 모든 상황을 적어놓지 않아도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안다.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선이 공유된다. 미카와 가신단의 힘은 모두가 착하고 충성스러웠다는 데 있지 않았다. 서로가


영준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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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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