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동아시아의 가장 강력했던 국가이자 중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국가, 당나라.
당나라의 전성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명군이었던 현종이 양귀비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변방에서는 다음 천하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을 넘어 천년넘게 회자될 충신 또한 그 이름을 떨칠 준비를 마쳤다.

755년 11월, 안록산이 지금의 베이징인 범양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간단했다. 황제의 명을 받들어 간신 양국충을 토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양국충은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던 양귀비의 육촌이었다.

안록산은 밤중에 군사를 움직였다. 『구당서』는 그 병력을 보병과 기병을 합쳐 15만이라 기록한다. 수십년 간 큰 전쟁을 겪지 않은 당 조정은 무너질 듯 흔들렸다. 수도를 지켜야 할 금군에는 시장의 상인과 잡역부까지 섞여 있었다. 국경을 지키라고 맡긴 군대가 제국의 중심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조정은 급히 변방에 있던 다른 장수를 불렀다.
곽자의였다.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나자 곽자의는 삭방절도사에 임명되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갔다. 한 사람은 당이 맡긴 군대로 당을 공격했다. 다른 한 사람은 당이 맡긴 군대로 그 공격을 막았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의 장수였지만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 사람은 아니었다.
안록산은 반란 전에 이미 평로와 범양에 이어 하동의 절도사까지 겸했다. 세 개 군진의 병력과 행정권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그에 반해 곽자의는 안록산이 무너뜨린 제국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거대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한 사람은 평시의 인사 실패가 길러낸 장수였다. 그에 반해 다른 한 사람은 그 실패를 수습하기 위해 위기 속에서 선택된 장수였다.
안록산의 출세는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모어인 소그드어를 비롯해 6개 언어를 구사했고 변경 사정에 밝았다. 소그드인과 돌궐인의 혼혈 답게 전투 능력도 있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칭찬해 줄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조정의 관리들은 그가 공정하고 충성스럽다고 보고했다. 황제였던 현종은 그런 보고를 믿었다. 안록산은 황제의 신뢰를 얻었다.

이어 범양과 평로를 장악했고 하동절도사 자리까지 요구해 얻어냈다. 『구당서』는 그가 세 군진을 겸한 뒤 올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적었다. 그는 범양 북쪽에 성을 쌓고 무기와 곡식을 저장했다. 전마 1만5천 필도 마련했다. 겉으로는 외적을 막기 위한 준비였다. 안에서는 별도의 군사조직이 자라고 있었다.
경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양귀비의 육촌이었던 양국충은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현종은 환관을 보내 안록산을 살피게 했다. 그러나 파견된 자는 뇌물을 받고 돌아와 그의 충성을 칭찬했다. 오히려 반란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은 의심받았고 안록산을 두둔하는 사람은 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물론 현종은 안록산을 믿은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안록산을 제대로 보고 있고 아직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차이는 크다.

안록산의 문제는 충성심이 부족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충성심을 검증하는 통로가 이미 망가져 있었다는 데 있다. 황제의 총애가 평가를 대신하고 성과가 감시를 무력화했다. 안록산과 가까운 사람들이 다시 안록산을 평가했다. 물론 이 뒤에는 자신보다 16살이나 어린 양귀비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숨겼던 안록산의 처세가 뒷받침했다.
평가자가 피평가자의 사람이 되면 평가는 끝난다. 현대 인사관리의 언어로 보면 이는 ‘대리인 문제’다.
대리인 이론은 권한을 맡긴 사람과 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의 이해가 언제나 같지는 않다고 본다. 주인은 대리인의 행동을 모두 알 수 없다. 대리인은 주인보다 현장의 정보를 더 많이 가진다. 정보의 차이가 커지고 감시가 약해지면 대리인은 조직의 자원을 자신의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감시, 보상, 정보공개와 권한 통제가 필요해진다.

안록산은 대리인 문제의 극단이었다.
조정은 그에게 병력과 인사권을 주었으며 군수물자와 말을 관리하게 했다. 변경의 정보도 그를 통해 받았다. 그가 올린 사람들은 그의 부하가 되었고 그가 보낸 사람은 수도에서 조정의 동향을 살폈다.
당은 안록산에게 일을 맡긴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하나의 조직을 통째로 맡겼다. 그 조직의 병사들은 장안의 황제보다 눈앞에서 자신을 지휘하고 보상하는 안록산을 더 가까이 보았다. 안록산이 반란을 선포하자 그들이 움직인 이유를 개인의 충성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곽자의도 강한 군사적 기반을 가진 장수였다. 물론 안록산의 난 이전까지 그는 비교적 주목받지 않았다. 그러나 안록산과 뒤이은 사사명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장수가 그의 지휘 아래 있었고 이후에도 왕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조정은 그를 불렀다. 그의 영향력은 군영 밖까지 미쳤다. 『구당서』는 거의 20년 동안 천하의 안위가 곽자의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에게도 반란의 조건은 있었다.

그는 공이 너무 컸고 부하들의 신망마저 두터웠다. 조정은 그를 필요로 했지만 두려워했다.
사사명의 난 당시 업성 전투 뒤 환관 어조은은 패전을 빌미로 곽자의를 모함했다. 곽자의는 병권을 잃고 수도로 돌아왔다. 훗날인 대종 때에는 정원진이 그의 공이 너무 커 통제하기 어렵다며 다시 지휘권을 빼앗았다.
여기서 안록산과 곽자의가 갈라진다.

안록산은 자신의 권력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황제의 소환을 거부했고 자신의 군대를 움직였다.
그러나 곽자의는 달랐다. 그는 강한 병력을 쥐고 있을 때도 소환 명령이 오면 곧바로 돌아왔다. 『구당서』의 사관은 정원진과 어조은이 수없이 그를 모함했지만, 황제가 부를 때마다 당일에 응했으므로 참소가 힘을 얻지 못했다고 적었다.
곽자의가 억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였으며 그가 조정의 인사를 모두 신뢰한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병권의 최종 소유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선을 넘지 않았고 권한을 잃었다는 이유로 조직을 적으로 돌리지 않았다. 특히 조정의 수많은 고위장수들과 자신의 부하를 사병으로 바꾸지 않았다.
이것을 단지 곽자의의 충성심이라고만 부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이 군주에게 어떤 두려움을 주는지 알았다. 그래서 힘을 더 크게 보이는 대신 그 힘을 사적으로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만 쓸 것이라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는 아름다운 말로 충성을 주장하기보다 불합리한 소환에 응하는 것으로 증명했다. 마치 제갈량이 이엄의 거짓보고에 말머리를 돌린 것이나 이순신이 순순히 조정의 소환 요구에 응했을 때와 같다.
그래서였을까, 충무공 이순신은 자신의 시에서 제갈량과 곽자의를 말하며 자신을 그들에게 대입시키기도 하였다.
다시 돌아와 그렇다고 당나라의 인사가 곽자의를 통해 성공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곽자의가 병권을 잃은 뒤에도 조정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다시 그를 불러야 했다. 후배 장수들은 내부의 반란은 물론 토번의 외세를 진압하지 못했다. 여러 절도사가 함께 출정한 업성 전투에서는 곽자의와 이광필의 서열을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총사령관을 세우지 않았다. 군대는 많았으나 전체를 통솔할 사람이 없었다.
조정은 끊임없이 곽자의를 의심했지만 그러면서도 곽자의를 대신할 체계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당나라 조정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할 수 없었다. 그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였기에 곽자의는 덕종 즉위 시점에는 ‘사도·중서령·영하중윤·영주대도독·선우·진북대도호·관내·하동부원수·삭방절도·관내지탁·염지·육성수운대사·압변부병영전급하양도관찰등사’라는 엄청난 관직을 역임한다. 관직들을 따져보면 서북의 모든 군권과 대운하, 소금전매권, 행정권, 조정의 중심까지도 포함하는 관직이다. .
위협을 느낀 덕종은 당시 80이었던 곽자의를 은퇴시킨다. 은퇴시키며 덕종은 곽자의에게 ‘상보(아버지)’라 칭하고 식읍을 2천호까지 늘려주는 한편 매월 1천5백명이 먹을 양식과 말의 식량까지 지원한다. 이에 곽자의는 두말없이 모든 실권을 내려놓고 은퇴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일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승계와 권한 설계의 실패기 때문이다. 만약 곽자의가 충심대신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당은 백년 먼저 멸망했을 것이다.
오늘의 기업에도 안록산형 임원은 있다. 그들은 대표보다 고객을 더 많이 알고 핵심직원들까지 그 사람을 따른다. 가격과 원가, 거래처와 기술정보가 한 사람에게 모여 있다. 대표는 그 임원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더 많은 권한을 준다.
그 임원을 평가하는 사람도 그의 부하다. 그들은 그가 제출한 자료로만 실적을 확인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은 협업을 방해하는 사람, 파벌을 만드려고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대표는 언제나 말한다.
“그 사람은 내가 아주 잘알아, 그 친구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아.”
그 말은 인사 판단이 아니라 소망이다. 반대로 곽자의와 같은 임원이 있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사람의 절제와 품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조직의 핵심 정보와 고객과 인력이 한 사람의 인품에 기대어 유지된다면 그것은 제도가 아니다.
그저 얻어걸린 행운이다.
대표가 물어야 할 것은 ‘저 임원이 충성스러운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 임원이 떠나더라도 고객관계가 남는가. 핵심인재가 특정 임원 개인이 아니라 회사와 계약되어 있는가. 정보가 조직 안에 축적되는가. 권한을 회수할 때 사업 전체가 멈추지 않는가.

충성은 검증해야 하지만 권한은 분산해야 한다.
핵심인재는 중요하지만 대체자 또한 미리 길러야 한다.
안록산의 반란은 다만 한 사람의 배신이었으며 곽자의의 충성은 다만 한 사람의 절제였다.
문제는 두 결과가 모두 제도보다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는 데 있다.
사람에 의한 인사가 아니라 제도에 대한 인사가 더욱 중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