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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萬史 : 천하무쌍을 무너뜨린 HR

人事萬史 : 천하무쌍을 무너뜨린 HR

고순과 진궁, 그리고 여포
리더십임원CEO
영준
유영준Jan 18, 2026
7465

1. 199년 2월, 하비성 — 무너진 것은 성벽이 아니었다

199년 2월, 삼국지의 가장 화려한 무장이 역사에서 퇴장한다.

천하무쌍 여포.

그가 마지막으로 지키던 하비성은 견고했다. 식량도 있었고, 병사도 있었고, 무엇보다 여포라는 최강의 무기가 있었다. 그런데 성은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성문을 연 것은 여포의 측근들이었고 항복을 결정한 것은 패배가 아니라 신뢰의 붕괴였다.

여포의 창끝은 여전히 번쩍였지만 그가 세운 조직은 이미 죽어 있었다.

2. 진궁과 고순 — 머리와 근육, 그러나 몸통은 없었다

여포 밑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먼저 진궁.


연주의 호족들을 말로 설득해 조조의 세력을 굳혔던 책사. 칼이 아니라 언어로 영토를 움직인 사람이다.

그는 원래 모시던 조조를 떠나 떠돌이 여포에게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러 떠난 틈을 타 진궁은 연주 호족들을 규합하고 조조의 친구인 장막과 함께 여포를 받아들여 이후 벌어질 여포와 조조의 전쟁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냉혹한 조조가 아닌 자신이 꿈꾸는 전략이 현실이 되는 조직을 꿈꾸며 여포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고순.


언제부터 여포를 따랐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여러 추측은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강직한 인물이었다. 술도 뇌물도 거부하고 불과 700명의 병력으로 어디든 함락시키는 정예부대 '함진영'을 만든 장수. 규율과 훈련으로 전장의 기적을 현실로 바꾼 사람이 그 였다.

여포 진영엔 이렇듯 머리와 근육은 있었다. 문제는 몸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진궁이 전략을 내놓으면 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 했다.
고순이 공을 세우면 여포는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병권을 빼앗아 친척인 위속에게 주었다.

그러면서도 위기가 오면 두 사람을 불러 물었다.
"왜 방법이 없느냐?"

이건 단순히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다.
HR의 문제다.

3. 진궁: "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조직"

진궁 같은 인재는 한 가지를 요구한다.

"내가 생각한 것을 결정으로 바꿔라."

조언만 듣는 조직에는 오래 못 견딘다. 전략형 인재는 말이 안 먹히는 순간부터 조직을 신뢰하지 않는다.

여포는 진궁을 책사로 뒀지만(물론 주종관계라기보다는 동업에 가까웠다.) 결정권의 문턱에만 세워두고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진궁은 책사가 아니라 '불만이 있는 사람'이 됐다.

거기에 이미 조조를 배신했다는 편리한 낙인까지 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구조다.

전략가가 결정 구조에 못 들어가면 그는 결국 조직 밖의 판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여포군이라는 조직은 그 불만을 성격 탓으로 돌렸다.

결국 진궁은 원술과 공모, 학맹을 사주해 여포군 내에서의 반란을 일으킨다.


4. 고순: "충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쓰이지 못해서 망한다"

고순은 운영형 핵심이다. 술도 안 마시고 뇌물도 안 받을 뿐더러 심심할 땐 군기를 세우고 장비를 정련한다.
이런 사람은 조직을 살려 놓는다. 전쟁에서는 준비된 정예가 전부다. 이러한 훈련은 숫자가 아니라 운영으로 만든다.

그런데 여포는 고순의 병권을 빼앗아 친척 위속에게 줬다. 그러면서도 전투가 있으면 고순에게 다시 함진영의 병권을 맡겨 돌격을 명한다., 평소에는 권한이 없고 전투 때만 돌려받는 구조.

이건 현대 조직으로 정확히 이렇게 번역된다. 평소엔 권한 없으나 성과 책임만 지는 사람. 필요할 때만 호출하지만 보상과 존중은 나중인 사람

이 방식은 사람 하나를 망치는 게 아니라 조직의 근육을 말린다.

고순이 원망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미담이 아니다. 참담한 비극이다.

원망이 없는 충신은 마치 리더가 잘못한 게 없어보이게 하기에 리더의 무능을 더 오래 숨겨준다.
그리고 붕괴는 더 크게 온다.

진궁이 사주한 학맹의 반란. 여포는 위급한 순간에 고순의 군영으로 도망쳤고 고순은 반란군의 사투리를 듣자마자 학맹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알아채고 반란을 진압한다. 여포는 그를 홀대했지만 그는 항상 여포를 지키고 있었다.

5. 전략과 운영이 갈라지는 순간

하비에서 여포가 마지막으로 고민한 계책이 있다.

진궁이 성을 지키고 여포가 밖으로 나가 적을 협공하는 기각지세.
전략적으로는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여포의 아내 엄씨가 말했다.

"진궁은 의리가 없고 성을 지킬 고순과 불화하니 성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니다. 이미 진궁은 여포를 쳐낼 반란에 공모했고 여포도 그 사실을 불문에 붙였지만 이미 안팎의 신뢰는 다 한 상태였다. 거기에 진궁은 고순과 불화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염려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이 중요한 건 전략형 인재인 진궁과 운영형 인재인 고순이 이미 정렬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조직에서 전략과 운영이 갈라지면 남는 건 두 가지뿐이다.

정치질과 우왕좌왕.

여포는 둘을 조정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고 할 능력도 없었다.

그 결과 기각지세는 접히고 마지막 기회를 잃은 채 조직은 성 안에 갇혀 썩기 시작했다.

6. 성문을 연 건 핵심이 아니라 중간층이었다

성을 포위하던 조조는 성을 공략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하비성 옆을 흐르던 기수와 사수의 물을 끌어다 하비성을 물에 잠기게 만들었다. 여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시간만 썩힐 뿐이었다.

결국 후성, 위속, 송헌같은 여포의 측근들은 진궁을 포박하는 한편 군사를 이끌고 투항하며 성문을 안에서부터 열었다.

결국 기준도 없고 권한도 없는 조직에서

전략이 무력해지고 운영이 소진되며 중간에 있던 실무진이 계산하고 움직였다.

7. 인재를 모으는 능력 vs 살리는 능력

여포는 나름대로 인재를 모았다. 하지만 인재를 살리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합류한 진규와 진등 등 서주명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했고 협력관계였던 장패를 공격하려고까지 했다.(물론 고순이 만류한다.) 병주 시절부터 함께 했을 장료에 대해서도 중용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친척이나 아첨하는 이들 중심으로 중용했다.

또한 자신과 동업자인 진궁에게는 결정 참여가 필요했는데 여포는 전략에 대해 묻고 청취만 했다.

다음으로 실제 전장을 운영할 고순에게는 상시 권한이 필요했는데 여포는 전시 동원만 했다.

수많은 인재들에 대한 상벌과 배치는 원칙이 아니라 기분이었다. 당장 후성만 해도 그렇다. 그는 유비에게 귀부하려는 부하를 잡고 그가 훔쳐간 말을 모두 되찾아왔다. 다른 부하들이 그의 공을 사례하며 술을 바치자 그는 자신이 먹기 전 여포에게 가서 술을 바쳐 먼저 성의를 표했다. 그러나 여포는 ‘금주령을 내렸는데 네가 다른 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니 나를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냐!‘ 하며 분노했다.

또한 그는 부하들의 처첩과 간통하기까지 한 인간 말종이었다. 오죽하면 삼국지에서 호색한으로 유명한 조조마저 그에게 ‘당신은 부하들의 아내를 사랑했으면서 어떻게 부하를 후대했다고 할 수 있냐’고 까지 하였다.

8. 현대 조직에 남는 교훈

영웅기에 따르며 고순은 항상 여포에게 간언했다고 한다.

“무릇 집안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충신이나 밝고 지혜로운 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들이 쓰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군께서 거동하실 때 치밀히 생각하지 않고 번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길 좋아하시니 그런 잘못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여포는 고순이 충성된 장수임을 알았으나 자신의 성정을 고치지도 못했고 그에 대한 신뢰도 없었다. 여포가 실수한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만약 고순이 진궁과 같은 학자였다면 이렇게 정리해 간언해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첫째, 전략가를 데려왔다면 결정 구조에 넣어라.
말만 듣는 건 모욕이다. 전략가가 침묵하면 정치가 되버린다.

둘째, 운영 핵심에게 권한을 줘라.
책임만 주고 권한을 빼앗으면 현장은 버티지만 전체 조직은 죽는다.

셋째, 상벌은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움직여라.
기준 없는 보상은 규율을 부순다. 규율이 부서지면 조직도 사라진다.

넷째, 전략-운영 갈등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다.
역할·권한·책임이 분리되지 않으면 유능한 사람도 서로를 적으로 본다.

다섯째, 위기에서 성문을 쥔 건 중간층이다.
중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은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9. 여포는 전쟁에서 진 게 아니라 '사람을 버린 전쟁'을 했다

진궁은 조조에게 붙잡혀 죽기전 마지막에 말했다.

“ 이 사람이 내 말을 쓰지 않아 이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내 말을 따랐다면 어찌되었을 지 알 수 없소.”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고순이 평소에 여포에게 하던 말과 오버랩된다.

둘이 한 말을 합치면 문장이 하나로 줄어든다.

"인재는 있었지만, 조직은 인재를 살리지 못했다."

하비성의 겨울은 전술사가 아니다. HR의 실패 보고서다.

그리고 그 실패는 지금도 회사마다 반복된다.

천하무쌍이 없어도 여포형 리더는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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