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년간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많은 순간을 지켜보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는 바로 논리적 논쟁이 갑자기 무너지는 때였습니다. 한번은 성과급 산정 기준을 놓고 완벽한 데이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막바지, 노조 대표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당신들은 늘 숫자만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지난 3년간 얼마나 기만당했는지 압니다! 이건 또 속이려는 수작이죠!"
순간 테이블이 얼어붙었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유리한 수치를 보여줘도 소용없었습니다. 과거의 불신, 쌓인 감정, 뿌리 깊은 상처가 모든 논리를 집어삼켰습니다.
협상에서 우리는 흔히 주체, 과정, 성과 세 가지 요소를 다룹니다. 전편에서 '성과'를 나누는 과정(통합 협상)의 함정을 봤다면, 이제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 '주체'의 비합리성을 깊이 파헤쳐야 합니다.
왜 똑똑한 전문가들조차 감정에 휘둘려 스스로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내릴까요?
우리가 오랫동안 협상을 논할 때 전제했던 인간 모델은 바로 '합리적 주체(Homo Economicus)'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철학적 관점에서 시작되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완성된 이 이상적 인간 모델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 핵심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한 정보 습득: 협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편향 없이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일관된 이익 추구: 자신의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결정하며, 감정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 전제 위에서 기존 협상론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만들어냈습니다.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합의 결렬 시 최선의 대안)와 유보가격을 계산해라", "상대가 정말로 원하는 것(Needs)과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것(Positions)을 구분하라". 우리는 이 '합리적 인간'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신화는 행동경제학의 등장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인간은 완벽한 계산 기계가 아니며, 우리의 선택은 이익의 크기보다 심리적 편향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협상 테이블의 비합리성은 '오차'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인 것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막스 베이저만(Max Bazerman) 교수를 비롯한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다양한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을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특히 노사 협상에서 두드러지는 세 가지 행동 편향을 포착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존 믿음이나 가설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입니다.
현장의 모습: 노조는 사측이 투명한 재무 자료를 공개해도 '숨겨진 이익의 증거'를 찾으려고 애쓰며 기존의 불신을 강화합니다. 사측은 노조의 합리적 요구를 '돈 더 달라는 감정적 투정'으로 치부하며, 협력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합니다.
결과: 노사는 각자 다른 진실 속에 갇힙니다. 신뢰가 없으니 정보 공유는 곧 무기가 되며, 이성적인 논쟁은 시작조차 어렵습니다.
손실의 고통이 같은 크기의 이득의 기쁨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현장의 모습: 노조는 회사의 제시안을 '득'이 아닌 '요구 기준 대비 손실'로 받아들여 감정적 고통을 느낍니다. 사측 역시 1%의 추가 양보를 '선례가 된다'는 미래 손실의 공포로 인식하여, 결국 작은 손실을 피하려다 더 큰 관계 손실을 자초합니다.
결과: 협상 주체들은 합리적인 위험 감수 대신 안전지대에 머물러,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이익을 스스로 포기합니다.
처음 제시된 숫자(기준점)가 후속 논의와 최종 판단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입니다.
현장의 모습: 노조가 비현실적인 15% 인상안을 던지면, 사측의 내부 최대치인 5%는 이미 협상 테이블에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최종 6%에 합의해도 노조는 "적게 받았다"고, 사측은 "너무 많이 줬다"고 불만족을 느낍니다.
결과: 합리적 판단은 첫 제안이라는 덫에 묶여 사라지고, 합의의 진정한 가치가 왜곡됩니다.
막스 베이저만 교수와 같은 기존 이론가들은 이러한 편향과 감정을 '협상 성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오류'로 간주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다시 '합리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계중심 협상은 여기서 근본적으로 출발점을 달리합니다. 우리는 감정을 제거하거나 극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편향과 감정을 가진 존재이며, 특히 노사 관계에서 분노와 불신은 '과거의 상처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관계중심 협상의 시각에서 바라본 감정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관계를 여는 '문'이자 상대의 숨은 요구를 읽는 '맥락'입니다.
우리는 비합리적인 편향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해야 비로소 합리적인 협상이 시작됩니다. 관계중심 협상은 '합리적 기계'가 되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적 주체'로서의 태도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감정 수용의 태도: 노조의 분노를 논리적 오류가 아닌 '과거 기만당한 경험의 표현'으로 수용합니다. 상대가 "내 감정을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논리의 문이 열립니다.
공동체적 시야: 자신의 이익 계산을 넘어 "내 행동이 조직 전체의 신뢰에 미칠 영향은?"을 고민하는 주체로 거듭납니다.
성공적인 협상은 논리 수식이 아니라, 편향을 자각하고 관계의 가치를 최우선하는 윤리적 자세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승리만을 위한 전략적 상호작용이라는 낡은 협상 과정을 다시 바라보며, 노사가 어떻게 공동체적이고 참여적인 과정을 설계하여 협력을 창조하고, 조직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