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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AI시대, 협상은 생존전략이다

05 AI시대, 협상은 생존전략이다

초불확실성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는 법
노무HR 컨설팅코칭리더십시니어리더임원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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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보드Dec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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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질문과 침묵

AI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해외를 넘어 국내 기업의 '일자리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조의 "우리의 일자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라는 절박한 질문에 회사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이 침묵은 이전과 확연히 다릅니다. 이것은 ‘계산된 탐색’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한때 협상은 임금과 복지, 즉 파이 나누기의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노조는 새로이 묻습니다. “회사의 AI 로드맵에 우리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자동화 이후 남게 될 사람들은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회사는 기술 혁신을 말하고, 노조는 고용 불안을 봅니다. AI 전환이 성장의 길인지, 노동의 위기인지. 이 질문에 서로 신뢰 없이 각자 답한다면, 첨단 기술은 조직을 살리는 엔진이 아니라 내면을 폭발시키는 폭탄이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협상은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즉 생존의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보다 더 빠른 초불확실성

AI는 기업도, 노조도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변수가 많아져서 생기는 불확실성(Uncertainty)을 넘어섭니다. 지금의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즉 방향성 자체가 사라진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입니다. 경영·전략 분야에서는 이것을, 단순히 정보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애초에 무엇을 전제로 생각해야 할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지식 문제(Knowledge Problem)로 이야기해 왔습니다.

합리적 계산이나 최선의 대안(BATNA) 같은 전통적 도구들은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만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제 AI가 초래한 환경은 질서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 협상 전략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AI는 직무의 경계를 허물고, ‘노동자’라는 정체성 자체를 흔듭니다. 조직 구성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역할과 기여를 기존의 틀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때 조직을 버티게 하는 힘은 기술(Tech)이 아니라 신뢰(Trust)입니다. 사회학적으로 신뢰는 '미지의 상황에서 타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기대'로 정의됩니다. 초불확실성 속에서는 이 기대가 협상의 전제조건이 됩니다. 신뢰가 있어야만 이해관계자들이 단기적 손익 계산을 넘어, 장기적 협력의 틀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AI 시대의 협상이 묻는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변화를 함께 견딜 만큼 서로를 믿는가?”

신뢰 없는 조직, 신뢰 있는 조직

신뢰가 없는 조직에서 AI는 갈등의 증폭기로 작동합니다. 회사가 ‘AI 기반 효율화’를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발표하면, 노조는 그것을 ‘비용 절감용 꼼수’라 해석합니다. 회사는 반발을 피하려 입을 닫고, 그 침묵 속에서 불신은 자라납니다.

반대로 신뢰가 있는 조직은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찾습니다. AI·자동화 연구에서는 신뢰를 단순히 ‘기술 성능’뿐만이 아니라 그 기술이 선의(beneficence)를 가지고 설계되었는지,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다고 느껴지는지(절차적 공정성, integrity)에 대한 믿음까지 포함해 다룹니다.

이런 신뢰가 있을 때, 회사는 인력 재편보다 조합원의 불안을 먼저 인정하고, 노조는 ‘직무 전환 프로그램’ 설계에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우리가 이 변화를 함께 버텼다”는 감정으로 바뀝니다. 그 감정은 곧 회복력이고, 혁신의 토양이 됩니다.

AI 시대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능력입니다.

함께 예측하는 협상

노사 협상이 생존 전략이 되려면, 서로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함께 예측해야 합니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을지에 대한 그림을 공유하지 못하면, 어떤 합의도 오래 버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 관리 이론(Uncertainty Management Theory)은 불확실성을 무조건 없애야 할 위험이 아니라, 함께 다루고 해석해야 할 조건으로 봅니다.

예컨대 노사가 공동으로 AI 윤리 및 고용 영향 평가 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직무 소멸 리스트와 전환 가능 직무, 교육 로드맵을 함께 설계하는 과정은 단순히 정보를 나누는 절차가 아니라, 조직이 미래를 공동으로 해석하는 관계의 실험실이 됩니다.

노사 협상을 다루는 기존 연구들에서도 상호 인정과 정보 공유, 공동 위원회를 신뢰를 쌓는 핵심 장치로 강조해 왔습니다. 이해관계가 달라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감각, 그 감각이 AI 전환기에서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기술 딜레마를 관계 자산으로

기술의 혁신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일자리를 줄입니다. 이 전통적인 딜레마를 ‘위협’이 아니라 관계 자본으로 바꿔야 합니다. 회사는 절감된 비용을 인력 감축이 아닌 재교육과 재투자에 써야 합니다. 노조는 고용 보장 요구를 넘어, 조합원의 경쟁력 강화를 함께 추구하는 공공의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때 협상은 더 이상 거래가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프로세스’로 바뀝니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협상을 요구합니다. 기술보다 빠른 변화 앞에서, 신뢰가 유일한 방패가 되고, 노사 협상은 더 이상 이익을 다투는 기술이 아니라 공동의 생존을 위한 윤리적 행위가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관계를 협상의 주체로 삼고, 협상의 과정을 '함께 예측하고 배우는 여정'으로, 협상의 성과를 '더 나은 내가 되는 경험'으로 다시 정의해보려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성과’의 의미를 넘어, 관계중심 협상이 지향하는 목표를 선명하게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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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직의 도전이, 성장의 발판이 되도록.
현직 HRM 전문가로, 조직 성과와 사람의 성장을 연결하는 전략을 고민합니다. 인사제도 기획과 노무 전문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 내 갈등을 해결하는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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