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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사기가 아니다

08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사기가 아니다

관계중심 협상을 지탱하는 윤리적 주체
노무HR 컨설팅코칭시니어리더임원CEO
보드
스프링보드Jan 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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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협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 배려하다가는 우리만 손해 봅니다.”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 메시지는 비슷합니다.
배려는 곧 약점이고, 상대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곧 내 몫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하지만 윤리적 주체의 관점에서는 이 문장이 거꾸로입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보면 우리 편의 손해입니다.

이 글은 그 역설을 풀어보려는 시도입니다.

배려 = 손해라는 직관

협상장 안에서 배려는 자주 오해받습니다.

“저쪽 상황을 이해해주자”

“이 부분은 상대가 체면을 세울 수 있게 해주자”

이런 말을 꺼내면 바로 돌아오는 반응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편 배신하자는 겁니까?”

“그럼 우리가 뭐하러 여기까지 싸웠습니까?”

특히 노사처럼 집단이 걸려 있는 협상에서는
배려가 곧 부드러움,
부드러움이 곧 약함,
약함이 곧 사기 저하로 번집니다.

그래서 많은 실무자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다짐합니다.

“적어도 협상장에서만큼은,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이 다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협상의 목적은, 지금 눈앞에 놓인 몫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는 것이다.”

이 전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배려는 끝까지 손해처럼 보입니다.

관계적 이익이라는 두번째 계산법

기존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 단기·물량 기준:
    - 이번 협상에서 우리가 얻은 것
    - 숫자로 환산되는 이익

관계중심 협상은 계산법을 하나 더 만듭니다.

기존 계산법에 하나를 더 얹습니다.

  • 장기·관계 기준:
    - 이번 협상으로 관계가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 다음 위기 때 “그래도 저쪽과는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감각이 남는지

이 두번째 계산법이 바로 "관계적 이익"입니다.

관계적 이익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에 우리가 조금 덜 가져가는 대신, 상대가 우리를 더 신뢰하게 된다면?”

“이번에 상대의 체면을 지켜준 덕분에, 다음 협상에서 훨씬 덜 방어적으로 나온다면?”

이런 변화는 오늘의 합의서에는 적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5년, 10년의 협상 비용에는 분명히 반영됩니다.

관계적 이익은 결국 이런 문장으로 귀결됩니다.

“내가 오늘 조금 덜 가져가는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더 많이 잃지 않게 되는 것.”

배려는 이 관계적 이익을 만드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배려가 관계적 이익으로 귀결된 사례

가상의 사례를 하나 그려보겠습니다.

AI 도입으로 일부 백오피스 인력이 줄어들 예정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일이 줄어드니 구조조정은 불가피합니다.”

노조 입장에서는 이렇게 맞받고 싶습니다.
“고용 보장 없는 AI 도입은 안 됩니다.”

서로 강하게 부딪치던 중,
실무자 한 명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회사 쪽 실무자:

“솔직히 말하면, 인력 조정 압박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일괄 감축이 아니라 재교육+직무 전환 프로그램을 먼저 제안하는 방향으로 사측 안을 다시 짜 보겠습니다.”

노조 쪽 실무자:
“우리도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대신, 구조조정 대상자에게 희망퇴직 패키지만 제시하는 방식은 절대 못 받아들입니다. 재교육과 전환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프로그램 설계에 노조가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양쪽 모두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보입니다.

회사는 즉각 감축 대신 재교육·전환에 비용을 쓰기로 했습니다.

노조는 절대 감축 불가에서 “최악의 경우”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 설계로 입장을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선택은 양쪽 모두에게 관계적 이익을 남깁니다.

회사는 “우리가 사람을 그냥 버리는 조직은 아니다”라는 신뢰를 쌓습니다.

노조는 “우리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평판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AI 프로젝트 협상에서
“그래도 지난번처럼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경험이 생깁니다.

여기서 양쪽 실무자가 한 행동은, 엄밀히 말하면 “배려”입니다.

회사는 노조와 조합원의 불안을 경청하고 반영하는 배려를 했습니다.

노조는 회사의 사업 현실과 경쟁 압박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배려를 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서로 조금씩 양보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 배려를 통해 생긴 것은 결국 관계적 이익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사기(詐欺)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의 사기(士氣)를 지키는 일이다.”

감정, 극복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협상 이론에서는 오랫동안

“감정을 통제하라.”

“감정에 휘둘리면 손해 본다.”

라는 메시지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감정에 휩쓸리면

말해야 할 것을 못 말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냉정한 판단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실무자가 이렇게 배우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감정은 잠깐 접어두시죠.”

“감정 섞지 말고, 팩트만 이야기합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떠한가요.

감정은 “접는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팩트만 이야기하자고 해도, 목소리 떨림과 표정, 한숨 속에 감정은 계속 흘러나옵니다.

감정을 단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보는 관점은

결국 이런 메시지를 줍니다.

“당신이 느끼는 불안·분노·두려움은 협상에 방해가 되니, 최대한 숨기세요.”

윤리적 주체는 이 지점에서 태도를 바꿉니다.

“감정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하고 해석해야 할 정보입니다.”

감정은 종종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어디에 상처와 두려움이 있는지

이 관계에서 무엇이 이미 무너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윤리적 주체는 상대의 감정을 이렇게 다룹니다.

“당신이 지금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만 더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 안에서 가장 불안한 지점이 어디인지, 솔직하게 말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이 말들은 얼핏 보면 “양보의 신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진짜 리스크를 파악하고 관계의 균열을 미리 확인하고

나중에 폭발할 문제를 미리 다루기 위한 매우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감정을 수용하는 것은 협상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상을 더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배려와 윤리는 실무 전략이다

정리해보면, 윤리적 주체에게서 “배려”와 “감정 수용”은 도덕적 장식이 아닙니다.

상대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내 몫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투자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정확히 보는 방법입니다.

윤리적 주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 편을 위해 싸웁니다. 동시에, 이 싸움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착한 사람”의 선언이 아니라, 장기적인 실무 전략의 선언입니다.


다음 글을 향해: 윤리에서 책임으로

여기까지는 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나”의 태도와 감정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다음 단계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태도가 노조 전체, 회사 전체의 정체성과 연결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다음 글에서는 회사 또는 노동조합이 ‘윤리적 주체’를 넘어,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 책임을 지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뤄보겠습니다.

파이를 나누는 단체에서, 파이를 키우고 지키는 단체로 변한 다는 것.

그 변화가 가져오는 이익과 위험을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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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직의 도전이, 성장의 발판이 되도록.
현직 HRM 전문가로, 조직 성과와 사람의 성장을 연결하는 전략을 고민합니다. 인사제도 기획과 노무 전문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 내 갈등을 해결하는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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