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선 Part 2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선택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조직의 대변인인가, 탐구자인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사기(詐欺)가 아니라 사기(士氣)를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실무자는 혼자가 아닙니다. 조직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 자체가 이런 태도를 가질 수는 없을까요?
이 태도가 조직 전체의 정체성이 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노조든 회사든, 협상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이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몫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부터 챙겨야 합니다."
그래서 조직은 파이를 나누는 집단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노조는 조합원의 몫을 지키는 집단,
회사는 주주와 경영진의 몫을 키우는 집단으로 말이지요.
이 틀 안에서 협상의 질문은 언제나 같습니다.
"지금 이 파이에서, 우리는 얼만큼 가져갈 수 있는가."
그런데 AI 전환기에는 이 질문의 전제 자체가 흔들립니다.
파이의 크기가 바뀌고, 파이의 종류 자체가 바뀌고,
누가 파이를 만드는지조차 재정의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기술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놓고,
한 번의 판단이 회사의 존립, 산업의 생태계를 뒤흔듭니다.
이때 조직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파이를 지속가능하게 지키는 집단인가."
"나와 우리 편의 몫을 지키면서도, 이 파이 자체를 망가뜨리지 않을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공화적 주체'는 어려운 철학 용어도, 정치적 입장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편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동의 터전을 함께 지키는데 책임을 느끼는 주체"입니다.
여기서 터전은 회사일 수도 있고, 업계 전체일 수도 있고, 한 도시와 지역 사회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풀어보면,
- 회사라면:
분기 실적과 주가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지역·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본다는 뜻입니다.
- 노조라면:
당장의 임금·복지뿐 아니라, 회사가 5년, 10년 뒤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인지 함께 묻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공화적 주체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조직을 의미합니다.
회사가 공화적 주체로 선다는 것은, "좋은 말만 하는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선택들에서 드러납니다.
가장 싼 방식, 가장 빠른 방식만을 고르지 않습니다.
"이 기술 도입이 우리 사람들, 협력사,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를 함께 묻습니다.
인력 감축으로 확보한 비용을 오직 배당과 단기 실적에 몰아주지 않습니다.
재교육, 직무 전환, 안전망 구축에 일정 부분을 반드시 되돌립니다.
위기가 왔을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만 반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까지 이야기합니다.
공화적 주체로 선 회사는 숫자뿐 아니라 관계의 균형표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이 결정이 신뢰 자본을 얼마나 쌓거나, 까먹을 것인가."
이런 회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시장과 사회에서 다른 이름을 얻습니다.
"저 회사는 위기 때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
"저 회사와 일하면, 힘들어도 최소한 통보 없이 버려지지는 않는다."
이 평판은 채용 시장에서, 파트너십에서,
위기 때 정부·사회와의 관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돌아옵니다.
노조가 공화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회사에 순응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까다롭지만 현실적인 파트너가 되는 일입니다.
노조가 공화적 주체로 설 때, 노조의 질문은 이렇게 한 단계 바뀝니다.
"조합원의 권리를 최대한 확보하는가"에서
"조합원의 권리를 지키면서, 이 조직과 산업이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인가"로.
구체적으로는 이런 실천들에서 드러납니다.
AI 도입 일정표를 받자마자 반대부터 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직무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 조합원에게 어떤 재교육이 필요한지" 회사와 공동 TF를 먼저 제안합니다.
5% 인상을 일괄 요구하는 대신, "향후 3년 매출 시나리오별로 단계적 인상안"을 준비해 회사의 재무 부담과 조합원의 생활 안정을 동시에 고려합니다.
파업을 선언하기 전, "이 투쟁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우리가 지키려는 가치가 제대로 전달될지"를 함께 묻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회사의 이익을 대신 챙겨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회사가 무너지면 조합원의 삶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태도는 사회적 여론에서, 다른 노조와의 연대에서, 정부·정책 당국과의 관계에서 노조에게 다른 신뢰를 가져다 줍니다. "자기 몫만 챙기는 집단"이 아니라, "터전을 함께 책임지는 노동 주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화적 주체로 선다는 것은 이득만 있는 선택은 아닙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분명 불리한 순간도 있습니다.
당장의 인기 없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부에서 "왜 우리가 저기까지 생각해야 하느냐"는 반발을 듣기도 합니다.
단기 실적·단기 성과 지표만 보면 손해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공화적 주체는 최소 세 가지 이익을 얻습니다.
위기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저 조직은..."
협상 상대, 정부, 사회가 "마지막까지 대화해 볼 수 있는 상대"로 인정합니다.
협상력의 질적 변화
단기 강경 투쟁이 아니라, 장기적 파트너십을 전제로 한 협상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상대도 "저쪽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구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테이블에 올리게 됩니다.
구성원들이 "우리는 이 터전을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위기 때 버티는 힘, 즉 조직의 회복력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위험도 분명합니다.
내부에서 "너무 착한 것 아니냐", "순진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때로는 상대가 공화적 주체가 아니어서, 우리의 책임감이 악용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화적 주체는 순진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현실적인 결단"에 가깝습니다.
앞 글에서 우리는 "우리 편을 위해 싸우지만, 이 싸움이 모두의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려는"
개인적 차원의 윤리적 주체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 그 문장을 조직의 언어로 옮겨볼 차례입니다.
"우리는 우리 구성원을 위해 싸웁니다. 동시에, 이 조직과 공동체의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책임지는 단체가 되고자 합니다."
이 문장은 회사에도, 노조에도, 협회와 시민단체에도 동시에 던질 수 있습니다.
공화적 주체란, 이 선언을 구호로만 두지 않고, 실제 규범과 의사결정에 반영하기 시작한 집단입니다.
결국 공화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우리만 살겠다"는 욕망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려면, 우리가 서 있는 터전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더 냉정한 현실 인식입니다.
AI 전환기, 조직이 공화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선한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그 생존 전략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윤리적 주체, 조직의 공화적 주체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무자들은 종종 이렇게 느낍니다.
"말은 좋은데, 윗선의 규칙과 조직의 논리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주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이 감각을 정면에서 다뤄보려 합니다.
시스템(회사의 규율, 노조의 규약 등)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가
어떻게 자기 해방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지,
그 철학적·실천적 가능성을 함께 탐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