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그런데.." 한마디로 비밀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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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그런데.." 한마디로 비밀을 지켰습니다.

간단하게 상대방의 시선을 빼앗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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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준
안효준Jul 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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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사내 공모 면접 전형을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원자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후보자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면접 시간과 대기 장소, 이동 동선을 나누어 설계했고, 당일 아침 점검까지 마쳤었습니다.

문제는 실전에서 생겼습니다.

면접장은 스마트 글래스 회의실이었는데, 면접관이 리모컨을 조작하지 않아 면접장 내부가 모두 보였었습니다. 저는 후보자를 안내하다 복도 커브를 돌다 이를 발견했고, 순간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후보자는 제 몇 걸음 뒤에 있었고, 판단할 시간은 찰나였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면접장의 건너편 자리에 옮겨 섰고, 후보자가 커브를 도는 순간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혹시 오시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아, 그러셨군요.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아직 면접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바로 쉬실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평범한 안부였지만, 그 몇 초 동안 후보자의 시선은 제게 붙들려 있었습니다. 후보자는 왼쪽의 면접장을 보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날의 복기

그날 배운 것은 "점검을 더 철저히 하자"가 아니었습니다. 점검은 이미 하고 있었고, 변수는 점검 범위 밖에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면접 운영에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래서 운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통제가 아니라, 변수가 터진 순간 바로 꺼낼 수 있는 스킬(또는 임기응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제 스킬은 스몰 토크 한마디였습니다.

그럼 왜 이게 스킬일까요?

단순한 안부 한마디가 유리벽을 가릴 수 있었던 이유를 심리학은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무주의 맹시 — 보이지 않는 고릴라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는 주의가 다른 과제에 묶여 있으면 시야에 들어온 자극도 지각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 오류 - 사락 리뷰

[#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Simons & Chabris, 1999)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참가자에게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게 하자, 화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고릴라를 약 50%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과제가 어려워질수록 못 보는 비율은 더 높아졌습니다.

[kahneman(1973) capacity theory]

원인은 주의가 한정된 자원이라는 데 있습니다. Kahneman(1973)은 주의를 용량이 정해진 자원으로 설명했습니다. 과제가 자원을 쓰면 다른 자극에 배분할 몫이 줄어듭니다. Lavie(1995)의 지각 부하 이론에 따르면 과제 부하가 충분히 높을 때 무관한 자극은 처리조차 되지 않습니다. 과제가 어려울수록 고릴라가 더 안 보였던 이유입니다.

그 날 제 질문도 같은 원리였습니다. 질문의 역할은 단순 시선 끌기가 아니라 인지 과제 부여입니다. "오시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에 답하려면 후보자는 이동 경로를 떠올리고, 시간을 계산하고,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후보자의 주의는 대화에 묶였고, 왼쪽 면접장은 처리되지 않는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고릴라였던 셈입니다.

첫마디를 "그런데.."로 연 것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주의는 새롭거나 불완전한 자극에 자동으로 쏠립니다. 정향 반응(orienting response)이라 부르는 반사입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빛을 번쩍이진 않았지만 맥락 없이 던져진 접속사는 '무슨 이야기지?'라는 불안한 상태를 만들어 주의를 저에게 가져옵니다. 말의 설계를 통해 주의를 가져오는 겁니다.

꺼내 쓰는 공식 – 주의를 내게로.

그럼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실무 공식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1. 가릴 것이 있으면 그 앞이 아니라, 시선이 향할 자리에 선다.

몸으로 가리는 동작은 그 자체가 새로운 자극이라 오히려 주의를 끕니다. 안내 받는 입장이라면 보통 안내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좋습니다.

2. 위기의 첫마디는 "그런데.."로 열고, 기억을 뒤져야 답할 수 있는 가벼운 질문을 고릅니다.

이동 시간, 오는 길, 주차 여부 같은 것들입니다. 답하기 부담스러운 질문은 부하 대신 긴장을 올리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의 시선을 붙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도 부담스러운 질문 받으면 시선을 상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둡니다.)

3. 질문은 현장에서 만들지 않고, 조건 별로 외워 둡니다.

위기 순간에는 운영자의 주의도 상황 판단에 전부 쓰이기 때문에 질문을 지어낼 여력이 없습니다. 저는 면접 시간대(오전/점심/오후), 날씨(맑음/흐림/비), 후보자의 표정(긴장/들뜸/무표정)으로 조건을 나누고 질문을 미리 외워 둡니다. 외운 말은 자동으로 나오고, 아낀 주의는 상황 판단에 쓸 수 있습니다.

4. 반대 상황에도 같은 원리를 씁니다.

후보자가 꼭 들어야 하는 안내는 걷는 중이 아니라 멈춘 상태에서 전달합니다. 인지 부하를 줄이면 주의가 모입니다. (저는 꼭 앉은 상태에서 중요한 내용을 안내합니다.)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여러 경험과 배경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대처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한 번 쯤 떠올리셔서 필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사용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다른 사건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효준
안효준
학교 밖 세상을 겪기 시작한 HR 주니어
HR Generalist를 목표로 하는 1년차 HRer입니다. 채용과 기타 업무 지원을 맡고 있으며 주니어 시각의 인사이트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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