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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워라밸 이야기

2천 년 전 워라밸 이야기

워라밸의 본질은
조직문화전체
광현
박광현Oct 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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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이집트 파라오 아마시스 2세에 대한 일화인데요.

아마시스는 하루의 절반은 나랏일을 돌보고, 나머지 시간은 그저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보내기를 즐겼습니다. 그런 모습이 왕으로서의 권위를 떨어트린다고 생각했던 신하들은, 국정에 전념하며 파라오로서의 품격을 지켜달라고 조언했는데요. 아마시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활시위를 항상 팽팽하게 당겨놓으면 결국 부러져 필요할 때 쓸 수 없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운동이나 여가 없이 일만 하다가는 정신이 망가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을 일을 위한 시간과 즐거움을 위한 시간, 둘로 나누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책 <역사>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2천5백 년 전의 이집트 파라오가 어쩌면 워라밸의 선구자였던걸까요...? 🤣

여전히 워라밸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이제 조금은 식상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일과 삶의 양립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화두입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주 4.5일제, 퇴근 후의 연락을 지양하자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같은 현안도 결국은 워라밸이라는 담론이 포괄하는 이슈이지요.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한국과 반대되는 흐름도 보입니다. 며칠 전 뉴스 기사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996’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렸는데요. AI붐으로 IT산업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직원들에게 9am부터 9pm까지, 주 6일 근무를 요구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이런 강도 높은 근로문화가 미국 직장문화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는 내용입니다.

[조선일보] 재택근무는 끝...美 스타트업에 퍼지는 중국식 ’996 근무’​

워라밸 유행이 남긴 것

저마다 상황의 편차는 있겠지만요, 사회초년생이 아니시라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휩쓴 워라밸이라는 큰 파도에 대해 각자의 경험들을 나름 갖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퇴근하라는 회사와 눈치 주는 상사, 프로젝트 한창인데 정시퇴근 하는 후배, 해외여행 가려니 바짓가랑이 붙잡는 업무, 우리는 이런 부대낌들 속에서 무던히 갈등하며 매 순간 답을 찾아보려 애써오지 않았던가요.

워라밸이 세대갈등의 대표적인 단면으로 조명될 때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기는 조금 지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는 딱히 세대에 관계없이 누군가는 밸런스를, 누군가는 하모니를 말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겠다며 허슬하는 청춘들이 매체를 통해 적잖이 소개되기도 하고요.

저는 한바탕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의 몫이 남았음을 느낍니다. 워라밸이라는 주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 번쯤 다시 짚어볼 때가 아닌가 싶은 거죠. 저는 워라밸의 본질은 유행도, 사회적 합리도 아닌 ‘나의 행복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못다 한 일을 앞에 두고 퇴근을 고민할 때 우리가 저울질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단연코 나의 행복입니다. 한층 더 파고들면 ‘나는 무엇에 더 큰 의미를 느끼는가’의 문제이지요.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보편적인 욕구를 고민해야 하겠으나, 한 개인으로서는 내 태도가 시대적인 분위기 안에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세련된 것인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순간순간의 선택을 통해서 삶에서 얻는 의미의 총량을 키우는 것. 그 과정에서 ‘일’이라는 존재를 내 삶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판단하는 것. 그것이 워라밸의 본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워라밸의 중심에

제 스마트폰에는 회사 메신저 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 건 절대로 깔 수 없어!’ 했던 때도 있었는데요. 이제는 퇴근 후나 휴가 중에 간단한 문의에 대응하는 것 정도는 딱히 불편하지 않습니다. 에티켓을 지켜주는 동료들과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2025년 오늘의 저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의 철저한 단절보다는 자연스러운 공존을 더 의미 있게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평생 이런 모습일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계속 돌아봐야겠지요. 지금 나의 삶은 의미 있게 흘러가고 있는지, 하루하루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말입니다.

최인아책방의 대표 최인아 님은 주도적인 삶을 살려면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분식집은 손님에게 라면의 꼬들함 정도를 묻지 않지요.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고기의 익힘부터 드레싱의 종류까지 하나하나 다 물어보듯이, 자신을 존중하려면 시대의 제안을 고민 없이 수용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알아차려서 그걸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워라밸이라는 주제의 중심에도 ‘나’를 놓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단순한 시간과 보상의 계량을 넘어, 오늘의 선택이 내 삶에서 갖는 의미를 부지런히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워라밸에 멈춰있는 정답은 없습니다. 좌로 우로 기울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지요. 수천 년 전 파라오와 신하들이 논쟁한 주제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광현
박광현
좋은 태도의 힘을 믿습니다.
자동차 부품회사 재경부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 옆의 누군가에게 더 나은 환경이 되어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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