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꼭 기다렸다가 가장 빠르게 구입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김난도 교수와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다음 해의 변화를 전망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살짝 먼저 엿보는 듯한 재미가 있습니다. 매년 그러했지만, 특히 트렌드 코리아 2026은 제게 조금 특별했습니다. 10개 키워드의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슬로건은 ‘HORSE POWER’였고, 첫 번째 키워드는 H로 시작하는 ‘휴먼 인 더 루프, Human-in-the-Loop’였습니다. AI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인간이 개입해 검증하고 판단하며 최종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처음에는 HORSE POWER의 H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첫 번째에 배치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을 지나며 HITL은 실제로 AI 분야의 가장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AI 엔지니어링의 무게중심도 단순히 좋은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수준에서 충분한 맥락을 제공하고, AI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도구·규칙·검증 체계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강력한 모델만이 아닙니다. AI의 결과를 검증하고, 승인하고, 예외를 판단하며, 마지막 책임을 지는 인간의 역량입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AI의 압도적인 능력과 인간의 지혜를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한 메시지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며 조금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트렌드 코리아 2027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키워드가 우리가 아직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변화를 먼저 보여줄까?
책에서 제시하는 2027년의 상징은 ‘알파쉽, ALPHA SHEEP’입니다. 알파쉽은 무리를 따라가는 양이 아니라 익숙한 흐름에서 벗어나 먼저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10대 트렌드를 제 경험에 비춰보니, 낯선 미래의 예측이라기보다 제가 경험해 온 일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설명하는 지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유튜브나 OTT를 통해 정말 콘텐츠가 매일 홍수같이 쏟아지지만 자극이 많다고 몰입이 깊어지지는 않습니다. 정말 재미를 느끼기 힘든 시대입니다.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해서 재미를 느끼거나 몰입이 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다시 일의 재미를 느낀 것도 새로운 미션을 받았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조직에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해 경영진의 판단을 돕는 HR Analytics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문제”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권태를 이기는 힘은 더 강한 자극이 아니라 오래 붙들고 싶은 자기만의 문제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석사과정과 코칭 자격, AI와 영어 공부는 당장의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재개발에서 오랜시간 일한 경험과 배움은 HR 데이터를 사람과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했고, 코칭은 숫자로 누군가를 단정하지 않는 태도를 길러주었습니다. 모든 배움의 수익을 이번 분기 안에 회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공부는 미래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의 크기를 넓혀주고 기회의 문도 넓혀주기도 합니다.
기업교육은 오랫동안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수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PBL 방식의 교육을 운영하며 이론 대신 현업 문제를 가져오게 했고, 교육생을 수강생이 아닌 프로젝트 수행자로 전환했습니다.
사내 AI 전문가와 현업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AI Festival에서 공유했습니다. 교육의 내용만 바꾼 것이 아니라 강의에서 프로젝트로, 수료에서 현업 적용으로 교육의 폼팩터를 바꾼 것입니다.
HR Analytics 플랫폼의 데이터와 기준이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시작해야 한다면 절대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조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실행 가능한 영역에서 핵심 모듈부터 만들었습니다. 현업 검증을 거쳐 AI Insight와 예측분석으로 확장했습니다.
AI 시대의 완성도는 시작 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행과 피드백을 반복하며 높아집니다.
요즘 저는 유튜브를 보거나 온라인·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링크를 저장하거나 문장을 옮겨 적는 데서 끝내지 않습니다.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제 경험과 연결해 다시 해석한 뒤 내 것으로 만들어 이렇게 오프피스트에 공유하는 지식 칼럼으로 정리합니다.
영상과 강의, 책에서 얻은 정보가 원재료라면, 제 경험과 관점은 그것을 소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칼럼은 개인의 메모를 넘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자극하는 새로운 지식이 됩니다.
저장인류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저장했는가가 아닙니다. 수집한 정보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경험과 연결해 다른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으로 재창조하는 능력입니다. 저에게 오프피스트 칼럼은 기록을 쌓아두는 저장소가 아닙니다.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다시 조직의 지식으로 돌려보내는 지식 순환의 공간입니다.
개인이 AI로 보고서를 빨리 만든다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HR 업무를 수집·검증·분석·판단·작성·승인의 프로세스로 잘게 잘게 분해했습니다. 반복과 규칙은 AI가 맡고, 맥락과 관계, 최종 책임은 사람이 담당하는 방식입니다.
바이브 워킹은 AI를 잘 사용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사람과 AI가 하나의 업무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협업하도록 일을 다시 설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떠난 뒤 퇴직 원인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늦습니다. 떠나면 새로 뽑으면 되지 라는 생각은 조직의 숙련도를 계속 낮출 것입니다. HR에서 일하면서 입사 초기 이탈과 근태 변화, 휴가 패턴, 조직만족도 신호를 연결해 조직이 먼저 이탈을 예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만으로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코칭 리더십을 운영하며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리더와 성장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조직에 머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최고의 리텐션은 퇴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머물며 성장하고 싶은 경험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AI는 보고서와 분석 결과를 빠르고 매끄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AI가 만든 보고서를 받아든 리더는 AI스럽다, 인간적인 노력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게 됩니다. AI는 데이터 분석과 패턴 탐지를 통해 보고서 초안을 담당할 수 있지만, 사람은 맥락을 이해하고 예외를 판단하며 결과에 책임져야 합니다. 휴먼엣지는 AI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결과 위에 인간의 판단과 승인을 남기는 것입니다.
직장생활 20년을 보낸 시니어인 저이지만 저는 다시 신입사원? 학생? 이 된 기분입니다. AI를 배우면서 분석 플랫폼을 만들었으며, KPC 코치자격과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HRD 경험은 AI 시대의 일터학습 연구가 되고, 코칭과 HR Analytics 경험은 강의와 글의 소재가 될 것입니다.
중년과 갱년기는 속도를 줄이고 그만 멈추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면서 흩뿌렸던 경험을 연구·강의·저술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재연결하라는 신호입니다. 제2의 인생을 더 힘차게 출발할 수 있는 도메인 지식이 풍부한 멋진 후반전의 시작입니다.
AI는 수많은 차트와 보고서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어떤 지표가 경영 질문과 연결되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제외할지, 개인정보와 윤리의 경계가 어디인지는 인간이 결정해야 합니다.
책과 논문을 읽고 현업 사례를 기록하는 이유도 AI보다 많이 알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AI가 제시한 여러 결과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안목은 현장을 보고, 공부하고, 틀리고, 다시 판단하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의 휴먼 인 더 루프가 실제 AI 산업의 중요한 화두가 된 것처럼, 트렌드 코리아 2027의 10개 키워드도 이미 우리 일과 삶 속에서 시작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돌아보면 저는 언제나 가장 먼저 기술을 사용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새로운 기술을 사람의 성장과 조직의 변화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 왔습니다. 교육담당자로 AI PBL을 만들었고, HR Analytics 담당자가 되어 HRA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이제는 그 경험을 연구와 강의, 글과 코칭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2027년, AI는 우리보다 빠르게 읽고 더 많이 기억하며 더 매끄럽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AI와 속도를 겨룰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작은 실행을 시작하며,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
그것이 AI 시대의 알파쉽이 갖춰야 할 힘일 것입니다.
AI가 모두의 능력을 평준화할수록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의 개수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 인간의 검증과 판단, 그리고 자기 방향을 선택하는 안목입니다.
출처: 트렌드 코리아 2027 (김난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