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노사관계 변천과 과제
홍석환 대표(홍석환의 HR전략컨설팅, no1gsc@naver.com)
한국 기업의 노사관계 변천
기업의 노사관계는 임금과 근로조건을 협상하는 관계를 넘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근로자의 삶을 함께 결정하는 중요한 경영 과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일본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갈등, 대립과 투쟁의 역사를 거쳐 왔다. 이제는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되풀이하기보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만 한다.
한국 노사관계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쟁점이 달라져 왔다.
① 일제강점기~1950년대 노동운동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저항과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을 함께 지녔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에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노동조합 제도가 형성되었다. 1953년 노동관계법이 제정되었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사 간 자율적인 교섭을 정착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②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성장이 국가와 기업의 우선 과제였다.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 놓였고, 노동운동은 정부의 통제와 제약을 받았다. 기업은 생산성과 수출 확대에 집중했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노사관계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뒷전이었다.
③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이 확대되면서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 노동권 보장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한국노총과 함께 양대 노동조합총연맹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전개되었다. 노동자의 권익과 교섭력이 강화되고, 노사 간 힘겨루기와 파업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졌다.
④ 1997년 외환위기는 노사관계의 또 다른 분기점이었다. 구조조정과 고용 유연화가 확대되면서 노동자에게는 고용 안정이, 기업에는 생존과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이후 비정규직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성과급과 임금체계, 원·하청 관계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 고령화, 청년 고용, 근로시간과 일·생활 균형까지 노사 간 논의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임금과 근로조건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사의 신뢰와 화합을 어렵게 하는 요인
한국 기업의 노사관계는 비교적 긴 시간 불신, 갈등, 투쟁이 많았다. 기업 및 근로자 입장에서 투쟁을 위한 투쟁은 상호 경쟁력과 이익 측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노사 간 신뢰를 약화시키는 원인일까? 노측과 사측의 시각에서 살피면 다음과 같다.
노측이 사측을 불신하는 이유를 크게 4영역으로 살피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첫째, 경영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
둘째, 임금과 복리후생, 인사평가와 승진에서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는다.
셋째, 고용조정이나 조직개편이 충분한 설명과 협의 없이 추진된다.
넷째, 과거의 합의가 지켜지지 않거나 현장의 고충이 경영에 반영되지 않는다.
사측이 노측을 불신하는 이유도 있다.
첫째, 기업의 수익성과 투자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임금과 복지 확대만 요구한다.
둘째, 파업이나 쟁의가 장기화되면 생산과 납기, 고객 신뢰에 손실이 발생한다는 우려
셋째, 노조가 일부 조합원의 이해를 넘어 조직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넷째, 노조의 요구가 정치적·사회적 의제와 결합하거나 경영권에 대해 과도한 개입을 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모든 기업과 노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권익 보호 활동과 책임 있는 사회적 참여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어느 한쪽이 상대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자신의 주장만 정당하다고 여기면 신뢰는 약화된다. 상대방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수 없지만, 그 배경을 이해하고 성심성의껏 협의하려는 자세는 필요하다.
노사의 신뢰와 화합을 위한 원인과 대책
2004년 장외 투쟁을 결정하고 14일 동안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은 파업을 경험했다. 수많은 기업들의 노사 협상을 지켜보며, ‘갈등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좀 더 세심하고 깊이 있는 성찰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기업은 경영권을 이유로 일방적인 결정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노동권을 이유로 기업의 경영 여건과 구성원 전체의 이해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경영진에게는 투명한 정보 공유와 공정한 성과 배분의 책임이 있으며, 노동조합에는 조합원의 권익을 지키는 동시에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책임이 있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과 고용 안정을 함께 고민하고, 노동조합은 현재의 조합원뿐 아니라 미래의 일자리와 노동시장 전체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경쟁이 아닌 글로벌 경쟁 시대에 속도에 늦어지면 따라갈 수가 없다. 아니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과 산업구조 변화가 일자리를 바꾸는 시대에는 노사의 대립으로 소모하는 시간은 속도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이제는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역량과 노사간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관계는 불필요한 갈등 비용을 줄이고, 근로자의 역량 개발과 생산성 향상, 장기적인 고용 기반 마련에도 기여할 수 있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합과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기본은 투명 경영이다. 기업은 경영상 어려움과 성과를 설명하고, 임금과 투자, 고용에 관한 주요 사안을 가능한 범위에서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둘째, 신뢰 중심의 조직문화 구축이다. 단체협약과 노사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변경 상황 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재 협의해야 한다. 신뢰는 선언이 아닌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쌓인다.
셋째, 공동의 목표 설정이다. 품질 개선, 안전 확보, 생산성 향상, 고객 만족 등 노사가 함께 달성할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넷째, 현장의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상시 소통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경영진과 노조 지도부의 교섭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장 관리자와 근로자가 평상 시 의견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HR부서는 갈등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고, 공정한 고충처리와 관리자 교육, 노사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을 지원해야 한다.
노사가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당한 권리와 책임을 분명히 하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상생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대화와 약속을 통해 함께 생존하고 성장하는 길을 찾는 과정이다. 이것이 한국 기업이 새롭게 정립해야 할 노사관계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