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팀장님과 1on1을 했습니다.
중간 점검 성격의 자리였고, 그동안의 업무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입사 초기의 저는 업무도 미숙했고,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일도 서툴렀습니다. 그리고 그 미숙함을 팀원들 앞에서 여과 없이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제 첫인상은 좋지 않게 남았습니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 인상이 꽤 오래 남아 있다는 것도, 그래서 한동안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저 스스로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말로 들으니 다르더군요.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제가 후회됐습니다.
사건 자체는 하루였는데, 그 하루가 7개월 넘게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찾아보니 심리학에서 꽤 깊게 다뤄온 주제였습니다.

베르트람 가브론스키(Bertram Gawronski) 연구팀은 첫인상이 왜 그렇게 끈질긴지를 '맥락'으로 설명합니다. 첫인상과 모순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경험을 기존 인상과 별개인 특정 맥락에 묶어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상황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첫인상이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아무리 잘해도 인상을 바꾸기는 어렵고, 여러 다른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기존 인상과 모순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 경우를 대입해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저는 한두 번 잘 해내면 금방 만회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업무에서, 다른 상황에서, 몇 달에 걸쳐 같은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 뒤에야 인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쌓는 데는 오래 걸리고, 무너지는 데는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Mann과 Ferguson의 연구에 따르면 결정적인 정보 하나만으로도 좋은 인상이 나쁜 인상으로 뒤집힐 수 있지만, 반대 방향으로 인상을 바꾸는 데는 같은 정도의 정보만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만 기존의 부정적인 단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재해석'이 일어나면 인상이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경우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입사 초기에 미숙했던 시기'라는 해석으로 바뀌는 과정이 어딘가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사람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도 기존의 인상을 쉽게 바꾸지 않을까요?
어쩌면 첫인상은 단순히 상대를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그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지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상대의 절대적인 수행 수준만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수준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같은 결과물이라도 기대가 높았던 사람에게는 실망이 되고, 기대가 낮았던 사람에게는 놀라움이 됩니다. 여기에 확증 편향이 더해집니다. 한 번 기대가 형성되면 그에 부합하는 증거는 쉽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증거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처리하기 쉽습니다.
조직에서는 이렇게 그어지는 기대선이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합의된 기대입니다.
직무기술서, 목표 설정, 1on1 등을 통해 조율된 역할과 책임입니다. 이 기준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미달했다면 무엇이 부족했는지 확인하고 개선하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암묵적 기대입니다.
누구도 명확하게 말해준 적 없지만 이미 존재하는 기준들입니다. '신입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인사팀이면 이래야지' 같은 것들이죠. 문제는 이런 기준이 생각보다 많고, 이를 어겼을 때 돌아오는 타격은 명시적인 기준을 어겼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더욱 어려운 점은 신입사원 입장에서 이런 기대를 미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한참 뒤에, 저처럼 면담 자리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책임이 신입사원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 역시 신입사원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구성원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기준이 신입사원에게도 당연한 것은 아니니까요. 결국 좋은 적응은 개인이 조직에 맞춰가는 과정인 동시에, 조직이 자신의 기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첫인상을 잘못 남겼거나, 이제 막 조직에 적응하기 시작한 신입사원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네 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입사 초기 몇 주의 비중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드러나는 모습은 이후 몇 달 동안 상대가 나를 바라보는 해석의 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업무를 대하는 태도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등 기본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회복은 한 자리에서가 아니라 여러 자리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업무를 잘 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업무, 다른 상대, 다른 상황에서도 일관된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도 기존의 인상을 수정할 근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재해석의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묵묵히 잘하는 것만으로는 상대가 기존의 해석을 바꿀 계기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고 있고, 그 이후 무엇을 바꾸었는지 말로 표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1on1뿐만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도 팀원들에게 과거의 미숙했던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 피드백을 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넷째, 암묵적 기대를 명시적 기대로 끌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달에 어디까지 하면 괜찮은 수준일까요?"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막연히 열심히 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맞춰야 할 기준이 어디인지 알게 되니까요.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오래 고민했습니다.
굉장히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니까요. 미처 얘기하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다만, 팀장님의 피드백 중 한 문장이 떠올라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고민하고, 받아들이고, 결론을 내려야, 나중에 비슷한 상황 또는 후임을 맡을 때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본인에게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이것입니다.
첫인상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만, 바꾸는 데는 여러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하루를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근거를 쌓아가는 것 뿐입니다. 계속 노력해야죠.
그리고 언젠가 제가 누군가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의 첫 번째 실수만으로 나머지 모습을 단정 짓지는 않으려 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아직 첫인상으로 기억되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