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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제. 감당할 수 있습니까?

4.5일제. 감당할 수 있습니까?

4.5일제도 적용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 및 대응방안(1)
노무전체
태훈
허태훈Dec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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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다시 시작된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50조에서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 즉, 법정근로시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은 지난 수십 년간 '생존을 위한 노동'과 '건강한 삶을 위한 휴식'이 줄다리기한 끝에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올해 6월 출범한 현 정부는 이 법정 기준을 상회하는 '주 4.5일제' 도입을 주요 노동정책으로 천명하고 하나의 표준으로 적용하기 위해 ① 2026년도 예산을 편성하여 4.5일제도 도입 기업에 1인당 20만 원~6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② 나아가 '실 노동시간 단축 지원법'을 통해 보조금과 세액공제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4.5일제 도입의 근거는 명확해 보인다. ① OECD 평균보다 긴 근로시간 ② 장시간 근로로 인한 출산율 하락 ③ 근로자 삶의 질 향상 필요성 ④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신규 일자리 창출 등 언뜻 보면 모두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지금, 주 52시간제조차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제기하는 것일까?

2. 아직도 갈길이 먼 주 52시간제도

전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인사·노무 컨설팅을 하다 보면 현재 중소기업의 근로시간 운영 현황을 생생하게 접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52시간제는 아직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다수의 대기업의 경우 PC-off 제도 등을 통해 근로시간을 강제로 관리하며 관행적으로 실시하던 연장·휴일근로가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현장에서 주52시간은 아직도 '다른 세계 이야기'에 가깝다. 왜 그럴까? 중소기업의 경쟁력 구조 자체가 '유연한 대응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업종별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1) 자동차 부품 업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 제조업체를 생각해보자. 이곳의 업무는 경영지원(회계·세무·인사·총무 등), 생산관리(구매·품질·자재관리 등), 생산(금형·가공·선반 등), 물류, 영업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들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바로 '현장 대응력'이다. 특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납품하는 회사라면 발주 시기 변경이나 불량 발생 시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즉시 움직여야 한다. 밤이든 주말이든 상관없다. 이들의 경쟁력은 고도 기술이 아니라 '원하는 시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량을 맞춰주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 기술개발보다는 효율적인 인건비 관리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 인적자원투자수익률이 평균 110%~130% 수준이다

  • 내국인 신규인력 확보가 어려워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높다

  • 연장근무와 특근이 줄어들면 근로자의 실질 소득이 감소한다

여기에 4.5일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만일 실제 적용된다면 '대응력 약화 → 불량 증가 → 납기 지연 → 거래 중단 → 경영 악화' 라는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2) B2C 중심의 도소매업

도소매업의 상황은 또 다르다. 이곳의 업무는 판매, 상담, 고객응대, AS, 클레임 처리 등 모든 프로세스가 실제 고객의 시간과 니즈에 맞춰 움직인다. 또한 매장 운영, 온라인 CS, 물류·배송, 재고관리, 판매기획, 마케팅, 콘텐츠 운영 등 직무별 편차가 매우 크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일하는 방식의 편차가 극심하다는 의미다. 이 업종에서는 고객과의 접점이 곧 생명선이다. 즉, 이들의 경쟁력은 '좋은 제품'이 아니라 '고객 응대와 높은 서비스 품질'에서 나온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소매 업체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 누군가는 항상 고객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 같은 회사 내에서도 직군·직무마다 일의 형태가 매우 다르다

  • 고객 응대와 서비스 품질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다

이 업종에 4.5일제를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일 실제 적용된다면 '응대 공백 증가 → 고객 불만 확대 → 서비스 품질 하락 → 매출 감소 → 비용 절감 압력 → 인력 감축 또는 외주·AI 대체 확대' 라는 시나리오가 펼처질 가능성이 높다.

3. 4.5일제도가 표준이 되면 발생할 격차들

1일 8시간, 주 40시간은 '피로의 상징'이 아니다. 이것은 생존과 휴식이 줄다리기한 끝에 만들어진 기준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주 52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4.5일제가 '표준'이 되는 순간 이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점이다. 4.5일제를 실행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근로자 사이의 간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격차가 확대될 것이다.

(1) 신입과 경력 간 숙련 격차 확대

절대적인 학습량과 시간이 필요한 신규입사자 및 저연차 근로자들에게 단축 근로는 곧 성장기회의 축소를 의미한다. 시간이 필요한 직무에서 경험·습득의 속도가 더딘 구조가 고착될 것이다.

(2)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확대

인력 충원·자동화·교대 전환이 가능한 대기업은 문제없이 수용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은 제도적 부담과 근로조건의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이다.

(3) 고부가가치 업종(직무)과 저부가가치 업종(직무) 간 격차 확대

근로시간 단축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직무, 업종에서는 높은 부가가치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나 시간 자체가 생산요소인 업종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4. 1주 40시간 도입할때도 똑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1주 40시간 도입할 때도 똑같았다. 그때도 주 40시간제를 도입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망할 거라고 했다." 주 5일제 도입은 '토요일 휴무'라는 공평한 휴식권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면 지금의 주 4.5일제는 '임금 삭감 없는 단축'을 외치며 '40시간의 노동 가치 = 35시간의 노동 가치'를 공표한다. 이는 40시간 일하는 근로자에게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고 정부 지원금이라는 임시방편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로 비춰진다.

나아가 과거이 비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 되어 있고 근로시간 단축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며 국내 대다수 일자리를 책임지는 중소기업들이 이를 뒷받침할 체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4.5일제를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4.5일제는 특정 계층에게는 혜택이지만 다른 계층에게는 생존을 박탈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40시간제 도입 당시와 지금은 경제도 다르고 산업도 다르고 노동환경도 다르다. 같은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4.5일제가 이상적인 목표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은 분명 추구해야 할 가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라 주52시간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실질적 지원과 업종별·규모별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다. 모든 기업에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격차를 확대하고 가장 취약한 중소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

(2편에서 계속)

E.O.D


태훈
허태훈
전략적 사고와 실무 경험을 가진 '일' 잘하는 전문가
전략적 사고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일'잘하는 HR/ER 전문가 &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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