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직장인의 책상 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탑이 하나 서 있습니다. 밤샘으로 넘긴 마감, 엎어진 프로젝트, 거래처에서 면박당하고 돌아온 지하철 안에서 곱씹었던 문장들. 우리는 그 탑을 '경험'이라 부르고, 조금 점잖게는 '연륜'이라 불렀습니다.
신입은 절대 읽어내지 못하는 업계의 미묘한 기류, 문제가 터졌을 때 설명은 못 해도 방향은 아는 감각. 그건 시간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낸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영수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배는 후배 앞에서 당당했습니다. "너는 아직 몰라,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꼰대의 잔소리이기 이전에 살아남은 자의 증명이었으니까요.
그 위계가 흔들리는 데 걸린 시간은, 솔직히 말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입사 한 달 된 신입이 기획안을 들고 옵니다. 20년 차 부장이 일주일은 붙들고 있어야 나올 법한 구조와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자네, 이 업계 경험도 없으면서 이걸 어떻게 짰나?" 신입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합니다. "회사 지난 10년 치 리포트를 AI에 넣고, 글로벌 트렌드랑 엮어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올라오는 감정은 놀라움이 아닙니다. 배신감에 가깝습니다. 청춘을 갈아 넣어 한 땀 한 땀 쌓은 자산이, 기계 한 대에 복제되고 심지어 더 깔끔한 버전으로 출력됐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믿어왔습니다. 시간은 실력이라고, 1만 시간의 법칙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서늘한 문장 하나를 우리 앞에 놓습니다. 당신의 20년이 누군가의 3초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고.
이게 개인의 기분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데이터로 확인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연구진이 BCG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이른바 '들쭉날쭉한 기술의 최전선(Navigating the Jagged Technological Frontier)'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AI를 쓴 집단과 쓰지 않은 집단의 결과물을 비교했더니, AI를 쓴 쪽이 과제를 12% 이상 더 많이, 25% 이상 빠르게 끝냈습니다.
주목할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성과 하위 절반 그룹의 품질 점수가 43% 올랐고, 상위 절반 그룹은 17%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물론 17%도 결코 작은 숫자는 아닙니다. 다만 격차는 분명히 좁혀졌습니다. 잘하던 사람도 좋아졌지만, 못하던 사람이 훨씬 더 빠르게 따라붙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아둘 필요는 있습니다. 이 연구의 '하위 절반'은 어디까지나 BCG 컨설턴트 안에서의 하위 절반입니다. 애초에 평범한 표본이 아니죠. 그래서 이 결과를 "누구나 AI만 쓰면 베테랑이 된다"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실무를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이 그래프가 무엇을 예고하는지 직감적으로 압니다.
과거에는 베테랑과 신입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고, 그 강을 건너는 유일한 배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강의 수심이 눈에 띄게 얕아졌습니다. 입사 1년 차가 AI를 쥐고 맨몸의 20년 차와 붙어도 판정승을 노려볼 만한 상황이 된 겁니다.
이걸 '상향 평준화'라는 좋은 말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리더 입장에서 같은 현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변별력의 상실입니다. 내가 후배보다 연봉을 더 받고 결정권을 쥐고 있던 근거 하나가 조용히 빠져나간 셈이니까요.
지식은 이제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입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든 게 많은 사람이 리더였습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인간 데이터베이스가 대접받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검색창 하나로 끝납니다. 지식의 양으로 승부하고 경험의 두께로 눌러 앉히던 방식은 사실상 수명을 다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글로 못 적는 노하우, 암묵지(Tacit Knowledge)는 사람만의 영역 아닌가?"
오랫동안 우리의 위안이 되어준 논리입니다.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 협상 자리에서 상대의 표정을 읽고 카드를 꺼낼 타이밍을 잡는 감각. 매뉴얼로 옮겨지지 않는 영역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습니다.
20년 차 영업 부장이 "저 거래처, 이번엔 계약할 것 같은데"라고 말할 때, 그건 예지력이 아닙니다. 상대의 회신 속도, 말끝의 온도 변화, 최근 시장 상황 같은 신호를 무의식적으로 합산한 결과죠. 문제는 AI가 바로 그 신호들을 집요하게 긁어모으는 데 특화돼 있다는 점입니다. 메일 톤, 재무 지표, 뉴스 키워드를 엮어 "성사 확률 87%"라는 숫자를 내미는 순간, 부장의 감(感)은 검증 가능한 대상이 됩니다.
나만의 비기(祕技)라 여겼던 것이 알고리즘으로 분해되어 누구나 열어볼 수 있는 문서가 되는 것. 이게 암묵지의 범용화입니다. 트릭을 알고 나면 마술이 더 이상 마술이 아니듯, 데이터로 치환된 직관은 더 이상 권위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 감이 맞다"고 버티는 리더는 위태롭습니다. 구성원은 묻습니다. "그 판단의 근거가 뭔가요? 데이터는 반대인데요." 이 질문 앞에서 "척 보면 안다"는 대답은 설득이 아니라 고집입니다.
더 불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AI 시대에 경험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계상될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미래의 실패 요인이 되는 현상, 이른바 '성공의 덫'입니다. 20년의 경험은 결국 과거 데이터의 축적물입니다. 세상이 완만하게 변할 때는 어제의 정답이 내일도 정답일 확률이 높았습니다. 문제는 지금이 그런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마케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0년 전 대박을 냈던 15초 TV 광고의 문법은, 3초 안에 손가락을 붙잡지 못하면 끝나는 숏폼 시장에서 거의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회의실에서는 "예전엔 이렇게 해서 됐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순간 풍부한 경험은 통찰이 아니라 편향으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AI는 편향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AI는 학습 데이터에 담긴 편향을 고스란히, 때로는 증폭해서 뱉어냅니다. 다만 성격이 다릅니다. AI는 자기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지 않고, 새 데이터가 들어오면 어제 한 말을 고집 없이 뒤집습니다. 자존심이 없다는 게 약점이자 강점인 셈이죠.
그래서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리더는 무능한 리더가 아닙니다. 과거에 유능했던 리더입니다. 자기 성공 경험을 근거로 데이터의 경고를 무시하는 확신, 그 확신이 조직을 조용히 벼랑으로 밉니다.
그렇다고 20년이 통째로 쓸모없어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AI는 답을 만들지만 질문을 정하지는 못하고, 선택지를 늘려주지만 그중 하나를 골라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문제를 지금 풀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 조직의 정치적 지형을 읽고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번역하는 일, 잘못됐을 때 앞에 서는 일. 여기엔 여전히 사람의 이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가치는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매번 증명해야 합니다. 예전엔 직급이 증명서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억울하실 겁니다. 내가 이 조직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데 기계 한 대가 내 이력을 무효화하나 싶어 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화를 구성원에게 쏟는 순간, 존경받는 선배에서 피하고 싶은 상사로 좌표가 옮겨갑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후배가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얻는 환경에서 '가르침'은 예전만큼의 권위를 갖지 못합니다. 대신 물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참 어린 후배에게, 때로는 감정 없는 기계에게.
"이건 어떻게 하는 건가?" "자네 생각은 어떤가?" "AI는 뭐라고 하던가?"
이 세 마디를 꺼낼 수 있는 용기, 내 직관이 낡았을 수 있음을 먼저 인정하는 태도. 어쩌면 그게 AI가 흉내 내기 가장 어려운, 그리고 사람 리더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품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의 배신 앞에서 할 일은 배신자를 원망하는 게 아닙니다. 손에 쥔 낡은 지도를 일단 내려놓는 겁니다. 지도를 접어야 비로소 눈앞의 길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