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기업 현장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AX(AI Experience·Transformation) 전환’이다. 내가 속한 조직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경영진부터 현장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AI를 활용한 생산성 혁신을 외치고 있고, HR 역시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조직과 구성원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HR을 담당하는 팀을 이끄는 리드로서 구성원들을 매니징하고,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내며, 조직의 변화를 드라이브하는 과정에서 나는 매일 깊은 고민에 빠진다.
"AI가 테크니컬한 행정과 파편화된 기능적 업무를 빠르게 대체해 나가는 지금, 우리 HR 담당자들은 어떤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가? 단순히 특정 세부 기능에만 몰입하는 방식을 넘어, 이 복잡하고 빠른 변화의 파도를 넘을 수 있는 통찰은 어디서 오는가?"
변화의 한복판에서 조직을 이끌어볼수록 더욱 명확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AI 트렌드가 거세질수록 오히려 인사 운영의 전 과정을 연결해서 볼 수 있는 'HR Generalist(제너럴리스트)'의 필요성과 직무 영역 확장에 대한 니즈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점이다.
AX 시대에 HR 리드로서 고민했던 성장의 본질, 그리고 유통 대기업 현장에서부터 10년 넘는 기간을 HR 전반을 다루며 체득한 ‘HR Generalist로의 영역 확장’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나의 HR 커리어는 유통 대기업의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입사 초기 내 직무는 유통업의 꽃이라 불리는 ‘영업관리’였다. 당시 회사는 "현장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신규 채용 역시 영업관리 직무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인력이 급증했고, 사람을 뽑고 교육할 내부 담당자가 절실해졌다. 바로 그 시점, 사내 공모(Job-posting) 및 순환보직 제도를 통해 입사 3개월 만에 HR로 직무를 전환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는 아니었고 처음부터 희망직무는 HR로 설정했고, 그룹/자사 신입사원 입문교육 및 각종 회사의 교육 및 캠퍼스 리크루팅 등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HR부서에 좋은 인상을 주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1,500명이 넘는 거대한 유통 조직은 철저히 ‘시스템’으로 움직였다. 영업, 점포개발, 상품, Staff로 나뉜 체계 속에서 3년 주기의 순환보직 제도를 운영하여 직무 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체 불가능한 인재는 없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누구 한 사람이 빠져도 조직은 시스템에 의해 흔들림 없이 돌아갔다.
이러한 대기업 시스템 속에서 내가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HR 내에서 내 영역을 계속해서 넓혀가는 ‘HR Generalist(제너럴리스트)’로의 성장이었다. (나의 선택 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룹 차원에서의 관리담당자 양성과정에 투입되기도 했고 HR 직무담당자로서 회사에서 투입한 비용대비 ROI를 위해서 전략적으로 잔류인원으로 편성되기도 했었다.)
첫 HR 업무는 신입사원 입문 교육(HRD) 설계였다. 자사 공채로 들어온 신입사원들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과 필수 역량 과정을 기획하며 HR의 첫발을 뗐다. 이후 HRM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사 운영의 전반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HR의 성장은 단순히 ‘업무 종류가 늘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핵심은 ‘내가 취급하는 HR 정보의 난이도와 깊이가 확장되는 과정’이었다.
1단계 (기초 행정 및 데이터): 자사 채용, 입퇴사 데이터 관리, 인사시스템 입력, 휴/복직, 모성보호 등 기본 인사정보 다루기
2단계 (운영 및 실행): 그룹 공채 및 경력 채용, 사내 이동 및 잡포스팅, 징계 인사위원회 운영, 대리 이하 승진 및 인건비 보고서 작성
3단계 (전략 및 핵심 권한):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 승진, 포상/상벌 관리, 인사평가, 보상 구조 및 임원 정보 관리
신입 시절의 단순 데이터 입력부터 시작해 평가, 보상, 그리고 임원 정보 영역까지 단계적으로 취급 정보를 확장해 나갔다. 모든 세부 업무를 일일이 다 집행해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HR의 전체 밸류체인(Value Chain)이 어떻게 연결되고 흘러가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팀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때론 준비되지 않은 구성원이 난이도(?) 높은 HR 정보를 너무 이른 시기에 공유받아 받는 부작용이 생기는 사례도 목격하곤 한다. 취급 정보의 단계적 확장도 분명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넓어진 시야는 나에게 강력한 자산이 되었다. 생소한 HR 과제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져도 "이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선을 긋는 대신, "결국 인사 운영의 맥락 속에 있는 일이고, 나에게는 또 다른 자산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 없는 마인드셋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HR 업계는 AI의 등장과 직무 전문화(Specialist) 트렌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분석, 채용 브랜딩, 노무, 평가제도 설계 등 특정 영역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의 가치가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HR Generalist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직무의 경계도 없는 Generalist의 가치까지 생각하게 된다.)
AI와 자동화 툴은 파편화된 데이터 수집, 단순 행정 처리, 서류 스크리닝 등 기존 HR의 테크니컬하고 반복적인 업무들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물론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스페셜리스트의 깊이 있는 전문성은 여전히 매우 소중하다. 다만,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또 다른 핵심 영역이 있다. 바로 '파편화된 인사 기능들을 비즈니스 맥락에 맞게 연결하고 해석하는 종합적 통찰력'이다.
채용 하나를 하더라도 조직의 평가 구조, 보상 체계, 그리고 사내 문화와 인적 구성(R&R)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HRer가 내리는 의사결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체 판을 볼 수 있는 HR Generalist만이 AI가 제공하는 파편화된 정보들을 조합하여 조직의 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사실 대기업과 달리 일반적인 중견/중소기업이나 성장기 스타트업은 인력 버퍼(Buffer)가 부족하다. HR 팀 내 R&R이 빠듯하게 나뉘어 있어, 담당자가 스스로 기능을 확장하며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는 환경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HRer들에게 다음 세 가지 마인드셋을 제안하고 싶다.
'내 업무의 다음 단계 정보'에 호기심을 가질 것
단순히 인사이동 발령 값을 입력하는 행정에 그치지 않고, ‘이 평가 결과가 보상과 승진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조와 맥락을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 취급하는 정보의 수준을 한 단계씩 올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일이 아니다"라는 경계를 허물 것
HRD 담당자라도 HRM의 채용과 평가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HRM 담당자라도 조직문화와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계를 넘어선 경험 하나하나가 훗날 전체 HR을 조망하는 훌륭한 자산이 된다.
AI를 내 테스크의 대체재가 아닌 '시야 확장의 도구'로 활용할 것
반복적이고 파편화된 행정 업무는 AI와 시스템에 맡기고, 확보된 시간 동안 조직 전체의 인적 자원 흐름을 고민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시각을 올려야 한다.
12년 전, 영업 현장에서 시작해 HR의 수많은 기능을 단계적으로 거쳐온 나의 여정은 결국 ‘조직과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만들어 주었다.
급변하는 AI 트렌드 속에서 커리어의 불안감을 느끼는 HRer가 있다면 감히 말하고 싶다.
특정 기능의 전문성(Specialty)을 다지는 것도 훌륭한 길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HR의 전체 생태계를 읽고 연결할 수 있는 '강력한 HR Generalist'로의 영역 확장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넓고 깊은 경험의 궤적이 결국 대체 불가능한 당신만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