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리더십 서베이를 해보면 전사 평균이 가장 낮은 요인이 뭘까? 작년에도 제일 낮았고 올해도 최저이며, 아마 내년에도 가장 낮은 요인. 바로 ‘구성원의 성장과 역량 개발을 지원한다’,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와 같은 '인재 육성' 관련 요인이다. 서베이 결과만으로 보면 리더들이 구성원 성장에 충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리더에게 변명의 기회를 줘 보자.
"저는 팀원 각자에게 사내 교육과정에 참여하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업무 처리에 필요한 조언은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성과 평가 시즌에는 피드백을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해줍니다."
하지만 구성원이 생각하는 기준은 다르다.
"저에게 더 큰 일을 맡겨 주지 않아요."
"저의 성장 가능성을 진지하게 논의해 본 기억이 없어요."
"성과 피드백은 연례 행사에요."
많은 조직에서 발생하는 리더와 구성원의 동상이몽 사례다. 이처럼 리더의 선의가 구성원의 성장 경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서베이 점수 분포는 매년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AI의 확산은 이 오래된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직무 내용과 필요 역량이 빠르게 바뀌면서 과거의 육성 방식만으로는 구성원의 미래 성장을 지원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장 경로는 단순했다. 한 직무에서 경험을 차곡차곡 쌓고, 일정 연차에 다다르면 더 높은 직급과 책임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직도와 경력 경로는 대체로 일치했다. 지금은 직급 상승 외에도 직무 전환, 전문성 확장,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수행 등을 통해 구성원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한 사람의 경쟁력도 직무명 하나보다 여러 역량의 조합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마케팅 담당자가 데이터 분석과 생성형 AI 활용 능력을 갖추면 고객 인사이트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진다. 재무 담당자가 AI Agent와 사업 이해를 결합하면 숫자를 정리하는 역할을 넘어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이제 구성원과의 커리어 성장 면담도 바뀌어야 한다. “OO씨, 승진 연차가 몇년 남았지?"라는 대화방식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나요?”라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HR은 획일적인 경력 사다리와 교육체계를 다시 살펴야 한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역할 이동, 단기 직무 경험, 사내 Talent Market 등을 통해 구성원이 자신만의 역량 포트폴리오를 쌓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AI는 구성원이 만드는 결과물의 속도와 질을 빠르게 향상시킨다.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도 자료를 조사하고 보고서 초안을 만드는 시간이 매우 빨라졌다. 문제는 양질의 결과물이 빠르게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의 역량까지 성장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AI가 대부분의 사고 과정을 대신하면 구성원은 그럴듯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논리를 세우며 오류를 발견하는 힘을 기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사, 요약, 초안 작성과 같은 기초 업무는 신입 구성원이 조직의 맥락과 일의 원리를 배우는 통로였다. 이러한 과업이 빠르게 자동화되면서 경력 초기의 학습 경로에 빈 틈이 생기고 있다.
아직도 현장에서 AI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만 확인하고 있는가?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에 어떤 역할을 맡기고, 구성원이 어떤 판단을 직접 수행하며, 무엇을 새롭게 배웠는지를 HR과 리더가 함께 살펴야 한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 기능하면서도 사람의 사고력과 전문성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일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시대에도 인재육성의 핵심은 실제 경험이다. 교육과정은 새로운 개념과 도구를 익히는 데 도움을 주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따라 주어야 탄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다. 구성원에게 현재 능력보다 조금 어려운(CbA, Challenging but Achievable) 과제를 맡기고, 시도와 피드백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리더는 과제를 줄 때 학습 목표도 함께 합의할 수 있다. 이번 업무에서 구성원이 직접 판단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AI를 활용해도 되는 영역은 어디인지, 중간에 누구의 피드백을 받을지를 함께 정하는 것이다. 업무가 끝난 뒤에는 결과와 함께 사고 과정도 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가?”
“AI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부분은 없었는가?”
“다음에는 어떤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이 반복될 때 일상적인 업무가 성장의 장으로 바뀐다.
구성원을 키우려는 리더가 모든 것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기술과 전문지식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는 리더도 모든 답을 알기 어렵다. 대신 구성원이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정기적으로 성장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현재의 강점,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연결하고, 향후 6개월 동안 개발할 역량과 이를 연습할 과제를 정한다.
둘째, 까다로운 사고 과정을 남겨 두어야 한다. 리더나 AI가 답을 너무 빨리 제공하면 구성원이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줄어든다.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제안을 검증하며,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도록 기다려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피드백의 초점을 넓혀야 한다. 결과의 완성도와 일정 준수뿐 아니라 문제를 바라본 방식, 협업 과정, AI 활용, 판단의 근거까지 피드백해야 한다.
넷째, 사람과 기회를 연결해야 한다. 타 부서 프로젝트, 고객 접점, 멘토, 전문가, 새로운 역할과의 만남이 성장의 폭을 넓힌다. 인재를 자신의 팀 안에만 붙잡아 두면 개인과 조직 모두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인재육성을 리더 개인의 관심과 선의에만 맡겨 두면 조직마다 편차가 커진다. HR은 육성 행동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성장 면담을 평가 일정과 분리해 운영하고, 구성원마다 개발할 역량과 실전 과제를 기록하도록 할 수 있다. 리더 평가에도 인재 이동, 후계자 육성, 피드백의 질, 구성원의 역량 향상과 같은 지표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내부 프로젝트와 직무 이동 기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인재를 다른 조직으로 보내는 리더가 손해 보지 않도록 제도도 조정해야 한다.
리더 교육 역시 코칭 기법 전달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AI와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구성원의 사고력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과제를 어떻게 설계할지, 성장 가능성이 각기 다른 구성원들에게 어떤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지를 다루어야 한다.
AI는 사람이 과제를 해결하는 시간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그렇다고 성장에 필요한 성찰과 시행착오까지 모두 없애서는 안 된다. 과제 해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HR은 구성원에게 어떤 역량이 실제로 남고 있는지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아직도 교육과정 수와 구성원의 교육 이수 시간을 HRD의 핵심 KPI로 삼고 있는가? AI 시대에는 교육 참여량만으로는 구성원 성장의 지표로 삼기에 한계가 있다. 구성원이 이전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는지, AI가 제시한 답을 검증하며 자신의 판단력을 키웠는지, 새로운 프로젝트와 역할로 활동 영역을 넓혔는지를 동시에 살펴야 한다.
HRD의 무대도 이제 강의장을 벗어나 업무 현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리더는 구성원에게 도전적인 과제와 실험할 여지, 적시 피드백, 새로운 사람과 역할을 만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을 마친 뒤 현업에 적용하기를 수동적으로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일과 학습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시대의 인재육성 공식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구성원이 AI와 함께 일하면서 더 넓고 깊게 배우고, 더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앞으로 HRD가 증명해야 할 성과는 사람과 일의 실질적인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