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영상은 2025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동행한 젠슨 황이 영국 기자들 앞에서 한 인터뷰다. 엔비디아가 영국에 GPU 12만 개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투자 이유에 대한 설명도 의미있었지만, 인터뷰 후반에 젠슨 황이 언급한 '메타 스킬'이 리더십과 HR 관점에서는 더 흥미로왔다.
https://youtu.be/RMO9jSaYAnw?si=MQAR7EM2O8wCCQ3q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기자가 묻는다. (영상의 3분 57초 지점)
"젊은이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은 당신의 리더십에 영감을 받고 또 인공지능 붐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법률, 회계, 창의 산업 분야로 진출하려는 이들 중 일부는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상황을 목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도 전에 말이죠.
이런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가장 직접적으로 조언하시겠습니까?"
젠슨 황이 답한다.
"AI는 모두의 일자리를 바꿔버릴 겁니다.
제 일도 이미 바뀌었고, 모두의 일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들은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일들이 추가되며, 모두의 일이 변화하게 되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대체 불가능한 메타 스킬'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운을 떼면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인 능력으로 아래와 같은 메타스킬 4가지를 언급했다.
1. 비판적 사고능력(Critical Thinking): AI가 쏟아내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데이터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
2. 배우는 법을 배우는 능력(Learning how to learn): 기술의 유효기간이 급격히 짧아지는 시대에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배우고 적응하는 능력
3. 관계 형성 및 타협 능력(Relationship & Compromise):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협력하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며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
4. 팀워크를 이끌어 내는 능력 (Teamwork & Inspiration):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 영감을 불어 넣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능력
다 맞고 중요한 스킬이다. 젠슨 황께서 말씀하셨으니 토를 달거나 반박하기도 쫄린다. 그래도 뭔가 다른 관점이 있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학술적인 연구를 찾아보니, 역시나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에서 2025년 10월에 발간한 아티클이 있었다. 미국의 모든 직업 정보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놓은 Occupational Information Network (O*NET)을 활용한 논문이다. (이런게 미국의 진정한 힘이지 싶다. 토마호크 미사일 말고…)

이 논문의 Key Question은 “어떤 인간 역량이 AI와 상호보완성을 갖는가”이다. 연구자들은 '시대'라는 의미인 EPOCH의 첫 글자를 따서 Empathy, Presence, Opinion, Creativity, Hope라는 5가지 Complementary Capabilities를 정의한다. 각각의 의미를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Empathy (공감과 감성지능)
Presence (존재감과 연결력)
Opinion (윤리적 판단과 가치 기반 의사결정)
Creativity (창의성과 상상력)
Hope (희망과 비전 리더십)
논문은 이 다섯 가지를 AI가 강해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고난도 인간 역량으로 본다. 영문으로는 'Skill'이 아니라 'Capability'라는 표현을 쓴다. Skill이 특정 과제를 잘 수행하는 능력이라면, Capability는 모호하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여러 스킬을 통합해 적용하는 더 넓은 능력이라고 정의된다.
저자들은 AI가 아직 인간보다 취약한 영역으로 아래와 같은 5가지를 언급한다. (이마저도 언젠가는 AI가 더 우월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1. 작은 데이터로부터의 추론 (Small Data Inference)
AI는 대규모 데이터의 패턴 인식에는 강하지만, 데이터가 적거나 편향되어 있거나 희귀한 사건을 다룰 때 한계를 보인다. 인간은 단순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 구조와 맥락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다.
2. 학습 경계 밖으로의 외삽 (Extrapolation Beyond Training Boundaries)
AI는 훈련 데이터 안에서의 보간(interpolation)에는 강하지만, 전혀 다른 맥락으로 지식을 옮겨 적용하는 데에는 취약하다. 이는 창의적 사고, 전이학습, 모호한 언어 이해, 예술적 독창성의 문제와 연결된다.
3. 정답이 하나가 아닌 문제 (Multiple Justifiable Solutions)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하나가 아니다. 서로 충돌하지만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 대안들이 존재한다. 전략, 인사, 윤리, 조직문화 차원의 문제 대부분이 그렇다.
4. 도덕적 딜레마 (Moral dilemmas)
도덕적인 문제는 해결책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 문제 정의도 모호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규범적 기준을 합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AI 시스템에서 이러한 문제를 인코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설령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인코딩이 가능할지라도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AI의 적용 가능성은 여전히 제한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5. 관계적 결과 (Relational Outcomes)
어떤 의사결정은 답을 찾는 것보다,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신뢰를 형성하며 공동의 경험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는 사회적 단서나 암묵적 소통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상호 관계 형성에는 한계가 있다.
6. 가치 기반 판단 (Subjective Beliefs and Value-Driven Decisions)
때로는 데이터가 말하는 방향과 다른 결정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시민권, 여성권, 사회적 정의를 향한 변화는 당시의 데이터가 지지하지 않는 신념에서 출발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Opinion, 즉 윤리적 판단과 가치 기반 의사결정이 중요해진다.
연구자들은 미국 직업정보 데이터베이스인 O*NET의 직무 데이터를 활용해 2016년과 2024년의 과업 변화를 비교했다. 약 19,000개의 과업, 947개 직업을 대상으로 분석했고, 직업별로 세 가지 점수를 만들었다.
1. EPOCH 점수 : 해당 직무가 얼마나 인간 중심 역량을 많이 요구하는지 측정
2. 자동화 위험 점수 :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정도를 측정
3. 증강 가능성 점수 : AI가 어떤 과업을 도와줌으로써 다른 인간 과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정도를 측정
본 연구의 특징은 과업을 독립된 단위로 보지 않고, 과업 간 상호의존 네트워크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자동화된 과업이 전체 직무를 대체하는지, 아니면 다른 과업을 더 잘하게 만드는지는 그 과업이 직무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1. 새롭게 등장한 과업일수록 EPOCH 점수가 높다.
2024년에 새롭게 추가된 과업들은 기존 과업이나 사라진 과업보다 EPOCH 점수가 높았다. 즉, 일이 사라지는 동시에 새롭게 생기는 일은 더 인간 중심적인 역량을 요구하고 있었다.
2. EPOCH 점수가 높은 과업의 수행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논문은 O*NET의 과업 수행 빈도 데이터를 활용해 2016년부터 2024년까지의 변화를 보았는데, 인간 중심 과업이 일상 업무 속에서 더 자주 수행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3. EPOCH 점수가 높은 직업일수록 고용 성과가 좋다.
2015~2023년 고용 성장, 2025년 현재 채용률, 2034년까지의 고용 전망에서 EPOCH 점수가 높은 직업들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반대로 자동화 위험 점수가 높은 직업들은 과거 고용, 현재 채용, 미래 전망 모두에서 부정적 결과를 보였다.
※ 주의할 사항
증강 가능성 점수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논문은 AI 증강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어도, 반드시 더 많은 일자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논문이 밝혀낸 Empathy, Presence, Opinion, Creativity, Hope라는 5가지 Complementary Capabilities는 AI 시대의 리더십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리더십 관점에서 공감(Empathy)은 구성원의 감정, 동기, 불안, 이해관계, 숨은 저항을 읽어내는 중요한 능력이다. 대부분의 혁신전략이 실패하는 이유는 구성원이 변화와 혁신을 어떻게 느끼는지 의사결정자들이 읽어내지 못해서이다.
AI 도입도 마찬가지. 기업들이 AI을 통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OI(Operation Improvement)'나 ‘업무 효율화’다. 구성원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일단 “내 일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나는 이제 쓸모없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 앞선다. 따라서 AI 시대의 리더는 새로운 기술 도입에 따른 구성원들의 불안을 해석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감정의 번역자'가 되어야 한다.
존재감(Presence)는 흔히 리더의 카리스마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리더의 진정한 존재감은 구성원이 “이 사람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능력이다. 디지털 협업과 AI 자동화가 확산될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더 강한 연결감과 신뢰를 필요로 한다.
허드렛일을 하느라 낭비되던 시간을 AI가 줄여주면 리더는 남는 시간을 스스로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일에 써야 한다. 구성원과의 1on1, 일의 의미와 맥락 공유, 갈등 조율 등을 통해 구성원과 강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는 빠르게 분석한다. 그러나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어떤 부작용을 감수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이 판단해야 한다. 특히 Opinion은 리더십에서 매우 중요하다. 데이터와 가치가 충돌할 때 자신만의 명확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구성원이 AI를 활용한 분석결과를 가지고 왔다면 리더는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보는가?”, “이 결정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한 맥락은 무엇인가?”
AI는 아이디어를 무한정 생산해 낼 수 있다. 아이디어의 양을 가지고 인간은 AI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리더의 Creativity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능력에 있다. “이 문제를 정말 해결해야 하는가?”, “우리가 놓친 전제는 무엇인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상황은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묻는 능력이다. 리더는 AI가 빠르게 내놓는 답에 휘둘리지 말고 차원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존 프레임을 흔들고 깨부수는 리더의 창의성이다.
Hope는 이 논문의 다섯 역량 중 리더십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AI 전환기에는 누구나 불안하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역할은 모호해지고, 성장 경로는 불안하다. 이때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진정한 Hope는 현실의 어려움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와 “그럼에도 무엇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가”를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다섯가지 역량을 리더십 개발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역량 모델링 기반의 리더십 개발은 AI 시대에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문제해결, 성과관리, 코칭, 커뮤니케이션을 각각 별도 모듈로 가르치는 얄팍한 Skill 위주의 접근은 이제 식상하다. 'EPOCH'가 시사하는 통합적인 과제 해결 능력을 리더가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모호한 상황에서 판단하기, 데이터와 가치의 충돌 다루기, AI가 만든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기, 구성원의 불안을 의미로 전환하기,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연결하기 등과 같은 과제들 말이다.
아직도 임원, 팀장 교육에서 AI Tool 활용법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의 사례가 많다. 물론 요즘 시대에 리더가 스스로 AI를 활용할 줄 알아야 구성원을 관리하고 육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Tool 활용법 교육에서 멈추는 것이다. 이제는 AI 시대에 리더의 시간을 어디에 투입해야 하는지를 묻고 고민하게 만드는 교육, AI를 통해 우리 조직의 업무를 어떻게 재설계하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Source: https://contextual.ai/plotting-progress-in-ai
AI는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했다. 위의 표에서 보듯 인지능력 측면에서 AI와 '맞다이' 떠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AI가 계산할 수 없는 맥락을 읽고, AI가 선택할 수 없는 가치를 세우며, AI가 만들어낼 수 없는 신뢰와 희망을 조직 안에 형성하는 능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