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박주용 교수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복합계·네트워크 과학을 연구하면서 과학과 문화의 접점에서 인간의 창의성을 탐구하는 ‘문화물리학자’다.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는 AI 시대에 인간의 창의성과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묻는 교양과학서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AI는 무언가를 ‘생성’할 수 있지만 미래는 자동으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미래는 인간이 질문하고 선택하고 연결하고 책임지면서 만들어 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물리학과 수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 영화, 철학, 언어, 고대 신화까지 넘나든다. 뉴턴과 괴테, 베르메르와 모네, 존 케이지와 스탠리 큐브릭, 튜링과 비트겐슈타인 같은 인물들을 통해 과학과 문화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함께 진화해 온 창의성의 두 축임을 보여준다.
과학은 절대적 진리의 집합인가? 저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과학의 역사는 기존의 믿음과 도그마가 새로운 관찰과 질문에 의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었다. 미래를 향한 사고에는 논리와 분석뿐 아니라 감각, 상상력, 직관, 즉흥성이 함께 필요하다. 저자는 뉴턴의 이성과 괴테의 감각, 고전적 사고와 낭만적 사고를 대비시키며 복잡한 현실을 논리와 환원주의만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의 한계를 지적한다.
인간은 현실을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재현하려는 욕망을 품어 왔다. 이러한 욕망은 원근법, 사진, 음향 기록, 디지털 기술, 컴퓨터그래픽, 생성형 AI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술이 예술을 정교하게 모방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의 창작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술의 핵심은 형식을 재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선택하는 주관성과 경험에 있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다. 변기를 전시관에 가져다 놓은 작가의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았다면 현대 미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과거의 흥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안전한 작품만 선택한다면 전례 없는 혁신은 등장하기 어렵다.

창의성은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인간과 사회에 의미 있는 연결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질서가 지나치면 반복과 관성이 지배하고, 무질서가 지나치면 아이디어가 축적되거나 실현되지 못한다. 창의성은 완전한 안정도, 완전한 혼란도 아닌 그 경계에서 발생한다. 모네, 존 케이지, 앤디 워홀과 같은 예술가들은 기존 질서를 완전히 버리기보다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생성형 AI는 사람처럼 말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하지만 박주용 교수는 유창하게 말을 만들어 내는 것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다르다고 본다. 사람의 말에는 경험, 의도, 관계, 침묵, 윤리적 책임이 녹아 있다. 반면 생각하지 않고 반복되는 상투어와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조직과 사회의 판단력을 흐린다. AI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무엇을 왜 말하는지, 그 말에 누가 책임지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책의 마지막 장은 네트워크 과학을 통해 사람과 아이디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설명한다. 고립된 개인이 내놓는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전 세대의 지식과 동료의 관점, 사회적 경험이 연결되면서 생겨난다. 따라서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공감하며 집단적 창의성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미래는 서로 연결된 인간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 이제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리더십과 조직문화 관점에서 시사점을 찾아보자.
과거에는 뛰어난 리더를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누구나 데이터와 예측 모델을 활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미래 예측력은 이제 리더의 차별적인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직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리더에겐 더 중요하다.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선택지의 포트폴리오를 단단하게 구축하기 위해서 리더는 아래와 같은 고민을 선도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전제는 무엇인가?
그 전제가 틀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지금 작게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미래를 원하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규정과 절차가 지나치게 강하면 사람들은 정답을 맞추는 데 익숙해진다. 반대로 자유만 강조하면 아이디어는 많지만 실행과 학습이 축적되지 않는다. 따라서 리더는 조직에 최소한의 질서와 충분한 실험 공간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이는 목표, 고객 가치, 윤리적 원칙은 명확하게 정하되 방법까지 세세하게 통제하지 않는 것이다. 작은 실험, 빠른 피드백, 실패의 기록, 실험 간 비교가 일상화될 때 조직은 혼돈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경계가 분명한 자율성 부여는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생성형 AI는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게 대안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기록이다. 사람에게 의미 있는 창의적 연결은 고객을 직접 만나고, 때론 실패를 경험하며,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이 책의 저자도 진정한 창의성은 무작위 연결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현장을 직접 관찰하는 시간, 고객과 대화하는 경험,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암묵지, 구성원의 직관과 문제의식 등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AI로 보고서와 이메일, 회의자료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조직에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텍스트와 문서가 생산된다. 그러나 언어의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소통의 품질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AI 시대 리더는 조직 안에서 다음과 같은 언어 규범을 세우고, 생각없는 말이 조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실, 가정, 해석을 구분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이견과 반론을 감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중요한 판단에는 작성자와 책임자를 분명히 한다.
유창한 표현보다 근거와 맥락을 확인한다.
창의성은 개인의 고정된 특성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이 연결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흔히 창의적인 인재를 중용하면 혁신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직도 창의적 인재 찾기에 골몰하는 조직이 있다면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창의적 '연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기능 간 협업, 세대 간 대화, 외부 전문가와의 교류, 직무 순환, 커뮤니티 활동, 우연한 만남의 공간을 늘리는 것이 창의적 연결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비슷한 사람들만 모인 고성과 팀보다 서로 다른 전문성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충돌하는 팀이 게임의 룰을 바꾸는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는 AI가 많은 것을 만들어 주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아울러 우리가 의문을 제기해야 할 기존 질서는 무엇인지, 우리가 연결해야 할 서로 다른 경험은 무엇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공해 준다. AI 활용 기술 책을 읽다가 현타가 온다면 잠시 그 책을 내려놓고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