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팀원이 회의 중에 ChatGPT 화면을 펼쳐 보이며 "AI가 이 방식이 더 낫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예의 없이 군 것도 아닌데 그 팀장은 묘하게 당혹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압니다.
경험이 무기였던 사람에게 "AI가 더 잘 안다"는 말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거든요.
HR 담당자인 저도 솔직히 비슷한 감각을 느낍니다.
교육 과정 설계하고, 인재 육성 방향 고민하고, 조직 진단 도구 구축하는 일들 — AI는 그 모든 영역에 빠르고 그럴듯한 답을 내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우리가 몇 주 동안 고민한 걸 AI가 5분 만에 뽑아내는 세상에서, 내가 설계해야 할 역량은 대체 뭐지?'
"AI는 데이터를 버무려 가장 무난한 답을 줍니다.
문제는 그 답이 우리 조직의 질문에서 나온 건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BCG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는 꽤 유명합니다.
AI를 활용한 그룹은 작업 속도가 25% 빨라졌고, 결과 품질도 40% 이상 올랐습니다.
여기까지는 많이들 인용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이 연구에서 덜 주목받은 대목이 있습니다.
복잡한 비즈니스 문제를 다룬 과제에서는 AI 활용 그룹의 오답률이 오히려 19% 포인트 더 높았다는 겁니다. AI가 자신 있게 틀린 답을 내놓자, 사람들이 그냥 믿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이걸 '잘못 조정된 믿음'이라고 불렀는데,
HR 관점에서 저는 이게 단순히 AI 활용법의 문제가 아니라 역량 설계의 문제라고 읽었습니다.
우리가 구성원들에게 AI를 쓰게 하면서, 정작 AI가 틀렸을 때 그걸 알아채는 감각은 기르고 있는지
— 그 질문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HR이 놓치고 있는 것
요즘 많은 기업들이 'AI 리터러시 교육'을 도입합니다.
프롬프트 잘 쓰는 법, 어떤 툴이 어디에 유용한지 — 이런 내용입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건 AI라는 도구를 잘 다루는 법이지,
AI 시대에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AI가 끝내 읽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객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요청을 해왔는지, 팀 안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 프로젝트가 내부 정치 지형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이런 맥락은 데이터가 없습니다.
직접 경험하고, 틀리고, 부딪혀 봐야만 쌓이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게 AI 시대에 가장 희귀하고 가장 귀한 역량이 됩니다.
HR 담당자로서 지금 고민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실패할 기회를 설계하고 있는가.
AI가 그럴듯한 오답을 낼 때 '뭔가 이상한데'를 느끼는 건,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가진 감각입니다.
구성원들이 AI 없이 부딪혀보는 경험,
느리더라도 스스로 판단해보는 과정을 우리가 충분히 허용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둘째, '왜'를 묻는 리더를 키우고 있는가.
AI는 '어떻게' 실행할지를 빠르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왜 이 일을 하는가'는 AI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리더십 교육이 실행 속도나 성과 관리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본질을 묻는 능력은 점점 퇴화합니다.
셋째, AI 결과물을 검증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는가.
"AI가 이렇게 했어요"로 보고가 끝나는 조직은 위험합니다.
"이게 우리 팀의 맥락에 맞는가, 어디서 의심해야 하는가"를 물어보는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건 교육 한 번으로 되는 게 아니라, 리더가 매일 그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최근 조직 내 역량 프레임워크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는 작업입니다.
예전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정보를 어떻게 검토하고 맥락화하는가'가 핵심이 됩니다.
팀원이 AI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이게 우리 상황에서 틀릴 수 있는 이유가 뭘까?"라고 같이 고민하는 리더. 그 리더를 만드는 것, 그게 지금 HR이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AI는 누구보다 명쾌하고 빠르게 답을 줍니다.
하지만 그 답이 우리 조직에 맞는 질문에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건, 아직도 — 그리고 앞으로도 —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 조직의 인재 육성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AI만 잘 쓰는 사람을 키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AI를 검증하는 문화를 만드는 리더를 키우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