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AI를 빼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정도로 어딜 가든 AI와 관련된 내용이 넘쳐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AI 전문가가 참 많다는 생각도 든다.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내년도 사업계획에 'AI 컨설턴트로 역할 전환'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나 역시 AI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AI'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반항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사관리와 AI의 사례를 찾아다니다 보면 세계적인 기업의 사례를 필두로 'AI가 이력서를 대신 검토해주고, 감정분석을 하며,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획서를 작성해준다'와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 모든 사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효율성, 다시 말해 노동시간의 단축에 따른 효율성 강화.
과거 노동경제학을 나름 많이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AI 내용을 볼때마다 'Y = L × K' 함수가 떠올랐다. 생산량(Y)은 노동(L)과 자본(K)의 곱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은 자본(K)을 고도화하여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과거 공장 자동화가 그랬고, ERP 시스템의 개발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생산량(Y)은 그대로 둔 채 노동(L)을 감소시켜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이력서 스크리닝 자동화 → 채용 담당자 검토 시간 단축
보고서 초안 작성 → 실무자 작성 시간 단축
단순·반복 업무 자동화 → 처리 인력 감축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온다. 이력서를 빨리 거르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인가? 전통적인 생산성 개념으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이력서를 처리했으니 효율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을 던져보자.
AI가 이력서를 빨리 거르면 정말 더 좋은 인재를 뽑는가?
보고서를 빨리 쓰면 정말 더 나은 의사결정이 나오는가?
시간을 아끼면 그 시간에 정말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답은 '아니다'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프로세스의 속도를 높였을 뿐 아웃풋의 질이나 가치를 높이지 못했다. 더 빠르게 움직였지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AI는 노동(L)의 질을 변화시키는 촉매여야 한다. 여기서 L는 노동량이 아니라 창의성, 판단력,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고도화된 노동'을 의미한다. 아래 두 수식의 차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천지 차이다. 전자는 AI를 사람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이고 후자는 AI를 사람을 더 잘 쓰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이다.
기존 관점: Y = f(L↓, K↑)
→ 같은 Y를 더 적은 L로 만든다
전환된 관점: Y = f(L*↑, K)
→ 더 큰 Y를 같은 L로 만든다
결국 AI를 활용하여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업무 절차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질'이다.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AI는 시간을 줄여주는 도구가 아니다. 경영진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