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AI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산만함이 일상이 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메신저 알림, 이메일, 끝나지 않는 회의, 각종 보고서와 리포트, 그리고 매달 새로 등장하는 AI 툴까지. 하루에 사용하는 업무 도구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환경만 바뀌었을 뿐, 사람의 뇌는 여전히 과거의 한계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조직과 HR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뇌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 부르며,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보는 평균 2~4개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동시에 처
리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빠르게 전환하며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전환 과정에서 뇌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게 가장 중요하고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할까? 이 판단 자체가 이미 전전두엽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고도의 인지 활동이며, 집중의 우선순위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만약 상사의 메신저에 답하면서 회의 내용을 듣고, 동시에 팀 과제를 고민하고 있다면 뇌는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에너지를 분산시킵니다. 여기에 다음 업무를 떠올리는 와중에 또 다른 요청이 들어온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상태가 바로 인지부하(Cognitive Load)입니다. 인지부하가 높아질수록 사고의 질은 떨어지고, 실수는 늘어나며, 결정은 지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미 한계치에 가까운 집중력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AI는 분명 많은 일을 줄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선택지와 판단 부담을 만들어냅니다. 챗GPT, 코파일럿, 제미나이, 뤼튼 중 무엇을 쓸지,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할지, 어떤 질문을 이어갈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과 AI가 본질적으로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과 조직심리 연구에서도 요청의 명확성(Goal Clarity)이 결과의 품질과 직결된다는 점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능력보다 더 앞서는 것은 결국, 핵심 목표와 결과에 대한 명확한 기대로 불필요한 선택지를 과감히 줄이는 인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역량 문제를 넘어, 조직 설계와 HR의 역할로 이어집니다.
AI가 방대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대신할수록, HR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많은 일과 프로젝트를 쌓아 올리는 조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에 집중하지 않을지를 명확히 결정한 조직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회의를 하나 줄이고, 핵심 안건부터 다루는 결정,
보고서 분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형식(PPT 등) 을 단순화하는 기준,
동시에 쏟아지는 요구사항을 하나의 우선순위로 정리해구성원이 생각보다 실행에 에너지를 쓰는 방식 등
이러한 작은 설계들이 쌓일수록, 조직은 사람의 의지에 기대지 않고도 구성원들의 소중한 뇌의 에너지를 활용하며 성과를 내는 구조에 가까워 질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이렇게 한번 질문해보면 어떨까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
AI가 일을 도와주는 시대일수록, 조직의 경쟁력은 더 많은 일을 시키는 데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덜 헷갈리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서 만들어집니다. 바쁜 조직은 많습니다. 하지만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된 조직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AI 시대의 HR, 선택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