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그룹 내의 여러 자매사들의 AX 사례를 공유하는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여러 발표 중 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은 보고서를 자동으로 파워포인트 문서로 만들어 주고, 필요하면 편집까지 해주는 AI 에이전트였습니다. 자료를 넣으면 슬라이드가 구성되고, 표와 이미지가 배치되어 발표에 적합한 문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보고서를 만드는 시간을 줄이고, 문서의 시각적 완성도도 높여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는 동안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조직도 비슷한 에이전트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도 보고 문서를 HTML이나 파워포인트(PPT) 문서 형태로 생성해 주는 에이전트가 공유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직접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방향이 정말 맞는 것일까?’
우리 회사는 오랫동안 파워포인트 중심의 보고 문화를 줄이려 해 왔습니다. 파워포인트(PPT) 문서는 짧은 시간에 핵심을 보여주는 데 유용합니다. 복잡한 내용을 표와 이미지로 요약할 때도 강력합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문서의 내용보다 색상, 배치, 이미지와 같은 시각적 표현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발표자의 설명을 들을 때는 이해되지만, 시간이 지나 문서만 다시 보면 왜 이 자료가 만들어졌는지,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PPT는 발표자가 옆에 있을 때 가장 잘 작동하는 문서입니다. 반면 조직의 지식은 발표자가 없어도 읽히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활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직은 업무 내용을 Confluence에 작성하고, 이를 그대로 보고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왔습니다. 결론 뿐 아니라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어떤 대안이 있었는지,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남기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AI가 PPT 문서를 만들어 주는 에이전트를 보니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PPT 문서의 여러 문제를 AI가 실제로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직접 표의 크기를 조정하고, 이미지를 찾고, 슬라이드 순서를 바꾸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청중에 맞춰 요약하는 일도 쉬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PPT를 줄이려 했던 이유도 사라지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AI는 PPT를 더 잘 만들어 줄 수 있지만, PPT가 조직의 지식을 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주지는 않습니다. 문서가 더 보기 좋아졌다고 해서 맥락이 더 잘 남는 것은 아닙니다. 슬라이드가 더 빨리 만들어졌다고 해서 다음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PPT 문서 생성이 쉬워질수록 조직은 더 많은 PPT 문서를 양산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문서를 몇 달 뒤 다시 열었을 때입니다. 우리는 그 문서가 만들어진 배경과 판단 과정을 함께 복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문서의 형식과 지식의 구조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HTML, PPT, PDF는 문서의 형식입니다. 반면 사실, 근거, 판단, 맥락, 논의 과정, 후속 과제는 지식의 구조입니다. AI는 형식을 바꾸는 데 능숙합니다. 같은 내용을 요약문으로 만들 수도 있고, 표로 만들 수도 있고, 발표 자료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 바꾸기 전에 내용이 구조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번 논의의 목적은 무엇인지, 확인된 사실과 아직 가정인 것은 무엇인지, 선택지는 무엇이었는지, 왜 이 대안을 선택했는지, 결정 이후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먼저 정리되어야 합니다. 이런 원본 지식이 있다면, AI는 PPT도 만들고, HTML 페이지도 만들고, 회의 후속 과제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PPT가 원본이 아니라 여러 결과물 중 하나가 된다는 점입니다.
AX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새로운 도구와 자동화 기능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려면 업무의 순서도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자료를 모으고, 내용을 요약하고, PPT를 만든 뒤, 회의에서 설명했습니다. 앞으로는 먼저 사실과 판단의 근거를 구조화해 기록하고, AI가 목적과 독자에 맞춰 여러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회의용 PPT가 필요하면 PPT를 만들고, 후속 업무를 위해서는 실행 과제와 담당자를 추출하고, 새로운 구성원을 위해서는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는 문서를 생성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AI는 단순히 보고서를 만드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의 지식을 여러 업무로 연결하는 도구가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보고서를 얼마나 빨리 만드는가가 아닙니다. 한 번 정리한 지식이 이후의 업무에서 다시 쓰일 수 있는가입니다. PPT를 없애자는 뜻은 아닙니다. PPT를 만들더라도 그것이 조직의 유일한 기억이 되지 않게 하자는 뜻입니다. AI가 만들어 준 PPT는 발표 자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지식 자산이 되려면 그 뒤에 원본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조직의 AI 에이전트는 보고서를 예쁘게 만들어 주고 있을까요, 아니면 조직의 생각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을까요?
그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원본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