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 하는 두 명의 구성원이 있다.
A는 AI를 능숙하게 활용한다. 하루 걸리던 보고서를 한 시간 만에 만들고 고객 제안서도 빠르게 완성한다. 자료는 풍부하고 문장도 매끄럽다. 한 해 동안 만들어낸 결과물만 놓고 보면 단연 눈에 띈다.
B는 조금 다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한다. AI가 내놓은 분석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고, 팀원들의 의견이 충돌할 때는 중간에서 적절히 조율한다. A가 만든 훌륭한 보고서도 사실 B가 회의에서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다.
연말 평가가 다가오고 평가자인 리더의 고민은 깊어간다. A가 만든 결과물은 눈앞에 수북이 쌓여 있다. 그런데 B가 한 일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AI 시대의 성과평가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중 하나는 사람이 만들어낸 진짜 가치가 점점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SAP Future of Work Research Lab이 2026년 7월 발표한 연구는 4,000명 이상의 관리자와 구성원, 40개가 넘는 기업의 성과·보상 리더 그룹을 조사했다. 직원의 약 3분의 2는 현재의 성과관리 방식이 일의 변화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고 답했고, 약 4분의 3은 AI가 업무에 깊이 들어올수록 ‘우수한 성과’의 정의 자체도 달라져야 한다고 보았다. SAP는 앞으로의 성과관리가 ‘visibility에서 value로’, 즉 눈에 잘 보이는 활동에서 실제 가치 창출로 이동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눈에 보이는 것을 성과로 인정해왔다. 몇 건을 처리했는지, 보고서를 몇 개 만들었는지, 얼마나 빨리 끝냈는지, 목표를 몇 퍼센트 달성했는지를 측정했다. 물론 이런 숫자는 지금도 필요하다. 문제는 AI가 산출물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산출물의 양과 개인의 기여도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 열 장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의 기여도를 알기 어렵다. AI가 아홉 장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문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사람이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성과를 Output보다 Contribution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Contribution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자.
AI는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이 때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일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고객이 요청한 시장조사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과, 고객이 애초에 잘못된 시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기여일까?
AI 시대에 일 잘하는 사람은 우리가 지금 풀고 있는 문제가 정말 중요한지 여부를 먼저 살핀다. 조직이 놓친 기회를 발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가정을 다시 묻는다. AI 시대에는 문제해결 능력과 함께 문제발견 능력을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
AI는 여러 대안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정리해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중요한 결정에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조건이 끼어든다. 지금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단기 매출보다 중요한지, 특정 구성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인지 이동 배치를 할 것인지,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지금 출시할 것인지 기다릴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성과평가에서 이런 판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성공하면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고, 실패하면 결과만 남는다. 그러나 리더는 결과뿐 아니라 그 당시 어떤 정보와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AI가 선택지를 풍부하게 만들수록 인간의 성과에서 판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있다.
AI 도입 초창기에는 프롬프트를 잘 입력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역량은 AI가 도출한 대안 가운데 무엇을 믿어도 되는지 알아보는 능력이다.
그럴듯한 숫자의 출처를 확인하고 빠진 변수를 찾아내며, AI가 지나치게 자신 있게 내놓은 결론에 “정말 그런가?”라고 질문하는 행동을 말한다. 때로는 AI의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AI의 결과를 버리는 판단이 조직에 더 큰 가치를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성과평가에서도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했는가”보다 “AI를 활용해 판단의 질을 얼마나 높였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개인 산출물 중심의 평가에서 가장 쉽게 간과되는 영역이다. 뛰어난 질문으로 동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사람, 후배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나눠준 사람, 부서 간 갈등을 조정해 프로젝트를 다시 움직이게 한 사람은 많은 결과물에서 자신의 이름이 남지 않는다.
특히 AI가 개인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면 이런 협업 기여도를 놓치기 쉽다. 모두가 혼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생산성을 전부 합친다고 조직의 경쟁력이 저절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SAP 연구도 새로운 성과관리에서 공식적인 역할과 직접 산출물을 넘어선 기여, 장기간에 걸친 가치,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를 포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리더는 “이 사람은 무엇을 만들었는가?”와 함께 “이 사람 때문에 누가 더 잘하게 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AI는 당장의 결과 수준을 끌어올려준다. 경험이 적은 사람도 그럴듯해 보이는 문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과 그 사람의 성장 여부는 다른 차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더 어려운 문제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는가?
AI의 오류를 더 잘 찾아낼 수 있게 되었는가?
고객을 이해하는 수준이 깊어졌는가?
다음번에는 상사의 도움 없이 더 어려운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당장의 실적을 넘어 미래의 성과 창출 가능성을 본다. 조직이 오늘의 Output만 평가하면 사람들은 AI를 활용해 결과를 최적화할 것이다. Learning까지 성과로 인정하면 사람들은 AI를 활용해 자신의 능력도 함께 키우려 할 것이다.

사람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AI 시대에는 그 난이도가 더 올라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아졌지만 정작 평가해야 할 것은 더 안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AI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몇 개의 문서를 만들었는지, 얼마나 빨리 일을 끝냈는지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는지, 누가 잘못된 답을 의심했는지, 누가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판단을 했는지는 데이터만으로 포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AI 시대의 성과평가는 측정의 정교함보다는 평가의 지혜를 더 요구한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리더의 판단은 더 중요해진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성원의 기여를 발견하고, 우연히 얻어 걸린 좋은 결과와 적시에 내린 좋은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 잠재력을 간파하고, 좀더 큰 일을 맡길만한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봐야 한다.
AI가 점점 더 많은 Output을 만들어낼수록 Output 자체는 희소하지 않게 된다. 그 대신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 무엇을 믿을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 다른 사람과 함께 더 큰 가치를 만드는 능력이 희소해진다. AI 시대의 성과평가는 바로 그 희소해진 인간의 기여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참고.
『The future of managing and rewarding performance』, SAP, July 24,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