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왜 아직도 '비싼 복사기'인가 (feat.  '복사/붙여넣기의 무한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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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왜 아직도 '비싼 복사기'인가 (feat. '복사/붙여넣기의 무한굴레')

한국 직원 10명 중 8명(80%)이 팀 또는 비즈니스 시스템 간의 업무를 조정하거나 전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쓴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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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ParkAug 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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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어디에서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나에게 오고, 내가 마친 일이 다시 어디로 흘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전체적으로 꿰뚫고 있다는 점입니다. 프로세스를 읽는 눈, 서로 다른 직무의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 그리고 저마다 바쁜 업무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협상하고 조정하는 능력. 저는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인재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워크데이(Workday)의 리서치 결과를 정리한 리포트 <복사/붙여넣기의 무한 굴레> 를 읽어 보면, 이 귀한 능력이 지금 조직에서 얼마나 소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직원 10명 중 8명(80%)이 팀 또는 비즈니스 시스템 간의 업무를 조정하거나 전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쓴다고 답했습니다. 많은 직원이 단절된 시스템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glue)'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 뼈아픈 것은 이 접착제 노동이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무려 75%의 직원이 조직에 가치를 창출하는 일보다, 시스템과 팀 사이의 정보를 해석하고 조율하는 데 업무 노력의 절반 이상을 쏟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벤치마크인 62%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심지어 한국 직장인의 19%는 상충하는 데이터나 리포트를 대조하는 데만 매주 7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의욕이 아니라 '구조'였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짚어야 할 반전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요즘 직원들은 열의가 없다", "AI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리포트가 보여준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응답자의 98%가 일상 업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10명 중 8명 이상이 성취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조직의 목표와 연결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89%는 AI가 일상적인 업무 경험을 개선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즉, 직원들은 의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일을 사람이 대신 떠맡고 있는 것입니다. 리포트에 인용된 건설업계의 한 임원급 응답자의 말이 오래 남습니다.

"끊임없는 조정 업무와 시스템 관련 이슈 때문에 본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면, 바쁘기만 할 뿐 정말 생산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바쁨과 생산성은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유능한 사람을 뽑아, 가장 비생산적인 접착 노동에 투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AI는 왜 기대만큼 일하지 못할까

많은 사람이 전지전능한(?) AI에 큰 기대를 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효과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리포트는 명확히 짚습니다. AI를 비즈니스의 코어(핵심 시스템)에 내재화한 조직은 3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메일 초안 작성, 문서 요약, 단발성 질의응답 같은 '주변 도구' 수준으로만 AI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채용·급여·결산 같은 핵심 업무 데이터와 프로세스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면, 직원들은 결국 AI 결과물과 핵심 시스템 사이를 오가며 데이터를 변환하고, 복사해서 붙여넣고, 다시 확인하고, 조율하느라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이것이 리포트가 이름 붙인 '복사/붙여넣기의 무한 굴레(the copy-paste economy)'입니다.

데이터가 허술하고, 비어 있으며,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곳에 흩어져 있다면 AI는 비싸고 무능력한 도구가 될 뿐입니다. 리포트의 결론도 같습니다."AI는 단절된 시스템, 취약한 거버넌스, 부실한 운영 설계 그 자체를 혼자서 보완해 주지는 못한다." 실제로 한국 직원의 49%는 정보 누락·불명확으로 의사결정이 지연된 경험이 있고, 55%는 "어느 팀의 수치가 정확한가"를 두고 팀 간 의견이 자주 엇갈린다고 답했습니다.

100%, 150%, 200%를 여는 열쇠: '주변'이 아니라 '안'으로

그렇다면 AI의 능력을 100%, 150%, 200%로 끌어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리포트가 제시하는 답은 명료합니다. AI를 업무의 '주변'이 아니라 '한가운데'에 심는 것입니다. 숫자가 이를 증명합니다. 아시아·태평양 및 일본 지역에서 코어 시스템에 AI를 내재화한 조직의 직원 중 65%가 업무 시간이 25% 이상 줄었다고 답한 반면,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는 그 비율이 36%에 그쳤습니다. AI를 핵심 시스템에 통합한 조직의 직원은 의미 있는 시간 절약을 경험할 가능성이 1.8배 더 높았습니다.

리포트는 리더를 위해 세 가지 실천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 첫째, 올바른 기초부터 세우기. AI가 일관되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도록 코어 시스템과 데이터를 먼저 현대화합니다. 화려한 도구를 얹기 전에, 데이터의 정합성과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 둘째, 개별 태스크가 아니라 엔드투엔드 프로세스에 AI를 통합하기. 개별 작업의 속도를 높이는 차원을 넘어, AI와 사람이 각자 명확히 정의된 단계를 책임지는 워크플로로 전환합니다. AI는 모니터링·라우팅·초안 작성을, 사람은 판단·감독·예외 처리를 맡습니다. 그러면 시스템 자체가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 셋째, 보이지 않지만 탁월한 임베디드 AI로 설계하기. AI를 또 하나의 독립형 솔루션으로 얹는 대신, 직원들이 이미 신뢰하며 쓰는 시스템(급여·결산·팀 관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습니다. 실제로 직원의 78%가 "기반 시스템과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을 때 AI가 의사결정 자신감을 높여준다"고 답했습니다.

AI 시대, 가장 필요한 인재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과거에는 구매·생산·품질·기술·영업·마케팅·재무 전문가가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회사가 돌아갔습니다. 이제 각 분야의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으면, 한 사람이 여러 프로세스를 넘나들며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전체 프로세스를 읽고 조율하는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집니다. AI가 반복적인 조정 업무를 걷어낼 때, 사람은 판단·창의·전략처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전환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AI가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입니다. 데이터가 흐르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조율가도 다시 복사와 붙여넣기의 굴레로 끌려 들어갑니다.

조직 리더와 HR을 위한 실행 인사이트

  • '바쁨'과 '생산성'을 구분해 진단하라. 조직이 정말 가치를 만드는 일에 시간을 쓰는지, 아니면 시스템을 잇는 접착 노동에 갇혀 있는지부터 측정해야 합니다. 일을 위한 일이나 정말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 75% 대 글로벌 62%라는 격차가 그 경고등입니다.

  • AI 도입의 성패는 '데이터 기초'에서 갈린다. 새 도구를 늘리기 전에 코어 데이터의 품질·정합성·접근성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부실한 데이터 위의 AI는 결국 '비싼 복사기'가 됩니다.

  • 개별 태스크 자동화를 넘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라. AI에게 초안을 맡기는 수준을 넘어, AI와 사람의 역할을 명확히 나눈 엔드투엔드 워크플로로 전환할 때 1.8배의 효과가 열립니다.

  • 인재상을 다시 정의하라. AI 시대의 핵심 인재는 단일 직무 전문가만이 아니라, 프로세스 전체를 읽고 조율하며 협상하는 사람입니다. 채용·평가·육성 기준에 이 역량을 명시적으로 담고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 직원의 열의를 의심하지 말고, 구조를 의심하라. 문제는 사람의 의욕(98% 긍정)이 아니라, AI 이전 시대에 맞춰 설계된 단절된 시스템입니다. 시스템과 환경을 바꾸면 사람의 변화는 의외로 쉽게 따라오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직원이 왜 이렇게 바쁜가"가 아니라,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을 왜 아직도 사람이 하고 있는가"입니다. 사람을 접착제로 소모하는 조직에서, 사람이 판단하고 창조하는 조직으로. 그 전환의 열쇠는 AI를 업무의 주변이 아니라 한가운데에 심고, 그 아래에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흐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본 칼럼은 Workday가 The Harris Poll에 의뢰해 전 세계 6,100명(한국 100명 포함)의 HR·재무·IT·운영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리포트 복사/붙여넣기의 무한 굴레: 한국의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업무 지향적 AI가 실패하는 이유(2026)를 참조·인용하여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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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Park
인사/교육/문화 + @ 디지털/AI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20년 동안 사람의 성장을 설계해 온 HR 전문가입니다. 채용/육성/조직문화/코칭까지 HR의 전 과정을 직접 이끌었고, 최근에는 HR Analytics와 조직/리더십 진단으로 성장의 방향을 더 정교하게 잡는 일을 합니다. 제도와 콘텐츠를 연결해 배움이 성과로 이어지는 조직을 현실에서 구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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