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만 해도 공포의 언어가 지배했다. AI가 일자리의 절반을 삼킬 것이다, 화이트칼라의 시대가 끝난다. 그런데 2026년 9월 4일, The Economist는 그 서사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숫자를 내놓았다.
분석에 따르면, AI는 지금까지 미국에 새 일자리를 약 100만 개 만들어냈다. 같은 기간 AI 탓으로 집계된 해고는 약 20만 건. 만들어진 자리가 없어진 자리의 다섯 배다. 구체적으로는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학자, 데이터 과학자처럼 AI에 가장 가까운 직군이 2022년 이후 추세선 위로 약 73만 명 늘었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기를 대는 업종(전기 공사, 배관, 전력망 건설 같은 '하드햇' 노동)이 약 32만 명 늘었다.
여기서 계산 방식이 중요하다. 이 100만은 해당 업종의 고용을 통째로 AI 몫으로 센 게 아니다. 경제 전반의 채용 흐름으로 설명되는 부분을 덜어내고 남은 추세선 초과분만 집계한 값이다. 서사 위반 혹은 내러티브 파괴(narrative violation)로 불리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오랫동안 감원만 이야기하던 고용 논쟁에, 반대 방향의 측정값이 처음으로 무게 있게 붙은 것이다.
물론 이 분석도 감원이 없었다고 말하진 않는다. LinkedIn 집계로 2023~2025년 새로 생긴 AI 전용 직무는 약 64만 개, Burning Glass 기준 미국 전문직의 약 1%(컴퓨터, 생명과학은 4~5%)가 AI 일자리다. 요는, AI가 일자리를 순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남는다. 한국은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에는 미국과 비슷한 순증 통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신호가 잡힌다. 그리고 그 신호는, 우리가 AI의 여파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연구는 한국은행 건으로, 한국은행 조사국이 2026년 8월 발표한 보고서(오삼일 고용연구팀장 등)는 이렇게 말한다. ChatGPT가 공개된 2022년 하반기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4년간, 15~29세 청년 고용은 약 28만 5천 건 감소했다. 같은 기간 30대는 약 27만 6천 건, 50대는 약 23만 건 늘었다. 즉 한국에서 AI 시대의 고용 변화는 '총량의 소멸'이 아니라 '세대 간 이동'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진 것은 일자리 그 자체라기보다, 청년이 첫발을 디딜 자리였다.
한국은행이 진짜 우려한 대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AI가 신입이 하던 정형 업무를 대신하면서, 청년이 일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숙련 인재로 성장하는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28만 5천 건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대가 성장하지 못하면 미래의 숙련 인재 공급 자체가 흔들린다는 경고다.
이것이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느낀 바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AI는 직업을 뺏는 게 아니라, 기회를 앗아가는 모양새다. 미국은 AI 인접 직군과 인프라에서 새 자리를 만들며 사람을 빨아들이는 반면, 한국은 그 낙수가 청년에게 닿기 전에 첫 계단부터 지워지고 있다. 실제로 전체 고용률은 최고치인데도 20대는 소수 대기업에만 원서를 몰아 쓰는 보수적 구직 전략을 취하고, 쉬었음 청년은 월평균 수십만 명대에 머문다.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들어갈 문이 좁아진 것이다.
왜 미국과 한국은 이렇게 다를까. 한 가지 유력한 설명은 '전환의 속도와 방식'이다. 미국은 AI를 만들고 파는 쪽(개발자, 데이터센터)에서 고용이 폭증하는, 이른바 공급 측 붐의 진앙지다. 한국은 AI를 주로 쓰는 쪽이라 그 붐의 낙수 효과가 약하고, 대신 자동화로 인한 신입 업무 대체가 먼저 체감된다. 여기에 앞서 다뤘던 신입 채용 위축과 쉬었음 청년의 구조적 문제가 겹친다.
그렇다면 대비책은 무엇인가. 이미 세계경제포럼(WEF)이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들은 일관되게 말해왔다. 앞으로는 학벌, 자격 같은 정형 스펙보다 스킬이 중심이 되고, 따라서 HRD 차원에서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스킬 기반 교육과 스킬 기반 채용이 새 표준이 되리라는 예언이었다. 방향은 옳았다. 문제는 현실이 그 예언만큼 깊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데이터가 이 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표방은 넘친다. 한 조사에서 미국 기업의 약 85%가 어떤 형태로든 스킬 기반 채용을 한다고 답했고, 53%가 일부 직무에서 학위 요건을 없앴다(전년 30%에서 상승). ZipRecruiter 조사에서도 72%가 스킬 우선 채용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는 미미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에서는 학위 요건을 없앴다지만, 실제로 학위 없이 채용된 사람은 700명 중 1명 미만(약 0.14%)에 그쳤다고 한다. 역설이다. 말은 바뀌었지만, 채용의 실제 행동은 거의 바뀌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2026년에 스킬 기반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기업은 46%뿐이라는 조사도 있다. 전환은 기대보다 느리다.
그러나 효과는 분명히 실재한다. 같은 하버드 연구에서, 스킬 기반 채용을 선도하는 기업의 무학위 채용자는 학위 동료보다 리텐션이 10%포인트 높았고, 과거 학위를 요구하던 자리에 들어온 무학위 채용자는 평균 25%의 임금 상승을 경험했다. 스킬로 뽑은 사람이 더 오래, 더 잘 일했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정리하면, 미국의 스킬 기반 전환은 '말은 앞서고, 행동은 뒤처지고, 성과는 증명된' 어정쩡한 중간 지점에 있다. 방향은 확실하지만 관성이 강하고, 먼저 움직인 소수는 이미 과실을 거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두 그림(미국의 AI 고용 붐과 한국의 청년 기회 절벽)을 나란히 놓으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보인다.
첫째, 문제를 일자리 총량이 아니라 '성장 기회의 사다리'로 재정의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짚었듯 진짜 위기는 지금 사라진 일자리가 아니라, 청년이 숙련으로 성장할 경로가 끊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과 교육의 초점도 '일자리를 몇 개 만드느냐'에서 '첫 계단과 성장 경로를 어떻게 다시 놓느냐'로 옮겨가야 한다. AI가 가져간 입문 업무를 대신할, 판단력과 숙련을 키우는 도제형, 프로젝트형 육성 경로가 그것이다.
둘째, 스킬 기반 전환을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역설은 우리에게 값진 교훈이다. JD에 "스킬 중심"이라고 쓰는 것과, 실제로 스킬을 검증하고 스킬로 뽑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앞선 글에서 다룬 '진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 여기서 다시 연결된다. 말이 아니라 검증 방식을 바꿔야 전환이 실재가 된다.
셋째, 업스킬링 & 리스킬링을 개인의 각자도생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제공해야 한다. 미국에서조차 스킬 기반 채용의 성과(리텐션 10%p↑, 임금 25%↑)는 선도 기업에 집중돼 있다. 즉 시스템을 먼저 갖춘 곳이 과실을 가져간다. 독일의 예방적 재직자 훈련이나 싱가포르의 국가 도제 프로그램 같은 구조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다. 스킬 교육을 개인에게 떠넘기면, AI가 만든 격차는 기회의 불평등으로 굳어진다.
넷째, AI 역량을 기본기로 심되, 그 위에 판단력을 얹어야 한다. 신입 직무의 3분의 1이 AI 역량을 요구하는 시대다. AI를 다루는 능력은 이제 특기가 아니라 기본기다. 그러나 앞선 글들에서 강조했듯, 차이를 만드는 것은 AI를 쓰는 능력이 아니라 AI 위에 자기 판단을 얹는 능력이다. 스킬 교육의 최종 목표는 AI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것을 평가하고 넘어서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
미국의 100만 개와 한국의 28만 5천 건. 이 두 숫자의 방향이 반대라는 사실은 여전히 아픈 메시지다.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사회는 새 자리를 만들고, 어떤 사회는 청년의 첫 계단을 지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준비시키느냐다.
AI가 직업을 뺏을 거라는 공포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장이었다. 하지만 AI가 기회를 재분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 재분배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스킬 기반 교육과 채용이라는 사다리를 누가 먼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놓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의 붐이 언젠가 한국에도 낙수처럼 흘러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낙수는 늘 늦고, 낮은 곳에는 잘 닿지 않는다. 기다리는 대신 사다리를 놓는 것, WEF가 몇 년 전에 예언했지만 아직 우리가 충분히 실행하지 못한 그 일을, 지금 시작하는 것이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다음 걱정은 또 이어진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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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원문 요약: fiv.co.kr AI 브리핑(2026-09-09) 7번 항목 : The Economist 분석 정리. https://fiv.co.kr/news/2026-09-09.html
The Economist (2026-09-04), "The jobs apocalypse is postponed: an AI jobs boom is here" : AI로 미국 새 일자리 약 100만 개(AI 근접 직군 +73만, 데이터센터·전력 +32만), AI 탓 해고 약 20만. 미 노동통계국 및 자체 계산, 추세선 초과분 기준.
David Sacks (@DavidSacks) : 해당 분석을 "narrative violation"으로 공유. https://x.com/DavidSacks/status/2097161971573682296
한국은행 조사국 (2026-08), 오삼일 외 : ChatGPT 공개(2022 하반기)~2026 상반기 15~29세 고용 약 28.5만 건 감소, 30대 +27.6만·50대 +23만. 청년의 숙련 성장 기회 축소 우려. (KOREA WAVE 보도 등)
Harvard Business School / Joseph Fuller, "Skills-Based Hiring" 연구 : 학위 없이 채용된 비율 700명 중 1명 미만(약 0.14%), 무학위 채용자 리텐션 +10%p·임금 +25%. https://www.hbs.edu/bigs/joseph-fuller-college-degree-gap
Forbes / ZipRecruiter / WGU (2025~2026) : 기업 85%가 스킬 기반 채용 표방·53% 학위요건 일부 제거, 2026년 확대 계획은 46%. NACE: 신입 직무 1/3이 AI 역량 요구(반년 새 약 3배).
World Economic Forum, The Future of Jobs Report : 스킬 중심 전환과 업스킬링·리스킬링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