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준비됐습니다. 우리는 방아쇠를 당길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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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준비됐습니다. 우리는 방아쇠를 당길 수 있습니까?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정답이 아니라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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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Oct 14, 2026
1405

저는 스스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낯선 아이디어를 접하면 그것을 지금의 일과 연결해 보고 싶어집니다. 아직 아무도 해보지 않은 방식이라도, 먼저 가능성을 떠올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상상은 생각보다 쉽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비용만 낭비하는 것 아닙니까?”
“현실을 제대로 보세요.”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이런 말들이 몇 번 오가고 나면 상상은 반박조차 하지 못한 채 회의실의 휴지통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곧 학습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보다 이미 검증된 방법을 찾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가능성보다 레퍼런스를 먼저 묻습니다.

“경쟁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대기업 사례가 있습니까?”
“이미 성공한 회사가 있습니까?”

물론 레퍼런스는 중요합니다. 실패 비용을 줄이고 시행착오를 단축해 줍니다. 그러나 레퍼런스가 의사결정의 참고자료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허락하는 증명서가 되는 순간, 조직은 이미 존재하는 길만 걷게 됩니다.

누군가 먼저 성공해야만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꿈꾸고 상상하라고 말합니다. 정답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엉뚱한 이야기를 만들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찾아보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학교와 조직으로 들어오는 순간 메시지는 달라집니다.

“나대지 마라.”
“적당히 해라.”
“혼자 튀지 마라.”
“하던 대로 해라.”

다른 생각을 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질문이 많으면 협조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목표에 곧장 도착하지 않는 상상력 넘치는 탐색은 낭비로 간주되고, 실패는 학습의 증거가 아니라 역량 부족의 기록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상상하라고 교육받은 사람을 상상하지 않는 구성원으로 다시 훈련합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창업과 혁신이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새로운 길에는 레퍼런스가 없습니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길입니다. 그런데 레퍼런스가 없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는다면 0에서 1은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됐습니다. 당시 우주선의 비행과 항법을 지원한 아폴로 유도 컴퓨터는 당대 최고 수준에 가까운 약 2K워드의 읽기·쓰기 메모리와 36K워드의 고정 메모리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손안의 스마트폰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컴퓨팅 자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그 컴퓨터로 달에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성·복제·소비되는 데이터는 하루 약 0.4제타바이트로 추정됩니다. 1제타바이트는 1조 기가바이트입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데이터와 강력한 컴퓨팅 자원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도 더 대담한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요.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데이터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그 도구를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 정하는 “상상력”인지 모릅니다.

대항해 시대에는 튼튼한 배와 그것을 움직일 물리적 동력이 중요했습니다. AI 시대의 바다는 데이터이고, 그 위를 항해하는 배는 AI입니다. 하지만 배가 아무리 빨라도 목적지가 없다면 출항할 수 없습니다.

AI가 배라면, 상상은 항로입니다.

AI는 우리가 요구한 답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습니다. 생성형 AI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할수록 오히려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힘입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은 답을 생산하는 능력보다 가보지 않은 목적지를 먼저 그리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 대통령 시몬 페레스는 《No Room for Small Dreams》라는 제목의 책을 남겼습니다. ‘작은 꿈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제목 자체가 그의 삶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는 듯합니다.

그는 “우리는 기억보다 상상력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종록 님의 강연에서는 이 생각을 다음과 같은 일화로 소개했습니다.

“기억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은 망각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연에서 소개된 시몬 페레스의 대답은 ‘상상’이었습니다.

기억은 이미 걸어온 길을 다시 걷는 여행이고, 상상은 아직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사전적 반의어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AI 시대를 설명하는 통찰로는 꽤 정확합니다. 데이터와 AI는 과거의 기록을 학습합니다. 인간은 그 기록 위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기억만 사용하는 조직은 기존 사례를 더 빠르게 복제합니다. 상상을 사용하는 조직은 아직 사례가 없는 미래를 만듭니다.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진보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1에서 N으로 가는 수평적 진보입니다. 이미 성공한 것을 복제하고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0에서 1로 가는 수직적 진보입니다. 세상에 없던 기술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1에서 N으로 가는 능력은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빠르게 배우고, 개선하고, 품질을 높이며 놀라운 성장을 만들어왔습니다. 문제는 AI 시대에도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입니다.

AI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고, 비교하고, 요약하고, 변형하는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습니다. 남의 성공 공식을 빠르게 배우는 능력만으로는 차별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모두가 비슷한 데이터와 도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차이는 누가 더 많은 답을 아느냐보다 누가 남들이 묻지 않은 질문을 먼저 던지느냐에서 생깁니다.

“경쟁사는 어떻게 했습니까?”라는 질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의 제약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만들겠습니까?”
“AI를 이용하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까?”

이 질문들이 0에서 1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이스라엘의 창업문화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후츠파(Chutzpah)’라고 합니다.

이 말의 원래 의미에는 뻔뻔함, 무례함, 대담함이라는 양면성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후츠파를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의 우월한 국민성으로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이나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배워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안에 들어 있는 건설적인 대담함입니다.

윤종록 님은 자신의 저술과 강연을 통해 후츠파 정신을 다음 일곱 가지 행동으로 설명했습니다.

  1. 형식 타파, Informality

  2. 권위에 대한 질문, Questioning Authority

  3. 서로 다른 영역의 결합, Mash-up

  4. 위험 감수, Risk Taking

  5. 목표 지향, Mission Orientation

  6. 끈질김, Tenacity

  7. 실패로부터의 학습, Learning from Failure

이 일곱 가지는 후츠파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창업문화를 조직 행동의 언어로 풀어낸 프레임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보다 형식을 앞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권위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직급보다 질문의 타당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다른 부서에 함부로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무모하게 떠안으라는 뜻도 아닙니다.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실험하고, 빠르게 배우며, 실패의 비용을 다음 도전의 자산으로 바꾸라는 의미입니다.

후츠파를 한 문장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습니다.

“완벽하게 확신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배울 수 있는 크기로 먼저 실행하는 것입니다.”

“겁 없이 방아쇠를 당겨야 합니다”라는 표현은 자칫 위험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 실행은 개인의 용기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용과 품질, 안전과 고객, 동료의 업무에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용기는 무책임한 돌진이 아닙니다.

상상은 크게 하되 실험은 작게 하는 것, 완벽한 계획보다 검증 가능한 첫 단계를 만드는 것, 실패를 숨기지 않고 빠르게 공유하는 것, 그리고 배운 것을 다음 시도에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조직도 구성원에게 “도전하십시오”라고 말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실패를 허용한다고 선언하면서 정작 평가에서는 실패 기록만 남긴다면 아무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습니다.

질문하라고 하면서 리더의 생각과 다른 질문을 불편해한다면 질문은 사라집니다. 협업을 강조하면서 다른 부서의 의견을 월권으로 취급한다면 연결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상력을 원한다면 상상한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실행력을 원한다면 작은 실험에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조직은 결국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조직이 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할 수 있습니까?”를 먼저 물었습니다.

보유한 인력으로 가능합니까?
예산이 있습니까?
기존 프로세스에 맞습니까?
실패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물론 모두 필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부터 시작하면 현재의 한계가 미래의 상상력을 결정합니다.

AI 시대에는 질문의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이 실현된다면 어떤 가치가 만들어집니까?”
“고객과 구성원에게 어떤 변화가 생깁니까?”
“우리의 사명과 방향에 맞습니까?”
“그렇다면 AI와 데이터, 외부의 지식과 동료의 역량을 어떻게 연결해야 합니까?”

미래의 Impact를 먼저 그린 뒤 현실의 제약을 해결해야 합니다. 현실을 무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되, 현실이 목적지까지 결정하게 두지 말자는 뜻입니다.

상상력이 뛰어난 몇 사람을 채용한다고 해서 혁신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상력은 개인의 타고난 특성이기도 하지만, 조직문화가 허락하거나 억압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엉뚱한 질문이 아이디어가 됩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같은 질문이 ‘쓸데없는 말’이 됩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작은 실패가 다음 실험의 자료가 됩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같은 실패가 도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결국 조직의 상상력은 구성원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가 있는지보다 그 아이디어가 입 밖으로 나오고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AI는 우리의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혼자라면 구현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의 초안을 만들고, 가설을 검토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첫 방아쇠는 인간이 당겨야 합니다.

누군가는 아직 레퍼런스가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누군가는 “왜 안 됩니까?”보다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를 물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완벽하지 않은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 가진 성실함과 빠른 학습력, 강력한 실행력 위에 질문할 권리와 실험할 용기, 실패로부터 배우는 문화를 더하는 일입니다.

다른 나라의 국민성을 부러워하는 데서 멈추기보다 우리 조직만의 후츠파를 만들어야 합니다.

상상은 허락받은 뒤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혁신은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진 뒤에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AI라는 강력한 배는 이미 출항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남들이 먼저 그려놓은 항로가 아닙니다.

아직 지도에 없는 목적지를 상상하고,
배울 수 있는 크기로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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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인사/교육/문화 + @ 디지털/AI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20년 동안 사람의 성장을 설계해 온 HR 전문가입니다. 채용/육성/조직문화/코칭까지 HR의 전 과정을 직접 이끌었고, 최근에는 HR Analytics와 조직/리더십 진단으로 성장의 방향을 더 정교하게 잡는 일을 합니다. 제도와 콘텐츠를 연결해 배움이 성과로 이어지는 조직을 현실에서 구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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