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들이 모두 퇴근한 연구실에서 AI 에이전트 950개가 21시간 동안 일했습니다. 이들은 수십억 개의 단백질 데이터를 스스로 뒤졌고, 거대 바이러스 유전체에서 크리스퍼(CRISPR)와 닮은 반복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앤트로픽은 이 결과를 자사의 AI 모델 Claude 기반의 자율형 에이전트들을 활용하여 생물학 분야에서 새로운 효소 시스템을 발견한 생명과학 연구조직의 첫 '발견'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의 반응은 떨떠름했습니다. 패턴을 찾은 것과 기능을 밝힌 것은 다른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이 패턴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아직 거의 없고, 연구도 동료 심사(peer review)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앤트로픽 스스로도 "유망한 단서"라고만 했습니다. 게다가 코펜하겐대 연구팀은 이 시스템을 이미 수년간 연구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말꼬리 잡기가 아닙니다. 돌을 파낼 때마다 이런 식으로 금맥이라고 외치면, 진짜 금을 찾은 날 아무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AI가 찾은 패턴이 진짜인지는 결국 사람이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확인에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립니다. AI는 후보를 하룻밤에 수천 개씩 내놓지만, 검증은 여전히 사람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병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찾는 단계'에서 '확인하는 단계'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10분 만에 만든 보고서를 최종 제출하기 위해 하루 종일 검토하면서 수정해야 합니다. 생산성이 오른 것이 아니라 비용이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사람이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요즘 저는 n8n으로 조직만족도 분석 에이전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노드 하나를 고치면 다른 곳이 깨지고, 데이터 구조가 조금만 어긋나도 결과가 비어 나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계산해 보니, 그 시간이면 엑셀로 분석을 이미 끝냈을 것 같았습니다.
현타가 왔습니다.
“내년에 설문 문항이 바뀌거나 AI 발전에 따라 더 나은 도구가 나오면 버려질지도 모르는 자동화에, 지금 내 시간 대부분을 쓰는 게 맞을까?”
다시 들여다보니 오류를 고친 시간의 대부분은 워크플로우가 아니라 제 분석 논리를 고친 시간이었습니다.
역문항은 어떻게 처리할지, 비교 기준선은 무엇으로 잡을지, 유의하지 않은 차이는 어떻게 표현할지. 감으로 넘어가던 판단을 AI는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습니다.
워크플로우는 낡겠지만, 말로 꺼내 놓은 분석 기준은 도구가 바뀌어도 남습니다. 앤트로픽 사례에서도 정말 가치 있는 것은 950개의 에이전트가 아니라 무엇을 발견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기준입니다.
물론 모든 자동화가 정당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일이 매번 반복되는지, 판단을 규칙으로 만들 수 있는지, 결과를 빨리 확인할 수 있는지, 도구가 바뀌어도 남는 것이 있는지를 따져 봅니다. 조직만족도 분석은 이 질문을 모두 통과해서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목표는 '빨리 끝내기'에서 '다음 사람이 덜 헤매게 하기'로 바꿨습니다.
AI를 쓰라는 요구는 넘쳐나지만, 그 과정의 시행착오와 현타를 조직이 어떻게 다룰지는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HR이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기준 | 물어야 할 질문 |
|---|---|
산출 ≠ 성과 | 몇 건을 만들었나가 아니라, 무엇이 검증되었나? |
총비용 | 검증 시간과 개발 시간까지 넣어도 이득인가? |
학습 투자 | 단기 효율로만 평가해 포기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
기여 인정 | 검증하고 바로잡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평가에 담기는가? |
판별력 |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손으로 할지 가려낼 사람이 있는가? |
AI는 앞으로 매일 반짝이는 돌을 한 아름씩 가져올 것입니다. 돌이 쌓일수록 확인하는 사람은 지치고, 조직은 결국 "그래서 뭐?"라고 말하는 것이 반복될 것입니다.
냉소를 막는 방법은 그렇다고 해서 AI를 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비용을 정직하게 계산하고, 시행착오를 투자로 인정하고, 금을 알아보는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냉소적인 조직은 "그래서 뭐?"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조직은 "그래서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남았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당연해지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지금 HR과 리더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