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몇 주에 걸쳐 AI 시대의 HR과 조직문화에 관한 연재를 이어가려 한다. 관심은 어떤 AI를 선택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AI가 들어온 조직에서 구조와 사람, 그리고 가치가 어떻게 다시 정렬되어야 하는지를 People팀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연재의 앞 부분에서는 지금 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진단하고, 이후에는 조직, 리더십, 성과관리, 채용, 평가, 보상, 조직문화 등 실무 영역을 하나씩 살펴볼 예정이다. 마지막에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조직의 본질을 이야기하려 한다.
매회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영화 한 편을 함께 읽어가려 한다. 기술의 변화는 낯설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영화는 1954년 작품 〈고지라〉다.
1954년 영화 고지라에서 괴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재앙이 아니다. 인간의 핵실험이 깊은 바다에 잠들어 있던 존재를 깨웠고, 그 힘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도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괴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자신이 만든 힘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였다.
AI를 둘러싼 불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는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존재라기보다, 조직 안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를 더 빠르고 더 크게 드러낸다. 방향 없는 조직은 더 빨리 길을 잃고, 질문하지 않는 조직은 더 조용히 잘못된 답을 반복한다. 이 변화는 이미 숫자로도 나타난다.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Klarna는 AI를 적극 도입하며 직원 수를 2022년 5,527명에서 2024년 말 3,422명까지 줄였다. 직원의 96%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고객 문의의 약 3분의 2를 AI가 처리한다. 평균 처리 시간도 11분에서 2분 이하로 단축됐다.
인상적인 성과다. 그러나 이 숫자가 곧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는 것은 AI를 도입했다는 사실이지, 조직이 더 나은 방식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도입의 속도만 보면 AI 전환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인다.
맥킨지의 2025년 조사에서는 기업의 88%가 최소 한 개 이상의 기능에서 AI를 상시 활용한다고 답했다. 국내에서도 기업의 78.4%가 AI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AI를 전사적으로 확산한 기업은 3곳 중 1곳에 불과했고, 생성형 AI를 계기로 업무 흐름 자체를 재설계한 기업은 21%뿐이었다. 나머지는 기존 업무 프로세스 위에 AI를 덧붙이는 수준에 머물렀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기업은 많지만 실제 활용률은 훨씬 낮다. 최근 한국은행과 산업연구원(KIET)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AI 도입 이후 조직 구조나 인력 운영, 영업이익에서 "변화 없음"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기술은 도입됐지만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AI를 도입하는 것과 AI가 조직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도 있다. 맥킨지는 AI 투자 성과를 좌우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업무 흐름의 재설계'를 꼽았다.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AI를 중심으로 일을 다시 설계했는지가 성과를 갈랐다는 의미다.
도입은 입장권일 뿐이다. 승부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
실제로 일의 흐름을 바꾼 기업도 있다.
LG전자 한국영업본부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마케팅 인사이트 업무에서 정보 수집과 분석, 보고서 작성 업무를 고도화하고 있다. 사람은 반복적인 조사보다 판단과 전략 수립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LG유플러스는 최근 조직개편에서 역할이 중복되는 조직을 통합하는 대팀제를 도입했고, AI 워크 에이전트를 적용해 반복 업무를 줄였다. AI를 하나 더 도입한 것이 아니라 조직 구조와 협업 방식, 사람의 역할을 함께 다시 설계한 사례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AI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일이 흐르는 방식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결국 AI 시대 조직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AI를 중심으로 일을 다시 설계했는가에서 결정된다.
의사결정은 달라졌는가.
정보는 더 빠르게 흐르는가.
사람의 역할은 다시 정의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I는 새로운 기술일 뿐, 새로운 조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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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k's Insight
AI 열풍을 보며 몇 년 전 DX 열풍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수많은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우리의 일은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조직은 많지 않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AI를 도입했는지는 쉽게 설명하지만, 사람의 역할과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선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30년 넘게 HR 현장을 지켜보며 얻은 결론은 하나다.
조직의 변화는 새로운 도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일을 다시 설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번 주 회의에서 질문 하나만 던져보자.
"우리는 AI를 기존 업무에 추가한 것인가, 아니면 AI를 전제로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