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그룹의 2026년 AI Idea 리그(해커톤)의 심사를 하며 느낀 소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AI Tool의 대중화로 인해 연차와 직무를 막론하고 누구나 AI를 실무와 사업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S그룹 차원에서 모든 구성원의 신속한 AX 전환을 강조하며 ‘1인 1에이전트’의 도입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번 해커톤의 목표는 어렵고 복잡한 AI 모델링이나 알고리즘 개발이 아니라, 당장 현실의 실무와 사업적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도구로 AI 에이전트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선에 접수된 사례는 총 730여건이었다. 모두 S그룹의 구성원이 올해 스스로 만들어 쓰고 있는 AI 활용 사례였다. 그 중에서 1차 심사를 통해 29개의 우수 사례가 선정되었다.
29개 사례중 Best of Best를 뽑는 심사기준은 아래와 같았다.
문제 해결을 통해 달성한 Biz. Impact(30점)
다른 회사나 조직에 확장 가능성(40점)
문제 해결 과정 및 접근방식의 혁신성(30점)

29개의 AI 아이디어를 심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장 구성원들의 태도였다. 현업의 문제가 발생하면 더이상 IT 부서를 비롯한 유관부서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가 돋보였다. 전공이나 직무는 더이상 장벽이 되지 않았다. 이중학 교수가 저서 『경계없음』(2026)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마케팅, 개발, 재무 등 명확했던 기능과 직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현장을 목도했다. 수직 수평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AI Agent를 거느린 신인류들이 저마다의 창의성을 뽐내는 현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사내 데이터는 있는데 SQL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는 상황, 수십만 줄의 로그를 읽느라 엔지니어가 하루종일 애쓴 경험, 매주 반복되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몇 시간씩 자료를 취합했던 수고로움, 수백 페이지짜리 영문 매뉴얼에서 장비 장애의 원인을 찾느라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던 답답함...
예전 같으면 시스템 구축을 요청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개발조직의 순서를 기다렸을 문제들이다. 사례를 제출한 구성원들은 달랐다. Claude, ChatGPT, 사내 LLM, Copilot, Langflow 같은 도구를 이용해 직접 Agent를 만들었다. 필요한 경우 Python으로 코딩을 하고, 대시보드를 만들고, 나아가 업무 프로세스까지 다시 설계했다.
29개 사례를 살펴보니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사업성과형'이다.
AI 활용의 결과가 비용, 매출, 품질, 생산성과 직접 연결된 사례다. 차량용 AI 서비스의 로그를 사람이 샘플링해서 평가하던 업무를 AI Judge가 매일 4천 건 전수 평가하도록 바꾼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증 범위가 5~25%에서 100%로 늘었고, 운영 인력과 비용도 크게 줄었다. 필드클레임 판정을 자동화해 실제 비용 이의제기로 연결하거나, 공정 모델 모니터링 시간을 줄여 생산계획 업무의 Resource를 절감한 사례들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AI 활용을 두고 가장 많이 하는 질문, “그래서 그게 돈이 되는가?”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플랫폼 확산형'이다.
한 사람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다른 구성원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P사례는 업무 지식과 Tool, SOP Skill, 승인·권한·검증·Telemetry까지 하나의 Workspace로 묶었고, 실제로 수십 개의 Skill과 MCP Tool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A사례는 한 발 더 나아가 ‘Agent를 만드는 Agent’를 만들었다. 어떤 Component를 써야 하는지, 기존에 비슷한 Workflow가 있는지를 AI에게 물어보고 재사용할 수 있게 했다. 2개월 동안 월간 활성 사용자가 282명에 달했다. 이런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AI 활용능력을 개인의 프롬프트 재능에서 조직의 인프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기술적 업무재설계형'이다.
AI를 활용해 기존 업무를 약간 더 빠르게 해주는 수준을 넘어 일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린 유형이다. 반도체 이미지 계측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보안 때문에 강력한 외부 모델도 쓸 수 없고 멀티모달 기능도 제한된 상황에서, “더 좋은 AI 모델이 필요하다”고 기다리지 않았다. LLM이 자유롭게 코드를 만들게 하는 대신 검증된 결정론적 블록만 선택·조합하도록 업무 구조를 다시 만들었다. 그 결과 실제 6개월간 120건의 계측 레시피를 처리하면서 TAT를 2.65일에서 0.5~0.6일로 줄였다. 이 사례는 AI를 인간처럼 똑똑하게 만드는 것보다, AI가 실패하기 어렵도록 일을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는 '역량 민주화형'이다.
전문 개발자나 소수의 숙련자만 가능했던 일을 일반 구성원에게 확장했다. S사의 사내 DB를 다루던 전문가는 몇 명에 불과했지만 자연어 Agent를 통해 다른 구성원도 데이터를 직접 탐색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개발 경험이 없는 B사의 연구자가 시약 DB가 셧다운되고 구조정보 없는 엑셀만 남아있던 상태에서, Claude Code로 시약 11,000건의 SMILES를 복원하고 RDKit으로 검증한 뒤 ChatGPT로 대시보드를 구축했다. C사의 전력거래 담당자는 복잡한 정산규칙을 AI와 함께 손익함수로 바꾸고, 이를 Excel 한 장에 담아 매일 운전 판단에 사용했다. AI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넘어 In-house Expert의 경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사례를 심사하며 발견한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AI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였다.
초기의 생성형 AI 활용은 주로 질문하고 답을 받는 방식이었다. 올해 제출된 사례들에서는 검색하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Tool을 실행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정해진 시간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 어떤 Agent는 사람이 출근하기 전에 이미 일을 끝내놓는다. 어떤 Agent는 자신의 결과를 다른 Agent에게 검증받는다. 심지어 콘텐츠 운영 성과 데이터를 보고 AI가 자신의 운영 규칙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AI에게 맡기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한 학습도 시작됐다는 점이다. 좋은 사례일수록 숫자 계산과 Rule 판정은 Deterministic Code에 맡기고, LLM은 해석과 문맥 판단에 집중시켰다. AI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도록 만들고, 근거가 없으면 답변을 보류시키며, 마지막 판단은 사람에게 남겼다. 정유 플랜트의 운전 Co-Pilot이 현장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은 이유도 답변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정 부분 한계도 존재했다.
우선 성과 지표가 제각각이었다. 실제 6개월간 사용해 얻은 결과와 “1만 건으로 확대하면 연간 15명분의 일이 줄어든다”는 계산은 다르게 봐야 한다. AI 시대에는 데모를 만드는 비용이 급격히 낮아졌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만들었다’가 아니라 몇 명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쓰고 있으며 무엇이 달라졌는가다.
두 번째는 개인 최적화와 조직 최적화의 갭이었다. 뛰어난 구성원 한 명이 놀라운 Agent를 만들었다고 해서 회사의 역량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떠나면 아무도 고칠 수 없는 Python 코드와 Agent가 남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과거의 Excel Macro처럼 ‘AI 자동화 부채’가 쌓일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는 효율성과 성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고서 작성시간을 80% 줄였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확보한 시간이 더 나은 의사결정, 고객 대응, 품질 개선, 조직 혁신으로 이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AI가 절약한 시간을 조직이 다시 영양가 없는 회의와 보고로 채워버린다면 생산성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아이디어 리그 심사를 하며 확인한 개인의 AI 혁신 수준은 놀라왔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과제는 이를 조직의 성과로 전환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조직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좋은 Agent를 중앙조직이 대신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성원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권한을 주고, 반복해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와 API, Tool, Skill을 공용 자산으로 제공해야 한다. 잘 만든 Agent는 개인 PC에 남겨두지 말고 Catalog에 올려 다른 사람이 가져다 쓰고 개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보안과 Governance 역시 “하지 마라”는 규정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는 자유롭게 해도 되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리더의 역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리더가 AI의 기술적 해답까지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대신 조직의 핵심 이슈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조직에서 왜 아직도 사람이 매주 세 시간씩 매달려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이 판단은 특정 전문가 한 명만 할 수 있는지, 왜 같은 오류가 매주 반복적으로 발견되는지를 문제삼는 리더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귀찮아서 만든 작은 Agent, 엑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시작한 자동화, 매일 반복하던 업무를 다시 생각해 본 작은 실험에서 AI 혁신은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개인의 도구가 공유 자산이 되고, 절약한 시간이 사업 성과로 연결되며, 한 번의 실험이 조직의 새로운 일하는 방식으로 정착할 때 기업의 AI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가장 뛰어난 AI 모델을 가진 회사에서만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 수천 명이 자신의 일을 다시 설계하고, 그 결과를 서로의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는 회사. AI 시대에 지속적인 안정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그런 회사가 ‘생성’되고 있는 모습을 이번 S그룹의 AI 해커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