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은 써지는데 “내가 쓰는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문장은 매끄럽게 이어지지만,
머릿속에서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늘어났습니다.
평소에는 쉽게 꺼내던 표현이,
잠시 멈칫하며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피로일까요.
아니면 다른 신호일까요.
펠리치타스 아우어슈페르크가 사회심리학에서 언급한 켈로그 부부의 실험이 떠올랐습니다.
1930년대, 켈로그 부부는 아기 침팬지와 자신의 아들을 함께 키우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침팬지가 인간 아동의 행동을 모방하며 놀라운 속도로 발달했습니다.
인간의 환경에 노출된 침팬지는 사람처럼 반응하고, 사람의 행동을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침팬지가 인간을 닮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아동이 침팬지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표현 능력이 둔화되었습니다.
결국 켈로그 부부는 실험을 중단하고 두 존재를 분리했습니다.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더 닮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AI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우리의 일상은
이 실험을 묘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에는 AI가 우리를 닮습니다.
우리가 쓴 글을 학습하고, 우리의 문체를 모방하며,
우리가 던진 질문을 확장합니다.
AI는 인간을 따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가 AI를 따라 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요.
AI가 제안하는 문장을 선택하고,
AI가 추천하는 단어를 채택하며,
AI가 생성한 구조 안에서 사고를 정리합니다.
글은 더 빨리 써집니다.
그러나 생각은 더 빠르게 ‘정리된 형태’로 수렴합니다.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 순간은,
어쩌면 사고의 근육을 덜 사용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AI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도구는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사고 방식을 바꿉니다.
켈로그 부부의 실험은 잔혹한 은유입니다.
기술은 우리를 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을 닮아가고 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작은 순간,
단어가 잠시 멈추는 그 공백은
어쩌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더 닮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